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75
#674.
달려들다 (4)
‘뭐지, 저놈?’
강진호를 보는 다바오[大宝]의 눈이 긴장으로 물들어갔다.
보통 놈이 아니라는 건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궈리친은 조직 내에서도 나름 인정받는 놈이다. 다바오 역시 스스로의 입지와 실력이 궈리친만 못하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 궈리친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게 만든 놈이 보통 놈일 리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곳으로 올 때만 해도 절대적인 자신이 있었다.
그들은 넷이니까.
다바오 혼자서는 궈리친 하나를 감당할 수 없지만, 그들 넷이라면 궈리친 셋쯤은 찜 쪄 먹을 수 있다. 그렇기에 상대가 궈리친을 죽였을지도 모르는 강자라는 사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 잘못됐어.’
등골이 서늘하다.
신호는 몇 가지가 있었다.
그들이 길을 막아서고 있음에도 저놈은 조금도 긴장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마치 귀찮은 파리 떼라도 쫓는 얼굴이 아닌가.
그리고…….
‘동요가 없어.’
다바오는 조금 전부터 기세를 있는 대로 뿜어내고 있었다.
상대가 뛰어난 강자라 해도 다바오의 기세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저 강종인인지 뭔지 하는 한국 놈은 다바오가 뿜어내는 기세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굴고 있었다.
허세?
다바오가 헛웃음을 흘렸다.
기세는 무형이지만, 또한 유형의 것이기도 하다.
무인이 내뿜는 기운을 정면으로 받으면 근육이 조여들고 숨이 막혀온다. 대항할 수 없으면 기세를 받는 것만으로도 죽을 수 있다.
그러한 기세를 받으면서 허세를 부릴 수 있다?
그럼 그건 허세가 아닌 것이다. 기세를 받으면서도 태연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명령을 들었어야 했나?’
그들에게 떨어진 명령은 성도로 이동하여 대기하라는 것이었다. 대충 무슨 일인지는 알지만, 그들이 알아서 움직일 자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 명령을 무시하며 빨리 일을 해결하고 돌아가자고 제안한 건 바로 다바오였다.
성공했다면 욕이야 좀 먹겠지만 일을 수월하게 만들고 자체적으로 움직인 공을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가보기에 상황은 영 좋지 못했다.
어쩌면 다바오는 오늘 명령을 따르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를지도 몰랐다.
“궈리친이 누군지 알고 있군. 다바오, 이놈이 맞는 것 같은데?”
당연히 맞겠지, 이 등신 같은 새끼들아.
다바오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상대는 조금 전부터 다바오가 뿜어내는 기세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받아내고 있었다. 그것만 봐도 이놈이 보통 놈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지 않은가.
모든 정황이 맞아떨어지는데 더 이상 뭘 확인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 간단한 것도 알아채지 못하는 동료들에게 정나미가 떨어졌다. 하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혼자서는 절대 상대 못해.’
지금은 힘을 합쳐야 할 때다. 굳이 짜증을 내서 사이가 어색해질 필요가 없다.
“맞겠지.”
“하, 궈리친이 저 샌님 같은 놈에게 당했단 말이야?”
샌님?
다바오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눈앞에 이런 놈을 남겨두고 시선을 돌린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새끼들,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건가?’
동료라기도 부르기 싫은 놈들은 다들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이미 잡은 물고기를 뜰채로 뜨기만 하면 된다는 듯 말이다.
‘빌어먹을.’
아마도 지금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알고 있는 것은 다바오 하나뿐인 듯했다.
‘우리가 호랑이 아가리 속으로 들어온 거란 말이다, 이 멍청한 새끼들아!’
궈리친이 연락조차 해보지 못하고 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좀 더 조심했어야 했다. 궈리친의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이번 일만 잘 해결하면 궈리친의 자리를 그가 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급하게 움직인 게 문제였다.
‘어떻게 하지?’
