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57
#756.
내맡기다 (1)
‘헤엄쳐야 해!’
주강은 필사적으로 팔과 다리를 놀렸다.
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지만, 주강은 멈추지 않았다. 저 멀리서 누군가 외치는 듯한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주강은 멈추지 않았다.
그게 누구의 목소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흐려진 시선으로는 사물을 분간할 수 없다.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집채만큼 커다란 파도가 연신 그를 향해 밀려오는 모습이었다. 주강은 파도를 온몸으로 받으며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갔다.
제대로 된 방향인가?
제대로 가고 있는가?
부표 하나 없는 바다에서 방향을 잡아 나아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주강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쪽.’
장로들이 알려준 별자리를 이정표 삼아 그저 헤엄치고 헤엄치는 게 전부였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지금 그에게 남은 체력으로 과연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있는지 계산할 여력이 그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헤엄치는 것뿐.
반쯤 사라져 버린 의식을 필사적으로 부여잡고 팔을 뻗는다. 부러져 덜렁거리는 팔이 흐느적대고 있지만, 뻗고 또 뻗는다. 이미 고통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주강은 새삼 자신이 우스워졌다.
단 한 번이라도 그의 인생에서 이리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한 적이 있었던가.
살아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왔다고 자부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의 노력은 노력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것들뿐이었다.
마기가 골수에 치밀까 두렵다는 이유로 제대로 무학을 익히지도 않았고, 가진바 힘을 최대한 활용해서 무언가를 해보려 들지도 않았다.
그저 적당적당히 주어진 삶을 감내하고 불평만 늘어놓았을 뿐이다.
마존이 나타났으니 이제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 믿었건만, 마존은 웃으며 그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덕분에 지금 그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죽는다.
목표에 도착하지 못하면 죽고, 방향이 틀어져도 죽는다. 설사 목표에 제대로 도착한다 하더라도 저들이 실수하면 그는 죽는다.
그래, 죽는다.
주강이 고개를 슬쩍 돌렸다.
이미 해변은 보이지도 않는다. 너무 멀리 와버렸다. 지금이라도 방향을 틀어 돌아가는 게 옳은 선택일 수도 있다.
체력은 빠른 속도로 소진되었고, 체온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부두에서 벌어진 지독한 전투의 여파는 이 바다를 지옥의 바다로 만들어 버리기에 충분했으니까.
돌아가는 게 옳다.
이대로 나아간다고 해도 비슷하거나 더 먼 거리를 헤엄쳐야 한다. 그리고 그 끝에 생존이 있을 거라 확신할 수도 없다. 하지만 방향을 틀어 해안으로 헤엄친다면, 삶은 반드시 거기에 있다.
그렇다면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불확실한 미래를 붙들기 위해 목숨을 걸 필요가 있을까?
“크흐.”
주강이 낮은 웃음을 흘리고는 바다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러고는 앞으로, 앞으로 헤엄쳤다.
돌아가지 않는다.
나는 돌아가지 않는다.
마존은 명하셨다.
움직이라고. 앞으로 움직이라고.
그건 단순히 바다로 뛰어들라는 뜻이 아니다. 멈춰 있지 말라는 뜻이다.
노력하지 않고, 도전하지 않는 이는 걸어도 멈춰 있다. 그런 삶은 지금까지로 충분하다.
마존이 남아서 그들을 지키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의리에 보답하기 위해 목숨을 건다?
웃기는 소리다.
주강이 앞으로 향하는 이유는 저항하기 위해서였다. 그에게 주어진 삶에 저항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나태하기 짝이 없던 자신에게 저항하기 위해서.
지금 방향을 틀어 해안으로 향하는 순간, 그는 두 번 다시 기어오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시궁창의 쥐처럼 떨어지는 음식물 쓰레기나 받아먹으며 살게 되겠지.
그건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얼굴로 파고드는 파도를 후려치며 주강이 소리쳤다.
“나느으으은!”
뒷말은 채 나오지 않았다.
