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93
#692.
집결하다 (2)
“마존이라…….”
주강(猪刚)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늙다리들이 하는 짓거리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니까.’
마존이라니.
그 오만한 이름이 붙고 자시고를 떠나, 주강은 마존이라는 명칭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는 말도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마의 근원?
시대를 거슬러 강림한 교주?
그게 무슨 개소린가?
무인계에서 저열한 하급 무인 취급을 받는 마인이라고는 하지만, 머리마저 저열한 건 아니다. 현실과 신화를 구분할 정도의 머리는 있었다.
‘이게 무슨 개소리냐고.’
공원에 모여서 태극권이나 연공하는 노친네들이 바둑을 둘 때 흘리는 말과 별로 다르지 않다. 마오가 살아 있을 때는 이렇지 않았다든가, 언젠가는 새로운 시대가 올거라든가.
그걸 진지하게 믿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알고는 있다.
그 마존이라는 자가 귀환자라는 것.
귀환자라면 과거의 마공을 어느 정도 익힌 채로 현대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정도는 말이다.
그의 동료들 중에서는 그 사실에 극도로 흥분한 이들도 있었다. 마존의 존재가 그들의 비참한 현실을 바꿔줄 것이라 믿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병신 새끼들.’
바꾼다고? 변화한다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
지금은 현대다. 과거라면 산골에 처박힌 놈들이 풀뿌리만 뜯어 먹으면서도 어떻게든 무학을 익혀 상황을 뒤바꾸는 일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모든 일에는 돈이 필요하다.
그들이 힘을 키운다는 걸 다른 삼왕들이 알면 가만히 있겠는가.
성향이 다르고, 익힌 무학이 다른 삼왕이지만, 마인들에 대한 증오심은 짠 듯이 똑같았다. 그들은 언제나 마인들을 박해했고, 언젠가는 다 없애야 할 해충처럼 여겼다.
그런데 마인들이 새로운 마공으로 힘을 키운다?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한다는 게 이럴 때 하는 말이다. 아마 근근이 이름만 이어지고 있는 마공의 명맥이 끊어질 게 빤했다.
설사 그들이 마지막까지 새로운 마공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도 다를 게 없다. 그들이 다른 삼왕의 계파와 대등하지는 못해도 그 박해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키우려면 최소한 이십 년의 세월은 필요하다.
그 이십 년 동안 그 많은 무인들이 먹고사는 문제에 시달리지 않고 오로지 수련에만 전념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 리가 있겠는가.
‘꿈같은 소리지.’
현실을 모르는 늙다리와 다리를 바닥에 붙이지 못한 채 허공의 꿈만 좇는 얼간이들이 무슨 짓거리를 하든, 주강은 그들의 의견에 동조할 생각이 없었다.
마존이니 어쩌니 하는 놈보다 당장 내일을 살아갈 한 푼의 돈이 아쉬운 그였다.
그런데…….
‘빌어먹을, 왜 하필이면 여기로 왔냐고.’
하필 그자가 사천에 있단다. 그리고 주강에게 그를 모시고 북경으로 올라오라는 역할이 떨어졌다.
그는 사천에서 놀고먹는 게 아니다. 하지만 거절할 수는 없다.
다른 곳에서 무시받는 마인들이지만, 마인들의 네트워크는 상당하다. 오히려 다른 곳에서는 박해받기에 저들끼리는 단단히 뭉쳐 있는 게 마인들이다.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을 무시했다가는 지금의 퍽퍽한 삶이 더 퍽퍽해질 것이다.
“죽겠네, 진짜.”
차를 모는 주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그럼 이 차라도 타든가.’
그자들에게 따로 차가 있다고 했다. 그럼 주강은 사천에 차를 대놓고 남의 차를 몰고 북경까지 갔다가 알아서 돌아와 자신의 차를 다시 찾아와야 하는 이중고를 겪어야 한다.
