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10
#709.
지배하다 (4)
리샤오위는 지금 매우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조금 전부터 허리가 쑤셔온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빠르게 마존께 합류한다는 이유로 베이징에서부터 이곳까지 차가 부서져라 달렸다. 마존을 만난 직후부터는 몸을 바닥에서 세워보질 못했다.
아무리 무인이라고 한들 리샤오위는 내일 당장 자연사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노인이다. 그런 가혹한 일정을 그의 허리가 버텨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조금 전부터 그는 긴장을 조금도 풀지 못하고 있었다.
리샤오위가 고개를 살짝 돌린다. 아주 살짝.
보조석의 시트가 가려준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뒤쪽에 앉아 있는 이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의 동작은 더없이 조심스러웠다.
그의 눈에 운전을 하고 있는 주강의 모습이 보인다.
‘역시.’
운전을 하고 있는 주강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미 그를 모시고 있던 주강마저도 강진호가 보여준 위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모양이다.
‘심장에 안 좋아.’
리샤오위가 고개를 살짝 들어 룸미러를 바라보았다.
룸미러로 뒷좌석의 사람들이 보인다. 혹시나 몰라서 동원한 밴. 그 밴의 뒷좌석에 한국에서 온 세 사람이 시트에 몸을 묻고 있었다.
강진호와 바토르, 그리고 장다징.
평온해 보이는 세 사람의 얼굴을 보며 리샤오위가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저분들은 동요하는 게 없으신가?’
방금 수도 없는 목숨이 떨어졌다.
패닉에서 빠져나온 이들은 필사의 탈출을 감행했고, 강진호는 굳이 도망가는 이들을 잡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그곳에서 죽은 이들보다는 살아서 도망친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곳에서 죽은 이들이 적은 수는 아니었다.
수많은 세월, 수많은 전쟁과 죽음을 봐온 리샤오위에게도 그만한 수의 죽음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찌 저리 담담할 수 있단 말인가.
‘마존이시니까.’
대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마존은 마를 관장한다. 그리고 죽음을 관장한다.
어쩌면 저분에게 있어서 타인의 죽음이라는 것은 딱히 신경을 쓸 필요도 없는,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때, 강진호가 가만히 눈을 떴다. 룸미러를 통해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정리는?”
리샤오위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대답했다.
“인원을 남겨 깨끗이 정리하라고 일러뒀습니다. 이런 일에는 나름 경험이 많은 아이들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경험이라…….”
강진호가 시트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이런 일을 한 적이 많다는 뜻인가, 그게 아니면 남의 뒤치다꺼리를 한 적이 많다는 뜻인가?”
“둘 다입니다. 마존이시여.”
“둘 다?”
“예.”
리샤오위가 조금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마인들은 제대로 된 무인 취급을 받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합니다.”
“정파인들의 뒤를 닦는 일이라도?”
“마존이시여.”
리샤오위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존께서 정파인들을 어찌 생각하시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제 짧은 머리로 생각하건대, 결코 좋게는 생각하지 않으신다고 미루어 짐작할 뿐입니다. 하지만 마존이시여, 저희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증오하는 정파인들의 뒤를 닦고, 그들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서라도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살아남는다라…….”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무슨 일을 해서라도 살아남아야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자존심을 지키겠답시고 죽음을 택했다면, 지금의 강진호는 없었을 터. 그런데 어찌 이들을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필요악이라는 건가?”
“예. 그 정도 위치였습니다. 짜증 나서 치워 버리고 싶지만, 나름 쓸모는 있기에 모두 잡아 죽일 수는 없는. 그 하찮은 지위를 손에 넣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고난의 시간을 넘어야 했습니다.”
강진호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이렇게까지 추락했단 말인가.’
의심의 여지도 없다. 이들은 그가 있던 마교의 후예들이다. 수라동과 적루, 청루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와 청마가 동시에 사라졌다지만 이렇듯 철저하게 몰락하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하나 묻겠다.”
“예. 하명하십시오, 마존이시여.”
“전에 장민을 만났을 때, 마교가 그 정수를 잃었다는 말은 들었다.”
“그렇습니다, 마존이시여.”
“하지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 그 많은 수를 유지하고 있는데 제대로 된 마공이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는 말이냐?”
“부끄럽지만…… 사실입니다.”
강진호가 눈을 찌푸렸다.
“지금 전해지고 있는 마공 중 최상위의 마공이 뭐지?”
“최상위라 하시면?”
“너희가 익힌 마공 중 가장 강한 마공이 무엇인지 물었다.”
리샤오위가 머뭇거렸다.
질문은 어렵지 않지만, 그에 대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장 강한 무학이 무엇이냐 물으시면……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어째서?”
“강한 무학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무학은 불안정하기 짝이 없고, 익힌 자의 인성을 앗아가기에 쉽사리 익히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름 안정성이 검증된 무학만을 전수하고 있습니다.”
“그 불안정한 무학이 뭔지를 물은 거다.”
리샤오위가 침을 꿀꺽 삼켰다.
“검증이 된 이들을 대상으로 염살진천공(炎殺振天功)과 수라무상공(修羅無上功)을 익히게 하고 있습니다.”
“염살진천공?”
강진호가 눈을 찌푸렸다. 그는 들어본 적 없는 무학들이다.
“너는 무엇을 익혔지?”
“저는 염살진천공을 익혔습니다. 하지만 그 성취가 깊지 않습니다. 삼성이 갓 넘은 시점에 인성이 말살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수련을 멈췄습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읊어봐.”
