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27
#726.
이주하다 (1)
“일단 진정해라!”
“진정하라고, 이놈들아!”
“마존께서 노하시기 전에 어서 줄을 다시 맞추지 못할까!”
마존께서 노하신다는 말이 통했다.
앞사람의 머리채를 잡아끌며 앞으로 달려들던 마인들이 제정신을 차리고는 슬금슬금 다시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태사의에 앉아 있는 강진호의 눈치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찰칵.
강진호는 별일 아니라는 듯 담배를 한 대 더 물고는 천천히 연기를 뿜어냈다.
“일단 진정 좀 하지.”
“예!”
대답이 우렁차다.
강진호는 자신을 바라보는 마인들의 시선을 보며 혀를 찼다.
“애들을 얼마나 각박하게 다뤘으면…….”
강진호의 나무람에 장민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돈이 없는 걸 어쩝니까.’
지금의 마교가 어디 마교인가, 거지굴이지.
돈만 있으면 못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돈이 없으니 이리 구질구질하게 사는 것이지.
“……죄송합니다.”
할 말은 많지만, 할 수가 없다. 마존에게 ‘우리가 돈이 없어서 그런 건데, 너무 화내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할 수는 없잖은가.
강진호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열광하는 마인들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붙어 있던 게 신기하군.’
거꾸로 말하면, 이들의 삶이 그만큼이나 각박했다는 뜻이다. 마교에 붙어 있는 것이 그들의 삶에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없던 이들이다.
가진 게 마공뿐이기에 마인으로의 삶을 버릴 수 없다.
그 와중에 언제라도 마기가 골수에 차올라 타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렇기에 약하다.
‘차라리 외도가 몇 배는 더 강했다.’
그가 현세로 돌아와 첫 번째 마주한 마인이었던 외도가 이들보다는 훨씬 더 강했다. 마기가 골수에 차는 걸 신경 쓰지 않고 마공을 익혔다면, 이들도 강해졌을 것이다. 그러고는 인성을 상실한 괴물이 되었겠지.
강해져야 하지만 강해질 수 없다. 그런 딜레마에 빠진 이들이다.
“이제는 달라져야지.”
강진호가 턱을 쓰다듬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강해질 수 있는 길, 그리고 스스로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였다.
대가가 없는 노력을 지속할 수 있는 존재하지 않는다.
강진호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끊임 없이 강해질 수 있던 이유는 강해져야 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오로지 그 이유가 강진호를 강하게 만들었다.
생존이 그의 노력에 대한 대가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이들은 다르다.
그렇다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강함에 대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그게 돈이지.’
강진호는 세상을 그리 낭만적으로 보지 않았다.
이들보다 훨씬 나은 상황에 있던 총회와 영남회도 서로의 이권을 위해서 죽고 죽이는 나선에 빠져들었다. 결국 인간은 이익에 민감하다.
그런 이들에게 이익을 제공하지 않고 의무감만을 강요한다?
파탄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들을 불쌍하게 여겨서가 아니다. 이들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대가와 생활의 안정이 필수적이었다.
“흠.”
담배 연기를 천천히 내뿜은 강진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질문.”
이제는 분위기가 좀 나아져서인지 빠르게 질문이 쏟아졌다.
“가족들은 함께 넘어갈 수 있습니까?”
“물론이다. 다만, 방법은 다르다. 우선은 너희가 넘어간다. 그런 후에 가족들은 공식적인 방법으로 데리고 올 것이다.”
“그 기간은 얼마나 됩니까?”
“모른다. 하지만 길지는 않을 것이다. 약속하지.”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탐탁찮아 하는 얼굴들도 있었다. 새로운 삶과 목표를 이야기하는데 가족이라는 현실적 이야기를 끌어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
하지만 강진호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질문이었다.
그에게도 가족은 삶의 목표가 되어주었다.
가족과 친구, 자신의 삶 없이 오로지 강함만을 추구하는 인생이 얼마나 피폐하고 공허한지 강진호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교가 완전히 한국으로 이전하는 겁니까?”
“여기에 남은 이들이 스스로 교를 자칭하겠다면 말리지 않겠다. 굳이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한국으로 가는 이들 역시 지금까지의 교의 형식은 버려야 할 것이다.”
강진호는 담담하게, 그리고 힘 있게 대답했다.
“현대에 그대로 적용하기에 교의 방식은 낡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이지. 마교의 이름은 그 형식에 붙은 것이 아니다. 마공을 추구하고 강함을 추구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곳이 곧 마교가 된다. 그리고…….”
강진호가 모두를 한 번 둘러보고는 단언했다.
“내가 있는 곳이 곧 마교다.”
떨림.
담담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겁박하는 말도 아니고, 오만에 찬 말도 아니었다. 그저 하늘이 푸르다고 말하는 것처럼 너무도 당연한 말이었다.
그렇기에 느껴진다.
그 말에 담겨 있는 자부심과 확신을.
그 끝을 알 수 없는 자부심에 마인들의 몸이 떨려왔다.
마공을 익힌 마인이라는 사실을 저토록 자부하는 이가 있었던가.
적어도 그들의 삶에서는 없었다.
과거 영광의 시대를 살던 이들은 마인이라는 사실을 자부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에게 마인이라는 정체성은 숨겨야 할 약점에 불과했다.
뭔가 울컥한다.
스스로를 자부할 수 없다는 것.
그 사실에 얼마나 많은 것을 빼앗겨 왔던가.
얼마나 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샜던가.
