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11
#710.
지배하다 (5)
“제대로 서라.”
장민의 목소리가 꼬장꼬장하게 퍼져 나갔다.
“이 쓸모없는 것들! 마존께서 너희를 보고 실망하신다면, 내 친히 너희의 목을 따버리겠다! 제대로 정렬하지 못하겠느냐!”
장민의 이런 모습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장민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어린 마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어린 시절 장민을 보고 그에게 배우며 자란 장로들도 장민의 분노에 당황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장민은 무척이나 인자한 사람이다.
그들의 기준으로는 더없는 강함을 지녔음에도 스스로를 낮출 줄 알고, 모든 것을 가질 권리와 힘을 지녔음에도 수라동의 문지기로 살아온 사람이다.
세상의 날카로운 칼날 앞에 힘겨워하는 마인들을 언제나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그가 아닌가.
마교가 이토록 비참하게 무너졌음에도 아직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에 장민이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항상 큰 어른처럼 그들을 보듬어주는 장민이 있기에 그들이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장민은 평소의 그가 아니었다.
“마존께서 오고 계시다. 너희의 온당한 주인께서 지금 이 곳으로 오고 계시다. 마존을 맞을 준비를 하라.”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담겨 있었다. 날카롭고 준엄하다.
그가 얼마나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장민은 끊임없이 상황을 점검했다. 줄이 틀어지지는 않았는지, 긴장을 푼 이들은 없는지 말이다. 수많은 이들이 장민의 호령에 따라 줄을 맞추고 있었다.
평소 절제와는 관계없이 생활하던 이들이라 다들 죽을 맛이었지만, 감히 장민의 카리스마에 도전하는 이는 없었다.
평소라면 적당히 불평을 늘어놓을 이들조차도 지금은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눈치가 조금이라도 있는 이라면 지금 장민에게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 매를 버는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장민은 그만큼이나 진지했다.
“장로님.”
“뭐냐?”
“마존께서 지금 오고 계시는 겁니까?”
“그렇다.”
“마존께서는 무사하십니까?”
“감히!”
장민의 몸에서 마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세상 그 어느 누가 감히 마존의 옥체에 손상을 입힐 수 있다는 말이더냐! 그분께서는 홀로 존귀하신 분. 그런 생각조차도 마존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느냐!”
“……죄송합니다.”
말을 꺼낸 이가 고개를 숙였다.
‘그럼 지원을 보내지나 말 것이지.’
마존을 노리는 이가 있다고 길길이 날뛰며 급한 대로 인간들을 모조리 끌어 보낼 때는 언제고, 이제 와 저런 말을 한단 말인가.
“광명의 날이 도래했다. 그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마존께서 우리를 찾아오신다. 너희는 신심으로 그분을 받들어야 할 것이다.”
호응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이들은 단 한 번도 강진호를 실제로 본 적이 없다. 그런 이들에게 마존이니 신심이니 떠들어 대봤자,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생전 단 한 번도 보거나 들은 적도 없는 이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쳐야 한다는 말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아직 권력자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는 중국이라 해도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었다.
그들이 지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마존의 강림을 그 두 눈으로 목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백발이 성성한 윗대가리들의 눈치가 무섭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그 윗대가리들조차도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장로님.”
장로 중 하나가 장민을 불렀다. 직위는 같은 장로지만, 장민은 장로들 중에서도 특별하다. 굳이 따지자면 태상 장로라고 불러야 하겠지만, 장민이 그 지위를 거부했다. 그렇기에 명목상으로는 같은 장로인 것이다.
“무슨 일이냐?”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지금 뭐라 했느냐?”
입을 연 장로가 마른침을 삼켰다.
얼굴을 굳힌 장민의 얼굴은 영 익숙하지가 않다.
“마존께서 오시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존귀하신 분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장로님께서 말씀하신 일이니 틀림없겠지요. 하지만 그렇다 해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장로가 말끝을 흐렸다.
“이렇게까지? 뭐가 이렇게까지라는 말이냐?”
장민의 얼굴에 노기가 어렸다.
“이미 인원이 오천을 넘었습니다. 이 많은 이들이 굳이 이런 식으로 환대를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장로가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지하 공동.
과거 전란의 시대를 피해 마교가 마련한 지하 대피소에 지금 오천이 넘는 마인들이 정렬해 있었다. 말이 오천이지, 이 많은 인원이 한곳에 모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오천?”
장민이 코웃음을 쳤다.
“겨우 오천이 모인 게 뭐가 그리 대수란 말이더냐. 생각 같아서는 천하의 모든 마인들을 한곳에 모으고 싶건만.”
“…….”
“그래, 좋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하지만 모인 이들에게 예의를 갖추게 하는 게 무슨 문제라는 말이냐?”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장민 장로님.”
장로, 웨이저양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이건 마오쩌둥이 살아 있던 시절에나 가능한 일이다. 당금의 권력자도 감히 인민을 이리 줄 세우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동원은 아이들에게 반감만을 갖게 합니다. 시대에 우리가 맞춰야 합니다.”
“내가 늙었다는 게냐?”
“그런 말이 아님을 잘 아시잖습니까, 장로님. 저희는 모두 장로님을 존경합니다. 이 행사가 장로님을 위한 것이었다면 되레 기쁘게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얼굴도 모르는 마존께 어찌 존경을 표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 진심으로 승복할 수 있겠습니까?”
“괜찮다.”
“장로님.”
“괜찮대두.”
장민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짜증스럽다는 뜻이 아니다. 괜한 걱정을 하는 이를 귀찮아하는 손동작이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모든 불만도 내가 받겠다.”
“……장로님.”
“너희가 내게 조금이나마 고마움이 있다면…….”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마교의 모든 마인들은 장로님을 조부처럼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이 시간만큼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해다오. 너희 역시 조금만 지나면 나의 이 억지가 온당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웨이저양이 한숨을 내쉬었다.
