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36
#735.
도주하다 (5)
“후웁.”
짧게 호흡을 빨아들인다.
폐로 밀려 들어간 산소가 순식간에 퍼지면서 활력을 만들어냈다. 단전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마기가 기혈을 따라 전신을 휘돈다.
충족감.
그리고 해방감.
복잡하던 머릿속을 끓어오르는 살기가 단번에 정리한다.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복잡한 계산 따위 어울리지 않는다. 감정이 가는 대로, 충동이 이끄는 대로 설치는 게 그가 해야 할 일이다.
꾸우욱.
바닥을 내디딘다.
종아리와 허벅지의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응축된 힘이 한 번에 터져 나가며 그의 몸이 쏘아낸 화살처럼 가공할 속도로 돌진을 시작했다.
촤아아아악!
마기를 두른 검이 쇠로 만들어진 차를 마치 종잇장처럼 잘라냈다.
콰아아앙!
잘려 나간 차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어둠이 내려앉던 도로가 타오르는 불길로 환하게 밝아진다.
강진호는 지체없이 달려드는 트럭의 앞으로 뛰어들었다.
콰드득!
발을 내딛자 보닛이 우그러지며 발이 안으로 움푹 들어간다.
트럭의 앞 유리 사이로 운전을 하고 있던 이와 강진호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아아…….”
강진호를 본 이가 입을 벌린다.
지금 그의 눈에 강진호는 어떻게 보일까?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공포와 두려움이 가득한 저 표정만 보아도 지금 그의 심정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어둠을 뚫고 나타나 트럭 두 대를 순식간에 갈라 버린 마인이 마기를 줄기줄기 내뿜으며 자신의 앞에 서 있다면, 누구라도 같은 기분을 느끼겠지.
“아…….”
붉게 물든 강진호가 겁에 질린 무인을 응시했다.
자비?
그럴 리가.
푸욱!
손끝에 걸리는 감각도 없이 청루가 유리를 꿰뚫고, 운전자의 심장을 찌른다.
자비는 서로 목숨을 노리지 않는 사람들의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자신을 죽이러 온 자에게 자비를 베푼다?
웃기는 소리.
그건 자비가 아니다. 멍청한 짓이지.
“끄, 끄윽.”
심장이 꿰뚫린다.
죽어야 한다.
하지만 무인의 단련된 육체는 죽음조차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음에도 의식은 끊어지지 않았다. 전신을 움직일 수 없을 뿐.
천천히 심장을 찌른 검이 뽑혀 나간다.
악마.
얇은 유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악마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심장을 꿰뚫은 악마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오른다.
환상과도 같은 광경이다.
악마의 등 뒤로 초승달이 요요로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무 그림 같은 광경이라 현실감이 사라진다.
그를 현실에 잡아두고 있는 것은 가슴에서 느껴지는 격렬한 통증뿐이었다. 그리고 그 통증조차 점점 사라져 간다.
스으읏.
비단 폭을 가르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뭘 하는 거지?’
확고부동한 죽음이 점차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는 궁금증을 버리지 못했다.
장검.
기이할 정도로 긴 장검. 손잡이 끝에 푸른 수실을 매단 장검이 유리를 가르며 핸들에 틀어박힌다.
‘핸들?’
어째서?
궁금증은 금세 풀렸다.
핸들에 박힌 검이 옆으로 꺾인다. 핸들이 빙글 한쪽으로 돌아간다. 그와 동시에 그가 타고 있는 트럭이 격렬하게 좌로, 또 좌로 회전했다. 급격한 회전에 트럭이 넘어질 듯 갸우뚱하지만, 끝끝내 넘어지지 않고 과격한 유턴에 성공한다.
‘서, 설마?’
영화를 보는 것처럼 급격하게 바뀌어가던 시야가 고정된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유리창에 매달린 악마.
악마가 기묘한 미소를 머금고는 하늘로 솟구친다. 그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트럭으로 돌진하는 수많은 차량들의 행렬이었다.
그의 트럭이 방향을 돌려 돌진하는 것을 본 차량들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하지만 저 많은 차들이 완벽하게 그를 위한 길을 터줄 수는 없다.
