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61
#760.
내맡기다 (5)
어둠을 죽이는 것은 여명이다.
홍왕의 권은 그리 말하고 있었다. 빛나는 우수에 모인 힘은 세상을 지옥으로 몰고 갈 마귀의 숨통을 끊기에는 차고 넘쳤다.
하지만 홍왕은 살짝 주저하고 있었다.
‘이자는 정말 마귀인가?’
그렇다면 어째서 자신의 안에 숨어 있는 마귀를 억제하는가. 그 마귀를 풀어놓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악으로 물들이기는 충분할 텐데.
강진호가 적천마존이라 칭한다는 다른 인격.
그 존재가 너무도 강렬하고 파괴적이기에 지금의 강진호를 다시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정녕 악을 좇는 이라면, 그가 정말 마존이란 이름에 합당한 이라면…… 어째서 적천마존이 되지 않으려 한단 말인가. 그는 마인들의 이상향이나 다름없을 존재일 텐데.
‘무엇을 봐야 하는가.’
혼란이고, 혼돈이다.
하지만 그 혼란의 와중에서도 홍왕은 길을 잃지 않았다.
상대가 누구든.
강진호가 그가 생각하는 인간이 맞든, 그렇지 않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강진호는 죽어야 한다.
자신이 품고 있는 마귀와 함께 말이다.
“후우…….”
낮게 심호흡을 한 홍왕이 천천히 물에서 떠오르는 강진호를 노려보았다.
‘미혹은 결국 내 자신의 모자람일 뿐이다.’
악즉참(惡卽斬).
상대가 악이라면 그 어떤 논리와 이치도 필요하지 않다. 그저 벨 뿐.
이 일격으로 악을 벤다.
단호하게 의지를 다잡은 홍왕이 주먹을 내뻗었다. 모든 미혹과 혼란이 일거에 사라진다.
그래야 했다.
하지만 홍왕은 알아야 했다. 모든 일이 끝날 때는 반드시 마가 끼기 마련이다. 그리고 지금 홍왕에게 낀 마는 형이상학적인 의미로서의 마가 아니었다.
진짜 마가 그를 노리고 있었다.
촤아아아악! 촤아아아악!
홍왕이 막 손을 뻗으려는 찰나, 사방에서 물보라가 일면서 십여 명의 인원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이!”
홍왕의 얼굴에 당황이 어렸다.
전대미문의 실책.
아무리 육체가 무너지고 강진호에게 모든 정신을 빼앗겼다고 하나, 이만한 인원들이 주변으로 접근할 동안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파아아아아앗!
허공으로 떠오른 이들이 발하는 기운은 분명 마기(魔氣)였다.
‘어디서 이런 놈들이!’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다.
조금 전까지 이곳을 가득 채우고 있던 마인들과는 명백히 그 질이 다른 마기다. 확실히 더 정순하고, 좀 더 파괴적인!
차라리 강진호가 내뿜는 마기와 닮아 있는.
그 사실이 홍왕을 혼란스럽게 들었다.
그가 기운을 잘못 파악할 리가 없다. 이놈들은 분명 이곳에 있던 마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놈들이 대체 어디서 나타났단 말인가.
그 짧은 찰나의 순간, 홍왕은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한주먹거리도 되지 않는 이들이다.
그가 온전한 몸이었다면.
하지만 강진호가 평범한 무인도 감당할 수 없는 부상을 입은 것처럼 그의 몸 역시 박살이 나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그는 홍왕.
지금 가진 힘만으로도 이들을 찢어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금 우수에 모은 마지막 모든 내력을 강진호에게 쏟아붓지 않는다면 말이다.
홍왕의 눈이 흔들렸다.
선택은 둘 중 하나.
강진호를 죽이고, 그 역시 죽음을 각오하든가.
그게 아니면 강진호에게 쏟아부을 내력을 회수하고 이자들을 찢어 죽이든가.
전자를 택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후자를 택한다면 저 중의 한 명은 반드시 강진호를 낚아채고 달아날 것이다.
쫓을 수 없다.
그럼 어찌해야 하는가.