장민이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도리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고려를 해주십시오.”
“알겠다.”
장민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내공이 실린 그의 웅혼한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모두 들어라!”
오천에 달하는 눈이 장민을 쫓았다.
“지금 너희가 하는 일이 쓸데없는 짓이라 생각한다는 것, 잘 알고 있다. 귀찮고 짜증 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진솔한 장민의 목소리에 짜증이 가라앉는다.
“길지 않은 일이다. 마존께서 곧 도착할 것이다. 그분이 도착한 뒤에는 너희 마음대로 해도 좋다. 그러니 지금은 내 뜻을 따라주길 바란다. 부탁하겠다.”
마교의 최연장자.
그들이 태어나기 전, 아니, 그들의 아버지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미 마교의 장로였던 자.
항상 낮은 자리에서 마교만을 생각하고 살아온 자. 그런 이의 부탁을 거부할 수 있는 마교도는 없었다.
하지만 이쯤 되자 되레 궁금해졌다.
마존이란 무엇인가.
대체 어떤 자이기에 저 장민 장로가 저렇게까지 몸을 낮추는 것인가.
짜증이 사라진 자리를 궁금함이 채우기 시작했다.
그 순간, 누군가 소리쳤다.
“장로님!”
장민의 고개가 급격하게 돌아갔다.
“무슨 일이냐?”
“마존! 마존께서 도착하셨다고 합니다. 지금 이리로 오고 계십니다.”
“오오, 드디어!”
장민의 눈이 격동에 차 흔들렸다.
“준비하라. 그분께서 오신다.”
팽팽한 긴장감이 공동을 휩쓸었다. 마존이 누구인지 아는 이도,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이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전신에 힘을 주고 몸을 빳빳이 세울 뿐이었다.
긴장한 눈으로 앞을 바라본다.
입구는 뒤.
이 자세로는 뒤쪽에서 들어오는 마존을 볼 수 없다. 하지만 감히 고개를 돌리는 이는 없었다.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가장 앞, 연단 위에 설치된 거대한 옥좌…… 그리고 그 옥좌의 아래에서 시립하고 있는 장민뿐이었다.
이윽고.
끼이이이이익.
귀곡성 같은 철문 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철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리고 있는 것이다.
‘온다!’
대체 이 요란한 행사가 왜 필요한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준비가 빛을 발할 시간이 온 것이다.
“마존이시여, 만마의 주인이시여! 마존의 종복들이 마존을 경배하나이다!”
장민이 그 자리에 엎드렸다.
그의 커다란 목소리가 공동을 울린다.
거대한 지하 공간 안에 울려 퍼진 목소리는 메아리치듯 쩌렁거렸다.
그리고 그 커다란 고함 소리가 잦아들고 나자 분명한 소리가 들려온다.
저벅.
저벅.
발소리.
무인에게는 조금 낯선 소리였다.
무인은 자신의 기척을 내지 않는다. 발소리, 소맷자락이 스치는 소리…… 그 모든 소리들을 죽이는 것이 기본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른다.
모두가 그런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숨을 죽이고 사는 것이 일상화됐다. 그런 그들에게 저 발소리는 너무도 낯설고 충격적이었다.
자신이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자신이 걷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굳이 드러내지 않음에도 그 발소리에서 마존이 얼마나 오만한 존재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저벅.
저벅.
낮은 발소리가 끊임없이 공동을 울린다.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결코 크지 않은 사내가 옥좌를 향해 천천히 걷고 있었다.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딱히?’
처음 그 뒷모습을 본 이들은 다들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저자가 마존인가?
저 평범한 자가?
사람의 뒷모습만으로 그가 어떤 존재인지 파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본 모습만으로는 딱히 특별할 게 없었다. 그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청년의 뒷모습이었다.
저벅저벅.
조금의 실망.
그리고 조금의 아쉬움.
공동을 채우고 있는 이들의 가슴을 스쳐 지나가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아쉬움은 빠르게 다른 감정으로 바뀌어갔다.
‘뭐지?’
고정된 시선.
전방으로 고정한 채 움직일 수 없는 시야에 기이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검고 흐릿한 무언가.
처음에는 착각인 줄 알았다. 하지만 눈을 몇 번이나 끔뻑여도 흐릿한 형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저건?’
마존의 등 뒤로 검은 마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타오르는 듯 검은 마기.
처음에는 흐릿하던 마기가 갈수록 진하고 강렬하게 바뀌어간다.
검은 불꽃.
그리 불러야 마땅했다.
그리고 그 검은 마기의 불꽃을 보는 순간, 그들의 단전 속에 잠들어 있던 마기가 격동하기 시작했다.
‘대체?’
공동 안이 싸늘하게 식어간다.
한기.
딱히 조금 전과 달라진 게 없을 텐데도 공기가 순식간에 식어버린 느낌이다. 전신에 소름이 돋는다.
그제야 그들은 이해했다.
저자가 왜 마존이라 불리는지.
어째서 저자가 마를 지배하기에 온당한 자인지.
저벅.
저벅.
마존이 천천히 옥좌로 올랐다. 옥좌에 도달한 그가 몸을 천천히 돌려 아래에 도열하고 있는 마인들을 한 번 훑어본다.
그러고는 느릿한 동작으로 옥좌에 앉아 다리를 꼰다.
천천히 그의 입이 열렸다.
“강진호다.”
담백한 소개.
너무 짧았다고 생각했는지 마존은 나직하게 부연했다.
“너희에게는 그리 말해야겠지. 나는 적마, 적천마존이라 불리던 이이다.”
영겁이라 불러야 할 시간을 지나…….
마침내 적천마존이 마교에 돌아온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