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50
#749.
타오르다 (4)
패기는 무형(無形)의 것이다.
외기(外氣)는 호흡을 통해 내기(內氣)로 전환된다. 무인은 호흡을 통해 받아들인 내기를 무형에서 유형으로 바꾸어내는 자들을 말한다.
거꾸로 말하면, 의도를 가지고 유형화시키지 못한 기운은 세상을 떠도는 외기와 다를 것이 없다. 때로는 부드러움을 느끼게 하고, 때로는 광포함을 느끼게 하지만, 실질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하지는 못하는 그저 기운일 뿐이다.
이건 강진호의 이론이 아니었다. 증명된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강진호는 지금까지 그가 알고 있던 무학에 대한 사실이 깨져 나가는 걸 느꼈다.
단순히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압축된 무형은 유형과 다를 바가 없다. 그저 분노한 홍왕이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것뿐이다.
그래, 그저 그것뿐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 기세를 정면으로 받고 있는 강진호에게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쿠웅! 쿠웅! 쿠웅!
전신에 대포가 쏘아지는 것 같다.
몸이 으스러진다.
푸웃!
내장이 진탕되어 입가로 피 분수가 뿜어져 나온다. 이 말도 안 되는 기사에 강진호마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무형지기(無形之氣)?’
없던 논리는 아니다.
기운은 의도를 통해 무형에서 유형으로 바뀐다.
그렇다면 극한으로 끌어 올려진 의지는 과정을 통하지 않고, 무형을 즉시 유형으로 전환할 수 있지 않겠는가.
기운을 끌어모아 장력이나 도기, 검강 같은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전환하여 날리는,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저 마음이 이는 대로 움직여 상대를 기운 자체만으로 부술 수 있지 않을까?
당치 않은 논리.
뜬구름 잡는 듯한 이 화두는 오랫동안 무인들의 열망의 대상이 되었다.
혹자는 그것을 무형지기라 불렀고, 혹자는 무형검이라 불렀다.
아무리 꿈과 같은 경지라고 한들 길고 긴 강호사에 그 경지에 올랐던 이, 어찌 존재하지 않겠는가.
하나 강진호가 상대한 그 누구도 그저 분노하는 것만으로 무형지기의 포탄 세례를 날리지는 못했다. 강진호조차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그렇다면 홍왕이 지금껏 그가 상대해 온 그 어떤 무인보다 더 강하다는 것인가?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아니, 그럴 리는 없다.
그가 아직 홍왕의 모든 것을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과거 소림의 혜인이라든가, 무당의 태극자가 오른 경지를 아득하게 뛰어넘었을 리는 없다.
그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발전했다는 건가?’
강진호의 얼굴이 일순 딱딱하게 굳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연구를 하는 이가 있고, 노력을 하는 이가 있다면, 무학은 발전한다. 그 세력이 약해지는 일이 있겠지만, 그 개념이 후퇴하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발전을 해 나가는 존재다.
그렇다면 무학의 이론과 개념이 과거에 비해 몇 배나 더 발전했다고 한들, 이상할 것이 없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다. 그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는 이들이 과거에 비해 너무도 나약하기 때문이다.
무학이 발전했다면 강해져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과거의 무인들에 비해 나약하기 짝이 없고, 그 세력조차 과거만 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무학은 발전하지 못했다.
간단한 삼단논리는 홍왕의 존재를 통해 완벽하게 부서졌다. 홍왕은 지금, 일천 년에 걸친 무학의 진보를 강진호의 몸에 새겨 넣고 있었다.
마공이 세상의 기운을 자신의 육체에 품고 또 품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 현실에 존재하는 신으로 거듭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정공은 세상의 기운과 동화되어 결국은 육신마저 벗어나 마음과 자연이 여일(如一)해지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목표가 다르니 과정도 다르고, 과정이 다르니 결과도 다르다.
무형지기를 다루는 것은 저들의 것이다. 강진호가 그 경지에 오르지 못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극한에 오른 화학자의 연구를 물리학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같은 과학이지만, 그 분야가 다르고 연구하는 것도 다르다.
