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82
#681.
지원하다 (1)
“이성휘요?”
[예, 회주님.]‘이성휘라…….’
애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을 갔을 때, 그에게 달려든 이성휘의 모습이 뇌리에 떠올랐다. 그 모습을 생각하니 절로 눈이 찌푸려진다.
그때, 그의 모습은 확실하게 강진호의 뇌리에 박혀 있었다.
그가 딱히 대단한 무위를 지녔다든가,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강진호가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상할 정도의 증오.
이런 말을 하면 조금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강진호를 적대한 이들은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의 명령을 받아 강진호를 죽이려는 자도 있었고, 강진호의 존재 자체가 자신의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거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이성휘는 조금 특이한 편에 속했다.
강진호가 그와 충돌이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성휘는 과도하게 강진호에 대한 증오를 품고 있었다.
자신과 충돌이 있던 자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는 강진호조차 그의 극단성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강진호는 자신의 마음에 밀려오는 감정의 종류를 감별해 낼 수 있었다.
이건 불안함이다.
강진호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성휘는 그리 대단치 않은 자였다. 그의 스승인 이중걸에 비하면 애송이 중의 애송이이고, 그가 지닌 무력도 딱히 대단할 게 없다.
그럼에도 강진호가 이성휘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가진 극단성과 과감성 때문이었다. 총회의 누구도, 그리고 홍왕계의 누구도 일반인과 어울려 있는 놀이공원에서 강진호를 습격한다는 발상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거침없이 그 짓을 저질렀다.
철저한 계산의 결과든, 그게 아니면 그저 충동으로 벌어진 일이든, 그는 강진호가 가지고 있는 상식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는 존재다.
‘그때 끝을 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강진호의 손에 잡힌 이들 중, 강진호의 의지와 관계없이 그의 손을 벗어난 존재는 이성휘가 유일하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 강진호는 어쩌면 이성휘와 자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악연으로 얽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회주님을 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으로 넘어간 지금이 좋은 기회겠죠.]“흐음…….”
강진호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은 거의 장악이 끝났다. 한국에 총회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무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워낙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어 딱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이현수가 단언한 일이니 믿어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강진호를 노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기껏해야 노릴 수 있는 방법은 강진호 이상의 고수를 포섭해서 은밀한 곳에서 결전을 겨루는 방식뿐이다. 일전에 바토르가 그랬듯이.
하지만 이성휘의 능력과 인맥으로는 강진호 이상 가는 고수를 포섭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결국 수로 밀어붙일 수밖에 없다.
총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고, 치안도 한국보다 좋지 않은 중국은 그들이 일을 도모하기에 최적의 땅이다.
강진호라 해도 같은 상황이라면 그가 중국에 있을 때를 노릴 것이다. 그게 가장 합리적이니까.
“노린다면 이중걸의 잔당을 이끌고?”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쪽 전력들은 제가 완전히 파악하여 동향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소수가 빠져나가는 건 가능하겠지만, 제 눈을 속이고 일거에 다수가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단체로 움직인다고 해서 회주님에게 위협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들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겠죠.]“음…….”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게는 이미 데몬스트레이션을 끝냈다.
강진호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그들이 강진호의 심기를 거스르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어떤 보복을 받는지도 잘 알았을 테니까.
물론 강진호는 예전에 비한다면 오히려 온건하게 손을 쓰기는 했다. 영남회 사태 때나, 일본 무인들이 그를 노렸을 때를 떠올려 보면 최대한 온건하게 대항한 셈이었다. 그 스스로 나서서 손에 피를 묻히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게 저들에게는 오히려 더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강진호를 노리던 이들이 마염에게 쓸려 나갔다. 바토르에게 걸린 이들은 몰살을 당했다. 심지어 나이트 위긴스조차 장로들을 박살 내버렸다.
사자 한 마리만 어떻게 잡으면 된다고 생각하던 이들이 사자의 주위에 어느새 범과 곰이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들을 뚫어야 강진호에게 닿을 수라도 있다.
게다가 강진호는 이 순간에도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그들이 감히 강진호를 노릴 꿈을 꾸겠는가.
언젠가 시간이 흘러 공포가 무뎌지면 미친 짓을 저지르는 놈들이 다시 나타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은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강진호의 대한 공포가 절정에 달해 있을 시기이니까.
그렇기에 강진호도 안심하고 자리를 비운 것 아닌가.
“그리 수완이 좋아 보이지는 않던데. 외부 세력과 손을 잡았다는 건가?”
[아무래도 김석일과 연대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김석일이라…….”
그리운 이름이로군.
“동창회라도 하려는 것 같은데?”
[이런 동창들이라면 저는 사양입니다.]“동감이군.”
강진호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악연의 고리는 단호하게 끊어야 한다. 과거부터 그가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악의를 가지고 있는 이들을 살려두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 이유 때문이 아닌가.
악연은 언젠가는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그토록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살았음에도 결국에는 청마에게 배신당해 죽었다. 그러고도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물렀나.’
이 세상과 그 세상이 같은 세상이 아니니, 과거처럼 살 수는 없다 하더라도 삶에 대한 기조는 그리 다를 것이 없다. 조금 더 물러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이건 그와는 별개의 문제다.
