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3
#72.
조우하다 (3)
“가시죠.”
“예.”
강은영은 차에 올랐다.
조규민이 운전석에 올라 차에 시동을 걸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꿈만 같아요.”
“그러십니까?”
강은영은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강진호가 말을 하긴 했지만, 그저 위로하고자 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현실로 일어났다. 그것도 강진호가 말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좋은 조건으로.
“어떻게 이런 일이…….”
“강진호 씨가 마음먹으면 언제든 가능한 일입니다.”
“오빠가요?”
“예.”
“오빠가 무슨 힘이 있다고……. 회장님께서 불쌍하게 봐주신 거겠죠.”
“자세한 설명을 드리기는 어렵지만, 강진호 씨는 강은영 씨가 생각하는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분이 마음먹는다면 세상이 흔들릴 만큼 말이죠.”
조규민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강진호가 황정후를 더 이상 치료하지 않는다면 그날로 대한민국이 다시 들썩일 테니까.
그리고…….
‘그것만은 아니지.’
굳이 황정후가 아니더라도 강진호는 분명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강진호와 함께하면서 조규민이 얻은 확신이었다.
최근에 들어서야 왜 황 회장이 강진호에게 왜 그리 촉각을 곤두세우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순히 그가 황정후 회장을 치료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황정후 회장 없이도 세상을 뒤흔들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정확하게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오빠가…….”
조규민은 서서히 액셀을 밟았다.
“여하튼 이번 기획사에서는 예전같이 얼토당토않은 일들은 결코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룹 차원에서 신신당부를 해뒀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제게 고마워하실 것은 없습니다. 저야 명을 받고 시행하는 입장이니까요.”
“그래도요…….”
“고마워하시려면 강진호 씨에게 고마워하시는 게 맞을 겁니다.”
“오빠한테는…… 고맙죠. 그걸 어떻게 말로 다 하겠어요.”
“그게 가족이라는 거죠.”
“예.”
강은영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그날 새벽.
박혁기는 공포에 떨었다.
“꿈이었어. 꿈일 거야. 그건 꿈이야.”
필사적으로 자신을 안정시키는 박혁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떨려오는 몸은 그의 솔직한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꾸, 꿈이야. 그건 꿈…….”
박혁기는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올까? 또? 또 올까? 아냐……. 그건…….”
경찰에 신고할까 고민도 해보았다.
하지만 그의 몸에는 어떠한 외상도 남아 있지 않았고, 그게 현실이라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갈까도 생각해 봤지만, 만약 그게 꿈이라면 박혁기는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피해 기약 없는 도망을 쳐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결국 방법은 하나였다.
오늘을 버텨보는 것.
박혁기는 손톱을 깨물었다.
까드득.
이미 파일 대로 파여 손톱 아래 속살이 드러나 피를 흘리고 있지만, 박혁기는 연신 손톱을 깨물어 댔다.
“꿈이야.”
하지만 그것은 박혁기의 바람일 뿐이었다.
“꿈이길 바랐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 흐으으…….”
어느새 앞에 나타난 적천마존이 천천히 박혁기를 향해 다가갔다.
“말했잖아, 꿈이라고 생각한다면 나와 다시 거래를 하게 될 거라고.”
“대체 나한테 왜…….”
“운이 없었다고 생각해.”
“…….”
“돈은 준비되었나?”
“…….”
“아닌가 보군.”
“주, 준비했소.”
박혁기는 손을 벌벌 떨면서 책상 아래로 손을 뻗었다. 그곳에는 오만 원권 돈 뭉치가 한가득 담긴 자루가 있었다.
“호, 혹시 몰라 준비했소. 나는, 나는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소. 그러니까…….”
“능력이 있군.”
강진호는 미소를 지었다.
“여, 여기저기서 융통하고 빌린 돈이오. 그러니 제발 이제 나를 놔주시오.”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약속을 지켰군.”
박혁기가 조심스레 자루를 강진호에게 내밀었다.
강진호는 자루를 받아 들고는 가만히 박혁기를 바라보았다.
“이, 이걸로 당신이 말한 거래는 끝……난 거요.”
강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박혁기.”
박혁기의 눈이 부르르 떨렸다. 그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음산함이 사람을 못 견디게 만들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저 손이 그의 목을 조를 것만 같았다.
“이제 시작이야.”
강진호의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묻어난다. 그 비웃는 듯한 목소리를 참아낼 수가 없었다.
“뭔 말을 하는 거요?”
그때, 강진호의 손에 들린 자루가 갑자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무슨 짓을!”
삽시간에 불타오른 자루는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없던 것처럼 새하얀 재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그 많은 돈이 탔는데도 재는 얼마 남지도 않았다.
박혁기는 넋이 나간 눈으로 재가 되어버린 돈을 바라보았다.
10억.
온갖 수를 써서 마련한, 10억이라는 돈이 지금 그의 눈앞에서 잿더미로 변해 버린 것이다.
“어, 어어…….”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놈은 악마다.
악마가 아니고서는 이럴 수 없는 것이다.
“자, 이제 다시 시작해야지.”
강진호, 아니, 적천마존의 이가 하얗게 빛났다.
“내일까지 십억을 준비해.”
박혁기의 얼굴이 잿빛으로 물들었다.
“잊지 마. 준비하지 못하면 당신은 나와 다시 거래를 해야 해.”
박혁기가 하얗게 눈을 까뒤집고 서서히 뒤로 넘어갔다.
그런 박혁기의 모습 위로 낮고 음산한 웃음이 천천히 흘러 방 안을 떠돌았다.
며칠 뒤.
스타위즈의 부정에 대한 보도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매스컴이 여론을 부채질했고, 각종 커뮤니티들은 적나라한 비리에 분노의 목소리를 연신 토해냈다.
