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88
#687.
탐색하다 (2)
바토르의 말은 무시할 수 있었다. 사실 바토르도 다른 이에게 상식을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의 덩치만 하더라도 일반적인 궤에서 많이 벗어나 있지 않은가.
강진호를 소위 ‘쪽팔리게’ 만드는 것은 바토르의 말이 아니라, 장다징의 시선이었다.
‘너도 참 다이내믹하게 산다’라는 의미를 듬뿍 함유한 장다징의 눈빛이 강진호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바토르가 피식 웃고는 말했다.
“확실히 주인의 취향은 조금 이상한 면이 있지. 얼굴이 반반하다고는 하나 그 얼굴이 영원한 것도 아니고.”
“얼굴 보고 그러는 것 아니다.”
“그럼 더 이상한 것 아닌가.”
반박을 할 수가 없다.
“사람은 다 특이한 면이 있기 마련이지.”
필사적으로 짜낸 변명이 어쩐지 궁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바토르는 굳이 강진호의 허점을 찌르고 들어오지 않았다.
“여하튼 저리 열렬히 찾아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 그런 의미에서는 무척이나 사랑스럽지 않은가.”
“……품평은 그 정도로 해줬으면 좋겠군.”
“주인, 예로부터 위에 서는 자들은 그 배우자를 맞는 것에도 신하들의 간섭을 피할 수 없었다. 주인에게는 별것 아닌 일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윗사람이 하나 더 생기는 일이다. 당연히 주인 이상으로 민감하지 않겠는가.”
뭔가 그럴싸하다.
아닌 것 같은데, 납득이 간다.
‘얘는 왜 이리 말을 잘하지?’
덩치만 보면 말도 못하고 ‘우어우어’ 하게 생겼는데.
물론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게 더없이 멍청한 짓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바토르를 보는 누구나가 머리로 알고 있는 지식을 반드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할 것이다.
그냥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바토르에게는 조규민이나 이현수의 말에서 느껴지지 않는 비틀림이 있었다. 사람의 신경을 살살 긁는…….
“감동적인 장면인데 그리 멍하니 마중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어떤가, 주인. 내가 장다징에게 명해서 가까운 곳에서 들꽃이라도 꺾어올…….”
우드드득.
강진호가 주먹을 강하게 쥐자 그의 손에서 뼈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바토르가 양손을 들고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주인, 나는 폭력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다. 우리는 지성인이고,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다. 어떤 일이 있든 폭력으로 모든 사태를 해결하려 든다면 우리가 짐승과 다를 게 무엇인가.”
“그럼 그냥 짐승이 되면 되겠네.”
“더는 나불대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후.”
강진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조금 이상한 기분이었다.
최근에는 느껴본 적이 없는 기분.
아마도 몇 년 전쯤 느끼던 감정이 맞을 것이다.
그가 총회 쪽의 일에 집중하고 스스로의 무력을 되찾은 이후, 정확하게 말하면 사회적인 지위가 올라간 이후로는 잘 느껴보지 못한 감각을 바토르가 되살려 주고 있었다.
‘이런 놈인 줄 몰랐는데…….’
어쩌겠는가, 이미 그는 바토르를 곁에 둬버렸는데.
다행히 바토르가 무슨 말을 더 하기 전에 차가 도착했다. 강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덜컥.
문이 열리고 최연하가 밴에서 내렸다. 그녀의 얼굴을 무척이나 상기되어 있었다.
“…….”
“…….”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말을 하지 못했다.
누군가 지금 이 광경을 이 시점부터 보기 시작한다면 무척이나 로맨틱한 광경이라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강진호는 대체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하고 있고, 최연하는 막상 차에서 내리고 나자 자신이 추태를 보였다는 사실을 자각해 마음속으로나마 이불을 걷어차는 중이었다.
‘뭔 말을 하지?’
‘무슨 말로 수습하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생각을 하는 둘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지루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었다.
“하아아암.”
강진호의 고개가 뻑뻑하게 옆으로 돌아갔다.