밀려드는 파도는 그의 입을 틀어막고, 그의 목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이어질 말은 빤했다.
살아가고 싶다. 살아가고 싶다.
주강은 흘러내리는 눈물을 바다에 담그며 앞으로, 또 앞으로 헤엄쳤다.
팔에 힘이 빠진다.
다리에도 힘이 빠진다.
이미 몸이 물에 잠겨 있다는 감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얼마나 헤엄쳤을까.
또 얼마나 가야 하는 걸까?
‘무리였나?’
이성적으로 생각하기에 그는 닿을 수 없다.
그리 실망할 일은 아니었다. 항상 그랬으니까. 살아 생전 스스로 정한 목표에 도달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애초에 무리한 일이었다.
한 번도 성공해 본 적 없는 자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성공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극적인 인생은 애초에 주강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나는 도전했다, 이 개새끼들아!’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벌레 같지는 않았다. 주강은 아쉬움과 서글픔을 그 사실 하나로 날려 버렸다.
가라앉는다.
천천히.
바닥으로, 또 바닥으로.
죽음은 환한 빛으로 그를 비췄다. 환한, 너무도 환한…….
주강이 눈을 부릅떴다.
빛?
* * *
빨라진다.
홍왕은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놈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강진호의 공격이 점차 빨라지고 있었다. 속도를 위해 위력을 희생한 게 아니다. 강진호의 검에 담긴 힘도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은 체력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체력은 움직일수록 소모된다.
체력을 쓰면 쓸수록 빠르고 강해진다?
그런 건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존재한다.
그것도 지금 그의 눈앞에.
홍왕은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내가 공포를 느끼고 있는 건가? 겨우 이런 놈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강진호를 압도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강진호가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붓고 있는 듯 보이겠지만, 그건 그저 보이는 것일 뿐.
그는 강진호의 공격을 착실하게 받아넘기고 있지만, 강진호는 홍왕의 반격을 완벽하게 받아내지 못하고 있다. 쌓이는 대미지는 강진호 쪽이 압도적이다.
이대로 시간을 조금만 끌어도 강진호는 제 풀에 쓰러질 게 빤하다. 지금 그는 한계를 넘어 홍왕을 몰아치고 있으니까.
머리는 그리 판단한다.
그런데 그의 가슴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보라.
전신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흉신악살과 같은 모습으로 그에게 달려드는 강진호를.
이미 육체가 곤죽이 되어버렸음에도 강진호는 살기와 증오로 뒤범벅된 눈으로 웃으며 그를 몰아치고 있었다.
모른다.
이건 겪어보지 못한 이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섬뜩함이었다.
‘대체 뭐냔 말이다!’
홍왕은 포기했다.
이자를 상처입지 않고 제압하는 것은 무리다. 아니, 이미 상처는 입을 만큼 입었다. 차릴 체면도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면 확실하게 이자를 무너뜨려야 한다. 자존심을 버려서라도.
홍왕의 우수가 강진호의 적루를 받아낸다. 우수가 꿰뚫리는 느낌이 났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홍왕 역시 고통을 느끼지 못할 만큼 흥분한 것이다.
“강진호오오오오오오오!”
홍왕의 일격이 강진호의 가슴에서 터진다.
묵직한 느낌.
완벽한 감각.
하지만 홍왕은 그 감각에서 쾌감을 느끼지 못했다. 마침내 이 괴물을 무너뜨렸다는 안도감만이 그를 지배했다.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가는 강진호를 보자 홍왕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주르륵.
그와 동시에 코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내부의 살이 터져 버린 것이다. 홍왕은 얼굴에 흐르는 피를 소매로 닦아냈다.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이냐!’
자신의 몸을 가만히 본다.
엉망이다.
절로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옷은 갈기갈기 찢겼고, 틀어 올린 상투는 무참히 잘려 산발이 되어 있었다. 야수처럼 뻗은 수염은 곳곳이 잘려 쥐가 파먹은 듯 볼품이 없어졌다.
“허…….”