다바오의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도망가기에는 늦은 것 같은데…….’
“다바오?”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다바오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고 있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차라리 귀신이면 낫지.’
다바오가 손을 들어 이마를 훔쳤다. 소매에 땀이 한껏 묻어난다.
“너 왜 그래?”
“……조심해.”
“뭐?”
“보통 놈이 아니다, 저거.”
다바오의 경고에 화답한 것은 진지한 목소리가 아니라 옅은 비웃음이었다.
“너 쫄았냐?”
“이!”
“저런 샌님에게 쫄다니. 다바오도 다됐군!”
다바오는 입을 꾹 다물었다.
당장에라도 이 멍청한 놈들에게 현실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역시 지금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난 지금 왜 이리 겁에 질려 있지?’
물론 상대는 강하다.
하지만 그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 아닌가.
궈리친을 제압한 이가 약할 리 없다. 그 혼자서는 절대 상대할 수 없는 강자다. 그래서 넷이 온 것 아닌가.
저자가 이 넷으로도 감당할 수 없을 만한 강자라고?
대체 뭘 봐서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후우우우.”
다바오가 깊게 심호흡을 했다.
‘침착하자.’
어쩌면 이놈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지금 다바오는 과도하게 긴장했다. 상대는 당연히 강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다바오가 느끼는 것처럼 강할 리는 없었다.
당연하지.
그만큼이나 강한 놈이 미쳤다고 이 사천 오지에 들어와서 쿵짝거리며 놀고 있겠는가. 궈리친을 찜 쪄 먹고 그들 넷을 모조리 때려잡을 정도로 강하다면, 적어도 상위 조직 간부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런 거물이 할 일이 없어서 여기에 와 이러고 있겠는가.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일이잖아.’
거기까지 생각하자 조금 전까지 얼어붙어 있던 자신이 어이없게 느껴졌다.
상대가 강하다고 느낄 수 있는 논거는 그의 기세를 이겨냈다는 것과 찜찜한 분위기를 풍긴다는 사실뿐이다.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왔다. 그렇다면 저 분위기 하나에 쫄아서 달아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말 아닌가.
“내가 잠시…….”
그때,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고민이군.”
딱히 힘이 실린 목소리는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 같지도 않았다. 그저 홀로 중얼거리는 것 같은, 그런 목소리였다.
그럼에도 그 목소리는 이상하게 사람을 잡아끌었다.
“원래대로라면 살려 보낼 생각 같은 건 없지만…….”
강진호가 뒤를 힐끔 보았다.
한은솔과 최연하가 이곳을 빤히 보고 있다.
이쪽 세상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한은솔이 이곳을 보고 있다는 것도 부담이고,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최연하가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 역시 부담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라면.
‘이상할 정도로 살의가 일지 않는군.’
자애롭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지금 강진호는 중원에 떨어진 그날 이후로 가장 자애로운 상태가 아닐까?
아마 강진호가 지금 같은 기분으로 이 세상에 돌아왔다면, 지금쯤 아버지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다니는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몰랐다.
세상에 화가 나는 일이 없는데 뭐가 문제겠는가.
“변덕이라면 변덕이겠지만…….”
강진호가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아직 궈리친이 한 말을 모두 검증하지 못했으니, 그때까지는 살려주지. 하지만 안심할 건 없어. 아마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보게 될 테니까.”
“……뭐라는 거야?”
강진호의 말을 듣던 왕푸징이 앞으로 나서서 강진호를 노려보았다.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왕푸징이 으르렁대듯 말했다.
“당장 궈리친을 내놓고, 대가리를 땅에 처박고 빌면 팔 하나를 자르는 정도에서 끝내줄 수 있다. 물론 궈리친이 죽었다면 네놈 역시 살아날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다. 끔찍하게 죽여주지.”
왕푸징이 손에 든 대도(大刀)를 강진호의 얼굴 앞으로 들이밀었다.
