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97
#696.
보여주다 (1)
“말을 하자면 끝이 없지. 정말 끝이 없어. 그때의 황제보다 지금의 보통 사람이 더 청결하게 살 거야. 아마도.”
“그 정돕니까? 그래도 황젠데…….”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은가의 문제가 아냐. 황제가 마음만 먹었다면 황궁 주위에 뜨거운 물이 흐르는 폭포를 만들어낼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문제는 의식이다.”
이들은 아마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당시의 사람들과 지금의 사람들의 의식이 얼마나 다른지 말이다.
같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도무지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차라리 외계인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게 받아들이기 더 쉬울 정도였다.
길거리에서 인육을 팔던 시대다.
그 시대의 야만은 지금으로서는 전혀 상상할 수도 없다.
현대에서도 인육에 관련된 사건은 종종 일어난다.
하지만 상상할 수 있겠는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마음 좋은 동네 사람이 집에 가서는 태연하게 인육을 삶아 먹는 것을.
지금의 사고방식으로는 지탄받아야 할 엽기적인 행위들이 너무도 자연스레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누구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돌이켜 보니 잘 버텼네.’
강호에 출두하자마자 공적으로 몰려서 도망 다닌 게 오히려 그를 보호했을 수도 있다. 차분히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면, 그 세상에 적응하다가 미쳐 버렸을지도 모르니까.
“문제도 많았겠네요.”
“음, 그랬지. 일단 기본적으로 나는 거기에서는 거의 뭐랄까…… 그래. 결벽증 환자 취급을 받았지.”
“결벽증 환자요?”
“하루에 한 번 목욕을 하겠다고 했거든.”
“…….”
“심지어 내가 하루에 한 번씩 목욕을 하니까, 이게 무슨 새로운 신공을 익히는 수련법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아서 마두 놈들이 그걸 따라 하기도 했지.”
“개, 개이득?”
“얼마 못 갔어. 효과가 없으니 다들 그만두더군.”
“상상도 못하겠습니다.”
“그럴 거야. 그런 시대니까.”
강진호가 나직하게 웃었다.
지금이야 추억처럼 이야기를 하지만, 당시의 강진호에게는 정말 심각한 문제였다.
바토르가 말한 것처럼 무인은 오감이 날카롭다. 향에도 민감하다. 그런데 자신의 앞에 있는 이들이 다들 살아생전 이라고는 닦아본 적 없는 이들이라 생각해 보라.
풍겨오는 냄새를 버티는 게 날아오는 칼을 막는 것보다 힘들다.
TV를 보다 보면 과거의 인물이 현대로 날아오는 설정의 창작물이 한 번씩 나온다. 그들이 현대의 향수 냄새와 화장품 냄새를 못 견뎌 하는 연출을 볼 때마다 강진호는 폭소를 터뜨렸다.
그들이 현대에 온다면 화장품 냄새 따위는 맡지도 못할 것이다.
차를 몰고 국도에만 나가도 퇴비 냄새에 질색을 하는 현대인들 아닌가. 과거에는 그런 냄새가 도시에서도 났다. 일상적으로 풍기는 향이라 다들 딱히 의문을 가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향수 냄새를 질색한다?
그럴 리가 없다. 그때는…….
“그, 그만하자.”
강진호가 얼굴을 마구 문질렀다.
그저 옛 생각을 하는 것뿐인데 대미지가 들어오고 있다. 이러다가 쓰러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잘도 그런 시대에서 살아남으셨네요.”
“나도 용케 살아남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사부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길에서 죽었겠지.’
현대인으로서 과거를 살아가기에 강진호는 너무 나약했다. 과거인이 현대인에 비해 나은 것 하나를 꼽으라면, 강진호는 독기를 꼽는다.
악착같음.