강진호가 적루와 청루를 들어 쏟아지는 무형지기의 세례에서 몸을 보호했다. 무형지기라 한들 기운은 기운. 날아오는 것을 안다면 막지 못할 이유는 없다.
쿠웅! 쿠우웅! 쿠웅!
청루와 적루가 부르르 떨린다.
검의 떨림이 손목으로 전해지고, 손목의 떨림이 그의 팔 전체를 부들거리게 만든다. 그러더니 이내 전신이 학질에라도 걸린 듯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리고 그 떨림의 한가운데서 강진호는 웃고 말았다.
이거다.
그래, 이거다.
전신으로 느껴지는 둔중한 통증, 한 치만 어긋나면 머리가 터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이 위기감, 그리고…….
입가로 흘러나온 피가 강진호의 턱을 타고 바닥으로 분분히 흩뿌려진다.
맹렬한 분노와 호승심.
찢어발기고 싶다.
저 강자의 목에 적루를 틀어박아 일그러지는 표정을 감상하고 싶었다.
살의.
그래, 이건 살의다.
아득한 시간을 지나서 강진호의 가슴속에 잠자고 있던 살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유형화된 패기에 맞서 강진호의 살기가 홍왕의 살을 찌르기 시작했다.
육체가 베이는 듯한 섬뜩한 느낌에 홍왕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강진호오오오오오오!”
강진호는 홍왕처럼 의도적으로 살기를 유형화시키지는 못한다.
하지만 극에 달한 강진호의 살기는 자체적으로 상대를 위협하고 베어냈다.
패기와 살기.
두 가지 기운이 서로를 미친 듯이 노리며 달려든다.
그 순간, 홍왕이 주먹을 움켜쥐고 앞으로 달려들었다.
“물러나!”
강진호 역시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 광경을 본 바토르가 새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소리쳤다.
“물러나라! 당장 물러나! 빨리!”
“녜?”
어리둥절해하는 이들.
눈앞의 광경에 정신을 너무 빼앗겨 버린 이들은 바토르의 다급한 명령에 즉시 반응하지 못했다.
“물러나라고! 이 멍청한 놈들아아아아아!”
바토르는 입으로만 소리치는 사내가 아니었다. 그의 굵은 두 다리가 섬전처럼 움직인다. 가장 앞쪽으로 뛰어든 바토르가 앞뒤 가릴 것 없다는 듯 마인들을 움켜잡고 멀리 집어 던져 버렸다.
“바, 바토르 님!”
난데없는 기행에 마인들이 당황했지만, 바토르는 닥치는 대로 마인들을 집어 던지다가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바닥에 양다리를 박아 넣었다.
쿠웅! 쿠웅!
강렬한 진각과 함께 두 다리를 모두 바닥에 박아 넣은 바토르가 양팔을 좌우로 펼치고 내공을 있는 대로 끌어 올렸다.
그의 눈에 교차한 강진호의 적루와 청루가 백색 권강을 머금은 홍왕의 권과 충돌하는 광경이 들어왔다.
그 직후, 세상의 소리가 사라졌다.
‘멈춘다?’
세상의 소리가 사라진 게 아니었다.
세상이 멈춘 것이다.
아니, 멈추지 않았다.
움직인다. 조금씩.
눈을 부릅뜨고 머리를 굴려 주변을 면밀히 탐색하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왜?’
기사(奇事)다.
바토르는 아둔하지 않다. 모든 일에는 그 원인이 있는 법. 결과는 명확했다. 세상이 멈춘 것이 아니다. 세상이 느려진 것이 아니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바토르의 생각이 빨라진 것이다.
어째서?
바토르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다리에 있는 대로 힘을 주고 내공을 죽어라 끌어 올렸다.
오고 있다.
바토르의 목숨조차 일거에 앗아갈 만큼 거대한 무언가가 오고 있다. 그의 육체가 그 사실을 자연히 알아채고 모든 능력을 모조리 끌어 올린 것이다.
