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41
#740.
충돌하다 (5)
“차이커창 님!”
“…….”
차이커창의 얼굴은 더 이상 일그러질 수 없을 만큼 일그러져 있었다.
‘뭐냐, 저놈은!’
바토르의 강함은 예상했다.
그는 감히 홍왕에게 도전할 정도의 강자다. 그런 이를 상대하는 게 쉬울 리가 없다. 홍왕계에 바토르를 상대할 수 있는 강자가 홍왕 외에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차이커창이 통제하고 동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니 어려움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저 노인은 뭐란 말인가.
‘마인들 중 저런 걸물이 있었다고?’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다. 강진호만 없다면 마교는 쓰레기통에 불과하다. 그중 인재를 긁어모은다고 해봐야 재활용 쓰레기가 나올 뿐이다.
그런데 저건 뭐란 말인가.
‘진흙 속의 진주?’
웃기는 소리.
굳이 칭해야 한다면 쓰레기통 속에 잘못 섞여 들어간 보물이라고 불러야겠지.
어느 쪽이든 불쾌하긴 마찬가지다.
차이커창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전투가 계속될수록, 상대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차이커창은 지금까지 자신이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만 깨달을 뿐이었다.
왜 선인들이, 그리고 홍왕이 마교를 그토록이나 경계했는지, 지금 실존하는 증거들이 그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괴물.
그리고 맹목적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마인들.
저들이 제대로 하나의 조직을 이루어 움직일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저 하나하나의 마인들이 너무도 나약하기에 저들이 오합지졸인 것이다. 그런데 저들마저 강해진다면?
‘끔찍하군.’
무인들이 왜 마인들에게 노이로제와 같은 반응을 보여왔는지 알 것 같았다. 과거의 무인들은 알고 있던 것이다, 마인들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실감하지 못하던 것이 피부에 와닿고 있었다.
‘하나 지금은 아니다.’
언젠가는 저 마인들도 모두 쓸어버려야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그가 죽여야 할 이는 강진호다.
바토르와 장민이 시선을 끈다.
그 와중에 마교의 장로들이 좌우를 틀어막고, 그 사이의 뻥 뚫린 길로 마인들이 치달리고 있었다. 누구라도 시선이 뒤로 갈 수밖에 없다.
상황을 전혀 모르는 이가 와서 봐도, 저놈들을 당장 막아야 한다고 소리를 지르고 발악을 할 만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차이커창은 더없이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상황이 심각해질수록 역설적으로 그는 냉정을 되찾고 있었다. 지금 그가 해야 할 일들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단혈조는?”
“지금 움직입니다.”
“명령을 제대로 전달해라. 저기서 낭비되는 인력들도 모조리 강진호에게로 돌려.”
“예!”
그 순간, 새하얀 백색의 유성들이 검은 밴 위의 강진호를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찰칵.
강진호는 담배를 한 대 꺼내 물고는 불을 붙였다.
“후우.”
천천히 폐로 빨려 들어간 담배 연기가 다시 그의 입 밖으로 빠져나가며 허공중에 흩어졌다.
‘재미있는 광경이로군.’
전장의 향기는 익숙하다.
코를 통해 스며드는 이 피비린내는 두 번째 삶 당시 강진호가 언제나 함께하던 것들이다. 역하고 비릿한, 쇠 내음과 피비린내.
두근.
강진호가 슬쩍 자신의 왼쪽 가슴을 눌렀다.
피비린내를 맡고 흥분하다니,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강진호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과거의 적천마존이 아니다. 하지만 적천마존에게서 완전히 벗어난 존재도 되지 못했다. 다른 육체를 가지고 있음에도 피비린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 그 증거다.
“후우우.”
담배 연기를 뿜어낸 강진호가 눈앞의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조금 이질적이다.
왜일까?
어쩌면 전투의 양상이 지금까지 그가 아는 전투와 달라서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이끌고 전투를 할 때, 강진호의 목적은 언제나 말살이었다.
