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08
#707.
지배하다 (2)
“얼굴이 영 좋지 않아 보이십니다.”
“그래?”
다크 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이현수를 보며 이명환이 고개를 갸웃했다.
“악몽이라도 꾸셨습니까?”
“악몽이라……. 그래, 지긋지긋한 악몽이었지.”
이현수가 얼굴을 마구 문질렀다. 피곤에 찌들어 겨우 잠이 들었건만, 강진호의 전화 한 통으로 잠이 다 달아나 버렸다.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노곤하다.
‘예전에 없는 재능이라도 열심히 무학을 익혀놓길 잘했지.’
그 시간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이현수는 과로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을 것이다.
“끔찍한 꿈이었어.”
“……지은 죄가 많아서 악몽을 꾸시는 것 아닙니까?”
“응?”
“아니, 아닙니다.”
이명환이 고개를 내저었다.
‘농담도 못하겠네.’
말귀도 제대로 못 알아듣는 걸 보니, 상태가 무척이나 심각해 보였다.
“조금 쉬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으응?”
“제가 이런 말씀을 부장님께 드리는 게 조금 이상하긴 한데 말입니다.”
이명환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좀 뛰어난 사람일수록 자신의 업무를 과중화시키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과중화한다고?”
“네. 그러니까, 그게 대학 조별 과제 같은 거지요.”
“…….”
이명환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꽤 흔한 일 아닙니까. 같이 일은 하는데 해오는 일은 영 마음에 들지 않고, 그렇다고 일일이 지적해서 다시 해오라고 해도 돌아오는 결과물은 써먹을 게 못 되고, 그냥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버리는 게 효율적이라는?”
“거기까지.”
이명환이 가슴을 움켜잡았다.
“팩폭은 언제 들어도 사람을 갑갑하게 하거든. 그러니 거기까지만 하자고.”
“단기적인 일이라면 그게 나을 수도 있겠죠. 아무래도 결과물 자체가 다를 테니까요. 하지만 이리 장기적인 일을 그런 식으로 해결하시면…… 결과는 이미 본인의 몸으로 느끼고 계시잖습니까.”
“매우 타당한 지적이군.”
이현수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지만, 이명환의 지적은 틀린 게 없었다. 이현수는 새삼스러운 얼굴로 이명환을 바라보았다.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군.’
강진호와 마염들 사이에서 대처를 잘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처세술은 인정해야 했다. 그런데 상황을 전체적으로 살피는 능력도 나쁘지 않았다.
굳이 사용한다면 저런 무력대에 두는 것보다는 자신의 밑에다 두고 사무용으로 부려 먹고 싶은 생각이 든다.
어쩌면 저 이명환이 그가 말한 이현수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수도 있었다. 아마 이명환을 자신의 아래에 두고 일을 넘긴다면, 본인의 입을 난도질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을까?
그 광경을 꼭 보고 싶은 장난기가 생겨났지만…….
‘안 되지.’
이명환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틀어막았다.
나름 괜찮은 해결법이 되겠지만, 이명환은 그 자신의 역할이 있었다.
이현수는 강진호를 옆에서 보좌할 수 없다. 그가 가진 능력의 특성상 전장보다는 사무실이 어울린다. 직접 선두에 서기를 즐기는 강진호이다 보니 이현수의 보좌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이명환이 필요하다.
마기가 머리에 몰리면 눈에 뵈는 것이 없는 게 단점이지만, 적어도 전투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사람이 거슬리지 않게 의견을 전달할 줄 알았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윗사람을 모시는 자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중요한 능력이었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말을 좋게 할 수 있다면 의견이 받아들여질 확률은 조금 더 올라간다.
특히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저 조곤조곤한 말투가 빛을 발할 것이다.
“내 일은 일단 접어두자고. 지금 중요한 건 내 일이 아니니까.”
“기껏 중국으로 넘어갔는데 지시를 내려야 할 사람이 응급실에 실려 가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그 정도의 얼간이는 아니다.”
이현수가 가볍게 웃었다.
그가 보기에 이명환은 꽤나 특이한 캐릭터였다.
총회 내에서 굳이 자신과 말을 섞으려는 사람은 없다. 굳이 있다면 미스터 위긴스 정도이지만, 위긴스는 그의 윗사람이기에 편히 말을 건넬 수 있는 것이다.
동등 혹은 부하들 중에서 감히 그에게 말을 걸고자 하는 이는 없었다. 이현수 역시 감안하고 있는 일이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기에 그는 매우 까칠한 사람이고, 까칠함을 그저 까칠함으로 끝내지 않을 행동력과 실권을 가지고 있으니까.
부담스러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놈은 이제 그의 앞에서 농담까지 지껄이고 있다. 단순히 안면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영남부의 부서원들은 매일같이 이현수의 얼굴을 보지만, 그럼에도 아직 감히 이현수와 농담을 주고받지는 못했다.
‘뻔뻔한 것도 재능이지.’
그러고 보면 저놈은 회주님 앞에서도 따박따박 주둥아리를 놀리다가 인생이 말린 놈이 아니던가. 스스로는 자신이 운이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그의 불운은 대부분 스스로 자처한 것이었다.
“그래서, 준비는 끝났나?”
“말씀하신 인원은 모두 차출했습니다.”
“별 트러블은 없던 모양이로군.”
“네. 간단했습니다. 남아 있는 인원 중에 부상자가 꽤 발생했지만, 금방 나을 겁니다.”
“부상자?”
“예. 가고 싶으면 치고받아서 이기라고 했거든요. 운 좋게 큰 상처 없이 상위 인원을 선발할 수 있었습니다.”
“…….”
이현수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이명환에 대한 평가를 조금 수정했다.
