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8
#67.
과시하다 (5)
“이!”
황종인이 공을 차며 앞으로 나갔다. 하지만 강진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황종인은 강진호의 우측으로 공을 슬쩍 밀어내고는 반응할 타이밍을 맞춰 좌측으로 공을 차며 지나쳤다.
‘뭐야, 반응도 못하잖아?’
깔끔한 페인트였다.
성공했다면 말이다.
“어?”
공이 없다.
분명 공이 강진호의 뒤로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는데, 공이 보이지 않았다.
툭.
등 뒤를 돌아보자 강진호가 느긋하게 공을 몰아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언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쟤 진짜 멍청하다. 왜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공 주고 자기 혼자 가냐?”
“쟤 축구부였다던데, 진짜야? 내가 해도 저거보단 잘 차겠다.”
황종인이 고함을 질렀다.
“아! 진짜!”
황종인이 강진호에게 달려들어 등 뒤에서부터 태클을 해 들어갔다.
발목이 걸리면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위험한 태클.
하지만 그런 것을 가리지 못할 만큼 황종인은 지금 흥분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뿐.
강진호는 속도조차 바꾸지 않은 채 느긋하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촤아아악!
황종인이 잔디 위를 길게 미끌어졌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발은 강진호의 발에도 그 앞에 있는 공에도 닿지 못했다.
그러자 마치 황종인이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혼자 태클을 한 꼴이 되어버렸다.
“쟤 뭐하는 거야? 왜 저래?”
“병신 아냐?”
남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고, 여자애들은 입을 가리고 웃어 댔다.
강진호는 느긋하게 앞으로 갔다.
“아! 뭐하냐, 너!”
정성구가 고함을 지르며 앞으로 뛰쳐나왔다. 강진호의 발이 슬쩍 당겨진 것이 이번에도 박유민에게 패스할 모양이었다. 정성구는 패스 코스를 차단하며 태클을 해 들어갔다.
하지만 강진호는 정성구가 태클해 오는 것을 기다리더니, 비어 있는 쪽으로 공을 가볍게 굴렸다.
뽈뽈뽈.
초등학생이 찬 것보다 더 느린 속도로 공이 굴러갔다.
덕분에 다리가 불편한 박유민도 무리 없이 굴러가는 공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툭.
가볍게 굴린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첫 골.
너무도 쉽고 간단하게 들어가 버린 골이었다.
강진호는 황종인을 향해 말했다.
“이제 한 골이야.”
황종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일어서. 네 골 남았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황종인은 하지 말아야 할 내기를 하고 만 것이다.
경기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황종인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번번이 공을 뺏겼고, 뺏긴 공은 당연하다는 듯이 박유민의 발에서 골로 연결되었다.
박유민의 다섯 골.
황종인은 넋이 나간 얼굴로 박유민을 바라보았다.
“내, 내가…….”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내기 잊지 마라. 다음 수업 시간이다.”
“……아니, 잠깐만.”
너무 많은 애들이 들어버렸다. 지금 와서 아니라고 해버리면 무슨 말이 나올지 빤했다.
그때, 박유민이 황종인을 도와주었다.
“진호야, 근데 내가 정하긴 했는데, 이거 좀 심한 것 같다.”
“왜?”
“창피하잖아.”
“우리가 졌으면 우리가 했겠지. 당연한 결과야.”
박유민은 단호한 강진호의 어조에서 타협의 여지를 찾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박유민이 누군가.
강진호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부모님도, 황정후도 아니고, 바로 박유민이었다.
“교수님에게도 실례야.”
“흐음.”
박유민이 꺼내 든 카드에 강진호가 움찔했다.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었다.
“바꾸지. 여기서 운동장 한 바퀴 돌아. 팬티 바람으로.”
“…….”
황종인은 멍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다가 이를 악물었다.
“씨발! 너무한 것 아냐?”
“뭐가?”
“아니, 좀 심한 것 아니냐고!”
강진호는 그런 황종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내기를 하자고 한 건 네가 아니던가?”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좀?”
강진호가 천천히 황종인에게 다가갔다.
