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699
#698.
보여주다 (3)
‘그자’에 대한 소식은 꽤나 많이 들어보았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자.
그리고 그 한국을 순식간에 일통해 버린 자.
거기까지는 나름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한국의 무인계라는 곳은 나약하기 짝이 없는 곳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먹을 수 있는 땅, 하지만 지금 당장은 여력이 닿지 않는 땅이었다.
그래,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보너스다.
전국 일통.
유구한 역사상 수많은 이들의 목표가 되었던 전국 일통을 이루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의 보너스.
그게 일본에서 인식하는 한국이었다.
그런 곳을 누가 차지했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움직이게 된다면 주인은 금세 바뀔 테니까.
그 생각이 변한 것은 하나의 사건 때문이었다.
나름 유력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나나호시구미가 한국의 그자와 얽혔다가 조직이 뒤흔들리고, 결국 승부를 위해 한국으로 넘어갔다가 완전히 괴멸한 사건.
이 사건은 일본 내의 무인들에게도 거대한 충격을 주었다.
어찌 아니겠는가.
나나호시구미는 일본을 대표하는 조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단독으로 나나호시구미를 멸망시킬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문파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유력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중견이라고 칭하기에는 조금 모자라던 곳이 나나호시구미다.
그런 곳이 한국인에게 털려 나갔다.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지배할 수 있다고 믿어온 한국에 말이다.
그 시점부터는 더 이상 한국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일본을 가득 채운 수많은 조직들 중 하나만 움직여도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해 온 한국의 전력이 생각 이상으로 강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까.
‘웃긴 일이지.’
차이는 여전히 존재했다.
하지만 한국의 힘이 예상 이상으로 강하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불안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미 한 번 경험했으니까.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차이를 벌렸다 생각한 상대가 기어코 쫓아와 턱 끝에 칼을 들이미는 꼴을 이미 두 눈 뜨고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한국과 일본은 제삼세계와 선진국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의 추격에 노이로제 섞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늘어났다.
겉으로는 여유로운 척하지만, 속은 뒤틀린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많은 조직들이 한국에 대한 응징을 논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한국을 정벌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당한 것을 갚아주어야 한다는 당연한 논리로 말이다.
‘웃기는 소리.’
대체 언제부터 그들이 타 조직의 원한을 대신 갚았다는 말인가. 그건 원한에 대한 보복이 아니었다. 두려움의 근원을 끊으려는 발악이었다.
아직 차이는 존재한다. 그리고 이건 ‘사고’라고 부를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추격을 당한 경험이 있는 이들은 다시 한 번 그런 일이 벌어질까 겁에 질린 것이다. 그렇기에 시간을 주지 않고 빠르게 싹을 밟으려 했다.
이게 그 결과다.
야마카와카이의 나카타 유지를 필두로 한국에 대한,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자’에 대한 응징이 계획되었다. 상부의 입장에 따르면, 한국은 결국 ‘그자’가 중심이고, ‘그자’만 제거하면 더 이상 지금의 체제를 유지하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다.
일견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게 과연 현명한 짓이었을까?’
의문은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피어났다.
콘도는 도로 한중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내를 조금은 언짢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래.
저자가 바로 ‘그자’다.
강진호.
순식간에 나타나 한국을 일통한 자.
그리고 언제나 체면 차리며 뒷방에 앉아 있기를 좋아하는 상층부를 꽁지에 불붙은 망아지 꼴로 만들어 버린 자.
콘도가 슬쩍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번쩍이는 헤드라이트의 불빛에 눈이 부시다. 저 수많은 불빛보다 많은 수가 이곳에 모여 있다.
물론 한계는 존재한다. 이곳은 중국이고, 아무리 연합이 힘을 썼다지만 중국으로 무인을 다수 밀입국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결국 한정된 인원만이 넘어올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과하다.
전쟁 이후, 일본의 무인계에서 단 한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서 이만한 이들이 모인 적도 없고, 이만한 수의 조직들이 연합하여 인원을 구성한 적도 없었다.
야마카와카이와 미치요시구미가 주축이 되어 각 조직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역대 최강의 원정대. 일본 역사상 이만한 전력이 자국을 떠나 해외에서 활동한 것은 단언컨대 처음일 것이다.
전대미문.
그렇게밖에 부를 수 없는 이들이 이곳에 모여 있다.
가슴이 들뜨고, 피가 끓었다.
그런데…….
‘저자가 강진호인가?’
강진호라고 생각되는 자를 본 콘도의 피가 빠르게 식고 있었다.
‘평범하잖아.’
삼두육비의 괴물까지 바란 것은 아니었다. 같은 사람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눈으로 느껴지는 특별함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본 강진호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청년일 뿐이었다. 저런 사람이 열도를 뒤집어놨다고 생각하니, 미묘한 허탈함마저 느껴진다.
‘차라리…….’
시선을 잡아끄는 쪽은 강진호가 아니라 거대한 거구를 가진, 이름 모를 무인이었다.
팔꿈치까지 말려 올라간 상의 아래로 보이는 강렬한 근육에서 눈을 떼기가 쉽지 않다.
무인에게는 과한 육체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시선을 끄는 측면이 있었다. 어떤 의미로는 아름답기까지 한 육체다.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극한의 육체가 거기에 있었다.
차라리 저자가 강진호였다면 의욕을 불태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 평범한 청년이 강진호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의 의욕은 빠르게 식어버렸다.
남아 있는 것은 너무도 빤한 결과뿐이니까.
이만한 인원이 모였다.
이만한 이들이 단 한 사람을 죽이겠다고 이를 갈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누가 살아 나갈 수 있겠는가.