그 와중에 스타위즈의 대표인 박혁기가 신경쇠약으로 입원했다는 뉴스가 나오자 사람들은 연기를 한다며 일제히 비난했다.
더구나 박혁기가 입원 직전 몇 번이나 주변에 돈을 융통해 몇 십억이나 되는 돈을 빼돌렸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들끓어 올랐다.
분노한 여론 앞에 타 기획사들도 앞다투어 쇄신의 물꼬를 이었고, 연예계의 비리에 대한 조사가 줄을 이었다.
그야말로 격변이었다.
“직접 하신 겁니까?”
강진호는 가만히 조규민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씀이시죠?”
“박혁기 말입니다.”
강진호는 미소만 지었다.
조규민은 그런 강진호의 미소가 조금은 섬뜩하다고 느꼈다.
‘박혁기.’
박혁기는 운이 없었다.
그의 운은 강은영을 건드린 것에서 바닥나고 말았다. 만약 박혁기가 강은영을 건드리지 않았다면, 그는 아직 무탈하게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운이 없게 강은영을 건드렸기에 이런 커다란 사단이 나고야 만 것이다.
“다른 쪽은?”
“황성기업은 말씀하신 대로 처리했습니다. 분노한 대표이사가 딸내미 머리를 밀어버렸다는군요.”
“흐음…….”
“그 외에도 꽤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들어보시겠습니까?”
“됐습니다.”
강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지난 일이고, 더 이상은 관여하지 않을 일이었다. 그런 일에 괜히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다른 이들도 대부분 대가를 치렀습니다. 과하게 받은 이들도 있고, 죄에 비해 모자라다 싶은 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합당한 벌을 받았다고 보여집니다.”
“스타위즈 연습생들은요?”
“실력이 있다면 타 기획사로 이적하겠죠.”
“실력이 없다면?”
“어차피 데뷔 못했을 겁니다. 빨리 그 바닥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니, 다행한 일이죠.”
강진호는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연예계.
화려하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이들의 눈물이 얼룩져 있는 것 같았다.
세상 어디가 안 그런 곳이 있겠냐마는, 어느 곳보다 빛나는 곳인 만큼 그 이면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더욱 짙고 깊었다.
“걱정입니다.”
“동생분 말입니까?”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직접 나서서 완벽하게 일처리를 해두었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관리할 겁니다.”
“믿어보죠.”
“그리고 코드 자체가 스타위즈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기획사입니다. 더구나 재경 그룹이 관여되었다는 것을 아는 이상 결코 섣부른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은영은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은 과연 그러한 위험에 더 이상 노출되지 않을까?
‘꿈을 먹어 배를 불리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군.’
강진호는 씁쓸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 * *
“뭐해?”
강진호는 태연하게 답했다.
“입영 신청.”
“이, 입영?”
박유민이 멍하게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입영신청이라니, 얘가 뭘 잘못 먹었나?
“뭐가 잘못됐나?”
“입대하게?”
“그래.”
“벌써? 이제 겨우 한 학기 지난 것뿐인데.”
“어차피 가야 할 곳이라면 빨리 다녀오는 게 낫지.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겠지만, 굳이 피하고 싶지도 않고.”
“너는……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아?”
“구차할 뿐이야.”
재경 그룹의 힘을 이용하면 어떻게든 가능할지도 모른다. 적당히 타국의 영주권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피할 수 있는 고통은 피하는 게 강진호의 지론이지만, 군대라는 것이 그렇게까지 해서 피할 만큼 힘든 곳은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마교만 할까.’
현대의 군대 따위 과거의 마교에 비한다면 유치원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그가 생각하는 평범한 삶과 군대를 피하기 위해서 해외의 국적을 얻는다는 특이 케이스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보통은 일 년은 지나고 가는데…….”
“오래 걸려 좋을 것 없어.”
“응.”
박유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넌 군대 안 가?”
“나야…… 면제지.”
“나름 얻는 것도 있군.”
“유일한 혜택이지. 근데 난 차라리 멀쩡해서 군대 갔으면 좋겠어.”
“내가 말을 잘못했다. 미안”
“괜찮아. 뭘 그런 걸로.”
박유민은 뭔가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럼 나도 한동안은 대회에 집중할 수 있겠다.”
“왜?”
“휴학해야지. 너도 없는데 나 혼자 학교 다녀서 뭐해. 어차피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흠…….”
썩 좋은 생각이라 말하긴 뭐하지만, 그렇다고 말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박유민의 선택이니 존중해야 한다.
“안 그래도 요즘 학교 다닌다고 성적이 영 신통치 않았는데, 잘됐지 뭐.”
“성적?”
“팀 내 랭킹전에서 내가 좀 떨어졌거든. 다음 랭킹전에 다시 못 올리면 감독님이 죽여 버린대.”
“과격하시군.”
“좀 그렇지.”
“곧 대회 있지 않나?”
“봄 대회는 끝났고, 이제 여름 대회 본선 시작했어. 한 7월 초쯤에 결승일 거야.”
“그럼 네가 우승하는 건 보고 가겠군.”
“응?”
“우승해.”
“아니,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냐.”
“입영 선물이다. 우승해.”
박유민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박유민이 입을 열었다.
“해볼게.”
“그래.”
강진호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응?”
“너 입대한다는 거 세연이한테는 말했냐?”
“말해야 되는 건가?”
“안 했어?”
“응.”
“그래…… 안 했구나. 그럼 됐어.”
“뭐가 문제지?”
“아니, 아냐. 아무것도.”
박유민은 한숨을 쉬었다. 강진호가 불쌍한 건지, 한세연이 불쌍한 건지 도무지 구분이 가지를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