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87
#686.
탐색하다 (1)
“제발! 제에발! 제발 좀!”
이 울분을 어디에 풀어야 하는가!
“정신 좀 차리세요! 정신 좀!”
생각 같아서는 욕을 한 바가지 퍼붓고 싶지만, 청년 실업이 심한 지금 시대에 여기서 잘리면 어디로 가겠는가. 그리고 잘라줄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옆에 두고 괴롭히려고 하겠지.
그렇기에 한은솔은 최대한의 인내력을 발휘하여 입에서 튀어나오는 욕을 틀어막았다.
“여기서 덮친다가 왜 나와요! 선택지가 왜 거기로 가냐고! 막장 게임이야? 어?”
“아니, 현실적인 방법을 생각한 건데…….”
한은솔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내가 틀렸다.’
그는 그동안 최연하가 연애를 하지 못한 이유가 그녀의 눈이 너무 높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상할 것 없는 일이 아닌가.
이십 대 중반이 되기도 전에 대한민국 최고 미녀의 자리를 움켜잡고 놓지 않은 최연하다. 때때로 다른 이들이 최연하와 비교가 되는 시절도 있었다. 짧은 시기를 두고 보면 그녀와 톱을 다투던 여배우는 항상 있어왔지만, 그 누구도 최연하만큼 톱의 자리를 장기 집권하지는 못했다.
이름만 들어도 식상한 ‘대한민국 대표 미녀’란 타이틀을 한시도 놓지 않은 사람이 바로 최연하였다.
그러니 눈이 높을 수밖에.
막말로 최연하가 어느 날 인터뷰를 하다가 ‘나는 어디 일국의 왕자급 아니면 결혼할 생각이 없다’라고 말한대도 욕이야 먹겠지만 다들 그럴 만하다고 납득할 것이다.
눈이 높을 자격을 갖췄으니까.
한은솔도 그리 생각했다. 최연하는 눈이 무지무지 높아서 주변의 남자들이 조금도 눈에 차지 않는 거라고, 그렇기에 정말 어마어마하게 괜찮은 남자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연애는 무리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거, 그냥 단순히 푼수 아닌가?’
생각해 보면 그렇다.
최연하가 이런 얼굴이 아니라 평범한 얼굴이었으면 연애를 할 수 있었을까?
적당한 남자를 만나서 알콩달…….
“알콩달콩은 얼어 죽을.”
“응?”
“아, 아니요.”
순간, 입으로 튀어 나와 버린 본심에 한은솔이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이건 무리다.
최연하가 누군가를 만나서 연애를 하는 모습이 도무지 그려지지가 않는다. 물고기가 지느러미로 걸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는 쪽이 차라리 편하다.
“정상적으로 좀 갑시다, 정상적으로.”
한은솔이 막심한 책임감에 시달렸다.
‘어떻게든 이어야 한다.’
최연하가 강진호와 잘되지 못한다면, 앞으로 평생 동안 어떤 남자도 만나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그의 배우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기의 화신으로 남는 것은 매니저로서는 선호할 만한 일이지만, 최연하의 동생 한은솔로서는 결코 달가울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날이 갈수록 늘어날 히스테리를 감당해야 할 사람이 바로 그 자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후욱!”
막중한 책임감을 깊은 심호흡 한 번으로 날려 버린 한은솔이 입을 열었다.
“쉽게 생각하자구요, 누나. 쉽게.”
“뭘 어떻게 쉽게 생각해? 내가 이런 걸 해본 적이 없는데.”
“누구는 연애 한 번씩 경험하고 태어납니까? 누구나 다 처음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처음이라고 누나처럼 굴지는 않는다구요.”
“야, 연습을 해봐야 알지.”
“이거, 웃긴 아줌마네? 누나가 찍은 멜로 드라마가 몇 갠데 이제 와 연습을 해요? 그게 다 연습인데.”
“……으, 그건 너무 오글거리는데.”
“남들은 다 그렇게 삽니다!”
“드라마처럼 살지는 않잖아.”
“그렇지는 않아도 비슷하게는 살아요. 누나가 감독이나 작가라 생각하고 여기서 가장 극적으로 저 사람에게 인상을 남길 방법이 뭔지를 생각하라구요.”
“인상?”
“네. 돌직구를 던지든, 아니면 살살 꼬시든 어떻게든 다음 볼 때까지 확 잡아둘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면 되잖아요.”
“그, 그래야 할까?”