콘도는 강진호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 확신했다.
이만한 인원을 앞에 두고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 리 없으니까. 그의 명성이 허울이 아니라면, 반이라도 사실이라면, 그도 지금 자기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그래서…… 어떻게 죽고 싶지?”
강진호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웅얼거린 그 말이 콘도의 귀를 파고들었다.
‘미친놈인가?’
이해할 수가 없다.
납득할 수도 없다.
너무도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서 돌아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오백이다.
오백이 왔다.
당초에 목표로 한 일천 암살대를 입국시키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오백이다. 이만한 수라면 웬만한 소국쯤은 삼 일 내로 뒤집어놓을 수 있는 수였다.
그런데 어떻게 죽고 싶으냐고?
“하…….”
허탈한 탄식이 그의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저놈은 자신들이 생각한 그런 자가 아닌 모양이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허세를 늘어놓는 얼간이가 저기에 있다.
콘도가 강진호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달아날 방법을 모색했을 것이다. 부딪치면 반드시 죽는다. 그렇다면 도망이라도 쳐야지.
하지만 강진호는 그들의 접근을 허용했다. 이제는 달아날 수도 없다.
‘하긴, 어쩌면 저게 맞는 반응일 수도 있지.’
일본의 그에 대한 대응은 단 한 가지뿐이다.
척살.
그 어떤 타협도 허락되지 않는다.
어차피 죽는다면 자존심이라도 세우고 죽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는가도 중요하니까.
“어떻게 죽고 싶냐라…….”
선두에 선 모리카와 아츠시가 나직한 웃음을 흘렸다.
지금은 그가 일본 무인계의 대표다.
이 일을 주최한 야마카와카이의 나카타 유지가 대표가 되어야 하겠지만, 소위 ‘네임드’라고 할 수 있는 각 조직의 유력자들은 중국 무인계의 경계를 받고 있다. 함부로 입국했다가는 벌집을 건드리는 꼴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나카타 유지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모리가와 아츠시가 그들을 이끌고 중국으로 넘어왔다.
“딱히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예의상 확인을 해야겠지. 그대가 강진호가 맞는가?”
질문을 들은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느긋하고 천천히, 여유가 가득한 동작으로 고개를 돌려 장다징을 바라보았다.
“뭐래?”
“…….”
“한국어로 말하라고 해. 아니면 중국어로 말하든가. 최소한 영어로라도.”
“에…….”
장다징이 당황했다.
“저, 저도 일본어는 모릅니다.”
“정보원이잖아.”
“제가 원래부터 정보원으로 키워진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냥 저는 약해서 정보원이 된 겁니다. 한국어 배우는 데도 머리가 깨졌는데, 일본어까지는 무립니다.”
“그래?”
강진호가 어색한 얼굴로 모리카와 아츠시를 보며 말했다.
“한국어 할 수 있는 사람 없나?”
모리카와 아츠시가 비릿하게 웃고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저 새끼, 뭐라는 거야?”
“…….”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한 이들이 다들 멍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야, 한국어 할 수 있는 놈 없어?”
문화 충돌이 발생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일본인과 조우해서 대화를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못한 강진호 일행과, 한국 놈을 잡아 죽여야 한다는 말만 듣고 넘어왔지 그와 의사소통을 해야 할 거란 생각을 하지 못한 일본인들이 만나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 촌극을 바라보며 바토르가 피식 웃었다.
“지랄들을 한다.”
어차피 서로 싸울 놈들이 상대가 하는 말을 들어서 무엇 하겠는가. 그런다고 서로 이해해 줄 것도 아닌데.
짜증을 한껏 담은 바토르가 소리쳤다.
“주인!”
“음?”
“뭐 하는 건가?”
“그래도 무슨 말 하는지 들어나 보게. 궁금하잖아.”
궁금할 것도 많다.
바토르는 진심을 담아 강렬하게 말했다.
“번역기 켜, 번역기! 현대 문물 활용 좀 해라!”
“아…….”
강진호가 휴대폰을 꺼냈다.
‘진짜 옛날 사람이라니까.’
바토르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휴대폰에 번역기를 켜서 대화하면 된다. 중국어라고는 ‘니하오마’밖에 모르는 상인들도 번역기로 대화하며 물건을 팔아먹는 세상 아닌가.
그런데 왜…….
‘잠깐. 저거, 뭐 하는 거야?’
번역기를 켜라니까 왜 전화를 귀에 대고 있나. 저 인간은 귓불로 어플을 터치하나?
그때였다.
강진호가 전화를 다시 내리더니 뭔가를 눌렀다. 그러자 전화기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예. 이현수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회주님?]이현수?
여기서 이현수가 왜 나오지?
한국에 지원이라도 요청할 셈인가?
아니면 한국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확인하는 건가?
하지만 강진호의 의도는 바토르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어 있었다.
“이현수.”
[예.]“저 새끼들 하는 말 듣고 통역 좀 해줘. 말이 안 통해.”
[…….]나직한 침묵.
황당함과 어이없음, 그리고 자신의 처지에 대한 절망이 섞여 있는 침묵이 흘렀다.
“…….”
바토르조차 입을 쩌억 벌렸고, 장다징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눈물을 참아냈다.
‘인간 번역기’를 켠 강진호가 이제야 해결이 됐다는 듯 만족스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번역기 켰으니까, 다시 말해봐. 뭐라고?”
문제를 간단히 해결한, 현명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주인을 보면서 바토르가 신음하듯 말했다.
“이건 씨발…… 답도 없다고 해야 하는 거야, 기가 찬다고 해야 하는 거야?”
어느 쪽이든 쩐다.
정말 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