홍왕은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그가 이런 낭패를 겪은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그가 누군가를 상대함에 있어 이런 상처를 입은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저 삼왕들이 아니고서는 감히 누구도 그의 몸에 상처를 내지 못할 거라 생각했거늘…….
“오만했구나.”
그와 대등한 자가 또 하나 있었다.
홍왕은 그 사실에 안도와 아쉬움을 동시에 느꼈다.
‘어리석은 놈.’
강진호가 그의 손을 잡았더라면?
그게 아니라도 이 중국 땅을 밟지 않았더라면?
강진호는 세상을 지배하는 이름을 삼왕에서 사왕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이다.
삼왕으로서의 홍왕은 그 싹을 지금 잘랐다는 것에 안도를 느꼈지만, 무인으로서의 홍왕은 그 사실을 아쉬워했다.
싸우면서 확실하게 느꼈다.
이자의 힘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졌다면, 이자는 정말 홍왕의 목에 검을 박아 넣을 만큼 강해졌을 것이다.
그만한 무인이 되기 전에 그를 꺾어버렸다는 사실이 홍왕의 심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리석은 생각.’
강진호에게 시간이 주어졌다면 홍왕은 정말 전력을 다해 싸워볼 수 있는 대적자를 얻었겠지만, 세상은 혼란으로 가득 찰 게 빤했다.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 천하의 안위를 어지럽힐 수는 없는 법. 홍왕은 자신의 대의를 위해 개인의 즐거움을 거둬들였다.
그에게 남은 것은 이제 하나.
홍왕의 시선이 바다로 향했다.
어둠이 내린 바다는 파도로 어지럽지만, 홍왕은 그 바다 한가운데에서 작게 올라오는 물거품을 놓치지 않았다. 저곳에 강진호가 있다.
내버려 둬도 죽겠지만,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야 한다.
“후우우우.”
철벙철벙.
그의 다리는 이미 바다에 잠겨 있었다. 물 위에 떠 주변을 바라보던 여유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것 같은 지독한 피로가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 사실에 홍왕은 경탄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설사 다른 왕들이라 한들 홍왕을 이리 물고 늘어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누가 죽든 깔끔하게 결판이 났겠지. 세상에서 오직 강진호만이 그를 이런 꼴로 만들 수 있었다.
그 사실에 경탄했다.
하지만 그의 무위에 전혀 미치지 못한 자가 잘도 그를 이런 꼴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그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강진호라는 자는 그에게 항상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우우우우웅.
홍왕이 우수에 기운을 모았다. 어둠이 내려앉아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바다가 순식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 저 안에 강진호가 있다.
그리고 이 일격으로 강진호의 숨이 끊길 것이다.
“잘 가라!”
홍왕이 지체 없이 일격을 뻗었다. 망설임은 이미 충분히 했다. 이제는 망설이지 않는다.
눈부신 권강이 바다 안에 가라앉은 강진호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그 순간!
바다가 갈라졌다.
홍왕은 일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바다가 갈라진다?
어째서?
변화를 알아차린 것은 홍왕의 머리가 아니라 몸이었다.
촤아아아아악!
배부터 어깨까지 길게 갈라진 홍왕의 육체가 하늘로 피 분수를 내뿜었다.
홍왕의 몸이 덜덜 떨렸다.
상처는 치명적이다. 하지만 상처를 돌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더욱 치명적인 것이 눈앞에 나타났으니까.
마기가 물을 밀어낸다. 마치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 신의 명에 의해 단 한 번 갈라진 바다는 지금 세상에 강림한 마귀를 두려워하며 필사적으로 달아났다.
그 갈라진 바다의 한중간에서 마귀가 몸을 일으켰다.
강진호?
아니, 아니다.
저건 강진호가 아니다.
홍왕은 알 수 있었다.
저건 강진호가 아니다. 저건…… 저건 강진호 같은 게 아니다.
더없이 불길한…….
그리고 더없이 사악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하늘이…….
마를 두려워한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