고민하는 최연하에게 한은솔이 자신이 한 조언처럼 돌직구를 날렸다.
“누나.”
“응?”
“제가 보기에도 강진호 씨가 참 괜찮은 사람이거든요?”
“응.”
“물론 그 사람 좀 이상한 부분이 있고,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을 때도 있고, 여하튼 좀 이상하긴 한데…….”
“욕하려면 욕을 하고, 칭찬하려면 칭찬을 해.”
“……아무튼!”
한은솔이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런 괜찮은 사람이 다른 유혹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것도 이상해요. 누나 입장에서는 누나가 최연하인데 설마 다른 데 한눈을 팔겠냐 싶겠지만,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르는 거예요. 누나도 여러 번 겪어봤잖아요.”
“그렇지. ‘설마 그러겠어’라고 생각하면 반드시 벌어지는 게 세상일이지.”
“특히나 남녀 관계라는 건 더 해요.”
“으음.”
최연하가 격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은솔의 말이 맞다. 사람 일이라는 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문제였어.’
강진호와의 관계는 확실히 진전되고 있다. 그걸 이번 강진호의 방문에서 여러모로 확인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최연하는 강진호의 존재를 강하게 느끼면서도 매번 불안함을 느껴야 했다. 이 사람이 나를 어디까지 받아줄 것인가. 그녀의 행동을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항상 눈치를 봤다.
그 모든 행동의 이유가 밝혀지는 느낌이었다.
서로 말을 꺼내지는 않지만, 나름 관계가 진전되어 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짐작밖에 할 수 없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짐작만으로 어찌 안심할 수 있단 말인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아니, 지금은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세대다. 어정쩡한 눈빛이나, 행동으로 보여줄 바에야 그냥 냅다 돌직구를 갖다 꽂아버리는 게 최고다.
‘가야겠어.’
저 인간이 굶주린 짐승(?)들이 우글거리는 들판으로 나가기 전에 갑옷이라도 입기고 도장이라도 찍어놔야 한다. 그래야 내보내는 최연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할 것 같다.
“은솔아.”
“네?”
“고맙다!”
“…….”
최연하가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한은솔을 바라보았다.
“니 말이 맞다. 그래야지! 자존심이 뭐라고 내가 각을 보고 있었네! 가자!”
“가, 가요? 어딜요?”
“강진호 씨한테 가야지! 지금 출발해도 시간에 맞출 수 있을지 모르는데.”
“……누나, 저녁에 촬영 있어요.”
“미루라고 해.”
“예?”
최연하가 역정을 냈다.
“류웨이, 그 새끼는 며칠씩 펑크 내도 내가 다 메꿨는데, 하루 저녁 정도는 대신 뛰어줄 수 있잖아. 감독도 그 정도 양심이야 있겠지.”
“아, 아니, 그래도 말이라도 하고 가야…….”
“휴대폰은 폼이냐? 당장 안 뛰어?”
“가, 갑니다.”
차를 향해 달려가면서 한은솔은 복잡미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기운을 되찾은 건 참 좋은데…….’
평소의 최연하로 돌아와 준 건 감사한 일이다만…… 막상 그 뒷감당을 본인이 하는 거라고 생각하자 이게 뭔가 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잠깐만.’
급하게 간다고? 차를 타고? 그 절벽을?
“누나, 차도 빨리 몰아야 해요? 잘못하면 큰일 나요, 그거.”
“늦게 도착해도 큰일 나는 거야. 내가 큰일이 뭔지 똑똑히 보여줄 수 있어.”
한은솔은 해탈한 얼굴로 웃었다.
그래, 이왕 죽는 거면 덜 시달리고 죽는 게 낫겠지.
빌어먹을 인생.
* * *
“준비는 다 끝났나?”
“예. 대충 다 됐습니다.”
바토르는 장다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쓸모가 있어.’
장다징은 정보원으로 한국에 파견되었다. 강진호가 나타나기 전까지 한국의 정보라는 게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던가를 생각해 보면, 정말 쓸모없는 한직에 내몰린 것이다.
하지만 그 삶은 장다징을 성장시켰다.
이제 못하는 일이 없었다.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짐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차를 구해와 그 차에 짐을 싣는 일련의 과정이 조금의 딜레이도 없이 깔끔하게 진행된다.
바토르는 이 뿌듯함을 어떻게든 말로 표현하고 싶었다.
“장다징.”
“예?”
“너는 그…… 최고의 그…… 음, 그러니까…….”