눈에 보이는 모두를 죽이고 쓰러뜨린다. 그 하나만 실천하면 되는 삶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이질감이 든다고 할 수는 없었다.
도망 역시 강진호의 주특기 중 하나였다.
마교에 투신하기 전, 강진호는 세상 전부로부터 달아나야 했다. 달아나고 또 달아난다. 달아나는 데는 이골이 난 사람이 강진호다. 그런데도 이질감을 느낀다고?
왜?
강진호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몰려 있는 무리들 중 특별한 기세를 뿜어내는 이들이 있다. 앞 쪽에도, 옆쪽에도.
그리고 그들의 기세는 강진호를 향해 올곧게 쏘아지고 있었다.
“흐음.”
강진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도발.
그를 향한 도발이다.
강진호가 입에 문 담배를 바닥으로 튕겼다.
“주제를 모르는군.”
모른다면 알게 해줘야지.
그 순간, 그를 향해 새하얀 유성들이 날아들었다. 검게 물든 밤을 밝히는 새하얀 유성을 맞으며 강진호가 이를 드러냈다.
우우웅!
그의 주먹 끝에서 마기가 번져 나온다.
불꽃처럼 강진호의 전신을 뒤덮은 마기가 소용돌이친다.
“헛!”
정면으로 달려들던 자가 그 광경을 보고는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그가 경계해야 할 것은 겉모습이 아니었다.
콰득!
손을 뻗어 날아든 자의 얼굴을 움켜쥔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
떨림.
거대한 기계가 얼굴을 조여오는 것 같은 압력.
맨 정신으로 그걸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리가 없었다.
전신이 벌벌 떨린다.
통제를 잃은 육체는 구멍이란 구멍으로 모두 액체를 흘려 댄다. 바짓단이 순식간에 축축하게 젖어든다.
그 와중에 더욱 참을 수 없는 건 눈이었다.
눈.
얼굴을 움켜잡은 손가락 사이로 강진호의 눈이 보인다.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마른 눈동자.
그 눈이 점점 붉게 물들어간다.
새빨간, 더없이 빨간 핏빛의 안광.
그 눈을 보는 순간,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걸.
“끄으…… 끄으으윽.”
“만만해 보였나 보군.”
“끄으…….”
“대답은 됐어.”
콰드드득!
머리를 잃은 육체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털썩.
그리 크지 않은 소리였다.
온갖 소란과 소름으로 가득한 이곳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그 크지 않은 소음은 순식간에 공간을 지배했다. 바토르의 신위에 넋을 잃은 자도, 장민의 괴력에 공포를 느낀 이들도 하나같이 움직임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찰칵.
강진호가 다시 담배를 한 대 꺼내 물고는 라이터를 켜 불을 붙였다.
“후우우우.”
느긋하게 연기를 뿜어낸 강진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새하얀 유성들.
강진호의 시선을 잡아끌던 백의의 무인들이 어느새 그의 주변을 둥글게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강진호를 노려본다.
순식간에 시신이 되어버린 동료의 운명조차도 그들을 물러나게 하기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쿡.”
강진호가 나직하게 웃었다.
꽤나 오랜만이다.
저런 눈빛을 받아보는 것도.
이 세계로 온 이후로 그는 수많은 적을 맞아 싸웠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저런 평정을 유지하지는 못했다. 강진호가 흉성을 드러내면 다들 달아나기에 바빴다. 마지막까지 그에게 투지를 드러낸 존재는…… 굳이 따지자면 바토르가 유일할 것이다.
하지만 바토르는 다르다.
그의 의지는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욕망. 강자와 싸우고 싶다는 욕망이다.
저 눈은…….
그래, 저 눈은 과거의 그것들과 닮아 있다.
자신의 목숨을 버려서라도 적천마존을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정파인들. 스스로의 죽음을 숭고한 희생이라 포장하는 부나방들의 눈빛.
때로는 강진호조차 압박감을 느껴야 했던 그들의 눈이다.
“그립군.”
그래, 그랬다.
한때 그는 저런 눈을 맞이하여 싸웠다.