“무엇을?”
“구결.”
리샤오위가 슬쩍 옆을 돌아보았다. 주강이 있는 자리에서 고결을 읊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된 것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단호했다.
“두 번 말해야 하나?”
“아, 아닙니다!”
리샤오위가 즉시 구결을 읊기 시작했다. 그러자 결론적으로 리샤오위의 격정을 별 의미가 없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미처 네 소절을 다 읊기도 전에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됐다.”
“마존이시여, 제가…….”
“아니, 그런 게 아니다.”
강진호가 시트에 등을 깊이 묻었다.
‘그냥 염화공(炎火功)인데…….’
헛웃음이 나온다.
염화공.
마교는 과거 배화교라 불리던 당시부터 불을 숭상했다. 그렇기에 교도들이 익히는 기본 무학이 불의 성질을 가지기를 원했다. 그 결과, 염화공이라는 무학이 탄생했다.
마졸(魔卒)이라고도 불리지 않는 일반 교도들이 익히는 기공이 바로 염화공이다.
‘게다가 변질됐군.’
이들이 과거의 염화공을 익혔다면 굳이 안정성을 논할 필요가 없었다. 마교에서 염화공이란 기본 무학이고, 교도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생활 무학이었으니까.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굳이 언급이 필요하지 않은 수준이었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염화공을 토대로 여러 가지를 쑤셔 박았다. 덕분에 파괴력이야 조금 올라갔겠지만, 그 안정성이 아슬아슬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그게 이들의 최선이었다는 건가?’
이건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였다.
지금 이들이 익히는 최선의 무공이 염화공이라면, 마교도라 불릴 자격도 없었다. 과거의 마교였다면 이들은 감히 본 단의 청소부로도 쓰이지 못했을 것이다.
숭무(崇武).
마교의 본질은 간단하다. 힘을 숭상하는 것. 힘이 있는 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 그건 거꾸로 말하자면, 약한 자는 어떠한 권리도 가지지 못한다는 말과 같았다.
교도들이 아닌 교에서 그러한 성향을 장려했다.
강진호는 비인간적인 짓이라며 싫어했지만, 그런 기조가 이방인에 불과하던 마교도들을 중원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만큼이나 강함을 숭상하던 마교다. 그때의 마교도들이 지금 이들의 모습을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마공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을 익히고, 마교도라 부를 수 없는 지경까지 자신들의 후예가 추락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아마 피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아무래도 뭔가 좀 이상해.’
그와 청마가 사라진 이후로 정파가 마교를 탄압했다고는 하지만, 이런 지경까지 추락한 것은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그와 청마가 있기에 마교가 강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교에 투신하기 전부터 마교는 천하의 누구도 만만히 볼 수 없는 세력이었고, 그가 투신한 후 날개를 달아 천하제일이라 불렸다.
아무리 그와 청마가 사라졌다고 한들 이리 지리멸렬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마공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건가?’
기본공을 제외하고 마교도들이 익히는 마공만 해도 백 가지가 넘을 것이다. 그 위력과 다양성은 소림의 백팔기공에 결코 밀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 많은 무학들이 모조리 실전되었다는 소리다.
‘이게 자연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마교가 아주 멸망해 버렸다면 차라리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숨어서나마 마공을 익히는 이들이 있는데, 그 무학이 모두 실전되었다고?
‘불가능해.’
강진호가 얼굴을 굳혔다.
진의가 전해지지 않아 약할 수는 있다. 교주가 없으니 기세를 잃을 수는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 많은 마교도들이 남아 있는데 그 모든 마공이 전해지지 않을 수는 없었다.
교주에게 전해지는 무공이 사라졌다 해서 다른 이들이 익히던 마공마저 모두 사라질 수는 없다.
‘개입이 있었다.’
강진호는 확신했다.
누군가 이 상황을 만들어낸 이가 있다. 철저하게 마공을 없앤 이가 있다. 후대에 전해지지 않도록 마공을 불사르고 마공을 익힌 이들만 전문적으로 죽여 없앤 이가 분명 존재한다.
“장민은 어디에 있지?”
이 일에 대해서는 장민과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 가장 오래 살았으니 아마 그가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장민 장로는 지금 마존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가.”
“마존께서 중국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제야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거라 하시더군요.”
리샤오위의 말에 대답한 것은 바토르였다.
“울어?”
“…….”
“그 영감님…… 진짜 사람 찰지게 까던데, 울었다고? 욕이나 안 하면 다행일 것 같던데?”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그거야 보면 알 일이고.”
바토르가 피식 웃었다.
“재미가 있어서 가긴 한다만…… 주인, 한 가지는 명심해야 한다. 제대로 날개를 펼쳐 보기도 전에 화살에 꿰인다면, 날개 따위는 아무 쓸모도 없다. 이곳은 중국이고, 지금 주인이 밟고 있는 땅은 홍왕의 대지다.”
“알고 있어.”
강진호가 시트에 몸을 기댔다.
가만히 눈을 감은 강진호의 머릿속으로 과거의 광경이 떠올랐다.
붉고 검은 옷으로 전신을 감싼 수만의 마교도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몸을 숙인다.
만마앙복(萬魔仰伏).
그 광경을 다시 재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들을 마(魔)라 불릴 정도까지는 만들어내야 한다.
‘쉽지는 않겠지.’
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강진호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빠르게 계산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