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13
#712.
짓누르다 (2)
브리핑이 끝나자 강진호가 가만히 턱을 주물렀다.
장민이 살짝 강진호의 눈치를 보았다.
평소 무표정한 강진호다. 얼굴에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강진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채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표정이 아니라도 알 수 있지.’
갈 곳을 모르던 손이 주머니를 찾아들고, 그 안에서 담배가 나오는 것만 봐도 강진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하기야.
브리핑을 하는 내내 장민도 암담함을 느끼는데, 강진호야 오죽하겠는가.
찰칵.
강진호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천천히 연기를 내뿜었다.
장민은 염왕의 선고를 기다리는 망자의 기분으로 조용히 강진호가 내뿜을 호통을 기다렸다.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군.”
“예?”
장민이 눈을 크게 떴다.
“마존이시여,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는 송구하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만…… 현재 마교의 상태는 절망적이기 짝이 없습니다.”
장민이 이마를 한 번 훔치고는 말을 이었다.
“마인이라 불리는 이들 중 제대로 된 마공을 익힌 이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나마 제게 전해진 마공이 과거의 정수를 어느 정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저는 선대의 수호자에게 격체전력으로 마공을 이은 터라 전수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마공이라 할 수도 없는 조잡한 것들만 남았습니다.”
“그렇군.”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지금의 마교가 가지고 있는 것은 교도의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수조차 점점 줄어 지금은…….”
장민의 얼굴에 아픔이 어렸다.
강진호는 이 노인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이 경원시하는 마교이지만, 마교도들의 마교에 대한 애정은 타 문파를 능가한다. 애초에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이라면 마교에 투신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마교란 마지막 의지처나 다름없다.
장민은 그런 교가 천천히 몰락하는 모습을 백 년이 넘도록 지켜봐 온 것이다.
아직 마교라는 이름이 세상에 울려 퍼지던 시절부터 탄압을 당해 급격히 무너지던 시절, 그리고 명맥만을 유지하여 지하로 숨어들어야 했던 시절까지.
그 모든 것을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들으며 버텨왔다. 오로지 강진호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말이다.
‘그런데…….’
강진호가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하문하십시오, 마존이시여.”
“첫째로, 대체 내가 다시 돌아온다는 이야기는 누가 만들어 퍼뜨린 거지?”
“그건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그런가.”
강진호도 딱히 선명한 대답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구원 설화라는 것은 탄압을 받는 민족이나 종교에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생겨난다. 아마 마교도들이 기댈 수 있는 존재가 그뿐이었다는 뜻이다.
‘이해 못할 일도 아니지.’
그 이전의 마교 교주는 말 그대로 미친놈들뿐이었으니까.
필연적인 일이다. 마교의 교주는 마교에서 가장 강한 이가 차지하는 자리이고, 그 말인즉슨 마교의 교주는 그 시대에 가장 마공을 깊게 익힌 자라는 뜻이다.
그 말은 가장 미친놈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마공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뇌에 마기가 들어차게 되니까.
강진호도 스승에게 무학을 전수받지 않았더라면 광기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마공을 끌어 올이면 광기에 휘말린다.
그런데 스승의 무학이 없었다면?
그 역시 미친놈의 대열에 합류했을 것이다.
마기가 골수에 들어찬 마인들은 피아를 가리지 않는다. 마교도들에게 교주란 의지하고 따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가장 두렵고 무서운 존재다.
개중 강진호가 제일 정상적인 인간이었으니…….
강진호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장민.”
“예.”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다시 강림할 마존이 적천을 지칭하는 것이 확실한가?”
“예, 그렇습니다. 마교도들이 어둠에 신음하는 시대가 끝날 때, 여명이 밝아올 것이라 했습니다.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 때, 마존께서 다시 세상에 강림할 것이다. 이게 저희에게 내려오는 전설입니다.”
“붉게 물든 하늘이라…….”
뭔가 닭살이 돋는다.
“그럼 대체 마교도들에게 나는 어떻게 전해지고 있지?”
“가장 강하신 분, 홀로 존귀하신 분, 만마의 주인이자 마를 지배하신 분, 그리고 그 강함에 어울리지 않게 교도들을 사랑하신 어버이. 한없이 자애롭고, 한없이 강하며, 또한…….”
“거기까지.”
강진호가 장민의 말을 끊었다. 더 들었다가는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아날 것 같은 기분이다.
아무래도 그의 일화와 후세가 꾸며낸 이야기들이 합쳐져 이상한 방향으로 전해진 모양이다.
“장민, 미리 말하지만…….”
“아아, 마존이시여. 그런 걱정은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응?”
“지금은 21세기입니다. 누가 그런 전설을 일일이 다 믿겠습니까. 그냥 전설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넌 백 년 넘게 기다렸잖아, 인마!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하는 거야?
“마존께서 돌아오셨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합니다. 자애로우시든 엄하시든 저희에게 마존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십니다. 어떤 분이시든 아버지는 아버지. 그걸로 된 것 아니겠습니까?”
“…….”
표현은 무척이나 감동스러운 말이지만, 180살 먹은 노인에게 아버지라 불리는 기분이 딱히 좋지는 않았다. 뭔가 서글프고 민망하다.
