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06
#705.
증명하다 (5)
다도라는 것은 역시나 고상한 취미였다.
나카타 유지는 그 고상한 취미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올드하지.’
전통이란 이름으로 포장하기에는 손이 너무 많이 가는 취미였다. 다도라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차를 마시는 취미이지만, 실제로는 차를 끓이고 우려내고, 그 향을 즐기는 일련의 과정을 즐기는 취미다.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 심신의 안정을 얻을 수 있다면 나쁘지야 않겠지만, 그는 천성적으로 이런 허례 가득한 취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캔맥주를 마시고 음악을 듣는 게 낫다.
문제는 그의 위치였다.
야마카와카이의 수장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덕분에 그는 다도라는 고상한 취미를 가진 이들과 어울릴 일이 많았다. 수장은 품격이 있어야 한다며 다도를 강요하는 이들과 말이다.
‘시대가 어느 시댄데…….’
어느 시대나 젊은이들과 나이 든 이들의 단절은 존재한다. 사천 년 전 점토판 문자에서도 ‘요즘 어린것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최근 들어 그 단절이 꽤나 심해진 느낌이었다. 요즘 조직에 들어오는 어린 녀석들에게 다도에 대해 논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마 외계인을 바라보는 눈을 하지 않을까?
웃음이 흘러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나카타 유지이지만, 이런 문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는 걸 보면 이제는 마냥 젊지 않은 모양이었다.
쪼르르륵.
그의 찻잔을 녹 빛을 띤 차가 채워 나갔다. 차가 찻잔으로 떨어지며 짙은 향을 풍기고 있었다.
‘명인의 솜씨로군.’
이 사람의 다도는 인정해야 한다.
가볍게 뻗은 팔 끝에서 부드럽게 떨어지는 찻물을 보고 있자니, 심신이 안정되는 기분이다. 그에게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할 일이지만, 타인이 쌓아낸 역사를 감상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허례.
그래, 이건 허례다.
하지만 이 사람이 하는 허례라면, 그것 역시 받아들여야 한다. 이 사람은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찻잔을 나카타 유지에게 내민 사내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실패한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담담한 질문과 담담한 대답.
“실패를 말하기에는 조금 이른 때라고 생각하는데?”
“연락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실패했다는 뜻입니다. 변수가 있을 때, 자체적으로 생각하여 처리할 능력이 없는 아이들입니다. 조금의 여유라도 있었다면 제게 연락을 했겠지요. 하지만 연락이 없다는 것은 실패했다는 뜻입니다. 지금쯤은 다 죽었겠지요.”
“실패라…….”
노인이 가만히 손을 뻗어 찻잔을 들었다. 그러고는 차의 향을 음미했다. 차를 가볍게 들이켠 노인이 가만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런 것치고는 담담하군. 어떤가? 단지라도 하겠나? 이 실패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할 텐데 말이야.”
“책임을 져야 한다면 당연히 책임을 지겠습니다. 하지만 성공한 일에는 책임이 없는 법입니다. 상을 주시겠습니까?”
“실패라 하지 않았는가?”
“예, 실패입니다. 하지만 실패가 곧 성공이지요. 제 목적은 실패하는 것이었으니까요.”
노인의 투명한 시선이 나카타 유지를 훑었다.
“처음 한 말과는 다르군.”
“그래야 모두를 움직일 수 있었으니까요.”
“이해하지. 목적을 위해서 수단은 어느 정도 비틀릴 수 있는 법이니까. 자네답지 않게 전쟁을 주장한다 싶었지.”
나카타 유지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는 주화파다.
될 수 있으면 전쟁이든 항쟁이든 하고 싶지 않다. 그게 세력과 세력의 일이든, 나라와 나라의 일이든 말이다.
“목소리를 높여 사람을 끌어모으고, 그 사람을 함정으로 몰아넣어 얻고 싶은 것을 얻어낸다. 지자(知者)라기보다는 간자(奸者). 뱀이나 다름없는 자로군.”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카타 유지가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그의 속내는 겉과는 조금 달랐다.
‘누가 누구에게 간악함을 논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망할 늙은이 같으니.’
이자가 그의 속내를 몰랐을 리 없다.
그 모든 것을 알면서 허락을 해준 것이다. 각 조직에서 사람을 모아 단일한 목표를 위해 움직인다는 것은 이 사람의 허락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니까.
관서 최대의 세력인 신니치카이의 수장인 이 사람이 허하지 않았더라면, 제아무리 나카타 유지라고 하더라도 다른 조직의 협조를 구할 수 없었다.
좋게 말하자면 대리인, 나쁘게 말하자면 꼭두각시.
하지만 꼭두각시라고 하더라도 실리를 얻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그가 고개를 들어 나카타 유지를 바라보았다.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지. 인력으로는 막아낼 수 있는 일은 수두룩해. 하나 그게 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야. 흉년이 드는 것은 인력으로 막아낼 수 없지만, 흉년의 대가는 모두가 치러야 하듯이.”
무겁다.
저 투명한 시선이 무거웠다.
“그래서…… 자네는 나를 속인 책임을 어찌 질 셈인가?”
“속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어른을 속일 수는 없는 법이죠.”
“요즘 아이들은 간악하지.”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른만 하겠습니까?”
뼈가 담긴 말이었다.
그 뼈를 모를 노인이 아니었다. 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아직 내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네.”
“책임은 질 셈입니다. 강진호의 목이라면 그 책임이 되겠습니까?”
“가능하겠나?”
“예.”
