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04
#703.
증명하다 (3)
무(武)라는 것은 쌓는 것이다.
수련하고 또 수련해서 쌓는다.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쌓는 것이다.
육체에 반복된 동작을 새겨 넣는다. 반복하고 반복한다. 하루가 지나고, 일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도록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한때는 의문을 가진 적도 있었다.
어째서 이토록 반복해야 할까?
수학자는 덧셈과 뺄셈을 지겹도록 반복하지 않는다. 그 덧셈과 뺄셈이 수학의 기본이 된다고 해서 한 번 익힌 개념을 몇 번이고 다시 익히지는 않는다.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다.
그나마 운동이라는 분야에서는 기초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프로 선수가 기본적인 드리블 연습을 하루 종일 반복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프로 운동선수들보다 육체적 기억력이 더 뛰어난 무인들에게 장시간의 반복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모리가와 아츠시는 그걸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질문을 해봐야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게 무학을 익히는 방식이다.”
“지금은 몰라도 언젠가는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꾸준히 반복해야 완벽하게 익힐 수 있다.”
그와 같은 뜬구름 잡는 듯한 답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모리가와 아츠시는 지금에 와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몸에 새긴다.
머리가 아니라 몸에 새긴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몸은 지금 완벽하게 굳어 있었다.
눈앞의 괴물이 손을 뻗어오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탈색되고, 전신이 돌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뱀을 발견해 버린 쥐처럼, 그저 굳어버렸을 뿐이다.
하지만 움직인다.
쇄애애액!
그의 도는 그가 수만, 수천만 번 휘둘러 온 궤적을 따라 움직였다.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아 움직였다.
몸에 새긴다.
그 지루한 반복의 시간이 지금 모리가와 아츠시를 한 번 살려주었다.
까가강!
물론 그의 도는 괴물에게 상처를 입히지는 못했다. 괴물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들어 그가 휘두른 도를 튕겨냈다. 강철조차 스펀지처럼 베어내는 그의 도가 인간의 피육에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다.
“후웁!”
하지만 적어도 그의 정신을 다잡게는 해주었다.
모리가와 아츠시가 전력을 다해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심호흡을 했다.
‘위험했어.’
갑자기 전신에서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땀으로 세수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그가 얼마나 큰 위기에서 벗어났는지를 이해한 것이다.
만약 몸이 절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의 머리는 몸과 분리되었을 게 빤했다. 지독하게 쌓아온 지긋지긋한 반복 수련이 그의 목숨을 살린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달라진 건 아니었다.
겨우 거리를 조금 벌린 정도로는 이 지독한 상황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 없으니까. 강진호는 여전히 그의 앞에 서 있고, 그의 눈은 모리가와 아츠시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 숨 막히는 압박감.
작은 우리 안에 짐승과 단둘이 남겨진 기분이었다. 달아날 곳은 없다. 오로지 싸워 이기는 수밖에.
‘이토록이나 가늘었나?’
모리가와 아츠시의 시선이 자신의 도로 향했다.
수월(水月).
애병의 이름이다.
언제나 그의 애병을 바라보면 마음은 호수처럼 가라앉았다. 하지만 오늘따라 평생을 함께해 온 그의 애병이 가늘고 나약하게만 느껴진다.
불안한 그의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저벅.
강진호가 그를 향해 다가온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가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압박감은 더욱 거세졌다.
모리가와 아츠시가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달아날 수 없다면…… 싸워야지.’
절대 달아날 수 없다는 자각이 그의 등을 떠밀고 있다. 이만한 자를 상대로 등을 돌리는 것은 자살이나 다름없다. 활로는 오로지 앞에 있다.
확연한 의지를 눈에 담은 모리가와 아츠시가 도를 천천히 들어 올려 강진호를 겨누었다.
강진호의 핏빛 안광이 일렁인다.
“쓰레기는 아니라는 건가?”
나직한 웃음.
조롱은 아니었다.
강진호는 지금 실제로 감탄을 하고 있는 중이니까.
지금까지 일본의 무인을 여럿 만나봤지만, 자신의 앞에서 저렇게 의지를 다질 수 있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모리가와 아츠시는 평가받을 자격이 있었다. 더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무인으로의 자세가 되어 있는가의 문제다.
강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마기로 뒤덮여 있다 보니 그저 입가가 일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분명 미소였다.
“덤벼봐.”
강진호가 손가락을 까딱했다.
오라는 뜻.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죽어야지. 그래야 후회가 덜하지 않겠어?”
‘참 기괴한 상황이군.’
강진호의 허리춤 어딘가에서 통역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뭔가 힘이 빠지는 느낌이다.
모리가와 아츠시의 입가에도 쓴웃음이 피어났다.
‘이건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나카타 유지 님.’
이자를 이만한 수로 상대한다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
상대를 잘못 파악했으니 패한다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차라리 밀입국이 어려워 적은 수가 넘어오게 된 게 다행이다.
오백이 왔으니 오백이 죽는다. 천이 왔으면 천이 죽었을 것이다.
이자는 애초에 수로 억누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절대자이니까.
절대의 영역에 오른 이들은 수로 상대할 수 없다. 오로지 같은 절대자만이 상대가 가능하다. 이자를 죽이고 싶었다면, 그들이 올 게 아니라 나카타 유지가 직접 와야 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한 게 그들의 패착이다.
“후우우…….”
모리가와 아츠시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군.’
조금 전, 그는 죽음 앞에서도 담대한 강진호를 멋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입장이 바뀌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강진호가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이다.
