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98
#697.
보여주다 (2)
용이 내려온다.
백색으로, 또 황색으로 빛나는 용이 그 기다란 동체를 구불거리며 아래로, 또 아래로 하강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정화해 버리겠다는 듯이 말이다.
바닥까지 내리꽂힌 용은 눈앞의 모든 것을 휩쓸어 버렸다. 물론 용 자신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콰아아앙!
콰아앙!
굉음이 연달아 터진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장다징의 입에서 흘러나온 비명과, 차와 차가 부딪치며 발생하는 소음이 마치 한 곡의 오케스트라인 것처럼 조화를 이루었다.
불행한 건 장다징은 자신이 만들어낸 이 장대한 오케스트라를 전혀 감상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숙련된 바텐더가 흔드는 셰이커 안에 들어간 얼음처럼, 혹은 빠르게 회전하는 세탁기 안에 쑤셔 박힌 세탁물처럼 장다징의 몸은 격렬하게 요동쳤다.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그가 탄 차의 내부가 얼마나 단단한지 그의 전신으로 탐험하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서 살아 나간다면 장다징은 기꺼이 안전벨트의 위대함을 설파하는 안전 홍보 대사가 될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으아아아! 이 개새끼들아! 이 미친 새끼들! 으아아아아아!”
당장은 그런 것보다 살아남는 게 급했다.
쿠웅! 쿠우우웅!
차가 연신 그들이 탄 밴을 들이받는다. 마치 사냥감을 향해 몰려드는 이리들처럼 뒤도 보지 않고 달려들고 있었다.
‘헉!’
장다징의 눈이 흔들렸다.
차체가 우그러진다. 이미 밴의 앞부분은 제 모양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문제는 차 앞부분이 조금씩 후퇴하면서 운전석을 조여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대로 몇 대만 더 맞는다면 허벅지가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될 것이다.
“으아아악!”
장다징은 비명을 지르며 재빨리 안전벨트를 풀었다. 그러고는 아직 상대적으로 공간이 남아 있는 뒷좌석으로 몸을 던졌다. 주강 역시 장다징의 행동을 눈치채고 재빨리 그를 따라 뒷좌석으로 뛰어 들어온다.
그러나 그건 실수였다.
콰아아아아아앙!
뭐가 들이받은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보통 큰 차는 아니다.
어째서?
보통 차로 들이받으면 이 커다란 밴이 지금처럼 데굴데굴 구르지는 않을 테니까.
“아아아악! 아악! 빌어먹을!”
시트와 천장이 얼마나 단단한지 머리로, 등으로, 허벅지로 느끼면서 장다징이 악을 썼다.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순식간에 목에서 피가 차오른다.
‘이 무식한 새끼들.’
적어도 무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놈들이라면 무학으로 싸워야지, 이게 뭐 하는 짓거리란 말인가.
“아아악!”
뒤에서…… 아니, 뒤인지, 앞인지, 위인지 모를 어딘가에서 주강이 지르는 비명이 들려왔다. 아무리 무인이라고 해도 발이 땅에 닿아 있어야 무공을 쓰든 뭐든 해볼 수 있다. 이렇게 데굴데굴 굴려지는 밴 안에서 무학이 무슨 소용인가.
“자, 잡아! 뭐든 잡아!”
장다징이 손을 뻗어 시트를 움켜잡았다.
‘빌어먹을, 이 차 제조사가 어디였지?’
시트가 통째로 뽑혀 나가지는 않을 거란 믿음을 가지고 장다징이 필사적으로 시트에 매달렸다. 어지러움이 극에 달해 속에서부터 뭔가 울컥울컥 솟구치는 기분이다.
끼익, 끼익, 끼익.
마구 돌던 밴이 겨우 멈춰 서서 흔들렸다. 신음을 흘리듯 끼익대는 차를 느끼며 장다징이 감은 눈을 슬며시 떴다.
‘끝났나?’
뭔가 지옥으로 떨어졌다가 겨우 기어 올라온 느낌이다. 이 미친 짓거리가 1분만 더 지속되었어도 곤죽이 되었을 텐데, 그래도 여기서 끝나면 수습을…….
