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2
#71.
조우하다 (2)
“……끄으윽.”
“말해봐. 말을 하면 놓아주지.”
박혁기는 필사적으로 말을 하려 애썼다. 하지만 목이 틀어 막힌 그가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죽을힘을 다해 팔을 내리눌렀지만, 그의 목을 잡은 팔은 마치 파이프렌치처럼 단단했다.
무슨 수를 써도 이 팔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
“말해.”
박혁기는 필사적으로 소리를 쳤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힘없는 신음이 되어 흘러나올 뿐이었다.
“안 들려.”
우드득!
박혁기는 손목이 돌아가는 느낌에 눈을 크게 뜨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의 비명은 목 안에서만 머무를 뿐,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말을 해.”
“끄……으…….”
“안 들려.”
우드득!
박혁기의 어깨가 부러져 나갔다.
박혁기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맨 정신에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은 차마 참아내기 힘들었다.
“말을 해봐.”
“…….”
“알겠어?”
“끄으으…….”
“말을 해야 하지만 말을 할 수 없는 고통이 뭔지 알 것 같아?”
박혁기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무엇에 대한 대답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고개를 끄덕여야 할 때라는 건 알고 있었다.
“아니, 넌 아직 몰라.”
우드득.
박혁기의 쇄골이 부서져 나갔다.
박혁기의 전신이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켰다.
쇄골 골절은 가장 고통스러운 골절 중 하나다.
“박혁기.”
“…….”
“대답해.”
박혁기는 필사적으로 입을 열었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억울함과 공포, 고통에 가득 찬 그가 줄줄이 눈물을 뿜어냈다. 강진호는 그런 박혁기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네 실수를 아는가?”
“…….”
박혁기는 고개를 정신없이 끄덕였다.
강진호가 박혁기의 목을 잡은 손을 놓았다.
쿠당탕!
박혁기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말해봐.”
“흐…… 흐으…… 대체 왜 이러…….”
강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우드득.
강진호의 발이 박혁기의 다리를 짓밟았다.
박혁기의 입이 한껏 벌어졌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고통이 너무 극심하여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
강진호는 다시금 말했다.
“말해봐, 네 실수가 뭔지.”
“……나, 나는…… 아이들……을 제대로…….”
“아니야.”
우드득.
또다시 뼈가 부러지는 섬뜩한 소음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강진호는 박혁기의 귀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런 게 아냐, 박혁기.”
박혁기는 풀려 버린 눈으로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냐, 그런 게 아냐. 네 실수는 말이야…….”
강진호가 박혁기의 손을 잡았다.
“나를 건드린 거야.”
우드드득.
손가락이 모조리 부러져 나갔다.
“끄으으으으…….”
강진호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모두 찾아내 벌할 수는 없어. 그럴 필요도 없어. 나는 정의의 사자도 아니고, 심판관도 아니야. 네가 무슨 잘못을 했든 나와 관련이 없다면 나는 신경 쓰지 않았을 거야. 알겠어, 박혁기? 네 잘못이 뭔지?”
“흐으…… 흐으…….”
박혁기는 피와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봐.”
“가, 강은……영…….”
“그래.”
강진호는 미소를 지었다.
“건드리지 말았어야 해.”
“자…… 잘못했…….”
박혁기는 필사적으로 용서를 빌었다.
“늦었어.”
박혁기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너무 늦었어, 박혁기. 너도, 나도 너무 늦었지.”
박혁기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어쩌면 네게는 과한 일인지도 모르지. 너 하나의 잘못은 아니니까. 하지만 네가 그 모든 것의 대표잖아. 그렇지 않아? 아이들의 잘못, 스탭의 잘못, 그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게 대표라는 자리잖아.”
“흐으…….”
“지금까지 그 자리로 네가 이득을 봐왔다면, 그 대가도 네가 받는 게 맞지 않아?”
“제, 제발…… 용서…….”
강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용서하지 않아. 난 그저 거래할 뿐이야.”
“거래…….”
“그래, 난 거래할 뿐이야. 네가 준 고통을 네가 돌려받는 것, 그게 내 거래야. 잘 들어, 박혁기. 잠에서 깨어나면 아무 일도 일어나 있지 않을 거야. 넌 그저 꿈을 꾼 것뿐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래도 괜찮아. 난 또 널 찾아올 테니까. 잘 들어, 박혁기. 네가 한 일을 너 역시 당해야겠지. 내일 이 시간까지 현금으로 십억을 준비해. 그렇지 않으면 넌 또다시 나와 거래를 해야 할 거야.”
“시, 십억?”
“그래. 현금이야.”
“…….”
강진호가 박혁기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는 낮게 속삭였다.
“알아들었어? 아니면 다시 설명해 줄까?”
박혁기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같은 설명을 다시 듣고 싶어 할 미친놈은 절대 없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십억 정도야 얼마든지 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잊지 마. 꿈이라고 믿어버리는 순간, 넌 다시 나와 거래를 하게 될 거야.”
어둠 속에서 강진호, 아니, 적천마존의 미소가 새하얗게 빛났다.
“허어억!”
박혁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헉! 허억! 허억!”
박혁기는 마치 정신이라도 나간 사람처럼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꾸, 꿈?”
박혁기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부러졌던 손가락도, 다리도, 쇄골도 모두 멀쩡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대체…….”
꿈?
꿈이라기에는 너무 생생했다.