뭐 하나 편하게 돌아가는 일이 없단 생각에 주강이 신경질적으로 액셀을 밟았다.
“이쯤이라고 했는데…….”
주강이 두리번거리며 차를 찾았다.
‘검은색 밴, 검은색 밴이라고 했지.’
그들이 조우하기로 한 곳은 휴게소였다. 정확하게는 그들이 휴게소에 차를 대고 있을 테니 이쪽으로 찾아오라고 한 거지만 말이다.
‘생각할수록 짜증 나네.’
요즘 같은 세상에 운전을 해 사람을 데리고 오라는 게 말이나 되는가. 자기 차도 있겠다, 네비게이션으로 주소 한 번만 찍으면 만 리 길도 찾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 굳이 이런 번거로운 방법을 쓴다는 건, 그 운전조차 귀찮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쯧.”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마존이라는 자가 어떤 성품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권위가 극을 달리겠지.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미 그도 귀환자라고 불리는 이들을 몇몇 만나보았다. 그중에는 특이한 인간도 있고, 귀환자라는 사실을 듣지 않았으면 알아챌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운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존재했다.
위화감.
겉모습과 나이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 같은 위화감은 분명 존재한다. 애늙은이 같다는 말이 아니다. 사고방식 자체가 현대에 태어나 현대에서만 살아온 이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한 번씩은 섬뜩할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워낙 권위주의적인 시대를 살아와서인지 현대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측면도 있었다.
아마 이놈도 별다르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 교주였다고 했으니 얼마나 권위가 높았겠는가.
지금도 그런 대접을 받으려 할 게 빤하다.
‘피곤해.’
주강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북경까지만 가면 별달리 엮일 일이 없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이 얼마나 피곤할지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그때였다.
“마인이십니까?”
주강의 몸이 살짝 굳었다.
‘마인이십니까’라고?
살아생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다. 마인들끼리는 이런 공개된 장소에서 마인의 마(魔) 자도 꺼내려 하지 않고, 마인이 아니면서 마인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이들은 마인 따위에게 존대를 해주지 않는다.
그럼 뭔가.
주강이 천천히 몸을 돌려 그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말끔하게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맞으신지?”
“…….”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당황해서?
아니다.
그도 바보는 아니다. 마존을 찾아서 온 곳이니 누군가 역으로 그를 찾을 수 있다는 정도는 추론할 머리가 있다. 마인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등신처럼 얼어붙어 ‘어버버’할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의 입을 다물게 만든 것은 눈앞에 있는 남자의 존재, 그 자체였다.
마존이다.
그는 인정하지 않지만, 그 오만한 이름이 붙을 정도의 남자라면 당연하게 수행원 정도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수행원의 격이 너무나 떨어진다는 거다.
‘빌어먹을, 나도 마음만 먹으면 십 초 내로 처바를 수 있겠다.’
개도 주인을 보고 때리라는 말이 있다. 역으로 말하자면, 개를 보면 주인의 능력을 짐작할 수 있는 법이다. 이런 허접쓰레기 같은 놈을 수행원으로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대단해 봐야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삼왕계의 말단들도 이런 놈을 수행원으로 데리고 다니지는 않는다.
“저기?”
“아…… 예.”
하지만 일단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마존의 존재 때문이 아니다. 주강이 이 일행들에게 무례했다는 말을 들으면 그의 목을 따버리겠다고 발악할 게 분명한 영감들이 무서워서였다.
그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원로들은 이자의 주인을 마존이라 인정했다. 그 말인즉, 그 고약한 괴물들이 마존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속으로야 어떻든 겉으로는 주강 역시 그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모시러 왔습니다. 마존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이쪽으로 오시죠.”
검은 양복의 사내가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 새끼가.’
주강이 살짝 이를 갈았다.
