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76
#675.
달려들다 (5)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한은솔이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방금 헛것을 본 것 같은데?
한참을 눈을 비빈 한은솔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조금 전과는 다르게 평온해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럼 그렇지.’
헛것을 본 것임에 틀림없다.
벌건 대낮에 강도를 당하다 보니 심적으로 많이 지친 모양이다. 빨리 어떻게든 이 상황을 해결하고 숙소로 가서 쉬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방금 그놈 어디 갔지?’
그놈 말이다.
방금 강진호 씨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던 그 미친놈.
그놈이 보이지 않는다.
혹시 눈을 비비는 사이에 어딘가로 이동했나 싶어서 고개를 여기저기 돌려봤지만, 여전히 그놈은 보이지 않았다.
“누나.”
“응?”
“한 놈 어디 갔어요?”
“한 놈?”
“강진호 씨 목에 칼 들이밀었던 그놈 있잖아요. 방금 전까지 있었는데.”
“아, 걔?”
“예. 걔 어디 갔어요?”
“지옥이겠지, 아마?”
“……네?”
최연하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살았으면 병원 중환자실, 죽었으면 지옥. 칼 흔드는 걸로 봐서는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데, 그런 놈이 죽어서 천국 갈 리는 없잖아. 안 그래?”
“……아니, 잠시만요. 누나, 그럼 그놈이 그러니까…….”
“지옥 같은 이지선다이긴 하지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그래도 병원 중환자실 쪽이 좀 더 좋은 선택 아닐까 싶네.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야.”
“떨어졌다구요?”
“뭘 못 본 척하고 그래. 봤잖아, 저 아래로 떨어진 거.”
“저 아래요?”
“그래, 저 아래.”
최연하가 손을 들어 절벽 아래를 가리켰다.
고개를 살짝 내밀어봤지만, 절벽 아래가 보이지 않는다. 차에 타고 있는 이상 그 아래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보고 싶지도 않다.
이미 이 길을 오가면서 충분히 봤단 말이다! 차가 저 아래로 떨어지게 되면 아플 새도 없이 즉사할 테니, 차라리 낫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고!
그런데 저 아래로 사람이 떨어졌다고?
“아미타불.”
아니면 관세음보살. 아멘! 앗살라마 아이쿰…….
아, 이건 아니고.
한은솔이 눈을 몇 번이고 끔뻑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본 게 맞는 거예요. 강진호 씨가 사람을 절벽 아래로 날려 버린 거?”
“아마도 그럴걸?”
“아니,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나라고 알겠냐?”
한은솔은 고개를 돌려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다는 말은 무척이나 놀란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문자 그대로의 말이 되어버렸다.
두 눈으로 똑똑히 봤음에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이해할 수도 없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한 손으로 던져 버린단 말인가.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그래,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한 손으로 던질 수 있다고 치자. 세상에는 별일이 다 있으니까. 물론 프로 격투기 선수에게서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심지어는 프로레슬링에서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왜 절벽으로 던지느냔 말이다.
‘살인이잖아.’
한은솔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지금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모습을 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충격이 어마어마했다.
‘죽었겠지?’
사람이라면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가끔 세상에는 천운이라는 게 있어서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지고도 목숨을 부지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매번 그런 요행을 바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죽었겠죠?”
“모르지.”
“누나, 괜찮아요?”
“뭐가?”
“사, 사람이 죽었잖아요. 지금 눈앞에서.”
“그래서 뭐?”
“…….”
한은솔이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눈앞에서 살인이 났을지도 모른다구요. 강진호 씨가 사람을 죽…….”
“너 바보야? 아니면 병신?”
“예?”
“그럼 칼 들고 우리 죽이겠다고 달려든 애들 생명까지 걱정해 주면서 대처를 해야 돼?”
“아니, 그거 아니지만…….”
“야, 이건 정당방위야. 설사 남은 저 세 명을 다 죽이고, 법원으로 직행해도 법원 경비가 ‘그런 일이면 굳이 재판까지 받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재량으로 무죄를 드리지요. 주차증 끊어드려요?’라며 돌려보낼 일이라고.”
“……권한 쩌는 경비네요.”
물론 한은솔도 정당방위에 엄격한 대한민국의 법을 탐탁찮게 여기는 사람이고,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내 목숨과 지인의 목숨이 위험한 것보다는 강도가 다치는 쪽이 낫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머리로 그리 생각하는 것과 눈앞에서 실제로 그런 상황을 맞닥뜨리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한은솔은 평범한 소시민이란 말이다.
그런 사람이 칼을 들고 달려드는 사람을 언제 만나봤을 것이며, 그 칼 든 놈을 절벽으로 날려 버리는 사람을 또 언제 봤겠는가.
심지어 절벽 아래로 사람을 던져 버린 사람은 그가 조금 전까지 놀려 먹던 사람이다.
생긴 것답지 않게 순진해서 영 얼굴값을 못한다고 생각하던 호구가 태연한 얼굴로 사람을 절벽 아래로 던져 버리고는 손을 털고 있었다.
‘이건 꿈도 아냐.’
꿈도 이리 황당하지는 않다. 꿈이라는 것도 사람의 기본적인 상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니까. 최소한 한은솔의 상식 안에서 이런 일은 존재할 수 없었다.
“누나, 괜찮아요?”
“뭘 자꾸 괜찮냐고 물어봐?”
“그래도 사람이…….”
“은솔아.”
“네?”
“헛소리하지 말고 조용히 해봐. 잘 안 들린다.”
“……네.”
