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22
#721.
고심하다 (1)
“요즘 유민이 폼이 장난 아닌데?”
오진형 감독의 너스레에 박유민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냥 운이 좋은 거예요.”
“너,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라. 솔로 랭크 1위 찍은 애가 운이라고 하면, 대한민국에 밤잠 안 자며 게임하는 애들 다 나가 죽으라는 소리니까.”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어쩔 줄 몰라 하는 박유민을 보며 오진형이 빙그레 웃었다.
‘진짜 대단한 놈이야.’
오진형이 자신이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박유민은 무척 오랜 시간 동안 게이머로 활동했다. 과거, 그가 황제로 군림하던 갤럭시에서는 가장 경력이 오래된 선수 중 하나였다.
프로 스포츠 선수보다 수명이 짧은 E스포츠에서 삼 년 이상의 시간을 게이머로 활동했다면 중견이라 불리기 손색이 없으니까.
그래서 착각했다.
생각해 보면 박유민은 아직 스물다섯을 넘지 않았다. 일반적인 E스포츠 선수가 스무 살 전후로 피지컬의 정점을 찍고, 이십 대 초반에 전성기를 맞고, 스물다섯이 넘으며 점차 실력이 퇴보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박유민은 아직 전성기여야 할 나이다.
종목이 다르고, 나이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력이 길다는 사실 때문에 박유민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
‘몇 년은 더 전성기를 유지할 수 있어.’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연습실에 합류한 박유민은 게걸스럽게 성장했다. 이제야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났다는 듯이 솔로 랭크를 정복하고, 스크림에서도 미친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형, 진짜 쩔었어요.”
“그만하라니까.”
박유민의 활약에 당사자보다 최정우가 더 신나 하고 있었다.
“아니, 아까 솔킬은 정말 지렸다니까요. 쟤들 1위 팀이잖아요. 형 덕분에 쉽게 이겼어요. 이게 스크림이 아니라 방송 경기였어야 하는데.”
“방송 경기면 달랐겠지.”
“에이, 다를 거 있나요.”
박유민의 눈이 살짝 엄해졌다.
“정우야.”
“예?”
“연습실에서 잘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어. 너도 프로라면 진짜 경기에서 보여줘야 해. 연습실 본좌 소리 듣다가 사라진 애들이 얼마나 많은지 너도 알잖아.”
“에이, 형은 다르죠.”
“정우야.”
“……알았어요. 잘못했어요. 제가 좀 들떴어요.”
박유민이 피식 웃자 의기소침해졌던 최정우도 씨익 웃었다.
‘분위기도 좋고.’
오진형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잘되는 팀은 언제나 분위기가 좋다. 그 좋은 분위기 속에서도 나름의 엄격함이 있어야 한다.
이전까지 그의 팀은 활기는 있었을지언정 프로 의식이 부족했다. 그 프로 의식의 부족함을 박유민이 메꿔주고 있었다. 팀원들의 입장에서는 대선배이자 학창 시절 우상이었던 박유민이 팀에 합류해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을 하자 팀의 분위기가 절로 바뀌었다.
굳이 지적하거나 화내지 않아도 자율적으로 열심히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게다가 실력도 일취월장하고 있으니, 어찌 자극이 되지 않겠는가.
“감독님.”
“응?”
최정우가 기대에 찬 얼굴로 말했다.
“다음 경기 미드 선발 누구예요?”
“음…….”
오진형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때는 됐어.’
오히려 늦은 감이 있었다.
실력적으로 박유민은 이미 한참 전에 기존의 주전인 곽현태를 앞섰다. 곽현태 스스로도 인정한 일이다. 그럼 당연히 박유민을 선발로 써야 한다. 하지만 오진형은 쉽사리 그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보통 일이 아니야.’
박유민이 서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자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다. 박유민의 열성 지지자들인 박유민교는 말 그대로 미쳐 날뛰었다.
