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94
#693.
집결하다 (3)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주강은 자신의 상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누구도 그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이런 행동을 해야 한다고 알려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 주강은 마존의 앞에 머리를 처박으며 존경을 바치고 있었다.
누가 보면 대단한 충성심을 가진 이가 주인을 만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오늘 이 자리에서 처음 본 것임에도 말이다.
이해할 수 없다.
다른 이들은 주강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주강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데, 타인이 어찌 주강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머릿속은 혼란스럽지만, 그의 몸은 석고로 굳히기라도 한 듯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로지 고개를 처박고 눈앞에 있는 자에게 경배를 바치는 것이 태어난 이유라도 된다는 것처럼.
그래.
이해할 수 없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단 하나만큼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를 비웃는 이는 있을지 모르나, 마공을 익힌 이라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그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단언컨대!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마존이다.
눈앞에 있는 이는 영감들이 마존이라 부르는 존재였다. 그게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영감들은 이 마존이라는 자가 그들의 미래를 부흥시킬 열쇠를 쥐고 있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자신들의 영혼을 바쳐 따라야 할 메시아이자 주인이라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무슨 생각으로 주강 같은 자를 안내자로 보냈을까?
주강이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어쩌려고?
조금 전까지 주강이 생각하던 것을 돌이켜 보면 그럴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그런데 영감들이 그럴 가능성에 대해서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다고? 그 늙은 여우들이?
그럴 리가 없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던 것이다. 마존을 만난 마인이 어떻게 되는지.
개인적인 생각?
마존에 대한 존경심?
그런 건 아무런 상관도 없다. 눈앞에서 살아생전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거대한 마(魔)를 목도한 마인은 영혼을 바쳐 그 마를 경배하게 된다. 지금의 주강처럼 말이다.
저항할 수 없으니까.
아무리 허접한 마공을 익혔다고는 하나 그는 마인이다. 마공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 경지가 지금 그의 눈앞에 있다.
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다.
얼마나 순수한 마(魔)인지.
마존.
그렇다. 마존이라는 이름은 그저 직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분이야말로 마존이라는 이름에 온당한 유일한 존재인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가슴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슬쩍슬쩍 흘러나온다.
순수하기 짝이 없는 마기가.
불을 본 부나방이 불로 빨려 들어가듯이 그의 영혼은 강진호가 뿜어내는 마기에 홀리고 있었다.
마치 흘러나온 페로몬으로 상대의 정보를 파악하는 것처럼 그 마기만으로도 수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분이 얼마나 강한지, 이분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리고 이분이 얼마나 잔인한지.
폭군.
경배함에 부족함이 없는 진정한 폭군이 그의 앞에 강림한 것이다.
이상하게도 눈가가 시큰거렸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그저 이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그들의 앞에 산적해 있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이 피어오른다.
우습고도 멍청하게.
이 기이하기 짝이 없는 감정을 느끼며 주강은 이해했다.
왜 영감들이 이분을 신처럼 받들려고 했는지.
다른 이들에게라면 몰라도 마인들에게 있어서만큼은 이분은 신 그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있었다.
그저 지주가 되어줄 뿐, 현실에는 어떤 손길도 내밀어주지 않는 신과는 다르게, 이분은 그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어찌 신 따위와 비교를 하겠는가.
두근.
심장이 두방망이질 친다.
그러다 문득 주강은 궁금해졌다.
그가 이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는 너무도 명확해졌다. 그렇다면 이분은 자신을 어찌 바라보고 있을까.
그의 힘 앞에서 그저 경배할 뿐인 미약하기 짝이 없는 마인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뿌듯해할까?
아니면 그의 저열함에 분노할까?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살짝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마존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마침내 마존의 입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열렸다.
“쪽…….”
쪽?
무슨 말씀을 하려는 걸까?
주강은 자신의 모든 신경을 강진호의 입으로 집중시켰다.
그리고 강진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의 모든 예상을 철저히 무너뜨렸다.
“쪽팔리니까, 좀 일어나서 이야기하지.”
“…….”
주강은 그제야 알았다.
‘마존도 부끄러움을 느끼시는구나.’
그가 가져올 소식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첫 번째로 해주어야겠다고 가슴속 깊이 다짐하는 주강이었다.
* * *
“실패했어?”
왕첸의 눈이 흔들렸다.
꽤나 자주 듣던 이야기다.
실패.
대단히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인간은 누구나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한 번의 실패를 겪을 때마다 지금처럼 놀란다면, 연약한 정신이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왕첸이 동요를 숨기지 못하는 이유는 이번 일은 도무지 실패할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실패했단 말이지?”
“……예.”
우쉰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 역시 이번 일을 커다란 패착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이었다.
“어이가 없군.”
왕첸이 동요를 숨기지 못하는 손을 품 안으로 밀어 넣었다. 겨우 담배를 꺼낸 왕첸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후우우.”
담배 연기가 폐부를 물들이고 나서야 떨림이 조금 잦아지는 기분이었다.
“세 놈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보자고. 그 세 놈을 잡기 위해서 백이 넘는 인원을 동원했는데 실패했다, 이 말이지?”
“…….”
왕첸이 들고 있던 담배를 부러뜨렸다.
“슈퍼맨이라도 강림하셨나? 응? 영화에만 나오기 심심하셔서 친히 강림이라도 하셨어? 빌어먹을, 백 명이 넘게 동원됐는데, 뭐? 실패? 이런 개 같은!”
쾅!
왕첸의 주먹이 책상을 그대로 후려쳤다.