홍왕의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마인들은 그를 향해 쏘아진 포탄처럼 날아오고 있었다.
“흐아아아아아악!”
괴성.
분노와 짜증, 그리고 결심이 뒤섞인 괴성이 홍왕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나는 홍왕이다!”
그의 선택은 단호했다.
죽인다.
설령 그 역시 죽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 자리에서 강진호를 보내줄 수는 없었다. 이자는 언제고 세상을 암흑으로 물들일 자다. 타협은 없다.
홍왕의 빛나는 우수가 강진호를 향해 뻗어졌다.
기(氣)가 강(鋼)이 되어 강진호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아무리 강진호의 육체가 단단하다고 한들, 의식을 잃은 채로 저 권강을 맞는다면 잘 익은 수박이 깨어지듯 산산조각이 나버릴 것이다.
하지만 권강이 발출된 이상 누구도 그 권을 막을 수 없었다.
홍왕의 마지막 힘을 실은 권강이 강진호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홍왕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누군가가 강진호의 앞에 나타났다.
표현이 아니다. 말 그대로 그 자리에 나타났다. 빠르게 치고 들어온 것도 아니고, 눈으로 쫓지 못할 속도로 막아섰다는 뜻도 아니다.
없던 존재가 그 자리에 생겨나는 것처럼, 말 그대로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이다.
‘이!’
홍왕은 직감했다.
저자가 누구이든 자신에게 우호적이지는 않을 것임을.
“쯧.”
노신사.
말끔한 정장을 갖춰 입은 노신사가 손에 든 지팡이를 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손을 등 뒤로 뻗어 강진호를 움켜잡는다.
“다시 뵙기를.”
콰아아아아아아앙!
권강이 폭발하며 세상을 환히 밝혔다.
찢어질 듯 부릅떠진 홍왕의 눈은 단 한 번의 깜빡임도 없이 폭발하는 바다로 고정되어 있었다.
“이…….”
빛과 물보라가 잦아든 바다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니, 남아 있는 것은 있었으나 그것은 강진호의 것이 아니었다.
도주.
완벽한 도주.
눈앞에서 강진호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홍왕의 몸이 뒤로 젖혀졌다.
울컥.
노화가 육체로 전해지자 입으로 시뻘건 선지피가 솟구쳤다.
울컥울컥, 몇 번의 피를 토한 홍왕이 어찌할 수 없는 분노를 담아 고함쳤다.
“강진호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세상이 하얗게 탈색된다.
중원을 떠받들던 거인이 바닥을 내려치고, 발버둥을 치고, 소리를 질렀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
지옥의 밑바닥에 처박힌 것 같은 자괴감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에 십여 명의 마인들이 들어왔다. 마인들은 홍왕의 분노를 바로 앞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뭔가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죽인다…….”
홍왕이 짐승처럼 으르렁댔다.
“죽인다! 죽인다!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이다! 이 개 같은 놈들!”
“휘유.”
홍왕의 정면에서 그 분노를 받은 사내, 이명환은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했다.
“많이 열 받으셨나 보네?”
“이…….”
한국어.
귀로 들려오는 한국어에 홍왕은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중국 땅에서 총회가 움직일 가능성이 없다고 그들을 배제해 버린 것이 그의 실수였다.
그 역시 강진호가 그를 이 꼴로 만들어놓지 않았다면 저지를 일이 없는 실수였겠지만.
“죽인다…….”
홍왕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명환은 그 눈빛에서 눈을 떼고 강진호가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지옥을 경험하게 해주신다더니…….”
그 지옥이 이 지옥일지는 몰랐지.
“이렇게 죽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하지만 너도 각오해야 할 거야. 다음에 그 양반을 만날 때가 네가 죽는 날일 테니까.”
“으아아아아아아!”
성난 멧돼지처럼 달려드는 홍왕.
이명환은 그 무시무시한 광경에서 눈을 떼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수평선 위에 작은 불빛 하나가 떠 있었다.
“잊으면 안 됩니다, 회주님.”
여기에 우리가 있었다는 것을.
절대로.
이명환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홍왕을 보며 환히 웃었다.