‘이 개 같은 놈!’
비명조차 지를 수 없다. 그저 손끝에 닿는 무언가를 꽉 움켜쥐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저항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허공으로 뛰어오른 강진호의 발밑을 스쳐 지나간 트럭이 달려오던 차량의 행렬과 충돌했다.
브레이크조차 밟지 않은 채 전속력으로 들이받는 트럭이 주는 충격은 억! 소리가 절로 날 정도로 대단했다.
처음 충돌한 트럭의 짐칸이 하늘로 들썩이고, 회전하는 트럭이 따라오는 승용차들을 말 그대로 휩쓸어 버렸다.
승용차들이 장난감처럼 회전하며 하늘로 튀어 오른다.
강진호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최연하와 함께 영화를 찍는 그 감독 놈이 이 광경을 봤다면 박수를 칠 것 같았다. 그만큼이나 강렬하고 실감 나는 장면이다.
탁.
바닥에 내려선 강진호를 향해 승용차 몇 대가 돌진해 왔다.
쿵!
강진호의 오른발이 강렬한 진각을 내디딘다. 아스팔트가 움푹 꺼지며 부서져 튀어 오른다.
그러고는 왼발!
쭉 뻗어진 왼발이 돌진하는 승용차를 걷어찼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듯 승용차가 달려들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뒤로 튕겨졌다.
연이어 다른 한 대의 승용차도 그대로 날려 버린 강진호의 옆으로 마지막 한 대의 승용차가 스쳐 지나갔다. 강진호가 손을 뻗어 승용차의 유리창을 깨고 매달린다.
뒤로 젖혀진 몸을 끌어당겨 차 안으로 들어간 강진호가 보조석에 걸터앉았다.
“히, 히익!”
운전을 하던 이가 귀신이라도 본 듯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핸들을 잡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따라잡아.”
“……예?”
“앞차 따라잡으라고.”
대답 없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인 무인이 과격하게 액셀을 밟았다. 차가 급격하게 가속하며 앞쪽으로 튕겨 나간다.
강진호가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그러고는 눈을 찌푸렸다.
“담배 피우나?”
“예! 예! 피웁니다.”
“한 대 줘봐.”
“예! 여기!”
무인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벌벌 떠는 손으로 강진호에게 내밀었다.
강진호가 담배를 받아 들고는 느긋하게 시트에 등을 기댔다.
찰칵.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인 강진호가 천천히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밟아.”
“예!”
차가 총알처럼 앞으로 튀어나왔다. 강진호가 고개를 슬쩍 돌려 사이드미러를 봤다.
저 멀리 엉망으로 박살 난 차들이 매캐한 연기와 불꽃을 내뿜고 있었다.
‘이게 끝은 아니겠지.’
이건 인사 같은 것이다.
차에 타고 있는 이들도 조무래기뿐이었다. 그들을 곤란하게 만들려는 공격은 아니다.
‘이놈들은 이상한 미학 같은 게 있다니까.’
철저하게 실용적이던 마교와는 다르게 정파 놈들은 과정에 집착하는 면이 있었다. 기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언제나 정정당당하게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에 집착한다.
덕분에 상대하기 편한 면도 있지만…….
‘때로는 질린 적도 많았지.’
온갖 술수를 쓰는 적이 상대하기 더 귀찮지만, 이렇게 우직하게 밀고 들어오는 놈들은 다른 불편함이 있었다. 정공밖에 모르는 적이 뿜어내는 압박감은 때로 적천마존조차 힘겹게 만들었으니까.
어쨌든 시간은 잠깐 벌었다.
문짝이 날아간 컨테이너가 시야에 들어온다.
“바짝 붙여.”
“사, 살려주십시오!”
“마인에게 애걸해도 되나?”
“사, 살려…….”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예전에도 그에게 애걸하는 정파인들은 많았다. 특히나 지금처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곳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결과는 항상 같았다.
그때의 강진호는 덤벼든 이를 살려두지 않았다. 이미 사기가 꺾인 적일지라도, 이미 결론이 난 전쟁이라도.