스스로가 정의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이들, 협과 정의를 부르짖는 이들.
간혹 위선자들도 있지만, 그가 싸운 이들 중에는 진정한 협의지사라 불러야 할 이들도 많았다.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이들.
그래, 그런 이들…….
천천히 담배를 빨아들인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런 이들?
다 죽였다.
모조리.
상대가 누구인가, 상대가 어떤 이인가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의 앞을 막았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대적한다는 것이다.
신념과 의지로 가득 찬 눈이 죽음의 공포로 물드는 광경.
그래. 그리운 광경이다.
“장민.”
“예!”
흉성을 머리끝까지 끌어 올린 장민이건만, 강진호의 목소리는 그의 이성을 순식간에 되찾아주었다.
“이끌어라.”
“마존의 명을 받듭니다!”
장민이 허리를 구십 도로 꺾고는 몸을 날렸다. 그가 이동한 방향은 마인들이 달아나고 있는 곳.
“바토르.”
“주인이여!”
“막아라.”
“예!”
바토르조차 그저 명에 따를 뿐이었다. 바토르가 그 거대한 육체를 날려 마인들의 뒤를 점한다. 단 한 사람도 이들을 따라가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그의 육체에서 뿜어져 나왔다.
강진호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움직임.
그의 눈에 움직임이 보인다.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자들은 알아채지 못하겠지만, 강진호는 저들에게서 흐르는 묘한 변화를 파악할 수 있었다.
마인들을 노리던 이들의 방향이 슬그머니 뒤로 돌아 있다.
“차이커창이라고 했나?”
“…….”
강진호의 시선이 마주친 차이커창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가, 강진호!”
“나쁘지 않군.”
강진호는 차이커창의 의도를 알아챘다. 이놈은 이제 마인들을 막을 생각이 없다. 그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 강진호 자신이다.
하지만 어리석은 짓.
그는 알지 못한다.
강진호가 이런 상황에 얼마나 익숙한지.
마교의 대적하던 이들이 노리는 것은 오로지 하나였다. 그 시절 그때에도 마교에 대한 저들의 평가는 동일했다.
적천마존.
마교의 교주이자, 그들의 모든 것.
그자만 죽일 수 있다면 마교는 지리멸렬할 것이다.
대마교전의 모든 전술은 그 사실을 베이스로 했다. 오로지 강진호를 죽이기 위해 일천, 일만의 희생을 감수하며 들이치던 자들.
그들조차 실패했다.
“알려주지.”
왜 그들이 실패했는지.
강진호의 발끝에서 작은 불꽃이 피어난다.
검은 불꽃.
타르처럼 끈적이는 마기가 순식간에 울컥울컥 그 몸집을 불리더니, 강진호의 전신을 뒤덮는다.
고오오오오오!
검은 연기처럼 일렁이고, 불꽃처럼 요사스레 춤추는 마기 사이로 강진호의 핏빛 안광이 줄기줄기 흘러나온다.
모두 그저 넋을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압도.
그건 압도였다.
강진호가 본의를 드러낸 것만으로 이 공간은 현실성을 잃어간다. 인세에서 벌어질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인계와 지옥의 경계점 어느 곳.
강진호의 등장만으로 세상이 지옥으로 한 발을 걸친다.
불어난 마기가 하늘로 치솟는다. 강진호의 육체를 뒤덮던 마기가 그 끝을 모르고 솟구쳤다. 마기로 이루어진 검을 불꽃이 세상을 뒤덮을 듯 일렁이고 요동친다.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보는 게 좋을 거야.”
쇠를 긁는 듯 거친 음성.
악마의 음성이 모든 이의 귀를 파고든다.
“그래야…… 죽음이 조금은 덜 억울할 테니까.”
순간적으로 마기가 움직임을 멈춘다 싶더니, 이내 사방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검은 물결.
스펀지에 스며드는 검은 물처럼 마기가 온 세상을 뒤덮으며 무인들을 향해 요사스런 혀를 놀리기 시작했다.
세상이 지옥으로 변해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