“아, 안 돼…….”
하지만 세상이 그리 만만할 리가 없었다.
장다징보다 뭔가를 먼저 눈치챈 주강이 넋 빠진 신음을 흘렸다.
장다징도 뭔가 심상찮다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획 돌렸다. 차창이 모조리 깨져 시야가 좋을 것 같지만, 이리 찌그러지고 저리 찌그러진 터라 밖의 상황이 잘 보이지 않았다.
우그러진 전면 창을 통해 보이는 것이라 봐야,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러니까…….
‘저걸 어디서 봤더라?’
영화에서 본 것 같은데?
배색은 조금 다르지만, 저 형태는 마치 뭐랄까…….
“이런 빌어먹을…….”
절로 욕이 나온다.
완전한 형태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이 타고 있는 밴으로, 아니, 이제는 밴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고철을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들고 있는 거대한 트럭!
앞부분을 향해 나 있는 배기구에서 시커먼 연기를 마구 뿜어내며 돌진하는 트럭을 본 장다징이 욕지기를 마구 내뿜었다.
“왜 여기서 설치냐고! 지구나 지키지! 으아아아아!”
금방이라도 로봇으로 변신할 것 같은, 어디서 많이 본 형태의 트레일러가 연기를 불처럼 내뿜으며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저건 죽는다.
저기에 들이받히면 뼈와 살로 이뤄진 사람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빠, 빠져나가야!”
당연히 창으로 튀어나가야겠지만, 찌그러지다 못해 숫제 동글동글해져 버린 밴에 사람이 빠져나갈 만한 크기의 창이 남아 있을 리 없다.
다들 찌그러져서 고양이나 겨우 통과할 몰골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으아아!”
콰앙! 콰앙! 콰앙!
상황 파악이 조금 더 빨랐던 주강이 주먹으로 차의 천장을 두드렸다. 천장을 뚫고 탈출하려는 것이다. 일반인들이라면 미친 짓이겠지만, 주강은 그래도 무인이었다. 저열한 마인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우드득!
기이한 소음과 함께 주강의 손이 천장을 꿰뚫는다. 손을 잡아빼 양손을 구멍 안으로 쑤셔 넣은 주강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천장을 벌렸다.
우극, 우그그극.
쇠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천장의 구멍이 조금씩 벌어졌다. 이렇게만 하면 그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말이다.
“빠, 빨리해 봐!”
“말 시키지 마, 이 새끼야!”
“아악! 씨발, 다 왔다고!”
“으?”
주강이 고개를 돌렸다.
번쩍이는 헤드라이트, 그리고 마치 악마의 이빨 같아 보이는 은백색의 그릴.
돌진하는 트럭이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죽는다! 죽는다고! 으아!”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달은 주강과 장다징이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때.
“시끄러워, 이 멍청이들아!”
우그러진 차창 밖으로 거대한 등이 그들의 시선을 가린다.
그러고는 일격!
허리를 뒤로 젖혔다가 쭉 뻗어내는 단 한 번의 정권.
그걸로 충분했다.
콰아아아아아앙!
바토르의 주먹과 맞부딪친 순간, 트럭이 마치 장난감처럼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흥!”
바토르가 코웃음을 쳤다.
“조잡하군. 이따위 공격으로 뭘 하겠다는 거지?”
일격에 트럭을 날려 버린 후, 등을 펴고 선 바토르는 마치 신화에 나오는 용사 같았다.
시인이 이 장면을 봤다면 시를 써서 바토르의 영웅적인 면모를 찬양했을 테고, 가수가 이 장면을 봤다면 그의 웅심을 노래로 퍼뜨렸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바토르의 활약을 지켜본 사람은 장다징이었다.
“으허아어억! 흐억! 바토르 님! 바토르 니이이임! 바아토르…….”
“끄으응.”
바토르가 솥뚜껑 같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꺼내주십시오! 바토르 님! 여기서 좀 꺼내주십시오!”
울음기 섞인 장다징의 외침에 바토르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무인인데.’
차 사고 좀 났다고 눈물콧물 빼는 건 좀 아니잖은가.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있지.