나카타 유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주제 넘는 짓을 저질렀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자는 대동아를 위해서는 반드시 죽여야 할 자였습니다. 하나 그를 직접 죽이려 하면 피해가 너무 큽니다. 할 수 있다면 차도살인을. 그자의 목을 절여 바치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만.”
마른침을 삼킨 나카타 유지가 말을 이었다.
“그의 목을 가져오기 위해 치러야 할 희생을 생각한다면, 이쪽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군.”
노인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말이 맞지. 그놈을 우리 손으로 죽이려면 치러야 할 희생이 만만치 않겠지.”
“예.”
“게다가 그놈이 죽는다는 건, 조선이 무주공산이 된다는 뜻이지. 시선이 쏠린 만큼 그곳을 차지하겠다고 이전투구가 벌어지겠지. 자네는 그걸 우려한 것 아닌가?”
“그렇습니다.”
입맛이 쓰다.
‘속을 전부 내보이는 느낌이로군.’
이 사내에게 뭔가를 숨긴다는 건 불가능했다.
“중국이 나서서 강진호를 죽이게 된다면, 이쪽에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건 어렵겠지. 얼치기들이 나서기는 하겠지만, 그 정도야 조선에서도 받아칠 수 있을 테니까.”
“예.”
“확실히 우리는 너무나 나뉘어 있지. 조금은 통합되어도 괜찮을 텐데 말이야.”
사내의 혼잣말에 나카타 유지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결국은 벌어질 일이지.’
신니치카이에 비한다면 야마카와카이 따위는 동네 양아치만도 못하다. 신니치카이가 마음만 먹는다면 관서 일통 따위는 열흘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움직이지 않는다.
호수 깊은 곳에 또아리를 튼 용처럼, 이 노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움직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거는 확실한가?”
“세상에 완벽한 일은 없습니다. 완벽하게 장담할 수 있는 일도 없습니다. 다만, 확률을 높여갈 뿐이지요. 그를 제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변수가 없다면 그는 중국에 뼈를 묻게 될 겁니다. 그곳은 결코 호락호락한 땅이 아니니까요.”
“그렇지. 대륙은 대륙이니까.”
노인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어쩌면 그들의 역사는 대륙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버둥의 역사였다.
언젠가 그들이 건너온 땅을 다시 정복하는 것.
고대부터 내려온 이 땅의 염원이다.
“하나 충고하지.”
“예.”
“세상은 머릿속에서 이뤄지지 않아.”
“…….”
노인의 말은 단호했다.
“역사를 이룬 이들은 계획을 꾸미는 자들이 아니네. 시류를 읽는 자들이지. 모든 일에는 흐름이 있네. 그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이들이 큰일을 해내는 법일세. 자신의 머리를 믿고 흐름을 좌지우지하려던 이들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기 마련이었지.”
“하나 물어도 되겠습니까?”
노인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혹여 그 흐름이, 역사의 흐름이 수령을 거부한다면…… 수령께서는 그 흐름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노인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한참을 고민하는 듯하던 노인이 눈을 뜨고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일은 없네.”
“…….”
“나는 이미 흐름을 타고 있으니 말일세. 이 긴 기다림은 결국 그 한순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세. 하늘이 이 땅을 조금이라도 지켜보고 있다면, 내 생이 끝나기 전에는 한 번의 흐름을 내려주시겠지.”
“혹여 하늘이 끝까지 외면한다면?”
“이곳은 태양의 땅이네.”
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어둠은 결국 떠오르는 해에 밀려나는 법이지. 나는 그 해가 떠오르길 기다리는 것이네. 자네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만약 흐름이 나를 거부한다면, 나는 그 흐름을 되돌릴 걸세. 후대에게 이 무거운 짐을 건네줄 생각은 없어.”
“감사합니다.”
나카타 유지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저는 그 흐름을 만들 뿐입니다. 제게 역사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욕심이 없다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런 삶의 방식도 있겠지.”
노인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끝났다.’
나카타 유지는 이 대화의 끝을 확인했다. 그러자 맥이 풀리고 전신이 땀으로 젖어들었다.
한 번의 대화만 어긋났어도 그는 이곳에서 살아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목숨을 건 외줄 타기에 성공했다.
“자네를 믿겠네. 실패하지 말게나.”
“예.”
“그럼 먼저 일어나겠네.”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나카타 유지는 자세를 풀지 않았다.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가던 노인이 걸음을 멈췄다.
“아, 그리고…….”
“예. 말씀하십시오.”
“손가락 하나는 두고 가게.”
“…….”
노인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말했다.
“말하지 않았는가. 불가항력이라는 말은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존재하는 말이 아닐세. 오백이라는 목숨을 원귀로 만들었다면, 최소한의 책임은 져야겠지. 오백의 목숨과 손가락 하나면 남는 장사 아닌가?”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손가락이지만, 다음에는 손가락으로 끝나지 않네.”
노인이 나가기가 무섭게 문이 열린다.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도마와 칼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 위에 덮인 삼베를 보고 있자니, 절로 이가 맞물렸다.
‘손가락 하나면 싸게 치는 거 아니냐고?’
그렇지. 물론 그렇다.
하지만 어째서 책임은 그만의 몫인가. 일천의 무사들을 중국으로 파견하는 데 동의한 건 그 역시 마찬가지일 텐데 말이다.
자신의 앞에 놓인 단지구(斷指具)를 보며 나카타 유지가 이를 악물었다.
‘결국 힘이 있는 자에게는 어떤 책임도 돌아가지 않는 법이다.’
지금 그가 손가락을 잘라야 하는 이유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 냉혹한 현실을 느끼며 나카타 유지가 한 손으로 칼을 움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