황종인은 여차하면 주먹이라도 날리겠다는 듯 어깨를 쫙 폈다. 그러고는 강진호를 내려다보았다.
“계속해 봐.”
강진호가 가볍게 입을 열었다.
“아니…… 내 말은…….”
“계속해 봐.”
황종인이 입을 다물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딱히 뭔가 벌어진 것도 아닌데, 자꾸 식은땀이 흐르고 목이 막혀왔다. 침이 바싹바싹 마르고 심장이 미칠 듯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왜 이러지?’
황종인과 강진호의 눈이 마주쳤다.
“…….”
황종인은 입조차 떼지 못한 채 사색이 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왜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꾸만 몸이 떨려오고, 이 자리에서 도망가고만 싶었다. 당장에라도 달아나고 싶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내기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
강진호가 황종인의 가슴에 슬쩍 손을 가져다 댔다.
“참는 건 이번 한 번이야.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그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지 않았으면 좋겠군. 아니면 내가 참기가 힘들 테니까 말이야.”
툭.
아주 가볍게 가슴을 쳤을 뿐이다.
하지만 황종인은 마치 해머에라도 맞은 듯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커억! 쿨럭! 쿨럭!”
황종인은 가슴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고통에 말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보기에는 그저 강진호가 그의 가슴을 툭, 건드리자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연기를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거 뭐하는 거냐, 대체.”
“할리우드 액션이네. 야, 누가 가서 레드카드 좀 꺼내줘라.”
“가지가지 한다. 병신.”
그렇게 황종인의 이미지는 단 한 번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강진호는 바닥을 구르는 황종인을 일별하고는 몸을 돌렸다.
“수업 시작하겠다. 가자.”
“응.”
박유민이 강진호를 따랐다.
“야!”
하지만 한세연은 아직 불만인 모양이었다.
“왜?”
“끝이야?”
“그럼?”
“야, 이렇게 끝내면 어떻게 해! 저 재수 없는 자식 완전 묵사발을 내줘야지!”
“패기라도 할까?”
“넌 친구가 그런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이 정도에서 끝내냐!”
“난 괜찮은데.”
박유민의 말에 한세연이 화를 냈다.
“괜찮긴 뭘 괜찮아. 아, 짜증나. 저 재수 없는 놈.”
박유민은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 일처럼 화를 내는 한세연을 보니 괜스레 고맙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다.
“걱정하지 마.”
“응?”
“이제 고개도 못 들고 다닐 테니까.”
“……뭔 소리야?”
강진호가 천천히 걸어갔다. 그런데 걸어가는 방향이 조금 이상했다.
“쟤 어디 가?”
강진호 스탠드 쪽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중 한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찍었어?”
“응, 다 찍었어. 야, 이거 대박 나겠다.”
“그렇겠지.”
한세연의 눈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무슨 소리야? 찍다니?”
그리고 왜 얘한테 그런 걸 묻는데?
자꾸 나오려는 뒷말을 삼키고 한세연이 진미희를 바라보았다.
진미희가 강진호를 보며 생글생글 웃더니, 휴대폰을 앞으로 내밀었다.
“경기 처음부터 다 찍어놨어, 진호가 시켜서. 자, 여기 있어.”
“아?”
강진호는 맡겨둔 자신의 폰을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한세연에게 폰을 건넸다.
“편집할 수 있어?”
“내가 원래 악마의 편집의 달인이야. 멀쩡한 동영상도 막장으로 만들지.”
“편집해서 올려.”
“아하하핫! 알았어! 내가 끝내주게 하나 만들어볼게.”
한세연의 머릿속에서 강진호와 진미희가 엮였다는 불쾌함이 날아가고, 즐거운 상상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코믹 사이트 곳곳에 ‘할리우드 액션남’이라는 이름이 붙은 동영상이 업로드되었다.
동영상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경기도 웃기지만…… 마지막 순간, 시비가 붙은 듯한 사람 중 하나가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댔을 뿐인데 데굴데굴 굴러 버리는 장면이 사람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들었다.
