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05
#704.
증명하다 (4)
“그만한 멍청이는 아니겠지.”
강진호의 말이 모리가와 아츠시의 마음을 부수고 있었다.
죽으라고 보냈다고?
이곳에?
그럴 리가 없다.
이자가 하는 말은 하나부터 끝까지 모두 틀렸다.
자신은 나카타 유지의 명을 받고 이곳에 왔다. 그리고 자신은 나카타 유지의 충성스러운 부하다.
그런데 왜 나카타 유지가 자신을 사지로 내몬단 말인가.
그리고…….
‘오백이다. 오백이라고!’
일천의 무인이 넘어오기로 했다. 결국 오백밖에 넘어오지 못했지만, 일천의 무인이 오기로 했다.
그렇다면 일천을 희생양으로 쓸 생각이었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사람이라면 그런 미친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누구도 아군 천 명을 희생양으로 쓰면서 무언가를 도모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자의 말은 결코 현실이 될 수 없다. 그저 미친 자의 뇌내 망상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감정은 뭐란 말인가.
머리로는 아니라고 소리치고 있지만, 왜 그의 가슴은 분노와 울분을 토하고 있단 말인가.
저 말은 거짓말에 불과한데, 그저 착각일 뿐인데…….
“우우우웁!”
그럼에도 모리가와 아츠시는 전신을 뒤틀었다.
그럴 리가 없다.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충성을 다해 모신 자신을 왜 희생양으로 쓴단 말인가. 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서.
머릿속이 혼란으로 가득하다.
그때, 그의 귀로 강진호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네 희생이 가치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말에 웃음기가 섞여 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리가와 아츠시의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럴 리가 없다고?
사실은 알고 있었다.
강진호의 강함을 만약 나카타 유지가 이해하고 있었다면, 오백의 희생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일천의 희생도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천을 희생해서 강진호를 잡아낼 수 있다면, 오히려 남는 장사다.
그리고 나카타 유지라면 그런 작전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시행할 것이다. 다르지 않다. 태연하게 상상도 못할 일을 저지르던 사람이었으니까. 지금까지는 그 작전이 전쟁을 막아내는 데 사용되었을 뿐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더는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이것은 가치 있는 희생일까?
이 희생을 바탕으로 일본은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아니, 아니지.”
강진호가 모리가와 아츠시를 끌어당겼다. 그의 귓가에 입을 댄 강진호가 나직하게 마치 악마처럼 속삭였다.
“가치 있는 희생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그 가치는 다른 이의 것이지. 너는 그저 죽는 거야. 너의 죽음을 통해 이뤄지는 이득은 결코 너의 것이 아니니까. 죽기 전이니 똑똑히 알아둬. 죽음이란 건 그저 죽음일 뿐이야. 개죽음도, 희생도, 자살도…… 모두 그저 죽음일 뿐이지. 너는 그 의미를 생각할 필요가 없어. 의미는 남겨진 자의 것이니까.”
말이 심장을 찢어발긴다.
“그리고 굳이 하나 더 이야기해 주자면…….”
강진호가 으르렁대듯 말했다.
“너도 이미 알고 있겠지, 네 죽음은 가치가 없다는 걸 말이야.”
비웃음이 흘러나온다.
모리가와 아츠시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그래.
알고 있다.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카타 유지가 그들을 희생시킨 게 맞다고 해도, 오백의 목숨을 사석으로 밀어 넣고 어떤 계략을 짰다고 해도…….
이자의 죽음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필연적인 실패.
오백의 목숨을 개죽음으로 만드는 필연적인 실패가 그의 눈에 선했다.
“나…… 나는…….”
그러니 말해야 한다.
그러니.
개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모리가와 아츠시가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나는!”
퍼석.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잘 익은 수박이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머리를 잃은 모리가와 아츠시의 육체가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강진호는 가만히 손을 내렸다.
상대가 어떤 사정을 가지고 있든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 고려의 대상도 아니다.