자신의 목 앞에 칼이 들이밀어진 것을 본 강진호는 가만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왕푸징의 가슴에 섬뜩함이 밀려들었다.
‘무슨 대화를 하는 거지?’
한은솔이 귀를 기울였다.
‘빌어먹을 중국어.’
한은솔은 영어에 재능이 없었다. 영어로 간단한 회화를 하는 것도 버거워하는 사람이 한은솔이었다. 국어에는 자신이 있지만, 영어는 영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 중국으로 오면서 한은솔은 자신이 영어에 재능이 없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영어가 아니라 외국어 전반에 재능이 없던 것이다.
남들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도 일본어를 익히고, 홍콩 영화를 보다가 중국어를 터득한다는데, 한은솔은 남는 시간을 모조리 중국어 공부에 투자해도 겨우 간단한 회화나 가능한 수준이었다.
몇 달간의 필사의 노력 덕분에 이제 어느 정도 말을 알아들을 수준은 되었지만, 복잡한 중국어를 알아듣는 것은 무리였다.
특히나 지금처럼 거리가 떨어져 있고, 단어가 어렵고, 말소리가 크지 않은 삼중고가 겹쳤을 때는 더 하다.
한은솔은 수능 치는 고3이 영어 듣기를 하는 것처럼 온 신경을 귀에 집중했다. 하지만 역시나 공부와 담 쌓은 고3이 영어 듣기를 하듯 드문드문 몇 가지 단어만 알아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외에는 분위기와 정황으로 때려 맞출 뿐이다.
다행히도 강진호와 저 무뢰배들 간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서로 언성을 높이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는다. 적당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화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들리는 몇 가지 단어는…… 음, 그러니까…….
죽인다. 팔을 자른다. 대가리. 끔찍.
“…….”
뭐야, 씨발! 존나 심각하잖아!
으아아아아! 상황이 왜 이래에에에에에!
한은솔이 기겁을 하여 핸들을 꽉 움켜잡았다. 정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으면 차로 돌진해서 저놈들을 밀어버리고 강진호를 구해낼 생각인 것이다.
“내가 이래서 내리지 말라고오! 내리지 말라고! 으아! 내가 내리지 말…….”
그 순간, 정말 산도적처럼 생긴 놈이 손에 든 커다란 칼을 강진호의 목으로 들이밀었다.
‘히이이이이익!’
이젠 안 된다.
더는 못 버틴다.
이러다가 강진호가 죽기라도 한다면 최연하는 물론이고, 한은솔도 제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들어질 것이다. 한은솔에 막 액셀을 밟아서 차를 돌진시키려는 순간!
덥썩.
강진호가 태연하게 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는 칼을 움켜잡았다.
딸꾹!
그 광경을 본 한은솔의 목에서 커다란 딸꾹질이 튀어나왔다.
그래도 그나마 딸꾹질이 튀어나온 게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심장이 대신 튀어 나왔을 테니까.
한은솔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목을 겨누고 있는 칼을 맨손으로 움켜잡는 저 패기는 존중할 만하지만, 상황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무기를 들고 있는 놈은 둘이나 더 있고, 저 칼도 완벽하게 막아냈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바로 차를 들이밀…….
그때였다.
강진호의 팔이 슬쩍 움직인다 싶더니, 칼을 겨누고 있던 놈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떠올라?’
아니, 저건 떠오른다기보다는 날아간다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그런데 날아간다고?
어디로?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사람의 귀를 찢는 절망적인 비명과 함께, 대도로 강진호를 위협하던 놈의 몸이 붕 떠올라 절벽 밖으로 튕겨 나갔다.
딸꾹!
한 사람의 모습이 절벽 아래로 완전히 사라진 것을 본 한은솔의 목에서 자꾸만 딸꾹질이 튀어나왔다.
딸꾹!
이제는 심장이 대신 튀어나오지 않았다고 안도할 수 없는 한은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