이 새끼도 정상은 아니다.
하기야 강진호의 주변에 정상적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애초에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강진호에게 접근하지 않는다. 그만큼 불길함을 내뿜는 사람도 흔치는 않으니까.
“그럼 남겨진 이들의 불만이 상당할 텐데?”
“네. 그런데 지들이 뭘 어쩌겠습니까. 서해를 헤엄쳐서 넘을 생각이 아니라면, 남아서 얌전하게 수련이나 하겠죠.”
“그렇군.”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모르겠다.
마공을 익힌 놈들은 될 수 있으면 멀리해야겠다는 교훈은 확실하게 얻었다.
“비행기 편 마련해 줄 테니까 빨리 넘어가. 아무래도 그쪽 상황이 심상치 않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쪽발이 새끼들이 회주님을 습격한 모양이다.”
“그놈들은 무사합니까?”
“……회주님이 무사하냐고 물어야 하는 거 아니냐?”
“생채기도 안 났을 것 같습니다만? 회주님이 중국으로 넘어온 어중이떠중이 같은 일본 놈들에게 당하실 분은 아니시죠. 중국 현지 무인들과 충돌을 했다면 모를까.”
“이거, 노답이네.”
이현수가 혀를 내둘렀다.
이걸 절대적인 믿음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대책 없는 믿음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믿음은 믿음이라는 점이다.
그가 강진호에게 보내는 충성과 이들이 강진호에게 보내는 충성은 근본적으로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해야겠어.’
지금이야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명환이 이대로 성장한다면 강진호의 입장에서는 굳이 이현수 자신을 중용할 필요가 없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부하라는 것은 언제나 배신의 위험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명환은 맹목적인 충심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가 강진호라고 하더라도 자신보다는 이명환에게 좀 더 믿음이 갈 것이다.
그렇다고 굳이 충성 경쟁을 할 생각은 없다.
그건 이현수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가 계속 중용되고 싶다면, 이명환은 가질 수 없는 자신만의 강점을 어필하면 될 일이다.
다만, 그것도 조금 위기인 게…….
벌컥!
노크도 없이 문이 열렸다.
이현수가 손을 들어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위가 아프다, 위가 아파.’
무인이 위궤양에 시달린다는 말을 들으면 다들 웃겠지만, 그게 사실인 걸 어쩌겠는가. 위 한구석이 바늘로 쿡쿡 찌르는 것처럼 아프다.
신경성 위염은 무인도 피해갈 수 없는 난치병이라는 것을 이현수가 증명하고 있었다.
“말씀하신 것 다 했어요.”
“좋지. 아주 좋아. 아주 좋은데…….”
이현수가 앓듯이 말했다.
“메신저로 말하고 좀 기다려 주면 안 되나? 일 하나 끝낼 때마다 그렇게 문을 벌컥벌컥 열고 쳐들어와야겠어? 나도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는 사람이잖아. 그렇지 않아?”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위가 아프다, 위가.
이현수가 일그러진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온 이현주를 바라보았다.
‘능력치는 미친 듯이 좋은데…….’
재발견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과거 이중걸이 총회를 지배할 당시에 웬만한 실무는 이현주가 알아서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능력이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현주는 마치 일을 못해서 미친 사람처럼 굴었다.
이해할 여지가 없는 건 아니다.
지금 그녀가 맡고 있는 업무는 원래 그녀의 전공이나 다름없는 일들이고, 업무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겠다는 의욕이 가득하니 굶주린 이리가 먹이를 뜯듯이 일을 해 대겠지.
다만…….
이현수가 고개를 돌려 이명환을 바라보았다.
“미안한데, 잠깐 저쪽과 먼저 이야기를 해도 될까? 예의가 아닌 줄은 아는데,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라…….”
“저 여자가 여기서 일하는 겁니까?”
“응?”
이명환의 얼굴에서 불쾌함이 피어났다.
“이중걸의 손녀가 총회에서 일한다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들 알고 있는 겁니까?”
너는 또 왜 그러는데?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시키는 일만 어떻게든 해결하자는 마인드로 사는 사람이 이명환 아니었던가. 그런 이명환이 이 정도까지 불쾌함을 표시한다는 건, 지금 꽤나 격렬히 화가 났다는 뜻이다.
악연이라도 있는 게 아니면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이중걸은 회주님과 대적한 자입니다. 그 흔적을 모두 지워 버리지는 못할망정 저 여자를 써먹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회주님께 보고하겠습니다.”
“아니…….”
변명이 궁색해진 이현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회주님은 신경 안 쓰실 거다.”
“그렇다고 해도 있어서는 안 되는 일 아닙니까. 회주님이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용인된다면, 총회 내에서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분은 지금 당장 부장님이 총회의 건물을 모두 허물어 버리고 강남으로 이사 가자고 해도 그러라고 하실 분이니까요. 자체로 검열이 되지 않는다면, 총회가 끝장 나는 건 순식간입니다.”
“어…….”
이 새끼, 오늘따라 왜 이리 바른말만 하지?
이현수가 밀리기 시작했다.
상황을 지켜보던 이현주가 눈을 찌푸리고는 입을 열었다.
“당신이 뭔데 그런 일에 간섭하는 거죠?”
“내가 누구냐가 중요합니까? 총회 내에 당신의 거취에 대해 한마디 못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총회가 개판 난 게 누구 때문이었는데……. 양심도 없습니까?”
“뭐가 어째요?”
이현수가 느긋하게 손을 뻗어 커피 잔을 잡았다.
입으로 칼을 휘둘러 가며 싸우는 두 사람을 보며 조심스레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머금는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하하, 개판이네.’
모르겠다, 이제.
진짜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