“안 돼에에에에에에!”
이성을 잃은 사람이 또 하나 있었다.
차이커창은 순간 모든 상황을 파악했다.
홍왕의 앞에서 사라진 강진호. 그가 어디 있을지는 너무도 빤한 일이었다.
“배! 배 준비시켜, 당장!”
“차, 차이커창 님!”
“쫓아간다! 저 새끼 쫓아가야 해! 지금 당장!”
“배, 배가 없습니다.”
“뭐? 배가 왜 없어?”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지금 차이커창의 기세에 수십은 죽었을 것이다. 그만큼 지금 차이커창은 한도를 넘어 흥분하고 있었다.
뇌출혈로 실려 가지 않은 게 용한 수준이다.
“배, 배를 다 치우라고 하셨잖습니까?”
“누가? 내가?”
“……예. 놈들이 빠져나갈 수 있다며 해안에 있는 배를 모두 치우라고…….”
퍼어어어억!
차이커창이 다짜고짜 부관을 후려쳤다.
“야, 이 개 같은 새끼야! 내가 언제 그런 명령을 내렸어! 누구야! 어느 미친 개 같은 새끼가 그런 명령을 내린 거야! 누구야! 누구냐고!”
“죄, 죄송합니다.”
차이커창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걸 모를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것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태풍은 피해가야 하는 법이니까.
“아, 안 돼…… 안 돼…….”
흥분하던 차이커창이 일순 안색을 바꾸어 네 발로 기어 앞으로 향했다. 그의 손이 멀어지는 불빛으로 뻗어졌다.
저기다.
저 불빛, 저 배에 강진호가 타고 있다.
그들의 모든 것을 무너뜨릴 마귀가 그들을 농락하고는 지금 유유히 중국을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공안에 연락해!”
“차이커창 님!”
“빨리!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서 저 배를 폭파시켜! 가라앉히라고! 저 배가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어! 지금 당장! 설사 한국의 영해로 들어가더라도 따라잡아서 폭파시키라고! 총을 쓰든, 폭탄을 쓰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자아아아아앙!”
차이커창이 처절하게 외쳤지만, 그 명령이 무리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눈에 보인다고 가까이 있는 게 아니다. 저 배는 이미 멀어지고 있다. 지금 최대의 속력으로 한국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저 배를 따라잡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바다는 무인의 영역이 아니니까.
“마, 마귀가…… 마귀가…….”
차이커창이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 모든 걸 다 하고도…… 홍왕께서 직접 나서셨는데도…… 마귀를 잡지 못하면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차이커창도 보았다.
마귀의 존재가 얼마나 위험한지.
검은 마기를 줄줄이 뿌리며 홍왕을 짓밟던 마귀의 존재를 그도 보지 않았는가. 저 위험한 존재가 지금 그들의 손을 벗어나고 있었다.
변수라고 여긴 존재는 그들의 품 안에서 최악의 적으로 성장하여 지금 자신의 둥지로 향하고 있었다.
이대로 저자가 자신의 힘을 회복한다면?
‘끝장이다.’
등 뒤에서 그들의 목을 노리던 비수는 이제 야수의 발톱이 되어 그들을 할퀼 것이다.
차이커창은 그 끔찍한 미래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강진호오오오오오오오!”
발악을 하던 차이커창의 몸이 뻣뻣하게 굳더니, 그 자리에 쓰러졌다.
“차이커창 님!”
부관들이 차이커창에게 달려들어 그를 흔들었다. 눈을 까뒤집은 채 의식을 잃은 차이커창의 상태를 확인한 이들이 기겁을 하여 소리쳤다.
“의사! 당장 의사를! 지금 당장!”
의사를 찾는 절규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이들의 혼란이 부두를 뒤덮었다.
홍왕의 분노.
차이커창의 좌절.
그리고 목숨을 건 자들의 의지.
그 모든 것을 뒤로하며 서서히 수평선 위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길고 긴 밤.
너무도 길고 긴 밤이 이제야 끝이 났다.
그리고 이 긴 밤이 세상의 운명을 얼마나 뒤틀어 버렸는지, 지금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아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