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17
#716.
선택하다 (1)
“도로를 점거하고 충돌이 있었다?”
“예.”
차이커창이 눈을 찌푸렸다.
“어떤 놈들이냐?”
짜증이 확 밀려온다.
‘어떤 놈들이 감히.’
충돌이 발생한 곳은 홍왕의 영역이다. 그것도 접경지가 아니라 깊숙한 곳이다. 그런 곳에서 충돌이 있었다는 말은 사건을 일으킨 놈들이 홍왕계를 완전히 무시했다는 의미.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용서해서도 안 된다.
이런 일을 그냥 넘기게 되면 다른 세력들이 홍왕계를 얕잡아 보게 된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른 놈들을 잡아다 다시는 그런 일을 꿈도 꾸지 못하게 죽여 없애야만 재발을 방지할 수 있었다.
“창왕계, 아니면 설마 흑왕?”
“그게…… 아무래도 중국인이 아닌 것 같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냐? 외적이라도 쳐들어왔다는 거냐? 러시아인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확보한 놈들은 모두가 일본인이었습니다.”
“……일본이라고?”
차이커창의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일본인? 일본인들이 왜 이곳에서 일을 벌인단 말인가.
“이놈들이 다 미쳤나?”
안 그래도 강진호 때문에 골치가 아파 죽을 지경이다.
홍왕계는 현실적으로 강진호를 통제할 방법을 잃어버렸다. 한국을 완전히 지배한 강진호는 주변에 탄탄한 성벽을 쌓아 올렸다. 과거 강진호가 독자적으로 움직일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강진호를 죽이기 위해서는 총회를 쳐야 한다.
그 총회.
딱히 거슬릴 것도 없던, 허울뿐인 집단이 강진호의 휘하로 들어가는 순간 무게감이 달라진다. 인의 장막을 둘러 버린 강진호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그들도 다수가 나서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다수의 전력을 후방으로 돌리는 순간, 창왕과 흑왕이 광소를 터뜨리며 밀고 들어올 것이다. 그럼 홍왕계는 끝장이다.
결국 차이커창의 생각에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둘뿐이었다.
하나는 강진호를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등 뒤에 칼날이 겨눠져 있다는 찝찝함은 버릴 수 없겠지만, 이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다행히 강진호는 그리 호전적인 성향이 아니다.
그를 겪은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강진호는 전투에 나서는 순간부터는 미친놈이 따로 없지만, 스스로 전투를 만들어내 즐기는 타입은 아니라 했다.
건드리면 터지지만, 건드리지 않으면 얌전하다는 의미다. 그러니 이 방법이 제일 현실적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동맹을 맺어야 해.’
감정적으로는 꺼려지는 일이지만, 전자보다 실익이 크다. 강진호와 손을 잡을 수만 있다면, 그들의 도움을 받아 창왕이나 흑왕 세력을 단숨에 밀어붙일 수 있다.
그만한 자를 대등하게 여기고 동맹을 맺는다는 건 어찌 보면 굴욕적인 일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전력의 차이가 크게 나는 이들이 서로 동맹을 맺은 경우가 흔하게 벌어지지 않았던가.
차이커창은 후자를 선호했다.
전자를 밀었다가 다른 삼왕계와 싸우는 와중 강진호가 등 뒤에서 밀고 들어오면 홍왕계는 정말 멸망한다. 그 위험성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강진호와의 동맹은 고려할 가치가 충분했다.
다만 한 가지.
‘홍왕께서 받아들이지를 않으시니.’
차이커창은 머리를 쓰는 자이지만, 홍왕은 뼛속부터 무인이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자와 실익만을 위해 동맹을 맺는다는 개념이 홍왕의 머릿속에는 없었다.
되레 당장에라도 한국으로 날아가 강진호가 어떤 놈인지 그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며 길길이 날뛰고 계신다.
그때마다 눈물을 뽑아내고 바닥을 기며 막아내는 중이다.
이제는 강진호의 강 자만 들어도 경기가 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일본 놈들까지?
“이 쪽발이 새끼들이 갑자기 왜 난리야?”
차이커창이 이를 갈았다.
그도 중국인.
일본인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다. 실질적으로 부딪히는 존재이기에 강진호를 경계하고 죽이려 드는 것이지, 사실 강진호 개인에 대한 악감정은 없다.