바토르가 마침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아냈다.
“최고의 잡부다!”
“……칭찬입니까?”
“말해놓고 보니 칭찬이 아닌 것도 같고. 음, 이거 좀 곤란하군. 여하튼 너의 일처리는 정말 깔끔하고 재빨랐다. 칭찬으로 받아들여라.”
“쓸모없는 능력치만 늘어버렸죠.”
장다징이 한숨을 내쉬었다. 딱히 뭔가 임무랄 게 없고, 그냥 놀게 두기는 싫은 윗놈들이 병장들이 드러누워 노는 꼴을 못 보는 행정보급관처럼 없는 일을 만들어 시킨 결과, 장다징은 못하는 일이 없는 만능 잡역부로 성장했다.
이렇게 말하면 뭔가 있어 보이지만, 게임으로 치자면 잡다한 능력치는 다 찍은 망캐나 다름없다.
뭐 어떤가.
망캐는 망캐 나름의 활용도가 있는 법이다. 게임이라면 활용할 곳이 없겠지만 이곳은 엄연한 현실이고, 다양한 능력을 갖춘 이들이 팔방미인이란 이름으로 우대받는 곳 아닌가.
“차는 렌트인가?”
“혹시 몰라 그냥 사버렸습니다.”
“……너, 의외로 돈이 좀 있구나?”
“오기 전에 이현수 씨가 제게 카드와 현금을 줬습니다. 바토르 님의 밥값만 해도 어마어마한 액수가 나갈 테니, 그냥 법인카드로 긁으라더군요.”
“……그래?”
꽤나 현명한 결정이지만…… 뭔가 좀 이상하니 씁쓸하게 들린다.
“그런데 이놈들은 어떻게 합니까?”
“음…….”
바토르가 궈리친과 다바오를 보고 눈을 찌푸렸다.
“주인, 이놈들은 어떻게 할 거냐?”
강진호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꽂혔다.
“데리고 간다.”
“이놈들을?”
“일단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가다가 적당한 야산이라도 나오면 묻어버릴 셈인가?”
“조금 더 고민해 보지. 뒷자리에 실어둬.”
바토르가 눈치를 주자, 장다징이 바로 움직였다. 뒷자리에 놈들을 끌고 가 밀어 넣은 장다징이 이렇다 할 구속도 하지 않고 문을 닫아버렸다.
강제로 묶어놓는다고 못 풀 놈들도 아니다. 어떤 구속 기구보다 강한 구속기들이 지금 둘이나 있지 않은가.
구속기들이 대화를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 건가?”
“모른다.”
“응?”
“전화를 해봐야 하는데, 안 받는군. 일단은 예전에 만났던 곳 쪽으로 이동할 생각이다.”
“대책이 없군, 진짜.”
바토르가 피식 웃었다.
하기야 대책 없는 건 무인의 종특 아니던가.
모든 일을 빡빡하게 정해놓고 움직이는 건 그의 성미에도 맞지 않았다.
“다 좋지만, 굳이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건가? 나는 영 저 좁은 칸 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뛰어가는 게 더 빠를 텐데.”
“현대인이면 현대인답게 살아.”
“주인에게는 듣고 싶지 않은 충고군.”
“출발하자.”
“그러지.”
장다징이 운전석에 오르자, 강진호가 밴의 뒷자리에 탔다.
“음, 조금 좁은데.”
바토르를 위해 특수 개조된 차량이 아니다 보니 불편함이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조그마한 경차에 덩치 큰 남성이 몸을 구겨 넣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막 몸을 밀어 넣으려던 바토르가 고개를 돌렸다.
“주인.”
“음?”
“저기 배웅이 오는 것 같다만?”
“배웅?”
강진호가 고개를 살짝 내밀려다가 눈을 찌푸렸다.
“비켜봐. 안 보인다.”
“끙.”
바토르가 몸을 빼내자 강진호의 눈에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오는 하얀색 밴이 보였다.
“응?”
저건 최연하의 밴인데?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저 멀리 보이는 밴의 창으로 상체를 내민 최연하가 팔을 흔들며 뭐라고 마구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강진호는 황당한 듯 할 말을 잃었고, 강진호의 심정을 바토르가 대신 말해주었다.
“주인, 이런 말은 조금 실례가 될 수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저 여자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 조금 정상적인 여자를 만나서 번식을 해볼 생각은 없나?”
딴지 걸 힘도 없는 강진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