박유민이 종목을 바꿔 프로 생활을 다시 한다는 것에 기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도 있고, 박유민이 갤럭시를 버리고 다른 종목을 선택했다는 것에 배신감을 느끼는 이도 있었다.
긍정파와 부정파가 갈려 커뮤니티가 난장판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면서 그래도 박유민이 계속 프로게이머 활동을 한다는 것에 긍정적인 여론이 정착했다. 이제 모두의 관심사는 박유민이 얼마나 좋은 모습을 보여줄까에 쏠려 있었다.
‘부담이 장난이 아닐 거란 말이지.’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박유민도 사람이다. 냉정하게 보자면, 보통 사람보다 조금 소심한 쪽에 속하는 타입이었다. 한 번도 결과를 내본 적 없는 종목에 새로 도전하는 것도 힘들 텐데, 저 많은 이들의 기대가 얼마나 부담스럽겠는가.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오진형은 아직 조심스러웠다.
“감독님, 저희 순위 이제 위험한 거 아시잖아요.”
“자랑이다, 인마! 너는 프로라는 놈이 순위가 떨어지고 있으면 자기가 실력을 키워서 올라갈 생각은 안 하고, 팀원 바꿀 생각부터 하고 있냐?”
“에이, 이건 팀 게임이잖아요. 저도 열심히 하겠지만, 팀원이 더 강해지면 좋은 거죠.”
“쯧.”
오진형이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속으로는 최정우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이건 팀 게임이다.
‘현태가 문젠데…….’
폼이 완전히 살아난 박유민과, 반대로 곽현태는 폼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당연한 일이다.
프로에게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멘탈도 중요하다. 가지고 있는 피지컬과 게임에 대한 이해도를 십분 발휘시켜 주는 것이 바로 멘탈이니까.
그런데 지금 곽현태는 멘탈이 아주 가루가 되어 있었다.
상대도 안 된다고 생각하던 경쟁자가 자신의 위로 한없이 치고 올라간다. 그 광경을 옆에서 보며 멘탈을 다잡기에 곽현태는 너무 어렸다.
솔로 랭크에서 마주칠 때마다 박살이 나고, 스크림 평가도 차이가 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팀원들이 곽현태보다 박유민과 게임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아이다.
그전에는 기대주라며 떠받들려지던 아이가 순식간에 뒤로 밀려났다. 그 충격이 오죽 크겠는가.
‘이놈도 그런 면에서는 정말 칼 같다니까.’
박유민이 천생 프로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옆에서 곽현태의 멘탈이 바스러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서 말로는 위로해도 게임 내에서는 절대로 봐주지 않는다. 오히려 철저하다시피 박살을 내고 있었다.
그런 독한 면을 보면 믿어봐도 될 것 같고…….
“유민아.”
“예, 감독님.”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이제 출전해도 될 것 같아?”
박유민은 대답하지 않고 고민에 빠졌다.
“형! 고민할 게 뭐가 있어요. 지금 형이 비공식 넘버원이라니까요. 방송에서 지금 하는 거 80%만 보여줘도 대박 나는 거예요.”
“너는 가만히 좀 있어.”
오진형이 딱 잘라 말하자 최정우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진짠데.’
같이 게임을 하니 알 수 있었다. 박유민은 진짜다.
이 사람이 그가 동경하고 존경하던 박유민이기 때문에 그런 평가를 내리는 게 아니다. 박유민이 아니라 생전 처음 보는 신인이라도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최정우의 평가는 같을 것이다.
감독님이 뭘 걱정하는지는 알지만, 그가 보기에는 쓸데없는 기우에 불과했다. 결국 프로는 실력으로 말하는 것이고, 박유민의 실력은 충분하니까.
“솔직히 아직은 좀 어려울 것 같은 게…….”
박유민이 담담하게 말했다.
“폼을 좀 더 끌어 올려서 팬들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은 있거든요.”