실질적 위협이 되지 않았다면 오히려 호감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다르다. 일본에게 악감정을 가지지 않는 중국인이 어디에 있는가.
“그럼 중국으로 넘어와서 지들끼리 싸웠다는 거야? 중국인과는 관계없이?”
“일단은 그렇습니다.”
“미친놈들이 대체 뭘 꾸미는 거지?”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빨리 보고해라.”
“저 일본 놈들이 중국으로 넘어온 이유가 아무래도 강진호를 죽이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뭔 개소리야? 중국에서 왜 강진호를 찾…… 뭐라고?”
차이커창이 허리를 바짝 당겼다.
그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한다. 중국에 강진호가 없다면 저리 왔다가도 그냥 돌아가는 게 맞다. 그런데 충돌이 있었다는 말은 강진호와 싸웠다는 뜻이다.
“강진호를 죽이러 온 것 같습니다. 실패했지만.”
“그러니까, 저놈들이 중국에 넘어온 강진호를 공격했다가 실패하고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이쪽으로.”
차이커창이 손을 까딱거리자 보고를 하던 이가 바짝 다가왔다.
퍼어어억!
일격에 보고자의 턱주가리를 날려 버린 차이커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걸 왜 이제 이야기해, 이 병신 같은 새끼야! 강진호에 관련된 일은 특급으로 처리하라는 말 못 들었어?”
“죄, 죄송합니다.”
입과 코로 피를 줄줄 흘리며 보고자가 바닥에 엎드리자, 차이커창이 이를 갈았다.
‘중국에 왔다고? 강진호가?’
너무 어이가 없는 일이라 순간 머릿속에서 정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 일을 대체 어찌 해결해야 하는가.
‘죽여야지.’
생각할 것도 없다.
강진호를 손대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총회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총회라는 절대의 방패를 고물상에 팔아넘겼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리고 맨몸으로 중국 땅에 들어왔다?
‘죽여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강진호를 죽일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상황 파악 제대로 다시 해서 바로 보고해. 아니, 메일로 보내. 나는 홍왕께 보고하러 가겠다.”
“예!”
차이커창이 거칠게 밖으로 뛰쳐나가며 입술을 핥았다.
‘대체 무슨 배짱으로 중국 땅에 들어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후회하게 될 거다, 강진호.’
그의 눈이 새파랗게 빛났다.
* * *
“회주님, 이건 안 됩니다. 이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쉬운 일이면 네게 말하지도 않았어. 내가 알아서 했겠지.]“회주님이 제게 주시는 그 무한한 신뢰는 참으로 감읍할 일이지만, 그냥 저를 똥멍청이라 생각해 주시면 안 됩니까? 저는 램프의 요정이 아닙니다. 만 명이라뇨! 만 명을 무슨 수로 밀입국시킵니까! 무슨 난민 수용하는 것도 아니구요. 난민도 그렇게는 안 받습니다.”
[안 그래도 그 부분 때문에 말할 게 있었는데,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만 명은 어림도 없을 것 같긴 해.]“그, 그렇습니까? 그럼 몇 명이나?”
[한 이삼천 될 것 같은데, 문제가 하나 있는 게…….]“네?”
[가족까지 포함되면 정말 만 명이 될 수도 있거든. 그런데 가족이야 나중에 따로 데려오면 되니까.]“허…… 허허허, 허허…….”
이게 무슨 소리인가.
가족이라니.
대체 이 양반,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단 말인가.
“회주니이이임.”
이현수의 눈가가 붉어졌다.
“대체 무슨 일을 하시는 겁니까? 제가 누누이 부탁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일을 하시기 전에 제게 조금이라도 언질만 좀 해달라고, 제가 수십 번 부탁드리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거의 흐느끼는 이현수였다.
죽어야지.
그냥 죽어야지.
이게 직장인의 딜레마다.
말도 안 되는 일을 어떻게, 어떻게 죽어라고 고생해서 해결해 내면, 다음에는 그만한 일이 당연하다는 듯이 주어진다. 저번에도 해냈으니 이번에도 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일만이나 한꺼번에 밀입국을 시킨다는 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이건 거의 부채를 파닥여서 하늘을 날아보라는 말과 동의어였다.