이상하게 벅차오르는 감정을 진정할 새도 없이 강진호가 말을 이었다.
“허례와 권위는 지금 이 순간부터 버린다. 물을 것이 있다면 주저 말고 묻고, 따질 것이 있다면 참지 말고 따져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방식을 만들겠다. 그리고 모두가 부러워할 수 있는 삶을 살게 해주겠다.”
“마존이시여!”
누군가 물었다.
“저희가 한국으로 가야 하는 이유는 마도천하를 이룩하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강진호의 눈썹이 꿈틀댔다.
“마도천하가 무엇인가?”
“마교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멍청한 소리.”
단호한 부정이 이어졌다.
“마교는 지배하려 한 것이 아니다. 지배하지 않고서는 평온할 수 없던 것뿐이다.”
장로들조차 강진호의 말에 혼란스러움을 드러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싸워야 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의 삶에서 안정과 행복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마교는 외지로 내몰렸고, 그곳에서는 모두가 행복해지는 게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싸웠다. 너희의 땅을 조금만 내달라고. 그리고 그들은 단 한 평의 땅조차 내주지 않으려 했다. 마지막까지 싸우려 했지. 그래서 벌어진 전쟁이고, 그렇게 이어진 역사일 뿐이다.”
강진호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너희는 이미 전장에 발을 들였다. 지금부터 이곳에서 발을 빼고 그저 행복해지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두 알 것이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강해지는 것을 다른 무인들이 내버려 둘 리가 없다. 다른 곳은 몰라도 삼왕계는 결코 그 꼴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들이 절로 물러나고 안정을 찾을 수 있다면, 마도천하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겠지. 그러니 너희는 싸우게 될 것이다. 마도천하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
결과는 같다.
하지만 그 의도가 달랐다.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에 대한 오해가 있던 모양인데,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말해주지.”
강진호의 몸에서 마기가 피어올랐다.
전신을 불태우는 것 같은 검은 마기. 그 마기가 솟구치고 들끓어 올라 강진호의 육신을 뒤덮었다.
“나는 너희의 구원자가 아니다. 나는 마도천하를 이룩할 선지자가 아니다. 나는 그저 너희와 함께 살아가는 마인일 뿐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가지고, 걸어가야 할 길을 알고 있을 뿐이다.”
붉은 눈을 한 마귀가 그 위세를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그 악귀와도 같은 형상을 본 이들이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마도천하 같은 허상을 좇는다면 따라올 필요 없다. 나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싸우는 이유는 간단하다. 저들이 나를 건드렸기 때문이지.”
모습과 말이 일치하지 않는다.
세상을 악의(惡意)로 뒤덮을 것 같은 형상을 한 마귀의 입에서 나왔다기에는 너무도 온건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들 이해하고 있었다.
저 사람은 전설에 나온 적천마존이다.
하지만 그 적천마존은 그들이 알고 있는 적천마존이 아니었다.
피와 죽음을 추구하고, 세상을 악으로 뒤덮을 사람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평범한, 더없이 평범한. 그래서 평범하지 않은…….
그런 사람이다.
“안주의 땅을 제공할 수는 없다. 너희가 그곳을 안주의 땅으로 만들 기회를 제공할 뿐이다. 내가 너희에게 약속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다. 너희 스스로 노력한다면, 적어도 스스로에게 자괴감을 가지지 않는 삶을 주겠다.”
주강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집과 돈을 주시죠.”
“……맞다.”
강진호를 둘러싸고 있던 마기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평범한 청년의 모습.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강진호가 멋쩍게 뒷머리를 긁었다.
“그거, 사실 중요한 거니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주강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이제 두려움 같은 건 사라졌다.
“마존이시여, 여쭙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다른 것을 여쭐 시간은 앞으로도 많다고 여기고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말하라.”
“결정을 내린 이들은 어찌해야 합니까?”
강진호가 주강을 가만히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청할 곳을 마련하겠다. 장로들이 신청을 받을 테니, 이주 여부와 함께 이주해야 할 가족들의 명단을 작성하라. 나는 너희에게 많은 시간을 줄 수 없다. 이틀 내로 모든 것을 마무리하라.”
“마존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주강이 그 자리에 엎드리자 공동을 메운 이들이 우르르 업드렸다.
수천의 마인들이 일제히 엎드리는 광경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아아!’
장민이 몸을 떨었다.
‘이것이구나.’
이것이 교주가 존재하던 시기의 마교다.
충심 가득한 마인들과 앞서서 그를 이끄는 자.
꿈에서도 그리던 광경이 지금 장민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장민의 가슴에도 웅심이 불타올랐다.
믿었다.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교도들을 단숨에 굴복시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힘으로 찍어 누른 것도 아니다. 그저 몇 마디의 대화만으로 그들의 충성을 이끌어냈다.
어찌 감격스럽지 않겠는가.
“마, 마존이시여!”
장민이 몸 안을 가득 채운 감동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찰나, 강진호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돈 준다니까 다 해결되네.”
“…….”
장민의 감동이 땅끝까지 떨어졌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어. 여하튼.”
“……예전에도 이러셨습니까?”
“불만이 엄청 많았는데, 녹봉 두 배로 올려준다니까 쏙 들어가더군. 돈을 밝히는 게 사람의 특성인지, 마인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
장민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여튼, 그럼 해결됐지?”
“그, 그렇습니다.”
“이제 다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똑똑히 알았겠지?”
장민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하게 이해한 장민이었다.
‘마존은 부자이시다.’
그 어느 것보다 힘이 되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