현대인은 감히 버티지도 못할 가혹한 노동을 당연하다는 듯이 버텨내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압력과 압박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강진호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만약 사부를 만나지 못하고, 무학을 익히지 못했다면…… 강진호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무학을 익힌 덕분에 훗날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그곳에서 죽는 것보다는 백배 나았다.
‘사부님은 어떻게 되셨을까?’
과거의 삶을 딱히 아쉬워하지는 않는다. 죽음이 영 깔끔하지는 못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현대로 돌아오는 계기가 되었으니 그 죽음마저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의 아쉬움이 있다면, 헤어진 이후 사부를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분은 왜 강진호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주셨을까?
각박하기 짝이 없던 세상이다.
흉년이 들면 부모들이 자식을 바꿔 잡아먹는다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가던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생면부지의 아이를 데리고 가 키우고 가르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런데 스승은 그 은혜를 강진호에게 베풀었다. 그리고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훗날이 되어서야 강진호는 그가 스승에게 받은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알 수 있었다.
‘한 번쯤은 다시 뵙고 싶었는데.’
나이가 어느 정도 들 때까지는 살아남는 데 바빠서 스승을 찾을 수 없었고, 스승을 찾을 수 있는 능력과 직위를 손에 넣었을 때는 이미 시간이 너무 지나 버렸다. 스승의 무덤조차 제 손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이 강진호를 항상 씁쓸하게 했다.
그리움.
부모님과 동생에 대한 그리움이 해소되고 나서는 다시는 무언가를 그리워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건만…….
‘어쩌면 사람이란 존재는 평생 그리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군.’
강진호가 조금 씁쓸한 얼굴로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음, 뭐랄까…….”
장다징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상황이 꼬이기는 했지만, 나름 운치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장다징이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주강을 보며 물었다.
“아무리 여기가 외진 곳이라지만 두 시간째 차가 한 대도 지나가지 않는 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원래 이런 거예요?”
“음…….”
주강이 슬쩍 강진호의 눈치를 보고 말했다.
“나름 지름길이라 생각해서 차가 잘 다니지 않는 길로 들어오기는 했지만, 평소에는 그래도 몇 분에 한 대씩은 차가 지나다녔던 것 같은데……. 좀 이상하긴 합니다.”
“도로 공사라도 하나?”
“딱히 그런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는데.”
강진호가 몸을 살짝 일으켰다. 그러자 바토르도 시트에 묻어두었던 몸을 캐내듯이 뒤틀었다.
“주인.”
“음?”
“인간은 어떤가. 과거의 인간에 비해 지금의 인간이 나아진 건 있나?”
“흠…….”
강진호가 살짝 고민하는 듯하다 입을 열었다.
“하나가 변하지 않았다는 건 확실하지.”
“하나?”
“과거에도 부나방 같은 면이 있었지.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상대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힘만을 믿고 덤벼오지. 불을 보고 달려드는 부나방처럼 말이야.”
“현대인으로서 조금 수치스럽군. 하지만 부정할 수가 없군.”
“후후.”
강진호가 나서기 전, 바토르가 몸을 숙여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밴에서 내려 몸을 쭉 폈다.
“흐음, 아무래도 좁다니까. 다음에 이동할 일이 있으면 트레일러를 개조해야겠어.”
“그건 ‘짐’의 영역입니다, 바토르 님.”
“편하면 됐지.”
장다징은 바토르가 기지개를 켜기 위해서 차에서 내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진호가 바토르를 따라 차에서 내리자 분위기가 이상해진 것을 느꼈다.
“회주님? 바토르 님?”
“거기 있어.”
바토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이럴 때는 네가 안전하게 있어주는 게 돕는 거다. 차는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거기에 있어라.”
“…….”
바토르의 말에서 지금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깨달은 장다징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딱히 뭔가 보이지는 않는 것 같은데…….’
물론 저 사람들은 장다징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니 저 사람들의 말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체 뭐가…….
“오는군.”
바토르의 말에 장다징이 고개를 홱 돌렸다.
‘뭐가 온다는…… 어?’
