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34
#733.
도주하다 (3)
“아, 죽겠네.”
살다 보면 어느 날 불운이 겹치는 순간이 있다.
예를 들면 어제까지 멀쩡하던 타이어가 펑크가 난다든가, 하필이면 펑크가 난 곳이 고속도로 한중간이든가. 게다가 또 하필 오늘 서비스 센터와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든가.
공위지안은 자신의 차 앞바퀴에 떡하니 박혀 있는 커다란 못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 진짜! 바빠 죽겠는데.”
다른 날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웃고 넘겼을 것이다.
살다 보면 당연히 벌어지는 불운 중의 하나였으니까. 짜증이야 나겠지만, 웃고 넘겼겠지.
하지만 오늘의 공위지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난리 났네. 오늘까지 계약 안 되면 다 엎어질 텐데.’
그는 오늘 반드시 텐진으로 가야 한다. 이런 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차를 수리하러 오지 않는다면 다른 수단이라도 이용해야 한다. 설사 고속도로 한중간에 이대로 차를 방치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공위지안이 시선을 도로로 돌렸다.
문제는 지금 이 시간에 딱히 이 도로를 지나는 차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적당히 지나는 차라도 있어야 히치하이킹이라도 시도해 볼 텐데, 텅텅 비어버린 도로에서 무슨 수로 차를 잡으라는 말인가.
“어?”
그때, 공위지안의 눈에 저 멀리서 다가오는 차가 보였다.
‘밴인가?’
차체가 높은 것을 보니 밴 같았다. 승용차라면 모를까, 밴이라면 그 하나 태워가는 것도 그리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공위지안은 도로로 한 걸음 나서서 팔을 들어 올렸다.
“여기! 여기요!”
세상이 워낙 험악해서 히치하이킹이 쉬울 리가 없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다행히 갓길에 그의 차가 세워져 있으니, 저들도 공위지안이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유가 조금만 있으면 그를 태워주…….
“헐?”
공위지안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검은색 밴의 뒤로 차량의 행렬이 보인다.
평소라면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다. 도로는 차가 달리라고 있는 곳이고, 마음대로 도로를 달릴 수 없는 특수차량이 아니고서야 그 어떤 차의 통행도 보장이 되는 곳이니까.
하지만 이곳은 지금까지 차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곳이다. 그런 곳을 빽빽이 메우며 몰려오는 차량의 행렬이라니,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뭐가 저리 난잡해?’
차종도 다양하기 짝이 없다.
검은색 밴을 필두로, 좌우로 승용차들이 따라붙고, 그 뒤로는 버스와 트럭, 그리고 컨테이너를 실은 트레일러, 거기에 택배차와…….
‘뭐야? 구급차는 왜 있어?’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상하게 한 덩어리로 느껴진다. 세상에서 가장 기괴한 차량의 행렬이 그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고 있었다.
“히익!”
차가 결코 멈출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챈 공위지안이 다급하게 뒤로 물러섰다.
부아아아아앙!
각종 차량이 내뿜는 커다란 소음이 귀를 찢을 듯 울려 퍼진다.
차들이 얼마나 맹렬하게 달리고 있는지, 커다란 폭풍이 몰아치는 느낌이었다.
공위지안은 입을 쩌억 벌리고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뭐야, 이 부자연스러운 광경은?’
차량들이 하나같이 이상해서 그렇지, 상황만 보면 폭주족들이 폭주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차량의 행렬들이 도로 저 멀리로 멀어지자 다시금 도로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꿈이라도 꾼 건가?”
평화가 찾아온 도로에 남은 것은 뿌연 먼지뿐이었다.
“얼마나 걸리지?”
“이제 서너 시간이면 도착한다, 주인.”
“흠.”
강진호가 눈앞의 도로를 바라보았다.
한국이라면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쾌적한 도로였다. 중간중간 울퉁불퉁한 요철들이 거슬리지만, 막히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그 정도의 문제는 납득해줄 수 있었다.
‘너무 조용한데.’
이곳까지 오는 동안 어떠한 방해도 없었다는 게 이상하다. 강진호는 홍왕계를 무시하지 않았다. 아무리 지금의 중국이 과거의 중원과는 그 상황이 다르다지만, 저 큰 중국의 땅을 삼분지 일이나 지배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강진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이들이 무능할 리가 없다.
지금 그들이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그들은 무능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무능하지 않은 이들이 무능한 짓을 한다?
그건 뭔가 노림수가 있다는 뜻이었다.
“습격하기 딱 좋아 보이는데.”
“동감이다.”
바토르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터져도 벌써 터졌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조용하군. 너무 조용해서 되레 불안할 정도야.”
“바토르.”
강진호의 부름에 바토르가 고개를 들어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홍왕계의 전력에 대해 이야기해 봐라.”
“으음.”
바토르가 침음을 흘렸다.
“주인이 말하는 전력의 개념을 정확하게 잡을 수가 없군. 어떤 전력을 말하는 거지?”
“조무래기는 됐다. 그들의 수가 개미 떼처럼 많다는 건 이미 알고 있으니까. 내가 원하는 것은 상대가 되는 이들의 수다.”
“어렵군.”
바토르가 머리를 긁었다.
“주인, 주인도 알고 있겠지만…… 홍왕계는 주인이 마교를 지배하는 것처럼 완벽한 일인 종속 체제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이건 홍왕계 자체의 한계라고 해야 한다.”
“어째서?”
“소림의 방장이 소림의 전체를 지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마교는 완벽한 집권제다.