무의미한 살육은 더 큰 반발을 부른다는 청마의 간곡한 호소 끝에야 겨우 검을 멈추던 사람이 강진호였다. 그럼 지금은?
“네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담배가 도움이 되었군.”
강진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챈 무인의 얼굴이 환하게 밟아졌다.
“바짝 붙여.”
“예!”
“그리고 담배는 끊으라고. 이제 다시는 도움될 일이 없을 테니까.”
문짝을 걷어차 날려 버린 강진호가 컨테이너 위로 몸을 날렸다. 그를 떨쳐 낸 승용차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다가 균형을 잃고 중앙분리대에 처박힌다.
“흠.”
데굴데굴 구르는 승용차를 본 강진호가 볼을 긁었다.
“기껏 살려줬더니.”
죽지야 않았겠지만, 부상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뭐, 어떤가. 그가 한 짓도 아닌데.
“마존이시여!”
주강이 강진호를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컨테이너 안이 아니었다면 당장 절을 했겠지만, 이곳은 절을 할 공간도 없었다.
“꽤 시원해졌겠군. 그렇지?”
“그, 그렇습니다.”
너무 시원해서 문제지.
“세우고 정비할 시간 없다. 위로 올라가서 적당한 곳에 나눠 타라.”
“이, 이대로도 버틸 수 있습니다.”
“좋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컨테이너에 사람을 이만큼 채워간다고 광고도 할 겸 말이야.”
“아…….”
“올라와.”
강진호가 컨테이너 위로 뛰어올랐다. 그러자 마인들도 우르르 그를 따라 위로 올랐다. 컨테이너 위로 오른 마인들이 좌우의 트럭 위로 옮겨간다.
강진호는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앞쪽으로 내달렸다.
차의 지붕과 지붕을 뛰어넘어 선두로 달려 나가자, 뒤쪽 문을 활짝 열어젖힌 밴이 그를 반기고 있었다. 밴 안으로 뛰어든 강진호가 아공간을 열고 청루와 적루를 쑤셔 박았다.
“환영 인사치고는 과하게 화끈한 것 아닌가, 주인?”
“내가 화끈한 게 아니라 저쪽이 너무 맥없는 거겠지.”
“이게 홍왕계의 전력이라 생각하지는 않겠지?”
“물론.”
강진호가 앞쪽으로 이동해 보조석에 다시 앉았다.
“준비하고 오라는 뜻 같군.”
“이쪽 길로 따라왔다는 건 우리의 목적지도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겠지.”
“지금이라도 방향을 돌리는 방법도 있다. 언제나 지름길이 최선은 아니니까.”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나?”
“효율을 추구하는 것뿐이다.”
“그래봐야 달라질 건 없어.”
강진호가 파괴한 드론이 전부일 리 없다. 아마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들의 이동 경로를 모조리 꿰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막대한 인력을 동원해 그들이 갈 수 있는 모든 곳을 점거하고 있을 수도 있다. 괜히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병력을 더 모을 시간만 주는 셈이다.
“막으면 뚫는다. 그게 전부다.”
“과도하게 화끈한 게 맞다니까.”
바토르가 고개를 내저었다.
“장로들에게 전해서 앞쪽으로 트럭들을 모으라고 해.”
“……주인.”
“원한다면 부딪혀 줘야지.”
강진호의 미소를 본 바토르가 섬뜩함에 몸을 떨었다.
‘나사가 풀렸군.’
지금의 강진호는 그와 싸운 강진호와도 또 달랐다. 그때는 그래도 뭔가 최대한 절제를 한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모든 것을 풀어버리고 마음껏 즐긴다는 느낌이다.
‘어쩌면 나는 악마를 돕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군.’
삼왕은 적어도 강진호처럼 폭주하지는 않는다. 세상을 위해서라면 강진호보다 다른 삼왕이 무인계의 주도권을 틀어쥐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상관인가.
“선두에는 내가 서겠다.”
“그것도 좋겠지.”
가슴이 이렇게 끓어오르는데 말이다.
바토르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안 그래도 재수 없는 놈들이 많았다. 이 기회에 한 방 먹여줘야지.”
자신이 강진호를 점점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은 알지 못하는 바토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