원목으로 만들어진 책상이 두 조각이 나서 쓰러진다. 책상 위를 채우고 있던 모니터와 자판, 그리고 각종 서류들이 거친 소음과 함께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이 병신 같은 새끼야!”
왕첸이 그대로 우쉰을 걷어찼다. 우싄의 몸이 벽에 처박혔다. 하지만 우쉰의 입에서는 한마디의 신음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빌어먹을!”
왕첸은 걷어찬 우쉰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듯 자신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실패, 실패라고?”
몇 번이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은 왕첸이 이를 갈며 말했다.
“애새끼들 상태는?”
“……전멸입니다.”
“이 새끼야, 누가 전멸인 거 몰라? 어떻게 됐냐고!”
“사망자가 다섯 정도입니다. 대부분은 부상자이지만, 과연 회복이 될지는…….”
“사망자가 다섯?”
왕첸의 얼굴이 순식간에 진정됐다.
“사망자가 다섯이라고 했나?”
“예.”
“그래?”
왕첸이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이라, 다섯. 애매한 숫자로군. 하지만 확실히 밀어붙여 볼 만은 하겠어. 나쁘지 않은 숫자야.”
“…….”
“병원에 있는 놈들 중 추가로 죽을 놈들 있나?”
우쉰은 왕첸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죽을 놈들이 필요하다는 건가, 아니면 더 이상 죽어서는 안 된다는 건가?
“딱히 경각에 달한 놈들은 없지만, 원하신다면…….”
따악!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재떨이가 날아와 우쉰의 머리를 후려쳤다.
“…….”
머리에 재떨이를 맞은 것은 별일 아니다.
일반인이라면 큰일이 날 수도 있지만, 무인에게 유리로 만들어진 재떨이 따위는 별다른 상처를 줄 수 없는 물건이었다. 더구나 내공도 실리지 않았음에야.
“병신 같은 놈. 더 죽으면 내가 할 말이 없어지잖아!”
“죄송합니다.”
왕첸이 다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 병신 놈들이 다친 건 별로 문제도 아냐. 뒈진 것도 별문제 아니지. 그런 허접쓰레기 같은 것들은 얼마든지 채워 넣을 수 있으니까. 문제는 그놈들이 백 명 가까운 애새끼들을 상대하면서 겨우 다섯을 죽였다는 거다.”
“저는 그게 왜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
“니가 백 명을 상대한다고 치자. 목숨 걸고 달려드는 백 명을 모두 죽이는 쪽이 쉽겠냐, 아니면 적당히 상대하며 쓰러뜨리는 쪽이 쉽겠냐?”
“……죽이는 게 쉽습니다.”
“그래. 다 죽었다면 내가 애들을 덜 보냈다고 문책을 당할 수 있지. 하지만 겨우 다섯을 죽인 정도다? 그럼 두 배를 보냈어도 어림도 없다. 내 손을 떠난 문제라는 거지.”
“아…….”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왕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손을 떠난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지금 이 일을 벌인 이들이 왕첸으로서는 무슨 수를 써서도 감당하지 못할 놈들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면, 왕첸은 문책을 피할 수 있었다.
꼬장꼬장한 늙은이들이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리는 없지만, 받아야 할 문책의 수준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 일이야 대충 수습할 수 있다지만…… 대체 어떤 놈이 나타난 거지?”
“혹시 다른 계파에서 쳐들어온 건 아닐까요?”
“병신 같은 소리 하지 마. 여기 뭐 처먹을 게 있다고 이쪽으로 쳐들어와? 다른 계파에서 사천 땅에 관심이나 가질 것 같냐?”
“……생각이 짧았습니다.”
왕첸이 신경질적으로 몸을 돌렸다.
“이 일은 내가 보고할 테니, 너는 일단 애들 관리하면서 그 새끼들한테서 눈 떼지 마. 무슨 말인지 알겠어?”
“보고드릴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왕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만큼 커다란 일이 벌어졌는데 굳이 보고를 하겠다는 건, 그 사안도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뜻이었다.
“나쁜 일인가?”
“모르겠습니다.”
“뭐야?”
우쉰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움직이는 놈들이 하나 더 있습니다.”
“더 있다고?”
“예. 우연히 발견했는데, 사천 쪽으로 집결하던 놈들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도착하기로 한 놈들이 오지 않아서 확인해 봤더니, 중간에 이상한 놈들과 만났다고 합니다.”
“만났다라…….”
왕첸이 고개를 갸웃했다.
“당했다는 건가? 살아남아서 소식을 전할 정도면 생각보다 우호적인데?”
“아닙니다. 열 중 아홉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한 놈은 겨우 도주했답니다.”
“이 개새끼야! 그런 소식을 왜 이제야 말해!”
왕첸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에 든 담배를 우쉰에게 던졌다.
“어떤 새끼들이야?”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놈들도 목표를 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쫓는다? 일행이라는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왕첸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정리하자. 그놈들을 노리는 놈들이 또 있다는 거지. 그것도 사천 내에 말이야. 지금 정체불명의 세력이 놈들을 뒤쫓고 있다?”
“예.”
“흐음.”
왕첸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일이 아주 엿같이 돌아가는군.’
뭔가 일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직감했다. 이 일은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났다.
“보고하고 오지. 너는…… 일단 그놈들의 정체를 파악해 봐.”
“예.”
거칠게 밖으로 걸어 나오며 왕첸이 눈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그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모든 일에 커다란 전운이 감돌고 있다는 것 정도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