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
#6.
마존, 돌아오다 (5)
이종인 형사가 남자를 향해 달려가려고 하자 범인이 칼을 들었다.
“오지 마! 이 새끼야!”
이종인 형사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저놈을 끌어내야 하는데, 그 행동 자체가 범인을 자극할 수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이종인 형사가 발을 동동 굴렀다.
“진짜 미치겠네! 야! 너 안 나와?”
남자는 물론 강진호였다.
강진호는 형사라는 것들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대로 저 범인을 보내주면 물론 여기서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병원을 빠져나간 범인이 인질을 온전히 살려 보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총을 맞아 거동이 불편한 이가 짐이 될 인질을 끌고 다닐 이유가 없다. 수틀리면 다른 인질을 잡으면 되니까. 곱게 놓아준다면 다행이지만, 그럴 리가 있나.
저 범인 놈의 눈에 일렁이는 혈기를 감안한다면, 저놈은 손안에 들어온 이를 무사히 내보낼 타입이 아니었다. 살인자라면 신물이 날 만큼 봐왔다.
살인자 중에서도 가장 미친놈들이 모여 있다는 마교에서 살아온 강진호다.
그런 만큼 저놈은 절대 인질을 그냥 보내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강진호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범인이 사람을 죽이든 개를 죽이든 강진호와는 관련 없는 일이었으니까.
잡혀 있는 사람이 저 아이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지은이라고 했나?’
강진호는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벌벌 떨고 있었다.
자신에게 콜라를 사 내밀고는 외계인이라 부르던 아이.
강진호는 저 아이에게 빚을 졌다. 그러니 빚을 갚을 기회도 얻기 전에 아이가 죽어버리는 것은 사양이었다. 그랬다간 평생 빚을 갚을 수 없게 될 테니까.
“넌 뭐야!”
범인이 칼을 들고 강진호를 위협했다.
강진호와 범인의 눈이 마주쳤다.
움찔.
범인의 몸이 눈에 보일 정도로 크게 위축되었다.
‘뭐, 뭐지, 이 새끼는?’
동류는 동류를 알아본다.
우발적인 살인이 아니라 살인을 즐겨본 이들은 동류의 냄새를 누구보다 잘 맡았다.
범인은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직 스물도 넘어 보이지 않는 어린 애송이.
그런데 그 애송이의 눈이 그의 심장을 떨리게 만들고 있었다.
살인자.
그것도 수도 없는 살인을 해본 짐승의 눈이 그곳에 있었다.
그가 다른 살인자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길을 가다 같은 냄새가 나는 이를 본 적도 있고, 우연히 살인 현장을 본 적도 있었다. 그런 이들의 눈은 살인을 겪어보지 않은 이들과는 분명 다르다. 동류이기에 알아볼 수 있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눈조차도 이 남자의 눈에 비하면 순진무구해 보였다.
강진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놔줘.”
“…….”
뭘 놓아주라는 건가?
인질을?
그 말 한마디에 인질을 놓아주기라도 할 것 같았나?
범인은 눈앞의 강진호를 비웃으려 했다. 하지만 비웃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입꼬리를 끌어 올려보려 해도 그의 얼굴은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딱딱하게 굳은 채 미미한 진동만을 보일 뿐이었다.
“누구냐, 너는!”
“같은 말을 다시 하진 않아. 난 이미 이야기했어.”
“…….”
범인의 눈이 떨렸다.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형사들이 다 물러난다고 해도 이 괴물 같은 놈은 절대로 그를 그냥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 상황에서 다른 이들이 어떤 피해를 본다고 해도 이 남자는 자신의 목을 끊어놓을 수만 있다면 개의치 않을 것이다.
상황을 지켜보던 이 형사는 애가 타서 소리쳤다.
“야, 이 미친놈아! 물러서! 물러서란 말이야!”
저 미친놈은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단 말인가.
세상에 아무리 미친놈이 많다고는 하지만, 왜 그 미친놈이 하필 여기서, 그것도 바로 지금 튀어나온단 말인가.
범인 때문에 끌어낼 수도 없고, 그저 지켜만 봐야 하는 이종인 형사는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범인의 발이 살짝 밖으로 돌려졌다.
그러자 강진호는 자연스럽게 움직여 범인의 퇴로를 차단했다.
“이…….”
범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 너 이 새끼! 이 애새끼가 죽는 것 보고 싶어?”
범인이 칼을 들어 아이의 목을 겨눴다.
아이가 몸을 떨며 모깃소리만 하게 입을 열었다.
“외, 외계인 오빠…….”
강진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 마.”
“…….”
“자그마한 생채기 하나라도 더 나면 넌 편히 죽지도 못하게 될 거다.”
범인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하…….”
범인은 헛바람을 삼켰다.
왜 이러고 있는 건가.
저 새끼 때문에?
별것도 아닌 어린놈이 하는 말에 왜 이렇게 휘둘리고 있는 것인가.
‘내가 미쳤나?’
눈?
그런 게 어쨌단 말인가.
그런 꼴 같지도 않은 것 때문에, 저 어린놈이 하는 말에 내가 덜덜 떨고 있다는 건가?
“이 병신 같…….”
그 순간, 강진호의 몸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아!”
“저 미친!”
다급한 경호성이 터져 나왔다.
범인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강진호를 보며 반사적으로 칼을 휘둘러 베어 들어갔다.
턱!
하지만 강진호의 오른손이 들어 올려지며 팔목으로 범인의 팔을 막더니, 왼 주먹이 쾌속하게 날아들어 범인의 턱을 후려쳤다.
“끅!”
범인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지만, 왼손에 잡은 아이를 놓아주지는 않았다.
아이와 범인이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다.