인력과 노력을 갈아 넣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인간적으로 말이 되는 일을 시켜야 할 것 아닌가.
“이건 안 됩니다. 회주님, 제가 지금 엄살을 부리는 게 아닙니다. 이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현수.]“예, 회주님.”
“……하지만.”
[어려운 일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 힘든 일이란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 못한다면 미래가 없다.]“…….”
[부탁한다.]“그럼…… 그럼 해야죠.”
이현수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해 보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방안이 마련되는 대로 바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알겠다.]전화가 끊기자 이현수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서부의 총잡이처럼 담배를 뽑아내 입에 물었다.
찰칵! 찰칵!
몇 번이고 라이터를 튕긴 끝에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니, 이거…… ‘해보겠다’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아!”
분위기에 휩쓸려 해보겠다고 말하긴 했는데,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비행기? 아니, 어림도 없지. 그럼 배로 옮겨야 하는데…… 저만한 이들이 탈 만한 배를 수배하면 이게 공안에 걸리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렇다고 작은 배로 찔끔찔끔 나르다 보면 한세월이 걸린다. 그리고 횟수가 반복될수록 발각될 위험이 커진다. 그렇게 데려왔다고 해도 문제다.
오히려 배에 태워 나오는 것은 별일이 아닐 수도 있다. 거긴 중국이니까. 중국의 해안가만 일렬로 이어도 대한민국을 수십 번은 돈다. 그러니 감시가 철통같을 수가 없다.
하지만 한국은?
중국에서 빠져나오는 게 문제가 아니라 한국에 어떻게 입국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한국은 여전히 밀입국이 성행하는 나라였고, 그만큼이나 감시가 철저한 나라다. 일만이나 되는 밀입국자를 놓칠 나라가 아니었다.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혼자서 고민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결국 이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상의를 해야 한다. 다행히 그에게는 이제 이런 일을 상의할 사람이 있었다.
그동안 총회에는 없던 상식인이 말이다.
“헤엄쳐서 오라고 해.”
“…….”
아니다.
이 사람도 상식인은 아니었다.
이현수가 멍한 얼굴로 미스터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위긴스는 대체 뭐가 문제냐는 얼굴로 이현수를 맞이했다.
“헤엄요?”
“그래.”
“스위밍?”
“농담 따먹기라도 하자는 거냐, 이놈아?”
“아뇨, 아뇨. 사부님, 그게 아니라…….”
위긴스의 손이 올라가자 이현수가 다급하게 머리를 가렸다.
“아무리 한국과 중국이 옆 나라라고 해도 어떻게 헤엄을 쳐서 옵니까? 말이 안 되잖아요.”
“쯧쯧,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서야.”
위긴스가 한심하다는 듯 이현수를 보며 말했다.
“전부 헤엄을 칠 필요가 있느냐? 공해에다 배 한 척 세워놓고 거기까지 헤엄쳐서 오라고 하면 되잖아.”
“고, 공해요?”
“그래.”
“중국 공해면 해안선에서 20㎞는 떨어져 있을 텐데, 거기까지 헤엄을 친다구요?”
“그래.”
“입국할 때도 똑같이 하구요?”
“그래.”
“그게 말이나 됩니까? 사람이 어떻게 20㎞를 헤엄쳐요? 뛰라고 해도 못 뛸 판에.”
“너 트라이애슬론, 그러니까 철인 삼종 경기에 수영이 몇 ㎞인 줄 아냐?”
“……모르죠.”
“4㎞다. 운동선수도 4㎞를 헤엄치는데, 무인이 왜 못해? 정 체력 딸린다 싶으면 구명조끼 하나 입고 헤엄치라고 해. 늦어도 다 도착할 테니까.”
“…….”
이현수가 멍한 얼굴로 위긴스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사부님.”
“왜?”
“저는 사부님이 천지인지, 미치광인지 잘 모르겠어요.”
“나도 네가 왜 매를 버는지 잘 모르겠다, 이 썩을 놈아!”
위긴스가 지팡이를 들어 이현수를 후려쳤다.
머리를 울리는 끔찍한 고통보다 방법을 찾아냈다는 기쁨이 우선한다.
“웃어?”
이현수가 웃는 모습을 본 위긴스가 지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예로부터 미친놈에게는 매가 약인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