“그러냐?”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폼이라는 게…… 만족이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도 그랬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폼이 좋다’, ‘폼이 물올랐다’고 말할 때도 저는 항상 부족한 점이 보이고 미진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니 제가 원하는 폼을 끌어 올린 순간은 앞으로도 안 온다고 봐야죠.”
“……그게 무슨 소리냐?”
“완벽하게 준비해서 나가는 게 욕심이라면, 지금 당장 출전해도 상관없어요.”
오진형이 가만히 박유민을 바라보았다. 박유민의 얼굴에 흔들림이 없었다.
“부담스럽지는 않고?”
“항상 부담스럽죠. 항상 무섭고, 항상 떨려요. 경기장에 들어설 때면 항상 눈앞이 깜깜해질 만큼 무서웠어요. 그런데 그게 무섭다고 경기를 피하면 이 바닥에서 떠나야죠. 우리는 연습실에서 잘하려고 프로가 된 게 아니니까요.”
“그래, 네 말이 맞다.”
오진형이 빙그레 웃었다.
‘확실히 예전보다 단단해졌어.’
박유민은 예전에도 훌륭한 게이머였다. 하지만 이제는 훌륭한 게이머가 아니라 훌륭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나부터 내 선수를 믿어야지.’
걱정이 과한 것도 문제였다.
언제까지 박유민을 품 안에 두고 보호할 수는 없었다. 사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은 박유민이 아니라 바로 그였다. 이제는 그의 팀에도 반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유민이라는 크랙이 제대로 활약해 줘야 우승을 노릴 수 있다.
“다음 경기에 나갈 수 있겠냐?”
“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박유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와! 그럼 유민이 형이 다음 경기 선발로 나가는 거예요?”
“그래.”
“커뮤니티 뒤집어지겠네.”
최정우가 낄낄대며 웃었다.
박유민이 출전해 좋은 모습을 보이면 게임 커뮤니티에 다시 한 번 르네상스가 올 것이다. 또 얼마나 많은 짤방이 만들어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커뮤가 문제냐.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도 우승해야지.”
“그건 당연하죠. 우승할 겁니다.”
박유민이 어이가 없다는 듯 최정우를 보았다.
“그걸 왜 네가 장담해?”
“유민이 형 실력이면 우승 못하는 게 이상한 거죠. 유민이 형이 제 실력만 발휘해 주면 무조건 우승합니다. 우승 못하면 저희를 욕하세요. 유민이 형 말구요.”
“안 그래도 그럴 거다. 너희도 긴장 풀지 말고 제대로 해. 유민이 데뷔전에 경기 망치는 놈 있으면 평생 동안 먹을 욕 하루 만에 다 먹을 테니까.”
“……그렇겠네요.”
최정우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가 경기를 망치기라도 한다면 박유민교가 그를 얼마나 들볶을지 벌써부터 무서웠다.
박유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스크림 전에 전화 좀 하고 올게요.”
“그래라. 늦지 말고.”
“예.”
박유민이 밖으로 걸어 나가자 최정우가 입을 열었다.
“진짜 대단한 형이에요.”
“동감이다.”
오진형도 그 말에는 공감했다.
나이는 그보다 훨씬 어리지만, 진짜 존경할 수 있는 남자였다. 게임에 대한 재능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자신을 몇 번이고 쇄신하는 저 집요함과 저돌성이다.
겉으로는 소심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녀석인데, 그 안에는 용광로가 끓고 있다.
저 열정은 누구라도 본받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인마, 너도 열심히 좀 해. 유민이 반이라도 해봐라.”
“그게 어디 쉽나요. 유민이 형은 슈퍼맨 같은 사람이잖아요.”
“같은 사람이야, 인마.”
“같은 사람이긴 한데, 사람마다 그릇이 다른 것 같아요.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하겠는데, 유민이 형을 이길 수 있냐고 물으면 그건 대답 못하겠거든요.”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하여튼 대단한 놈이라니까.’
오진형이 흐뭇한 얼굴로 박유민이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저 녀석이 다시 데뷔를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놀랄지 벌써부터 즐겁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