강진호는 칼을 쥔 범인의 팔목을 손으로 움켜잡고 덮쳐들었다.
우득!
“아아아아악!”
강진호의 무릎이 총상 난 범인의 옆구리를 내리찍었다.
범인은 비명을 지르며 발악을 했다.
“달려들어!”
그 순간, 이 형사가 고함을 지르자 주변에 있던 형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범인을 붙잡았다.
“이 새끼!”
“진짜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강진호는 형사들에게 범인을 맡기고는 아이를 안아 들었다.
그러고는 뚜벅뚜벅 걸어 나와 아이를 내려놓았다.
“괜찮아?”
아이는 너무 놀라 울지도 못하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의사 하나가 다급히 아이에게 달려왔다.
“지은아! 지은아, 괜찮니?”
“응.”
“가슴이 아프거나 하지는 않고?”
“조금 아파요.”
의사는 간호사에게 소리쳤다.
“빨리 병실로 옮겨요! 심장 초음파 준비하고!”
어느새 다가온 형사 하나가 의사를 붙잡았다.
“지금 확인해야 할 게 있는데, 조금 뒤에 가면 안 됩니까?”
하지만 의사는 형사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심장이 안 좋은 아이입니다! 지금 당장 검진을 해도 될까 말까인데, 시간을 끌었다가 상태가 나빠지기라도 하면 당신이 책임질 겁니까?”
“……그래요?”
“뭐해! 빨리 병실로 데리고 가!”
“예, 선생님.”
아이는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강진호의 손을 꼭 잡았다.
“……외계인 오빠.”
강진호는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았다.
“고마워.”
“지은아, 이럴 때가 아니야. 선생님하고 얼른 병실부터 가자. 응?”
“네.”
간호사는 아이를 안아 들더니 다급한 걸음으로 병실로 향했다.
강진호는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따뜻한 감촉.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음?”
그런데 팔목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칼을 막는 과정에서 팔목이 베인 모양이다.
강진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저런 쓰레기에게…….’
강호로 치자면 삼류?
아니, 삼류는커녕 길가에 차이는 양민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들도 저놈보다는 훨씬 뛰어난 운동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강호의 세상이니까.
그런데 그런 이에게 상처를 입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맞지가 않군.’
만약 과거 강진호의 육체였다면 내공이 없다고 한들 저런 이에게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강진호의 몸은 과거 그가 무공을 익혔던 몸과는 팔 길이부터 관절의 범위까지 모든 것이 달랐다.
몸은 달라졌는데 머리는 과거에 머물러 있으니, 그가 원하는 대로 정확히 움직이지 못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다 보면 알아서 적응이 될 일일 것이다. 정 적응이 안 된다면 몸을 강제로 움직여 적응하게 만들어 버리면 될 일이고.
삼류도 안 되는 이에게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이 자존심을 슬슬 건드리고 있기는 하지만, 이 세계에서 자신의 강함에 자존심을 건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이곳은 폭력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니까.
“야! 너 인마!”
그때, 이종인 형사가 강진호에게로 다가와 소리쳤다.
강진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 형사를 응시했다.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러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누가 책임지는데! 결과가 좋았으니 망정이지, 목숨 내놓고 살아? 너 그러다 뒈지면 누가 잘했다고 칭찬이라도 해줄 것 같아? 하여튼 요즘 애새끼들은 텔레비전을 너무 본다니까!”
범인을 잡아줬는데 고맙다고는 못할망정 되레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런 이 형사를 이해했다. 머리로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이 형사라는 이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미안합니다.”
그렇기에 강진호는 순순히 사과했다.
과거에도 그는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사과를 주저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되레 사과해야 할 일인데 자존심 때문에 사과를 하지 못하는 것이 더욱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에…… 아, 빌어먹을. 다음에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되지! 있을 수도 없고! 여하튼 너 그러면 안 돼! 그러다 니가 죽으면 어떻게 할 거야? 그거 칭찬해 주는 사람들은 그냥 뉴스 기사에 댓글이나 달고 슬픈 척해주는 게 전부야. 하루 지나면 다 잊는다고. 그런데 네 가족들은 평생 그걸 안고 살아야 해. 알아?”
뭔가 경험에서 나온, 울분 같은 느낌이 전해졌다.
“예.”
“인질이 무사했기에 망정이지, 그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내가 다 덮어쓰고…….”
강진호의 손에서 피가 흐르는 걸 본 이 형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쳤어? 아, 진짜 내가 이래서……. 이걸 뭐라고 보고 해야 하나. 미치겠네, 진짜.”
“별것 아닙니다.”
“별것 아니라니. 피가 줄줄 흐르는데.”
“신경 쓰지 마세요.”
“그건 내가 정해. 일단 여기가 응급실이라 다행이네. 빨리 치료부터 받아. 계산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괜찮습니다.”
“네 돈이야?”
“…….”
“어린 새끼가 부모가 벌어준 돈으로 사는 주제에 뭘 자기 돈인 것처럼 괜찮니 마니 하고 허세를 부려? 그런 건 니가 벌어서 쓰기 시작한 다음부터 해.”
맞는 말이었다.
물론 강진호가 한 말은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지만, 생각해 보면 병원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환자를 내버려 둘 리가 만무했다.
강진호는 이 형사에게 끌려가다시피 잡혀서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인턴으로 보이는 젊은 의사가 다가와 그의 팔에 흐른 피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너 대단하더라.”
의사는 감탄했는지 흥분한 얼굴로 강진호에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 거기서 달려들 수가 있냐? 대단하다.”
“그냥 그랬습니다.”
“나도 뒤에서 달려들려고 상황을 보고 있었는데, 네가 먼저 달려들더라. 네가 조금만 늦게 달려들었으면 내가 잡았을 텐데 말이야.”
강진호는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