수명을 갉아먹을 만큼 뇌가 오버 클럭하고 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자신의 입에서 터져 나온 거대한 고함 소리가 마치 늘어진 테이프에서 나오는 것처럼 비틀려 들린다. 기운을 모조리 앞쪽으로 뿜어내 거대한 장막을 친 바토르의 눈에 ‘그것’이 보였다.
일그러진다.
세상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강진호의 검과 홍왕의 권이 충돌한 그 부분이 물결치듯 일그러지고 있다. 일그러짐은 두 사람의 몸을 감쌀 만큼 작게 시작했다가, 일순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느리게 재생시킨 화면을 빨리감기로 전환한 것처럼, 느릿하게 퍼지던 충격이 순식간에 그 크기를 불리며 사방을 향해 폭발적으로 뻗어 나간다.
날아든 일그러짐이 바토르가 뿜어낸 기운과 충돌했다.
바토르는 생생하게 그 모든 것을 느꼈다. 그의 기운이 속절없이 무너진다. 동시에 그 여파로 그의 근육이 한 올, 한 올 찢겨 나가고 그의 뼈가 수수깡처럼 부러진다.
전신이 덜컥댄다.
그의 거대하기 짝이 없는 대흉근이 물렁한 풍선처럼 밀려 들어간다. 단단한 복근이 여인네의 손에 잡힌 빨랫감처럼 비틀어지고, 쥐어짜인다.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찢어진 위가 뜨거운 핏물을 울컥울컥 토해내고, 자리를 찾지 못한 피는 목구멍을 타고 입으로 솟구쳤다.
입가로 선지피가 폭포처럼 쏟아진다.
그 와중에도 그의 전신은 실이 풀려 버린 꼭두각시의 그것처럼 제멋대로 낭창낭창 꺾이고 있었다.
그리고 일순…….
세상이 다시 제 속도를 되찾는다.
쿠우우우우우우우우웅!
느릿하게 바토르를 밀어내던 충격이 일순 그를 덮쳤다. 바토르의 머리가 새하얗게 탈색되었다.
충격.
일평생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거대한 충격이 그를 침략했다. 쌓아 올린 성벽, 그 어떤 외적도 감히 침탈할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드높고 두터운 성벽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거대한 폭풍 앞에서는 너무도 무력했다.
밀어닥친 폭풍 한 번에 성벽이 우르르 무너진다.
바토르의 육체.
강진호조차 신이 담겨 있다 평한, 다시없을 그 육체가 가공할 충격 앞에 순식간에 뒤틀리고 터져 나갔다.
“커어억!”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목청을 돋아 소리를 지를 힘조차 남지 않았다. 바토르는 그렇게 겨우 단말마를 지르고는 날아드는 폭풍에 휩쓸려 끈 떨어진 연처럼 허공을 훨훨 날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아!
날아드는 폭풍을 막아주던 바토르가 튕겨 나가자 겨우겨우 자리를 유지하고 있던 이들이 충격파에 버티지 못하고 튕겨 날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살려줘어어어어어어!”
항거할 수 없는 힘.
인간과 인간의 충돌이 자연재해를 만들어내는, 꿈같은 광경이 지금 펼쳐지고 있었다.
휩쓸린다.
튕기고, 밀리고, 얽히고, 뒤집힌다.
도열해 있던 마인들은 충격을 이기지 못한 채 서로 얽히며 한 덩어리가 되어 뒤로 날고 굴렀다. 뼈가 부러지고, 이가 부러진다. 잘린 혀가 튀어오른다.
“바토르으으으으으으!”
장민이 그 광경을 보고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끈 떨어진 연처럼 날아가는 거대한 바토르의 몸을 받아 든 장민이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새하얗게 질린 바토르의 얼굴이 울컥울컥 쏟아져 나온 핏물로 엉망이었다.
‘대체!’
장민이 떨리는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펼쳐진 광경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누군가 그들을 공격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장내는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박살이 나 있었다.
마존과 홍왕이 교환한 단 일격.
그 일격이 장내를 이 꼴로 만든 것이다.
쿠우우우우우우웅!
그 순간, 장민의 귀에 다시 거대한 충돌음이 들렸다. 장민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