몸을 돌리는 그 순간, 사내의 눈에 드러난 경멸의 빛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많이 받아본 눈빛이다. 나름 무학을 익혔다는 이들은 마인을 자신의 아래로 본다. 그러고는 뭔가 더러운 것이라도 본 듯한다.
인종차별이 철폐되는 세상이지만, 현대 중국 무인계에서 마인들은 과거 흑인들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
익숙하기 짝이 없는 눈빛이지만 새삼 열이 받는 이유는, 그 눈빛을 보이는 이가 마존의 수행원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군이라고 생각한 이가 마인을 경멸하다니.
‘빌어먹을, 그 마존이라는 놈도 빤하군.’
저런 이를 수행원으로 데리고 다닌다면 사람을 보는 눈도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주변을 제대로 장악도 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아직 만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강은 마존이라는 자에 대한 실망만을 쌓아갔다.
“저기 계십니다.”
주강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보았다.
검은색의 밴 앞에 서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두 남자를 말이다.
먼저 시선이 꽂힌 곳은 거대한 덩치를 가진 한 남자였다.
‘저게 사람인가?’
사람이다. 사람이겠지.
이목구비도 사람이고, 팔도 두 개, 다리도 두 개니까.
하지만 저 정도 크기의 인간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동물도 작은 고양이는 고양이라 부르고, 큰 고양이는 사자라고 부르는 판에, 저걸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누구나 저 사람을 보면 주강과 같은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 사람이 마존?’
아니, 아니다.
저 사람은 마존이 아니다. 만약 마존이 저런 거대한 덩치를 가진 사람이었다면, 반드시 그에 대한 언급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되레 이곳에 오기 전, 생각보다 앳된 얼굴을 하고 있으니 미리 알아두고 무례하지 말라는 명까지 받지 않았던가.
저 얼굴은 죽어도 앳되지 않았다.
그럼 그 옆에 있는 저 왜소한 덩치의 남자라는 건데…….
원래는 그렇게까지 작은 덩치가 아니었겠지만, 저 거대한 이의 옆에 있으니 무척 작아 보인다. 세상 모든 것은 상대적이니까.
그래서일까.
우선은 실망이 찾아왔다.
덩치가 모든 것은 아니겠지만,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요소는 아니니까. 조금은 더 위엄 있는 풍채를 기대했는데, 오히려 좀 호리호리한 느낌까지 드니 실망이 더 커진다.
그리고…….
그냥 평범한 일반인 같지 않은가.
‘저게 마존인가?’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의 기대도 품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그래도 하는 기대감이 조금은 있던 모양이다.
그 기대감마저 지금 무너지고 있었다.
‘뭘 기대한 거냐, 병신같이.’
현실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건 이미 충분할 만큼 배우지 않았던가. 혹독함으로, 그리고 비참함으로!
모든 기대를 버린 주강이 냉정한 눈으로 마존을 응시했다. 그는 그저 저 사람을 북경으로 데리고 가면 된다. 예의는 차리겠지만, 복종하진 않을 것이다. 어설프게 쓴 약은 독보다 무서운 법이니까.
그 순간, 마존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주강과 마존의 시선이 허공에서 서로 마주쳤다.
그와 동시에…….
주강이 얼어붙는다.
아무것도 아닌 시선.
적의도, 노여움도 보이지 않는, 그저 투명한 시선.
누구도 알 수 없다.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알 수 있다.
아니, 마인이라면 알 수 있다.
저 투명한 시선 뒤에 숨어 있는 거대한 마(魔)를.
그저 보는 것만으로 심혼이 얼어붙고, 끝도 없는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것 같은 마를.
너무도 정순하고 끝없이 깊어서 감히 바라볼 엄두도 나지 않는 압도적인 악을.
털썩.
주강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소리쳤다.
일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내본 적 없는 통렬한 외침, 울음과 환희가 뒤섞여 나오는 감정의 폭발.
“마존강림 만마앙복(魔尊降臨 萬魔仰伏)!”
주강조차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그의 목소리에 담겨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