할리우드로 진출시켜야 한다느니, 오스카 남자 배우상감이라느니 하는 조롱 댓글이 폭주했다.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를 하기는 했지만, 아는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강진호는 컴퓨터에 앉아 동영상을 틀어놓았다.
‘재미있군.’
문명의 이기는 때로는 사람을 괴롭히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시험 삼아 해본 일인데, 반응은 강진호가 생각하는 그 이상이었다. 마치 사람들이 누군가를 비웃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다.
“잘 쓰면 약이 되겠지만…….”
어쩌면 독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강진호는 동영상을 보고 피식 웃고는 사이트를 껐다. 아마도 내일부터 황종인은 얼굴도 들고 다닐 수 없을 것이다.
학교에는 소문이 퍼질 테니까.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하지만 강진호도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그날부터 강진호가 운동도 잘하더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그때까지 강진호에게 관심이 없던 특정 계층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건 강진호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결국 황종인과 강진호의 대결은 의도치 않은 무승부로 끝나 버렸다.
“다녀왔습니다.”
강진호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강은영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얼굴이 푸석푸석한 것이, 지금 당장 쓰러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 없어 보였다.
“지금까지 연습한 거냐?”
“응.”
“어제는 왜 집에 안 들어왔어?”
“연습실에서 잤어.”
“잠은 집에서 자야지.”
“시간이 너무 없어서 그래……. 집에 왔다가 가는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어서.”
강진호는 강은영의 말에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직 한창 자랄 아이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이토록 힘들게 훈련하고 연습을 해야 한다는 건가?
물론 성공도 중요하고, 꿈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건 너무 과하지 않은가.
그걸 말려야 할 어른들은 대체 뭘 하고 있다는 말인가.
“씻고 자. 빨리.”
“응, 오빠.”
강은영은 비틀거리며 욕실로 걸어 들어갔다. 강진호는 그런 강은영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세운 목표이니 뭐라 말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지켜보는 사람의 눈에 보기 좋지는 않았다.
“쯧.”
강진호는 가볍게 혀를 찼다.
한참 동안 욕실에서 나오지 않던 강은영이 힘겹게 걸어 나왔다.
“오빠, 안 자?”
“너 여기 앉아봐.”
“……나 지금 너무 피곤해. 할 말 있으면 좀 나중에 하면 안 될까?”
“알았으니까 앉아.”
강은영은 한숨을 쉬더니 자리에 앉았다.
강진호는 강은영의 손목을 잡았다.
“뭐해?”
“가만히 있어.”
엉망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내부가 더 상해 있었다. 누적된 피로가 몸을 갉아먹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이돌들이 때로 병원에 실려 가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꼴이 되도록…….”
강진호는 화가 났다.
꿈은 좋다.
하지만 몸은 돌보면서 해야 할 것 아닌가.
강진호가 기운을 흘려 넣어 강은영의 몸 안을 씻어냈다.
“이상하게 뜨거운데?”
“가만히 있어.”
강진호는 한바탕 기운을 순환시켜 강은영의 몸 안에 남아 있는 여독들을 배출시키고는 손을 뗐다.
“이제 자.”
“……이상하네? 나 갑자기 피곤하지가 않아.”
“그래도 자야 돼.”
“응, 오빠.”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이는 강은영을 보니 화를 내려고 해도 낼 수가 없었다. 따져 보면 이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시키는 대로 할 뿐인데.
“데뷔는 결정된 거냐?”
“응.”
“그래서 그렇게 피곤한 거야?”
“…….”
“데뷔하기도 전에 쓰러지겠다. 원래 데뷔 전에는 그렇게 힘들게 하는 게 맞아?”
강은영이 얼굴을 감쌌다. 한동안 얼굴을 감싸고 있던 강은영의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오빠, 나 너무 힘들어.”
“…….”
강진호의 얼굴이 굳었다.
“말해봐.”
“…….”
“말하라니까.”
“아냐. 나 그냥 좀 피곤해서.”
“강은영.”
강진호의 목소리가 단호해지자 강은영이 몸을 살짝 떨었다.
“내가 찾아가서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 네 입으로 말해.”
“오빠.”
“어서.”
강은영은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