“일단 그건 알겠다.”
“예.”
“또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하문하십시오.”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네가 처음 마공을 익힐 당시에도 마공이 모두 절전되어 있었나? 그때 역시 지금과 수준이 비슷했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때도 마공이 절전되어 있기는 했지만, 마교도들의 무학은 지금에 비해 월등히 높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조악해졌지요. 구두로 전해지는 마공이 점점 실전되었기 때문입니다.”
강진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잊었다는 건가?”
“아닙니다. 마존이시여, 제가 마공을 익힐 때도 이미 상급의 마공들은 모두 실전된 상태였습니다. 남아 있는 마공들을 모아 조악한 마공을 만들어내는 게 전부였지요.”
그럼 장민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마공은 그 명맥이 끊겼다고 봐야 한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해를 할 수 없었다. 확실히 이건 부자연스럽다. 외부의 개입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어째서?’
마교에 남아 있는 마공을 모두 없앨 만한 능력을 가진 이라면 지리멸렬한 마교를 무너뜨리는 일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공만을 없애고 마교는 그대로 남겨두었다. 강진호는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 해야 할까?”
“무슨 말씀이신지?”
“마공이 실전되었기에 살아남았군.”
“아…….”
장민이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마공이 지금까지 제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면, 마교는 멸망했을 것이다. 정파인들이 마교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을 테니까.
“정파 놈들은 마교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몰락한 마교를 보면서도 경계를 풀지 않습니다. 이게 따져 보면 다…….”
“나 때문이라는 건가?”
“마존께서 너무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적천의 이름은 정파인들 사이에도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굴욕적인 역사이기에 굳이 그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알 만한 이들은 중원이 교에 지배당한 역사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흐음.”
강진호가 입가를 주물렀다.
“아무래도 좋다.”
지나간 일을 이제 와 분석한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차라리 앞으로의 일에 집중하는 게 낫다.
“우선적인 과제는 교도들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로군.”
“마존이시여, 바라 마지않던 일입니다. 하나…… 소신은 불안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불안함?”
“예, 마존이시여.”
장민이 마른침을 삼키고 이야기했다.
“송구한 말이지만, 지금의 교도들은 교에 대한 충성심이 옅습니다. 그리고 마존에 대한 존경심도 옅습니다. 그런 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마존께서 생각하는 이상으로 힘들고 손이 많이 가는 일입니다.”
“그런가?”
강진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겠다.”
장민이 그 자리에 엎드렸다.
“교를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저를 벌하여 주십시오.”
“일어나라.”
“마존이시여.”
“일어나라고 했다.”
담담한 목소리.
하지만 항거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 장민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강진호는 그런 장민을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충성이라는 건 강요로 나오는 게 아니다.”
“하나…….”
“교가 그들을 위해 해준 것이 없다면, 그들에게 충성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삿된 말로 사람을 현혹하고 교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바라는 건 사교나 하는 짓이지. 과거의 마교도 그렇기에 사교로 몰리지 않았던가.”
물론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더 주된 이유는 마교도들의 심성이 독랄했기 때문이지만, 강진호의 말 역시 그리 틀린 것은 아니었다.
“시대가 달라졌다. 과거에도 옳지 않았던 일을 지금 반복한다면, 그 결과는 빤하겠지. 충성 같은 건 필요 없다. 그저 자신들을 위해 노력하면 된다. 서로 바라는 것이 같다면 결과는 자연스레 따라오겠지.”
“옳은 말씀이십니다.”
“다만.”
강진호가 말을 끊자 장민이 고개를 들었다.
움찔.
강진호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표정을 본 장민이 자신도 모르게 몸에 힘을 꽉 주었다. 강진호의 입가에 불길해 보이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대가 없이 모든 것을 베푸는 것 역시 옳지 않은 일이지. 보자, 어디 보자. 그들이 과연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을지 말이다.”
장민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이분은 결코 온화하지 않으시다.’
맹목적인 충성을 바라지 않는다고 해서, 교주답지 않게 합리성을 논한다고 해서 강진호가 좋은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강진호가 바라는 것은 자신의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교도다. 그들에게는 베풀 것이요, 그렇지 않은 이들은 버릴 것이다.
“장민.”
“예, 마존이시여.”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마교의 부활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
할 말을 잃은 장민이 고개를 들었다.
이건 마존의 입에서는 나와서는 안 되는 말이다. 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한다는 건가.
“과거의 망령 따위에 집착하지 마라. 중요한 건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다. 과거에 마교가 어떤 모습이었든, 무엇을 추구했든 모두 버려라. 어울리지 않는 것이 있다면 과감히 버리고, 새로 받아들일 것이 있다면 모두 받아들여라.”
“마존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부복하는 장민을 보며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청마라면 이렇게 말했겠지.’
그의 파격은 대부분 청마의 머리에서 나왔다. 이제 그는 적마이되 청마가 되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명맥을 이어주지. 하지만 이들이 다시 부활할 수 있는가는 내 손에 달린 게 아니다. 그러니 자꾸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청마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강진호는 미묘한 미소를 띠며 눈을 감았다.
새로운 마교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