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12
#711.
짓누르다 (1)
“……적천마존이라 하셨지?”
“그러셨지.”
“그럼 그 전설의?”
“그렇다니까.”
행사는 무척이나 빠르게 끝났다.
장민 장로님은 뭔가 더 해보고 싶은 표정이지만, 마존께서는 손을 내저어 장민 장로의 의도를 막았다.
“허례는 됐다.”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아울러 여러모로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장민이 누구인가.
명실상부한 마교의 일인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마인이라는 이름을 단 자들 중, 장민을 존중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상명하복으로 완벽히 엮인 사이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런 장민이 강진호의 손짓 하나로 조용히 물러나는 모습은 다분히 상징적이었다.
마교의 권력 구도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게 그 장면 하나로 모두에게 각인된 것이다.
게다가 적천마존이라니.
“진짜일까?”
“그게 아니고서야 장로님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가잖아. 마존? 좋지, 대단하지. 그런데 막말로 그건 그냥 전설이잖아. 지금 누가 하나 등장한다고 해서 뭐가 그리 바뀌겠어? 그런데 적천마존이라면…….”
침이 꿀꺽 넘어간다.
지겹도록 들어온 이야기가 있었다.
마교의 역사.
한때, 그들이 중원을 지배하던 시절의 이야기.
가장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과거의 영광이 얼마나 화려하든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현실이 지옥 같은데.
과거의 영광을 논하는 것은 그들이 우수했다는 증명이 아니다. 그 화려한 과거를 모조리 잃고 지옥에 처박힐 만큼 무능하기 짝이 없다는 반증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억에 매달리는 이들이 있었다.
짜증 나고 귀찮지만, 싫은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나아질 현실이 없는 이들은 결국 과거밖에 떠올릴 수 없으니까. 지옥 같은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곳은 그것 하나밖에는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수도 없이 들었다.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이는 언제나 적천마존이었다.
적마, 혹은 적천마존.
마교가 가장 융성하던 시기의 교주였던 자.
그의 무학은 하늘에 닿았고, 천하의 누구도 감히 그의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황제조차 그를 두려워했고, 저 대단하신 정파 놈들도 그의 앞에서는 사지를 바닥에 처박고 떨 수밖에 없었다.
전설. 그래, 전설이다.
하지만 그저 전설만은 아니었다.
“거짓말이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그렇다면 저 정파 놈들이 왜 우리를 지긋지긋할 정도로 탄압한단 말이냐? 네가 말하는 대로 우리가 저 하오문 놈들처럼 별 볼일 없었다면, 저들이 우릴 탄압할 이유도 없지 않겠느냐?”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가끔 그도 느낄 때가 있었다. 정파 놈들이 자신들을 탄압할 때, 그 시선에 공포가 섞여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모든 게 사실이라면…….’
그리고 지금 저 마존이라는 자가 정말 전설상에 나오는 그 적천마존이라면…….
“정말 뭔가 달라질까?”
“…….”
미묘한 공기가 흘렀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마존은 안으로 들어가 버렸지만, 아직 해산 명령은 떨어지지 않았다.
끝을 알려주지 않은 대기.
평소였다면 불만이 끝도 없이 터져 나왔겠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언제 집에 돌아가도 되는지를 묻지 않았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는 않지만, 은근한 기대가 흐르고 있었다.
정말 그가 마존이라면…….
정말 그가 적천마존이라면…….
이 지긋지긋한 밑바닥 삶이 끝날지도 모른다. 그는 말 그대로 전설이고, 마교가 배출한 역대 최강의 교주였으니 말이다.
‘굳이 끌어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만한 자가…… 아니, 그만한 분이 자신들을 직접 가르친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쓴다는 말이 이보다 잘 어울릴 상황도 없다.
‘그냥 제대로 된 마공 하나만 던져 줘도 더 바랄 게 없을 텐데.’
하지만 정말 믿어도 되는 걸까?
이미 보았다.
그의 몸 안에 흐르고 있는 무시무시한 마기를.
하지만 그 마기 하나만을 믿고 미래를 낙관하기에 그들은 너무도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렇기에 다들 선뜻 기대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왔다!”
왁자지껄한 소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마존을 지원하러 갔던 이들이 정리를 끝마치고 귀환한 것이다.
“어떻게 됐어!”
“이야기해 봐. 무슨 일이 있었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 많은 인원이 한곳으로 몰려들다 보니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일단 조용히 해봐.”
모두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쏠렸다.
주강.
선두에 선 그가 이 상황을 당연히 예상했다는 듯이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주강이 살짝 고민하는 듯하다가 말을 잇는다.
“말재주가 없어서 대단한 설명은 할 수 없다. 그냥 내가 본 걸 그대로 말해주마. 시작은…… 그래, 내가 저분을 처음 만난 건 사천의…….”
모두가 주강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존이시여!”
강진호는 조금 껄끄럽다는 얼굴로 슬쩍 뒤로 물러났다.
“위엄을! 마존의 위엄을 보이셔야 합니다!”
“……충분히 보인 것 같은데.”
“저들은 마존에 대한 존경심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마존께서 어떤 존재이신지 충분히 보이셔야 합니다.”
껄끄럽다.
영 껄끄럽다.
강진호는 자신에게 이리 격렬하게 충성하는 이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과거의 마염들은 그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죽을 만큼 충심이 대단했지만, 장민처럼 그 충심을 표현하는 이들이 아니었다.
묵묵히 그를 따르는 부하에 익숙한 강진호에게 장민은 무척 껄끄러운 존재였다.
더구나…….
‘함부로 뭐라 하지도 못하겠고.’
