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39
#738.
충돌하다 (3)
“누구지?”
강진호가 태연하게 말했다.
조금 전부터 느껴진다, 살기와 분노가 뒤범벅 된 시선이.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만난 듯한 반응이다.
“차이커창.”
“차이커창?”
“홍왕계의 이인자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이인자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면이 있군. 총관이라는 말이면 주인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은데.”
“총관?”
“이현수 같은 존재라고 해두지.”
“이해했다.”
강진호가 가만히 차이커창을 바라보았다.
홍왕계라는 거대한 문파의 안살림을 맡고 있다면, 저자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냉정함이 부족해 보이는데?”
“큭큭, 주인을 적으로 둔 이가 냉정을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나 역시 그랬다. 침착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에는 격정에 몸을 맡겨 버렸지. 주인은 사람을 흥분시키는 뭔가가 있다.”
바토르가 쓴웃음을 지었다.
강진호를 상대하는 이들은 다들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된다.
지금이 아니라면 안 된다.
강진호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강해진다. 그와 동시에 그를 둘러싼 세력도 강진호의 성장세를 따라간다.
바토르가 강진호와 겨룬 지 얼마나 되었는가.
그때의 강진호와 지금의 강진호를 비교할 수 있는가.
아니, 비교할 수 없다.
아직 계절이 바뀌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새 강진호는 배 이상 강해졌다. 게다가 총회 역시 어마무시한 속도로 강해지고 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바토르와 나이트 위긴스가 합류했고, 총회 내에서 나름의 세력을 구축하여 젊은 무인들을 교육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이 마인들까지 합류한다면?
‘단숨에 전력이 두 배로 상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다.
바토르는 강진호가 마인들을 직접 지도할 경우, 이들이 어디까지 강해질지 예측할 수 없었다. 그의 예측은 최소치다. 최소치만으로도 총회의 전력은 두 배로 상승한다.
‘생각해 보니 무시무시하군.’
딱히 의식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강해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단기간에 이토록 강해졌다는 건 총회에 몸담고 있는 바토르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는 순간, 경악이 몰려온다.
총회의 구성원이자 강진호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바토르도 이런 기분인데, 차이커창은 지금 어떤 심정이겠는가.
‘등 뒤에 불이 붙은 기분이겠지.’
그게 아니면 시한폭탄의 타이머가 줄어드는 것을 온몸이 묶여서 지켜보는 심정이든가.
그러니 저런 얼굴이다.
바토르는 차이커창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강진호와 싸울 당시에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초조함에 녹아버린 얼굴을 하고 있었겠지.
지금 이기지 못하면, 지금 죽이지 못하면 앞으로는 영원히 죽일 수 없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을 테니까.
차이커창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니, 그때의 바토르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을 게 분명했다. 총회고 뭐고 신경 쓸 것 없이 강진호 하나만 노리면 되었던 바토르와는 다르게, 차이커창은 강진호의 세력도 경계해야 하니까.
만약 바토르가 차이커창의 입장이었다면 정신병에 걸렸을 것이다. 등 뒤에서 날카로운 칼이 조금씩 찔러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변변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꼴이니까.
그러니 저런 반응도 이해가 가지 않는가.
그때,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홍왕은 오지 않았나?”
차이커창이 씹어뱉듯 대답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는군. 네가 홍왕께서 친히 왕림하실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자부하는가?”
“안 온 모양이군.”
차이커창의 입장에서는 도발이지만, 강진호는 딱히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그저 입가를 두어 번 주무르며 주위를 살필 뿐이다.
“그런 것치고는 꽤나 몰려왔군.”
날카로운 살기가 느껴진다.
강진호의 피부를 저릿저릿하게 만들 정도의 살기였다. 이만한 살기를 뿜어내는 이들이 결코 평범할 리가 없다.
‘바토르 스스로가 강한 축에 못 든다고 말할 만하군.’
엄살에 가까운 말이지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이만한 이들이 이만큼이나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이라면 상식적으로 추정해 보건대, 바토르 이상 되는 무인들도 꽤나 존재할 것이다.
강진호는 새삼 홍왕계의 힘을 실감하고 있었다.
‘이 시대에 이 정도의 무인들을 보유하고 있다라…….’
과거처럼 대놓고 무인을 키울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국가라는 체계가 과거보다 완성된 지금, 국가는 이만한 힘을 묵인할 수 없다.
암묵적으로야 무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지만, 일반인들에게 그들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 악조건 속에서 이만한 힘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게다가 중국에는 이만한 세력이 둘이나 더 있지 않은가.
과거의 중원과는 비교할 수 없다.
하나…….
‘단순히 수로 따지는 건 의미가 없겠지.’
강진호 역시 이들의 힘을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다. 세력의 힘으로 따진다면 감히 과거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무학의 수준이다.
지금까지 강진호가 봐온 이 시대의 무학 수준이라면 굳이 마교가 나설 것도 없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면?
지금부터 그걸 확인해 보면 된다.
“홍왕이 오지 않았다라…….”
강진호가 이를 드러냈다.
“오만함은 때로 자신을 잡아먹지. 어떤가, 지금도 그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하는가?”
“…….”
차이커창의 눈이 흔들렸다.
강진호의 말은 차이커창의 속내를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었다.
‘실수였을지도 모른다.’
모든 일은 확실한 게 좋다.
차이커창의 계산으로는 오늘 이 자리에서 강진호가 살아 나갈 확률이 1푼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강진호를 직접 본 순간, 그 가능성은 열 배로 뛰었다.
1할.
모든 힘을 동원해 노린다 해도 강진호가 살아서 도주할 확률.
1할이다.