그 고통은 도무지 꿈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그런 끔직하고 생생한 고통을 꿈에서 느낀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하지만 이토록 멀쩡한 몸은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게 꿈이 아니었다면 사람의 몸이 그렇게 부서졌다가 다시 멀쩡해질 수 있나.
“……꿈인가?”
박혁기의 귀에 생생한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잊지 마. 꿈이라고 믿어버리는 순간, 넌 다시 나와 거래를 하게 될 거야.”
박혁기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대체 뭐란 말인가.
이건 꿈인가, 아니면 꿈이 아닌가.
박혁기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종잡지 못하고 벌벌 떨던 박혁기가 자신의 어깨를 움켜잡고는 씹어뱉듯이 말했다.
“꿈이야, 이건! 이건 꿈이야!”
박혁기는 결론을 내렸다.
아마도 낮에 그 빌어먹을 강은영의 오빠 놈에게 목을 잡힌 기억 때문에 이런 꿈을 꾼 모양이다. 그때의 그 눈빛이 워낙에 기분 나빴기에 기억에 생생히 남은 거겠지.
정말 더러운 꿈이었다.
살다 살다 이렇게 지독하고 생생한 악몽은 꾼 적이 없었다.
“제기랄!”
박혁기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거칠게 양복 상의를 벗었다.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몸이 축축한 느낌이다. 흐른 땀을 식혀야 했다.
박혁기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아무래도 몸이 허해진 모양…….’
박혁기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그가 벗어 던진 양복 상의.
그 안쪽에 뭔가 이상한 것이 보인다. 박혁기는 멍하니 양복을 바라보았다.
양복 안쪽 안감 사이에 붉은색의 점 하나가 찍혀 있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자 아직 물기가 채 가시지 않은 붉은색의 무언가가 보였다.
‘피?’
저 형태, 그리고 색감.
작은 핏방울 하나가 맺혀 있었다.
박혁기는 멍하니 핏방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굳지 않은 피.
손가락을 타고 끈적한 피가 느껴졌다.
하지만 박혁기의 몸 어디에도 피가 흘러나올 상처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럼…….
대체 이 피는 뭐란 말인가.
박혁기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대체……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박혁기가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 * *
강은영의 새 기획사 이적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황정후 회장의 명이 떨어지자 재경 그룹 차원에서 협조 요청이 들어갔고, 굴지의 기업인 재경의 부탁을 무시할 수 있는 곳은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강은영은 얼떨떨한 상태에서 바로 새 기획사와 계약서를 작성했고, 이번에는 조규민이 직접 참관하여 불공정 계약의 위험 자체를 제거해 버렸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코드 연예 기획사의 대표인 이진군은 조규민을 향해 넌지시 물었다.
“대체 저 아이가 누구기에 재경 그룹에서?”
조규민은 난처하다는 듯 머리를 긁었다.
“말씀드리기가 곤란합니다.”
“혹시?”
조규민은 이진군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 저희 회장님은 숨겨놓은 자식이 없습니다. 물론 숨겨놓은 손녀도 아닙니다. 저희 회장님은 당당하게 밝히면 밝혔지, 뒤로 숨겨두고 뭔가를 하실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시잖습니까.”
“예, 그렇지요.”
“하지만 적어도 그에 필적할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 그에 필적할 정도로?”
질린 얼굴로 그 말의 뜻을 해석하고 있는 이진군을 보며 조규민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따지고 보면 황정후의 손녀라는 신분보다 강진호의 동생이라는 신분이 더 위험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연예계가 반드시 깨끗한 곳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저분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될 경우에는 코드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이건 협박이 아닙니다. 사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저분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저희도 뒷감당을 하기 어렵습니다.”
“예.”
이진군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희라는 건 대체 뭘 말하는 건가.
눈앞에 있는 조규민?
아니면 혹시…….
재경 그룹?
재경 그룹이 뒷감당을 하기 어렵다는 말인가?
대체 저 아이의 신분이 뭐기에 그런 말이 나온다는 말인가.
‘복덩이인지, 화근 덩어리인지…….’
여하튼 골치 아픈 아이를 떠맡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이진군이었다.
“그럼 오늘은 인사만 드리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전 기획사에서 너무 시간을 많이 보낸 것에 불만을 가지시는 분이 계시거든요.”
“그렇게 하십시오. 그런데 하나만 더 여쭤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시지요.”
“스타위즈는 이제…….”
조규민은 가볍게 답했다.
“아마도 해체될 겁니다.”
“…….”
이진군은 침음을 흘렸다.
스타위즈가 거대 기획사는 아니라 하더라도 나름 오랜 시간 연예계를 지켜온, 전통 있는 회사였다. 그런 회사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된 것이다.
“거기에서 끝나면 다행이겠지요.”
“예?”
“아닙니다.”
조규민이 가볍게 흘린 말이 이진군에게는 그 어떤 협박보다 무겁게 다가왔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기획사에서는 세간에서 말하는 불미스러운 일들은 결코 벌어지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게 믿습니다. 아니, 그래야만 합니다.”
조규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진군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조규민을 배웅했다.
조규민이 나가자마자 이진군이 휴대폰을 들었다.
“어, 난데. 로드 매니저를 늘려야겠어. 뭐? 아니, 더 붙여야 한다고. 애들끼리 사고 안 나게 단속 철저히 시켜! 잘못하다가는 불벼락이 떨어진다!”
이진군 인생 최대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