그럼 적어도 강진호가 보여준 담대함을 그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패배가 확실하다고 모든 일이 끝나는 건 아니다. 어떻게 패하는가도 중요하다.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떠올린 모리가와 아츠시가 도병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도끝이 파르르 떨린다.
‘비참하게 죽지는 않겠다.’
이미 지휘관으로서의 역할은 내려놨다. 그는 무인으로 죽을 것이다.
발끝이 땅을 박찬다.
전신의 세포 한 올, 한 올이 모두 바짝 날이 선 느낌. 일생에 있어서 지금만큼 완벽한 고조감을 느낀 적이 또 있던가.
역설적인 일이지만, 모리가와 아츠시는 지금의 자신이 최상의 상태에 있다고 느꼈다. 한 번쯤은 느껴보고 싶던 최상의 상태. 손끝 하나, 머리카락 한 올마저 그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최상의 일격.
느껴진다.
모든 움직임은 발끝에서 시작된다. 땅을 박차며 전달된 힘이 다리를 타고 올라와 허리에 안착한다. 뒤튼 허리를 쭉 펴며 모여진 힘을 회전력으로 바꾼다. 그런 후, 가슴에서 또 팔로…… 팔꿈치를 타고 흘러간 힘이 도로 전달된다.
웅혼한 내공.
단 일격에 모든 것을 실어내는 경험은 그에게도 처음이었다. 웅혼하기 짝이 없는 내력이 그의 도를 신도(神刀)로 바꾼다.
마치 채찍이 휘둘러지듯 도의 끝이 낭창하게 휘어진다.
부드러움과 강함의 조합, 속도와 힘의 조합.
그야말로 최상이라 부를 수 있는 일격이었다.
충족감이 그를 지배한다.
무엇이든 갈라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피육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이 검을 받아내는 것은 절대로 무리다.
베어내지 않아도 된다.
물러서게 할 수 있다면 그의 승리다. 염왕을 만나더라도 나는 괴물을 물러서게 한 자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이 일격에 그는 삶과 자존심을 모두 걸었다.
하지만 모리가와 아츠시는 곧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얼마나 냉엄한지를 말이다.
스스로 최선을 다할 수 있다면 뭔가를 이뤄낼 수 있다는 기대는 그저 듣기 좋은 말에 불과하다.
그는 끊임없이 무를 쌓았다. 쌓고 또 쌓았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그보다 조금의 무를 더 쌓은 이가 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 차이는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진다.
그리고 결국에는 무슨 수를 써도 극복하지 못하는 거대한 벽이 되어버린다.
턱.
최상의 일격.
다시는 재현하지 못할 것 같은, 그의 모든 것을 건 일격이 너무도 쉽게 강진호의 손끝에 잡혀 버린다.
모리가와 아츠시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막혔다?
그래, 그럴 수 있다.
그에게도 양심이 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한 일검이었다지만, 강진호를 쓰러뜨린다거나, 위중한 상처를 입힐 수 있다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사자와 싸우는 고양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사자의 콧잔등이라도 깨무는 것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혼신을 다한 일격이 막히는 것도 아니고, 잡혀 버렸다.
“흐…….”
현실은 지독하도록 냉엄하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적을 쓰러뜨리는 건 만화에나 나오는 일이다.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이를 드러내 봐야 개는 개. 범을 이길 수는 없다.
“자, 말해봐.”
강진호가 천천히 손을 뻗어온다.
모리가와 아츠시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손…… 아니, 어둠이라 불러야 할 그것을 넋이 나간 눈으로 응시했다.
천천히.
타는 듯한 마기가 그의 볼을 간질인다.
질척하고, 또 뜨거운…… 그러면서도 불길하기 짝이 없는 마기가 얼굴에 와닿는 감각은, 마치 체온을 가진 뱀이 볼을 핥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감각은 곧 사라진다.
마기가 아닌 강진호의 손이 그의 얼굴을 움켜쥔 순간, 남은 감각은 타는 듯한 뜨거움뿐이었으니까. 생살을 태우는 듯한 고통에 모리가와 아츠시가 입을 쩌억 벌렸다.
“누가 쓰레기지?”
“크흐…….”
모리가와 아츠시는 저항했다.
울고불고 매달린다고 살려줄 놈이었다면 그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놈은 절대 그를 살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존심이라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죽……여라.”
마지막 그 순간까지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 그게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리가와 아츠시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를 움켜잡은 이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 사람인지 말이다.
“나는 너를 쓰레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
“값을 매기는 방법은 모두가 다르겠지. 하지만 적어도 내 기준으로 너는 쓰레기가 아니야. 오히려 당당한 무인이라 인정할 수 있을 정도겠지.”
모리가와 아츠시의 눈에 의문이 피어났다.
이자는 왜 갑자기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가.
대체 무슨 말을 하기 위해…….
핏빛의 안광.
검게 일렁이는 마기를 뚫고 새어 나오는 핏빛의 안광이 일렁인다.
기이한 호선을 그리는 강진호의 눈빛을 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불안함이 그를 뒤흔들었다.
“너를 쓰레기라 여기는 건 내가 아니라…… 네 상관이겠지. 나라면 너 정도 되는 놈을 죽으라고 이곳에 보내지 않았을 테니까.”
“…….”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이놈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죽으라고 보냈다고?
자신을?
“정말 몰랐나,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건가? 그렇다면 하나 묻지. 정말로 저런 쓰레기들로 나를 상대할 수 있다고 믿은 건가? 네 상관이라는 자는?”
웃음.
광기가 뒤섞인 웃음이 모리가와 아츠시를 극한까지 몰아붙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