덤벼온 자는 죽인다.
그게 무학을 익히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강진호가 지켜온 단 하나의 법칙이었다.
그리고 남은 이들도 마찬가지다.
콰아아아아앙!
바토르는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명령을 들은 바토르는 명령을 수행하는 것을 지상 과제로 받아들인다. 과거의 바토르는 전투 중에도 여유가 있고, 나름의 미학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바토르는 오로지 눈앞의 모든 것을 파괴하기 위해 존재하는 살인 기계 같았다.
“흐…….”
억눌린 웃음이 흘러나온다.
그래.
여긴 중국이었다.
귀찮게 감시하는 이들도, 폭음이 터졌다고 달려올 이들도 없는, 중국의 한적한 외곽이다.
마음속에서 뭔가가 부서지는 느낌이 난다.
그와 동시에 강진호의 몸에서 마기가 줄기줄기 흘러나왔다.
“흐으읍.”
그건 경악이었다.
신의 육체를 가진 이가 눈앞의 모든 것을 휩쓸고 있었다.
인간이 아니다. 그래, 저건 인간이 아니다.
강철을 종이처럼 베어내는 도가 인간의 육체를 베는 순간, 수수깡처럼 부러진다. 내력이 잔뜩 실린 주먹이 바토르의 몸을 가격하는 순간, 튕겨 나가다 못해 으스러지고 있었다.
‘어떻게 상대해야 한단 말인가.’
강할 수는 있다.
강한 상대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이도 이만큼의 암담함을 가져다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이 생채기조차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적을 상대로 대체 뭘 해야 하는가.
하수가 고수를 상대로 싸울 수 있는 이유는 고수도 사람이니 몸에 칼이 박힌다는 믿음 덕분이다. 그 칼이 고수의 몸에 닿을 확률은 현저히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운만 좋다면 어떻게든 일격을 먹일 수 있다는 기대감이 하수를 물러서지 않게 만든다.
하지만 저자는?
전력으로 내려친 도가 부러져 나가는 극강의 방어력을 상대로 그들이 뭘 할 수 있겠는가.
현실적으로 생각한다면, 지금 칼을 휘두를 게 아니라 당장 근처 군부대로라도 달려가서 전차라도 몰고 와야 한다. 물론 전차에서 발사되는 대전차포가 과연 저 미친놈의 육체를 꿰뚫을 수 있을까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적어도 피육으로 이루어진 인간이 금속 작대기를 들고 달려드는 꼬락서니보다는 백배 나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달아나야 한다.
지금 당장!
투우웅!
바토르가 팔꿈치로 후려친 차가 빙글빙글 회전하며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쓸어 버렸다.
게임이었다면 물리 엔진이 버그 났다고 쌍욕이 터졌을 것이다. 정상적으로 중력과 마찰력이 작용하는 세상이라면, 그 어떤 힘을 가한다 해도 차가 저리 장난감처럼 날아버리지는 않을 테니까.
어이없는 것은 지금 이곳이 게임 안의 세상이 아니고, 냉엄한 현실이라는 점이다. 게임에서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모두 죽는다.’
이때쯤 다들 깨닫기 시작했다.
이길 수 없다.
절대 죽일 수 없다.
이건 만용이다.
도마뱀 정도를 상대하는 일이라면 개구리 수백 마리가 모이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구리 천 마리가 모인다고 해도 아나콘다를 죽일 수는 없다.
누가 먼저 배 속으로 들어가느냐의 경쟁이 될 뿐이다.
“짓눌러! 당장!”
하지만 개구리의 발악은 멈추지 않았다.
타격으로는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챈 무사들이 칼을 버리고 달려들었다. 허리를 잡고, 머리를 잡고, 팔다리를 움켜잡고 늘어진다. 순식간에 수십의 무사들이 바토르를 잡고 늘어졌다. 머리 위로 뛰어올라 내력을 실어 짓누른다.