배분으로 따진다면 손자뻘도 아니고 머어어~언 후손 뻘이지만, 어쨌거나 장민은 그보다 연장자다. 그가 살아온 세 번의 삶을 모두 합쳐도 장민의 나이에는 가져다 댈 수도 없다.
막말로 강진호는 장민이 이미 노인 소리를 들을 때 태어났다. 나이로 따지면 증손자뻘이다.
그러니 어찌 껄끄럽지 않겠는가.
차라리 장민이 나이를 내세우기라도 한다면 반발하겠지만, 180살 먹은 노인이 저리 절을 해 대는데 누가 버틸 수 있겠는가.
“장민.”
“예, 마존이시여.”
“굳이 내가 스스로를 내세우고 목소리를 높여야 존중받을 수 있겠는가?”
장민의 눈이 흔들렸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마존이시여. 마존께서는 온당하신 저들의 주인이십니다. 저들이 마존을 알지 못한다면, 모든 것은 저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권위라는 건 강요한다고 생겨나는 게 아니다. 강요로 생겨나는 권위는 압제일 뿐이지. 압제로 이루어진 것은 언젠가 무너진다. 반드시.”
장민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세력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보지 않았는가.
“마존의 혜안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소신의 어리석음을 벌하여 주십시오.”
“아니, 그…….”
강진호가 얼굴을 감쌌다.
‘죽겠네, 진짜.’
알고는 있다. 강진호가 중원에 있었을 당시 모두가 이런 말투를 썼다. 강진호 역시 그런 말투를 쓰며 그들과 함께 어울렸다. 덕분에 지금도 마공을 끌어 올리면 예전의 말투로 은근슬쩍 돌아가지 않는가.
스스로 현대에 많이 적응했다는 게 느껴졌다. 저 말투가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그렇다고 평범하게 말해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장민은 나이가 180살이란 말이다. 180살 노인이 누구에게 자신을 맞추겠는가. 어린놈들이 맞춰 드려야지.
“크흠.”
강진호가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자고 온 것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마존이시여, 이제는 광명의 나날을 만들어가야 할 시간입니다.”
“……됐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돌이켜 보면 과거 중원의 부하들도 이리 요란스럽지는 않았다. 그를 두려워하고 존경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장민이 얼마나 벅찬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끼고 있는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백 년이 넘는 기다림이다.
그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강진호를 만났으니, 그 기분이야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건 이해한다. 이해하는데…….
‘언제까지 이럴 거지?’
모든 일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야 하는 법이 아닌가. 그런데 장민은 이 감동을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강진호는 결국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는 사실을 장민에게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
“장민.”
“예, 마존이시여.”
“공치사는 그 정도면 됐다. 그것보다 현재의 상황에 대해 알고 싶군.”
“상황이라면 정확히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 우둔한 제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마존이시여.”
“흠,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군. 마교도의 수라든가, 제반 사항을 말하는 것이다.”
“아, 그걸 말씀하시는군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존이시여. 제가 준비를 해두었습니다.”
장민이 갑자기 몸을 돌렸다.
‘뭐 하는 거지?’
그러더니 방의 구석에 놓여 있는 책상으로 가 뭔가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지이이이잉.
그러자 벽면 한쪽에서 스크린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강진호가 움찔했다.
여기는 지하의 공동이다.
그들끼리는 마인이지만, 외부의 시선으로 본다면 이곳은 그러니까…… 악당 소굴 같은 곳이다.
과거의 시점으로 본다면 습기 가득하고 퀴퀴한 동굴 안에서 음모를 꾸미는 곳? 그런 쪽에 가깝다.
그런데 뭐냐, 저 스크린은.
“회의할 일이 있어서 하나 설치했습니다.”
“……그렇군.”
강진호는 억지로 표정을 폈다.
이미 예전 스마트폰 사태 때 굴욕을 겪지 않았던가. 장민이 현대 기기에 능숙하다는 것은 이미 파악한 일이다. 당황할 것도 없다.
“우선 이것을.”
장민이 내미는 커다란 패드를 본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뭐지?”
“스마트패드입니다. 스크린에 화면을 띄우기야 하겠지만, 정리한 자를 따로 준비했으니 그쪽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스마트패드라……. 그런데 이거 미제 아닌가? 중국 스마트패드를 쓰지 않나?”
장민이 어이없다는 듯 강진호를 보며 말했다.
“중국 놈들이 저희에게 뭘 해줬다고 국산품을 애용해야 합니까? 지금 우리가 이런 꼴이 된 것도 다 그놈들 때문인데.”
아, 그렇지.
강진호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아직 중국산은 미제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우선은 성능을 우선시해야죠. 국산이라고 무조건 애용하다 보면, 이놈들이 업데이트도 느리게 하고, 하드웨어도 영 좋지 않은 것을 씁니다.”
“응, 그래.”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일단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강진호였다.
“그럼 보고를 시작하겠습니다.”
“그전에…….”
강진호가 단호한 얼굴로 장민을 바라보았다.
그 굳은 얼굴을 본 장민이 몸을 바짝 세웠다.
“이거 어떻게 켜는 거지?”
검은 화면의 스마트패드를 가리키며 강진호가 진지하게 물었다.
“…….”
“…….”
살짝 싸늘한 침묵이 지나가고 나자 장민이 미묘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아직 현대 문물에 적응이 안 되십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처음 써보는 거라…….”
장민이 말없이 다가와 홈 버튼을 눌러 화면을 켜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럼 보고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뭔가 장민의 표정에서 조금 전까지 보이던 존경심이 살짝 사라진 것 같지만, 그냥 착각이겠지…….
강진호는 장민의 무례를 마음속에 살짝 담아두며 화면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