교주의 말이 곧 법이고, 교주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 결정의 과정에서 누군가 직언을 날릴 수는 있겠지만,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가 하는 일 역시 교주의 선택일 뿐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정파는 그런 체제를 따르지 않는다. 소림의 방장이나 무당의 장문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을 홀로 결정할 수는 없다. 그들은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가지지만, 중요한 선택은 장로원의 재가를 받아야 한다.
‘민주적이지.’
지금의 중국을 생각하면 어울리지 않지만, 과거 중원의 정파들은 당시를 생각하면 꽤나 민주적인 절차 과정을 가지고 있었다.
딱히 정파 놈들의 의식이 깨어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가진 힘이 달라서다. 사형제 중 특히 뛰어나 장문으로 선출되었다고 한들 장문 하나의 힘이 같은 항렬의 사형제들을 모두 압도하지는 못한다. 결국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마교는 그렇지 않다.
마교는 항렬의 개념이 없고, 사형제라는 개념이 없다. 게다가 교주의 위에 오르는 순간, 최상위의 마공이 제공된다. 다른 모든 마인들을 압도할 수 있도록 말이다.
어쩌면 그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가 마교가 적은 수로도 중원을 압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어가고 숙청되었지만 말이야.’
“물론 삼왕의 지배력은 확고하다. 홍왕계의 누구도 감히 홍왕의 말을 거역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홍왕이 모두를 자신의 수족처럼 부릴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음.”
“홍왕계에는 장로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고수들도 즐비하다. 삼왕계가 서로 결착을 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들조차 서로의 전력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답은?”
바토르가 조금은 껄끄러운 얼굴을 했다.
“말을 돌리는 게 아니다. 설명이 어려워서 그렇다. 나는 홍왕계에서 나름 대접을 받는 입장이었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홍왕계에 나보다 강한 이들은 수도 없다. 내가 홍왕에게 도전할 수 있던 이유는 내가 홍왕계에서 손꼽히는 강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외부인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홍왕게의 장로들이 모두 나선다면…….”
바토르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굳이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거로군.”
“주인은 살아남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조차도 살아남을 수 없다.”
강진호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홍왕계라…….’
들으면 들을수록 압도적인 전력이었다.
헛웃음이 나온다.
‘예전이었다면 한 줌도 안 되는 전력이건만.’
홍왕계뿐만이 아니다.
홍왕계와 창왕계, 심지어 흑왕계가 모두 연합을 한다 해도 과거의 마교에 비할 수는 없다. 홍왕계가 열이 있어도 과거 강진호가 이끌던 마교라면 삼 일이 걸리지 않아 중원을 일통해 버릴 수 있다.
그만큼이나 마교의 전력은 압도적이었다.
무림의 역사상 단 한 번 존재했던 마도 시대를 열 만큼.
전 무림이 힘을 합쳐 마교에 대항했음에도 속절없이 무너졌을 만큼 마교는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꼴이 우습게 됐군.’
예전이었다면 비웃음거리도 되지 않을 놈들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마교도, 강진호도.
속에서 뭔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불쾌감, 그리고 짜증.
또 하나의 감정을 굳이 짚으라면 분노라 해야 할 것이다.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는 조직의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강진호가 지금 과거의 무위를 되찾았더라면, 저들을 피해 한국으로 달아날 필요까지 있었을까?
선택은 같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방법은 달랐을 것이다. 이들을 한국으로 보내는 동안 강진호 홀로 홍왕계를 박살 내버릴 수 있었을 테니까.
지금의 이 상황은 강진호의 나약함이 만들어낸 수치였다.
다른 이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강진호만은 알 수 있었다. 만약 그가 아닌 적천마존이 이곳에 있었더라면 지금쯤 마교도들이 불안에 떠는 게 아니라 홍왕계가 공포에 질려 있었을 것이다.
강진호는 발전했다.
인간으로서 적천마존과 강진호는 비교할 가치조차 없다. 오로지 스스로 살아남는 데 혈안이 되어 주변을 돌아보지도 못한 적천마존은 인간으로서 가치가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무인으로서는?
딜레마다.
강진호는 시트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확신할 수 있다. 지금 그와 함께하는 이들 중 누구도 강진호보다 적천마존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강진호가 아닌 적천마존이 이 세상에 강림했다면, 이들은 좀 더 안전해지지 않았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강진호는 주저 없이 지금의 삶을 선택할 것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으로 얻는 것이 있다면 선택으로 잃는 것도 존재한다. 강진호는 인간성이라는 무엇보다 소중한 것을 회복한 대신 강함이라는 절대의 가치를 잃었다.
지금도 무시무시한 속도로 강해지고는 있지만, 적천마존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면 지금의 수배는 더 강해졌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의 나약함을 지탱해 주고 있다.
저들이 강진호에게 기대는 만큼 강진호 역시 그들에게 기대고 있다.
어찌 보면 더없이 이상적인 관계다.
하지만…….
하지만 뭐라고 표현해야 하는가, 이 미진함을.
뱃속에 달군 돌을 품고 있는 것처럼 불편하기 짝이 없다.
“마존이시여!”
강진호가 눈을 번쩍 떴다.
“뭐지?”
“뒤쪽에 정체불명의 차량들이 따라붙고 있습니다.”
“흐음.”
강진호의 고개가 바토르에게 돌아갔다. 바토르 역시 강진호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호랑이는 제 말 하면 오는 법이지.”
홍왕계가 이를 드러냈다.
“환영 인사를 해줘야겠군.”
아주 화려하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