평소라면 무시해도 될 만한 확률이다. 하지만 지금 차이커창은 그 1할이라는 확률을 도무지 무시할 수가 없었다. 확률이라는 것은 그저 확률일 뿐이다. 일이 벌어지고 나서 그 일이 성공할 확률을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홍왕의 노여움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분을 모셔왔어야 했다.’
그랬다면 확률은 0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홍왕 역시 강진호를 직접 만나보려 하지 않았던가.
그것을 만류한 것은 차이커창이었다. 차이커창의 자존심이 상황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다.
“알겠군.”
강진호는 차이커창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변하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의 입가에 명백한 비웃음이 머금어졌다.
“오만한 건 홍왕이 아니군. 오만한 건 너다. 그렇지?”
“…….”
“그렇겠지. 아무리 강하다고는 하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가 그런 자리에 앉을 수는 없겠지. 홍왕계의 약점은 다름 아닌 너였군.”
“닥쳐라! 이놈!”
차이커창의 눈가에 핏발이 섰다.
하지만 그의 외침은 어쩐지 힘이 빠져 있었다.
강진호의 말은 차이커창의 아픈 부분을 제대로 찌르고 있었다.
‘그분의 판단이 옳았다.’
죽여야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진호가 이렇게 크기 전에 죽여야 했다, 어떻게든.
홍왕의 판단이 정확했다. 홍왕은 강진호의 흔적을 발견한 그 순간부터 어떻게든 강진호를 제거하려 했다. 어떨 때는 다른 삼왕보다 강진호를 더 경계하는 모습마저 보이지 않았던가.
그럴 때마다 현실과 상황을 들먹이며 홍왕을 만류한 사람이 바로 차이커창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차이커창은 자신이 해온 모든 판단이 어긋났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자는 위험하다.
어쩌면 다른 삼왕 이상으로 위험하다. 이자가 이리 부담이 되기 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여야 했다.
‘어째서 나는 그런 짓을 저질렀는가.’
홍왕은 모든 부분에서 위대하다. 정세를 읽는 판단력조차 차이커창은 홍왕을 감히 따라가지 못한다.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왜 홍왕의 의견에 반대했단 말인가.
진정으로 그게 옳다고 믿었기 때문에?
아니면 정말 강진호가 말하는 대로 그의 오만함 때문에?
“고민해 봐야 소용없어.”
강진호의 목소리가 그의 귀를 찔러 들어왔다.
“결과는 같을 테니까.”
“…….”
차이커창이 비릿하게 웃었다.
그래, 고민할 건 없다. 결과는 같으니까.
지금껏 그가 무슨 실수를 저질렀든, 그 때문에 상황이 어디까지 나빠졌든…… 그런 건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이곳에서 강진호를 죽일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다.
“그래. 우리가 딱히 대화를 나눌 사이는 아니겠지.”
“잘 아는군.”
차이커창이 심호흡을 하고 전방을 주시했다.
인의 장막.
그 짧은 대화의 와중에 검은색 밴을 중심으로 수많은 마인들이 집결을 마쳤다.
그가 허용한 일이다.
하지만 상대의 의도대로 따라가 준다는 찝찝함을 버릴 수 없었다. 강진호는 짧은 말을 차이커창에게 던지는 것만으로 전열을 정비할 시간을 벌었다.
‘계산하고 한 것인지, 아니면 본능적인 것인지.’
어느 쪽이든 강진호는 대군을 다루는 데 능숙하다. 보면 볼수록 위험도가 증가한다.
‘그렇다면 해야 할 건…….’
오로지 하나뿐.
차이커창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저들을…….
그 순간이었다.
묵묵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바토르가 순간적으로 앞으로 뛰쳐나간다. 그리고 그 바토르의 뒤를 마인들이 쫓았다.
검은 물결.
검은 인의 물결이 바토르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몰아친다.
차이커창이 순간 움찔했다.
바토르가 향하는 곳은 트럭이 뭉쳐 불타는 곳이었다.
‘왜?’
차이커창의 눈이 순식간에 의문으로 물들었다. 그가 공격해야 할 곳은…….
‘설마?’
차이커창의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바토르, 아니, 강진호의 의도를 알아챈 것이다.
“마, 막아라!”
하지만 그의 알아챔은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바토르가 마치 쏘아진 포탄처럼 트럭 더미로 달려들러 강렬한 진각을 바닥에 틀어박는다.
쿠우우우웅!
바토르의 다리가 발목까지 바닥을 파고든다. 바닥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일며 세상이 들썩였다. 육중하게 쌓여 있던 트럭 더미조차 그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들썩인다.
그런 후에…….
“으아아아아아아아아!”
고막을 터뜨려 버릴 것 같은 거대한 기합과 함께 바토르가 트럭 더미를 향해 전신의 힘이 모두 실린 일격을 날린다.
허리가 뒤틀릴 듯 당겨진 팔이 회전력을 싣고 앞으로 맹렬하게 튕겨진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폭발.
그건 폭발이라 불러야 했다.
바토르의 일격이 트럭 더미를 후려치자, 매캐한 연기와 악마의 혓바닥 같은 불꽃을 뿜어내던 트럭 더미들이 사방으로 폭발하듯 튕겨 나갔다.
“피, 피해라!”
“이런 빌어먹을!”
트럭 더미의 좌우를 조이고 있던 무인들이 사방으로 분분히 흩어진다.
차이커창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트럭 더미가 사방으로 날아가며 중앙에 커다란 길이 열린다. 바리게이트와 트럭들이 모두 날아가 버리자 중앙에 커다란 공백이 발생했다.
그 길로 마인들이 뛰어든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 미친!”
“크하하하하하하하핫!”
바토르의 거대한 웃음소리가 전투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사방을 포위한 무인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바토르를 향해 달려든다.
“와라, 이 조무래기들아!”
패도의 화신처럼 바토르가 포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