강진호의 시선을 받은 이, 하품을 한 바토르가 어색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자, 잠자리가 바뀌어서 최근 잠을 잘 못 잤다. 미안하다, 주인. 내가 나름 섬세해서.”
섬세?
그 몸으로?
돌도 씹어 먹게 생긴 놈이 무슨 섬세를 논한단 말인가. 세상에 섬세한 사람이 다 얼어 죽었나. 여기서 섬세가 나오게.
할 말은 너무도 많지만, 지금은…….
“강진호 씨.”
갑작스레 열린 최연하의 입에서 다급한 부름이 튀어나왔다.
“네?”
“여, 여기 말고 저쪽으로 가요, 저쪽으로. 둘만.”
“……네?”
최연하는 설명 대신 강진호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강진호는 영문도 모른 채 최연하에게 질질 끌려갔다.
먼 구석으로 향하는 두 사람을 보며 바토르가 이죽거렸다.
“장다징, 아무래도 새로 들어오게 될 윗사람의 성격이 그리 만만치는 않을 모양이다.”
장다징이 손을 들어 얼굴을 비볐다.
어색함.
뭔가 어색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강진호를 끌고 으슥한 곳으로 자리를 옮긴 최연하는 소매를 놓자마자 밀려오는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한 발 물러서서 방어 자세로 전환했다.
그럼 강진호가 상황을 풀어야 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백년 솔로가 괜히 백년 솔로가 아니었다.
가끔은 남자와 대화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강진호가 여자와 대화를 하면서 어색한 상황을 자연스레 풀어간다?
무리다.
그게 됐으면 이리 안 살았지.
덕분에 강진호는 우물쭈물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먼저 말을 꺼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영 감이 잡히지 않는다.
결국 꺼낸 말은 빤하디빤한 말이었다.
“촬영 있는 것 아니었어요?”
최연하가 미소를 지었다.
“있었죠.”
“그런데 어떻게?”
“취소하고 왔어요.”
“네?”
“보고 싶어서요.”
“…….”
강진호의 귀가 살짝 달아올랐다.
그동안 꽤나 많은 일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직접적인 말을 들은 건 처음인 듯했다.
“촬영에 전념하신다더니…….”
“전후가 잘못된 거죠. 내가 촬영을 왜 열심히 해야 하는지, 중국까지 날아와서 이러고 있는 이유가 뭔지를 생각해 보니 답이 너무 빤하더라구요.”
“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강진호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는 다시 묻는 것보다는 공감하는 게 낫다는 건 연애 고자인 강진호도 알았다.
“강진호 씨.”
“네?”
최연하가 뭔가 결심한 듯 불타는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돌직구, 돌직구! 그래, 어설프게 빙빙 돌리지 말자. 나하고는 안 어울려.’
돌이켜 보면 참 멍청한 짓이었다.
그냥 좋으면 좋다고 말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녀가 어디가 꿀린다고.
강진호가 좀 잘났다는 건 알지만, 그건 실체가 없고…… 솔직히 말해서 어디 가서 자신만 한 여자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정말 그럴까?’
급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최연하만큼 예쁜 여자를 구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그건 최연하도 100% 자신하고 있다. 그녀는 부모님에게 하루에 108배를 드리며 살아도 모자랄 정도의 외모를 타고났으니까.
하지만 인간으로서 최연하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본다면…….
‘안 돼. 약해지면 안 돼.’
최연하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 와중에 강진호는 최연하의 얼굴이 달아올랐다가 식고, 일그러졌다가 화사하게 피고, 고개를 저었다 끄덕이는 모습을 살짝 공포에 질려 지켜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아무리 배우라지만 속마음을 저렇게 다이내믹하게 얼굴로 표현할 줄이야.
“저, 강진호 씨!”
“네?”
“제, 제가 지금 강진호 씨에게 돌직구를 날리면 어떻게 되나요?”
최연하는 그냥 솔직하게 묻기로 했다. 다짜고짜 공격할 용기는 없고, 그렇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물러날 수는 없으니, 턴을 건너편으로 넘기는 것이다.