그저 무게로 누르는 게 아니다. 다들 지금 죽어도 좋다는 기세로 내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평범한 무인이라면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납작하게 짓눌려 버릴 게 빤했다.
하지만 바토르는 평범한 무인이 아니었다.
“흠!”
나직한 기합성과 함께 바토르의 육체가 꿈틀댄다. 사람이 쌓아 올린 거대한 무덤 안에서 바토르의 커다란 손이 빠져나와 걸리는 무언가를 움켜쥔다.
다리.
누군가의 다리를 잡아낸 바토르가 힘차게 손에 잡힌 것을 휘둘렀다.
퍼억! 퍼어억!
빨래방망이로 물기 가득한 빨래를 내려치는 소리 같았다.
그 소리가 인간과 인간의 충돌로 만들어진 소리라는 걸 알게 된다면, 돋아나는 소름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바토르는 광인처럼 포효했다.
잡히는 것은 모두 잡아 휘두른다.
걸리적거리는 것은 모두 걷어찬다.
머리로 들이받고 팔꿈치로 으스러뜨린다.
자신의 육체가 흉기라는 것을 바토르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격식도, 초식도 없다.
그저 잡고, 던지고, 휘두르고, 걷어찬다.
그리고 그 마구잡이나 다름없는 공격에 수십 년 동안 무학을 익혀온 무인들이 속수무책으로 부서지고 있었다.
‘달아나야 해.’
이건 아니다.
이건 그들이 그린 그림이 아니었다.
임전무퇴?
개소리!
싸움에 있어서 물러서지 않는 것과 개죽음인 것을 알면서도 들이받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후퇴하지 않는 전투로 얻어낼 것이 있다면 죽음이라도 받아들인다. 하지만 대체 이 전투로 무엇을 얻어낸단 말인가. 후퇴하지 않는다면 그저 빨리 죽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임전무퇴를 논하는 이들이 있다면, 주둥아리에 주먹을 처박아 버려야 한다.
“다, 달아나! 당장 달아나!”
사방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비슷한 시기의 비슷한 생각. 인간이면 누구나 온당하게 해야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알아야 했다.
이곳에 있는 이가 바토르만이 아님을 말이다.
그르르르륵.
그 소리는 무척이나 생소하고도 이질적이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지만,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 세상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소리의 조화 속에 홀로 이질적으로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껄끄러운 소리다.
고개가 돌아간다.
본능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이들은 보았다.
타오르는 거대한 화염을.
검은 화염.
검게 타오르는 불꽃…… 아니, 불꽃과는 조금 다른 이질적인 그 무언가.
칠흑과도 같이 검은, 너무도 검어서 되레 이상하게만 느껴지는 어둠이 불꽃처럼 일렁인다. 타르처럼 짙고 끈적일 것만 같은 검은 불꽃이 작은 산처럼 피어올랐다.
그런 후에…….
핏빛의 안광.
산처럼 거대한 마기의 불꽃에 비한다면 너무도 작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모두가 그 안광을 볼 수 있었다. 너무도 확연하게 말이다.
그러고는 자각했다.
저 눈빛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저건 죽음이다.
죽음이 형태를 가진다면, 바로 저런 모습이 될 것이다. 결코 피할 수 없고, 결코 타협하지 않으며, 마주하는 순간 그저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게 죽음이 아니던가.
그런 의미로 본다면, 저 모습보다 죽음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은 없다.
모두가 저 검은 불꽃을 보는 순간 죽음을 직감했으니까. 결코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말이다.
죽음이 천천히 그들에게로 다가온다.
그 충격적인 광경에 멈춰 선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미친 곰처럼 날뛰던 바토르조차 할 말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움직인다.
강진호의 육체를 뒤덮고 있던 거대한 마기들이 마치 터진 둑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탁류처럼 그들을 향해 울컥울컥 토해져 나왔다.
아래를 내려다보던 달마저 두려움에 떨며 구름 뒤로 숨어든다.
마존.
세상을 뒤흔들 마존이 마침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천하에 드러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