한은솔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진짜 괜찮은가?’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충격을 먹지 않았냐는 뜻이 아니다.
강진호가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르는데 괜찮은가를 묻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연하의 반응은 너무도 태연했다. 저건 태연함을 가장하는 게 아니다. 정말 별다른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대체 뭐지, 저 사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최연하는 강진호의 저런 모습을 몇 번이고 지켜본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놀라지 않을 수 있는 게 아닐까?
한은솔이 새삼스러운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저 사람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지금에 와서야 강진호의 존재에 의문을 품는 한은솔이었다.
“……푸징.”
다바오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왕푸징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그는 조금 전 절벽 아래로 떨어졌으니까.
다바오는 떨리는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대체 이놈은 뭐냐?’
느낌을 믿어야 했다.
내부에서 올라오는 외침을 무시한 대가가 이거다.
다바오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경악한 눈으로 강진호를 보고 있었다.
보통 사람은 지금 일어난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 수 없다. 오로지 무인만이 지금 일어난 일이 상식을 벗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을 잡아 던지는 것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건장한 남성을 한 손으로 집어 던졌다는 것도, 그 던진 거리가 비상식적이라는 것도 딱히 놀랄 일은 아니었다.
놀라야 할 점은 던져진 이가 무인이라는 것이다.
사람을 들어 올려 던지는 그 간단한 동작에 왕푸징이 전혀 반응하지 못하고 당했다는 게 문제다.
왕푸징 정도의 무인이라면 자신이 날려지는 와중에 반격을 하려 했을 것이고, 설사 반격을 하지 못했다 해도 바닥에 칼을 박아 넣든가, 몸을 뒤집어 방향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마치 딱딱하게 굳어버린 나무토막처럼 그저 눈을 크게 뜬 채 허공으로 날려져 추락한 것이다.
이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인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무인이 다른 무인의 움직임을 제압하고 허공으로 날려 버린다는 건 웬만한 실력 차가 나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보통 사람으로 치자면, 건장한 청년과 세 살박이 어린아이 정도의 차이가 나야 가능한 일이다.
이 일수만으로 다바오는 눈앞의 한국인과 자신들의 격차를 실감했다.
이미 조금 늦어버렸지만 말이다.
‘기다려야 했어.’
이놈은 자신들만으로는 절대 상대할 수 없다. 성도로 몰려오고 있는 조직원들이 모조리 몰려와도 장담할 수 없는 상대인 것이다.
상부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이미 파악하고 기다리란 명령을 내린 것일까?
아니겠지.
그저 확실한 것이 없으니 천천히 가자는 의미였을 것이다. 만약 조금만 오판을 내린다면 조직의 간판을 내려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물론 다바오가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지금 그가 걱정해야 하는 건 조직이 아니라 그 자신이니까. 범의 아가리가 살짝 조여지며 한 명이 이빨에 끼워져 찢겨 나갔다. 그다음 차례가 자신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너.”
그 순간, 강진호가 다바오를 불렀다.
“……예?”
머리가 생각을 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상대와의 관계를 아직 정립하지 못했지만, 육체는 솔직하게 공손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누가 보냈지?”
“…….”
“대답은?”
다바오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누, 누구라고 말씀드리기가 힘듭니다.”
다바오가 필사적으로 설명했다.
“저희는 그저 성도로 모이라는 명을 받았을 뿐입니다. 명을 받고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궈리친이 실종된 일 때문에 명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궈리친이라…….”
그럼 홍왕계가 움직인 것은 아니다.
강진호가 살짝 고민에 빠졌다.
홍왕계가 본격적으로 움직인다면 중국을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딱히 그들이 두려운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 있다 보면 주변인들이 휘말리지 않을 수 없다.
그들과 싸우면서 주변인까지 지켜내는 것은 아직 무리다.
“흐음…….”
강진호가 다바오를 보며 말했다.
“한 놈이 필요하다.”
“예?”
“한 놈. 필요한 건 한 놈뿐이야.”
다바오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은 셋이다. 그런데 한 명이 필요하다면?
“나, 남은 둘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강진호가 가만히 다바오를 보며 말했다.
“너희는 운이 좋아. 나는 오늘 기분이 좋거든.”
“…….”
강진호가 턱짓으로 절벽을 가리켰다.
“내게 칼을 들이민 이를 자발적으로 살려서 보내주는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인 것 같군. 그러니 굳이 내가 손을 쓸 필요까진 없겠지?”
“…….”
“선택해.”
강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제 발로 절벽에서 떨어질 건지, 아니면 여기에 남아 나와 함께 갈 건지 말이야.”
우스운 말이었다.
저 말을 듣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쪽을 선택할 이가 누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강진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세 사람이 동시에 절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아! 비켜!”
“나오라고!”
한 사람은 남아야 한다는 걸 자각한 세 사람이 서로를 밀치고 잡아끌며 나뒹굴었다. 강진호는 그 광경을 보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조금 재밌어질 것 같은데?’
담배에 불을 붙인 강진호가 연기를 훅, 뿜어내고는 말했다.
“아, 절벽에서 떨어질 때, 내공은 쓰지 마라.”
“…….”
떨리는 눈으로 강진호를 돌아본 세 사람의 눈에 독기가 피어났다.
하지만 그 독기는 강진호를 향해 발산되지 않았다. 무기를 뽑아 든 세 사람이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서로 절벽에 떨어지겠다고 다투는 셋을 보며 강진호가 한숨을 쉬었다.
“요즘 애들은 의리가 없어.”
백년산 꼰대의 속 깊은 한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