하지만 턴을 받은 상대 역시 만만치 않았다.
“……잡혀가지 않을까요?”
“아…….”
그렇지. 폭행죄니까.
이 썩을 인간아!
‘으아아아아! 말이 통해야 뭘 해보지!’
최연하는 몸을 돌려 벽에 머리를 박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람이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용기를 내는데, 뭐? 잡혀가?
성질 같아서는 잡아서 패고 싶었다.
“아니, 그, 그런 게 아니라…….”
최연하가 우물쭈물하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못해 먹겠다.’
로맨스도 상대를 봐가면서 하는 거지, 이 사람을 상대로 무슨 로맨스란 말인가.
최연하는 자신이 강진호를 만나는 한 앞으로 평생 달달한 로맨스 따위는 꿈도 꾸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런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오냐고.’
거기서 잡혀간다는 말이 왜 나오냐고!
이 사람은 왜 이리 엉뚱한지 모르겠다. 그 엉뚱함이 최연하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혼자 키득대며 웃은 최연하가 조금 전과는 다르게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강진호 씨.”
“……네?”
“저 강진호 씨가 좋아요.”
“…….”
최연하의 목소리는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자존심도 세워보려 했고, 나름 빙빙 돌려서 상황을 만들어보려고도 했는데…… 안 되겠네요. 생각해 보면 자존심이 뭐가 중요한가 싶어요. 그러다가 일이 잘못되면 후회할 거면서.”
강진호는 딱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럴 때 무슨 말로 대답을 해야 하는지 알면 강진호가 아니다. 그리고 최연하도 멋진 대답 같은 건 바라지 않았다.
“그래요. 남자가 세상 다시없을 방식으로 멋지게 고백하고, 그 모습이 아름답게 잡히고, 여자가 눈물을 흘리며 그 고백을 받아들이는…… 그런 건 영화나 드라마에나 있는 건데, 제가 거기에만 살고 있었나 봐요.”
“…….”
“세상은 그렇게 예쁘지 않잖아요. 조금은 투박하기도 하고, 그리고 조금은 특이하기도 하고, 의외인 면도 있고……. 음,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말을 하면 할수록 최연하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아니, 변한다기보다는 예전의 당당함을 되찾고 있다고 표현해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 이것도 충분히 좋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생각해 보면 조금 창피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떠올리고 싶은 순간일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강진호 씨.”
“……네.”
“우리 한 번 진지하게 만나볼래요?”
“네?”
“대답은 바로 안 해도 괜찮아요. 한국에 돌아가면 해주세요. 제가 한국에 돌아가면. 저도 지금 당장은 대답을 들을 용기가 없거든요. 여기까지가 제가 낼 수 있는 최선의 용기예요.”
“아…….”
“개운하다. 음, 이래야지. 왜 그동안 속이 답답했는지 알겠네.”
최연하가 빙그레 웃었다.
미소 짓는 그녀의 모습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럼 저는 가볼게요.”
“아, 벌써?”
“할 말은 다 했으니까요. 이제 연애 놀이 다 했으니 일에 전념해야죠. 그럼 갈게요.”
강진호는 영혼 없이 손을 흔들었다.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머리가 멍하다.
“아, 그리고…….”
“네?”
미련 없다는 듯 앞으로 걸어가던 최연하가 몸을 획 돌리더니, 주먹을 들어 올렸다.
“대답은 안 들었지만…… 아니, 대답 안 들었으니까 한국 돌아갈 때까지 어디다 눈 돌리면 죽어요.”
“…….”
“눈 뽑아버릴 거야.”
최연하가 바닥에 침을 탁 뱉더니, 흥, 콧방귀를 뀌며 몸을 돌렸다. 그런 후, 이번에는 정말 미련이 없다는 듯 산뜻한 걸음걸이로 멀어져 갔다.
강진호는 아무 말 못하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의 귀로 어디선가 바토르가 중얼거리는, ‘저 쪼다 새끼’라는 말이 환청처럼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