“죽을 뻔했다구요! 진짜!”
“알았으니 호들갑 적당히 떨어라.”
만약 장다징이 아닌 다른 이가 그의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였다면, 바토르는 그를 사람 취급 하지 않았을 것이다. 죽음 앞에서도 당당한 전사만이 바토르의 앞에 설 수 있고, 그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돌진하는 트럭 따위가 강진호보다 무서울 리 없다. 그런데 왜 강진호가 바토르를 죽이려 할 때는 목숨을 걸고 맞섰으면서 트럭이 달려드는 정도로 눈물을 뺀단 말인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는 바토르였다.
“크흐흐흡.”
“……코 먹지 마.”
바토르가 찢어버린 차체 사이로 빠져나온 장다징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지, 진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쯧.”
바토르가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의 공격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는지, 그게 아니면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는지, 번쩍이는 헤드라이트의 강은 더 이상 달려들지 않고 멈춰 있었다.
“흐음.”
바토르가 목을 좌우로 꺾었다.
우득, 우득.
그 거대한 머리가 움직일 때마다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간만에 받아보는 재밌는 선전포고로군.”
“가, 강진호 씨는?”
“저기 있다. 설마 주인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황당한 결말을 기대한 건 아니겠지?”
바토르의 말에 장다징이 고개를 들었다.
강진호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가만히 서서 전면을 가득 채운 헤드라이트의 불빛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침착한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호들갑을 떤 자신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진다.
‘아니지. 저 양반이야 무슨 상황이든 죽을 일이 있겠냐고.’
위협의 정도가 다르다.
강진호라면 차가 밀려오는 게 아니라 폭격기가 하늘을 메워도 그러려니 할 사람이 아닌가.
애초에 차를 떼로 몰고 와서 들이받는다는 생각을 한 저놈들이 이상한 거다.
“중국 놈들이 무식하다더니!”
“……너도 중국 놈이야, 미친놈아.”
“아, 그랬죠.”
장다징이 머리를 긁었다. 요즘 한국 놈들하고만 움직이다 보니 잠깐 착각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음?”
주강의 말에 바토르가 고개를 돌렸다. 숨을 죽이고 있던 주강이 입을 연다.
“이건 중국 무인계의 방식이 아닙니다. 우린 이런 무식한 방법 쓰지 않습니다.”
“마인 떨거지가 뭘 알겠냐마는, 저건 맞는 말입니다.”
장다징마저 동의하자 바토르가 의문을 담은 눈으로 선두 차량을 바라보았다. 가장 앞의 차에서 누군가 내리고 있었다.
검은색 세단에서 내린 사내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찰칵.
“후우우우.”
차가운 밤공기 사이로 새하얀 연기가 퍼져 나간다. 사내는 두어 번 더 담배를 빨더니, 손에 든 담배와 라이터를 건너편의 강진호에게로 던졌다.
“한 대 하지.”
‘일본인?’
장다징이 눈에 이채를 띠었다.
일본어가 나왔다. 워낙 순식간에 지나간 말이라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분명 그건 일본어였다.
‘일본 놈들이라고?’
일본인들이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아니, 있을 수야 있지. 있을 수야 있는데…….
‘미친 새끼들, 여기가 남의 나라라는 자각이 없는 건가?’
아무리 중국과 일본이 서로 경원시한다고 해도 그건 타국에 있을 때의 이야기다. 소 닭 보듯 하던 이웃 놈이 우리 집 마당에 들어와 소변을 갈기고 있는데, 누가 그걸 지켜보고만 있겠는가.
찰칵.
그 순간, 강진호가 받아 든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새하얀 연기가 강진호의 입에서 흘러나간다. 불어오는 바람에 연기가 순식간에 흩어진다.
“인사는 잘 받았다.”
강진호가 손에 든 라이터를 다시 던졌다.
그러고는 천천히 담배를 빨았다.
눈부신 헤드라이트 불빛에 비하면 미약하기 짝이 없지만, 붉게 물든 담뱃불이 이상하게 시야에 틀어박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죽고 싶지?”
나직한, 아주 나직한 선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