[회주님, 그래서 제안드리는 겁니다만, 한국으로 돌아오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회주님이 중국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건 알겠지만, 회주님의 안전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아니, 지금은 아니야.”
[회주님, 생각을 다시 한 번 해주십시오. 물론 그들의 능력으로 회주님을 위험에 빠뜨릴 확률이 크지 않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회주님을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셔야 합니다.]“알고 있어.”
강진호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곤란하군.’
지위를 맡는다는 건 이래서 불편하다. 과거의 강진호였다면 이현수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귓등으로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무도 총회의 회주라는 자리를 맡아버린 이상, 그의 고언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러려면 처음부터 그 자리를 맡지 않았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은가.
지금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하나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전체에 손해를 입히는 일이다.
그렇다면?
“고려하지. 될 수 있는 한 이곳의 일을 빨리 끝내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어.”
[알겠습니다, 회주님. 부탁드리겠습니다.]“그럼.”
강진호는 전화를 끊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만히 놔두지를 않는군.’
하나의 일이 끝났다 싶으면 다시 다음 일이 밀려온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일을 해결하다 보면 시간이 알아서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이성휘라…….’
강진호의 입꼬리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차라리 잘된 건지도 모르겠군. 이왕 일을 벌일 거면 화끈하게 벌여주면 좋겠지. 시선도 끌 겸.’
강진호가 나직한 웃음을 흘렸다.
“거기서 뭐 해요?”
촬영장의 어두운 구석에서 음흉하게 웃던 강진호가 최연하의 부름에 쪼르르 앞쪽으로 달려 나갔다.
“지금 갑니다.”
어머니나 강은영이 봤으면 통탄스러워할 일을 잘도 저지르고 있는 강진호였다.
* * *
전화를 끊은 이현수가 의자에 등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들을 생각이 전혀 없군.’
그럴 줄 알았다.
위험하니 어쩌니 백날 말을 늘어놓아 봤자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나마 과거 김석일은 이현수가 진심으로 조언을 하면 앞에서는 손을 내저어도 진지하게 그 사안에 대해서 고민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김석일과 강진호를 비교한다면 1초의 고민도 없이 강진호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하지만 강진호가 이럴 때마다 서글픔이 밀려 왔다.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상사라는 것들이 하나같이 그를 괴롭히지 못해서 안달이란 말인가.
“끄응, 앓느니 죽지.”
무시하지 마라.
이쪽은 최고의 보좌다.
상사가 트롤링을 일삼는다면, 그것까지 감안해서 일을 한다. 그게 진정한 보좌의 역할이었다. 상사가 내 말을 안 들어준다고 징징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른 이들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을 가리켜 ‘유능’이라 하지 않는가.
이현수는 유능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었다.
주변이 도와주지 않고, 상사가 여기저기 일을 벌이고 다닌다고 해서 손 놓고 울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모조리 틀어막아 주겠어!’
이현수가 이를 가는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끼익.
문이 열리고 이현수의 방으로 익숙한 얼굴을 한 이가 주춤대며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부장님.”
“아, 앉아.”
“……네.”
방 안으로 들어온 이는 이명환이었다.
‘날 왜 부른 거지?’
이명환이 영 찝찝하다는 얼굴로 소파에 앉았다. 총회 내에서 그가 가장 피하고 싶은 사람 1위가 강진호고, 2위가 이현수다. 아마 이 순위는 총회에 몸을 담고 있는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순위일 것이다.
“커피?”
“괜찮습니다.”
“평소 커피를 안 먹는 모양이지?”
“그런 건 아닙니다만…….”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이명환을 보며 이현수가 쓰게 웃었다.
‘어지간히도 불편한 모양이군.’
다른 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현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딱히 그에 대한 불만도 없었다. 그들이 자신을 꺼려하도록 이현수 스스로가 조장한 면도 있으니까.
가족처럼 부드럽게 대해주는 상사도 필요하지만, 조직에 긴장을 불어넣는 상사도 필요하다. 강진호가 전체적으로 긴장을 불어넣는 역할을 맡는다면, 그는 시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쪼르르륵.
커피 머신에서 커피 두 잔을 뽑은 이현수가 커피 잔을 자신 앞에 하나 내려놓고, 남은 한 잔을 이명환에게 내밀었다.
“시럽?”
“괜찮습니다.”
이명환이 송구하다는 듯이 이현수가 내민 커피 잔을 받아 들었다.
“요즘 생활은 어때?”
“별문제 없습니다. 지나다닐 때마다 무슨 괴물 대하듯 바라보는 것만 아니면 더 괜찮을 것 같지만, 그건 저희가 감내해야 하는 일이겠죠.”
“괴물 대하듯?”
“이상한 소문이 퍼진 모양입니다만…… 딱히 신경 쓰실 일은 아닙니다.”
“그렇군.”
이현수는 굳이 더 묻지 않았다. 알아내려고 한다면야 알아낼 방법이 수십 가지는 될 텐데, 굳이 말하지 않으려는 이를 재촉할 필요는 없다.
“뭐, 일단 알겠어. 그럼 본론으로 넘어가지. 적당히 괜찮을 애들로 사람 좀 추려봐. 일단 스물 정도만.”
“예?”
“너희 말이다.”
이현수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마저 입을 열었다.
“중국에 좀 가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