그제야 장다징의 눈에도 보였다.
길 끝.
전시행정의 전형을 보여주듯 넓기만 할 뿐, 유동 차량이 전혀 없는 길의 끝에서 미약한 불빛이 보이고 있었다. 도로 위의 불빛은 하나를 의미한다.
헤드라이트.
멀리서 다가오는 불빛의 정체가 차량이라는 것을 알아챈 장다징이 눈을 찌푸렸다.
‘차 한 대쯤 오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하지만 그는 곧 생각을 정정할 수밖에 없었다.
불빛.
불빛이 피어난다.
조금 전 바토르가 말한, 하늘을 가득 채운 은하수라는 말이 이 순간 떠올랐다. 비슷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으니까.
제대로 된 가로등도 없어서 어둠이 잠식한 도로 위에 수많은 헤드라이트가 번쩍이며 나타난다. 기다란 도로를 따라 흐르는 불빛들은 마치 강처럼 느껴졌다.
“저거?”
뭔가 온다.
장다징도 직감했다.
차 한 대도 보이지 않던 도로 위에 저만한 차들이 단숨에 나타난다는 건 정상적이지 않았다. 뭔가를 노리고 움직인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럼 무얼 노리겠는가.
“하…….”
빤하다.
이곳에서 노릴 것이야 그들밖에 더 있겠는가. 저놈들은 자신들, 정확하게 말하면 강진호를 노리고 이곳으로 오고 있는 게 분명했다.
“무슨 일이…….”
주강은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듯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하기야 이 사람은 강진호가 여기서 뜬금없이 노려진다는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 테니까.
이제 그도 알아야 한다.
그가 마존이라 부르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언제 어디서 누가 노리고 공격해 와도 이상하지 않다.
‘그 사실을 알고도 지금처럼 들떠 있을 수 있을까?’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나직하게 웃는 장다징이었다. 아마 그도 곧 알게 될 것이다. 아니, 이제 알게 되겠지. 지금 당장.
“마치 용 같군.”
장다징이 신음하듯 말했다. 구불구불한 국도를 밝은 헤드라이트의 불빛들이 타고 내려오는 광경은 하늘에서 용이 내려오는 것 같았다.
물론 진짜 용은 아니겠지만.
이제 곧 저 용들이 그들의 앞에 도달해 차를 세울 것이다. 그러고는 공격을…….
‘안 서?’
아니, 저 불빛…… 좀 빠르지 않나?
어마어마하게 달려오는 것 같은데?
그런데 뒤차가 저런 식으로 붙어 있으면 급정거하다가 사고가 날 텐데. 물론 무인들의 반사 신경이라면 반응하는 데는 무리가 없겠지만, 차의 한계라는 게 있지 않은가. 그러니 지금쯤은…….
그 순간, 장다징의 눈이 커졌다.
“이 미친 새끼들!”
장다징이 손을 뻗어 안전벨트를 잡았다. 시트를 바로 세우고 다급한 손길로 안전벨트를 맨다. 그러고는 소리쳤다.
“안전벨트! 안전벨트 매요! 지금 당장!”
“네?”
“매라고, 이 새끼야!”
얼이 빠져 있던 주강이 사태를 파악하고는 기겁을 하며 안전벨트를 맸다.
용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용.
아니, 이제는 선명해진 차량들이 굉음을 내며 그들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꽉 잡아요!”
선두의 차량들이 지체 없이 달려들었다.
바토르와 강진호를 커다란 덤프트럭이 들이받는다. 그와 동시에 장다징이 타고 있는 밴도 마수를 피할 수는 없었다.
전면 창을 향해 다가오는 커다란 트레일러를 본 장다징이 참지 못하고 커다랗게 소리쳤다.
“으아아! 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콰아아아아아앙!
트레일러가 들이받은 밴이 장난감처럼 튕겨 나간다.
굉음과 폭염.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가 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