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63
#762.
살아남다 (2)
“수술 중이십니다.”
“생명에 지장은?”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만, 위긴스 님께서 안심하라 하셨습니다.”
그제야 바토르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게 이현수에게도 똑똑히 느껴졌다.
“그런가.”
바토르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커다란 몸이 들썩이는 느낌이다.
“그놈이 한 말이라면…….”
“믿을 수 있다는 소리이시겠죠?”
바토르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의 눈에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위긴스의 모습이 보였다.
“빌어먹을, 저 뻔뻔한 얼굴이 반가울 줄이야.”
능글맞게 뭔가를 말하려던 바토르가 입을 다물었다. 그의 시선이 텅 비어버린 위긴스의 팔에 고정되었다.
“……팔은?”
“선물로 주고 왔습니다.”
“홍왕에게?”
“다른 사람이라면 감히 내 팔을 선물로 받을 자격이 없지요. 홍왕쯤은 되어야 이 귀한 걸 받을 자격이 있지 않겠습니까?”
바토르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한참 동안 말없이 위긴스를 노려보던 바토르가 씹어뱉듯 말했다.
“그딴 식으로 충성을 증명할 필요까지는 없었을 텐데?”
“저도 몰랐습니다. 이런 식으로 저 자신을 증명할 줄이야. 멍청한 짓거리이지만, 사람이 항상 똑똑할 수는 없는 법이죠.”
바토르는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는 위긴스를 경계했다. 그가 자신의 뱃속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만한 지위에 있는 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강진호를 따른다는 건 그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 반드시 다른 노림수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생각이 깨어진다.
자신의 팔을 내놓으면서까지 이뤄야 할 목적이 위긴스에게 있을 거라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머저리 같은…….”
바토르의 욕설에 안타까움이 묻어 있다는 것을 알아챈 위긴스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남는 장사죠.”
“남는 장사?”
“팔 한쪽이 없으면 불편해지기야 하겠지만, 이걸로 로드께서도 저를 좀 더 신뢰하고 중용하시지 않겠습니까? 늙은 너구리가 사자에게 위탁하는데 다리 한쪽 정도는 간식으로 내드려야죠.”
“미친놈.”
바토르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평소에도 능글맞은 놈이라 생각했지만,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저런 농담을 늘어놓는다. 정말 정이 안 가는 놈이었다.
“그래도…….”
“예?”
“……수고했다.”
이번만은 위긴스도 말을 늘어놓지 않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진심은 진심으로 받아야 한다.
“상황은?”
바토르의 시선이 이현수에게로 향했다.
강진호가 의식이 없는 지금, 모두를 이끌어야 할 사람은 바토르였다. 바토르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망가진 몸으로도 필사적으로 의식을 다잡고 있었다.
“일단 추적하는 이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당장은 무리 없이 한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차이커창은 포기할 놈이 아니다.”
“일단은 최대한 빨리 이동하겠습니다.”
“으음…….”
바토르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육지라면 모를까, 바다 위에서라면 그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리고 저들이 무엇을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제아무리 홍왕이라 하더라도 타국의 영해를 함부로 침범하지는 못하겠지.’
권력자들이 그들의 존재를 감추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국제 문제로 비화된다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그러니 거기까지 저지르지는 못할 것이다.
실제로 차이커창은 외교 문제가 생기든 말든 닥치고 강진호를 쳐 죽일 생각이고, 단지 방법이 없어서 손을 놓은 것에 불과하지만, 지금 이 순간 바토르가 그런 사실까지 알 수는 없었다.
“주변을 감시하라고 해.”
“이 바다에서 말입니까?”
“내가 차이커창이라면 목숨 걸 놈들을 뽑아서 배에 구멍을 뚫을 거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에 비하면 그게 나을 테니까.”
“감시하겠습니다.”
“음.”
바토르가 장민을 돌아보았다.
“마인 놈들의 관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대충 지시를 끝낸 바토르가 벽에 등을 기대고 무너졌다.
“그럼 지금부터 지휘는…….”
바토르의 시선이 위긴스를 향했다.
위긴스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팔 한 짝 떨어졌다고 말도 못하는 건 아닙니다.”
“흥.”
바토르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모두가 한숨을 내쉬었다.
총회를 이끄는 세 사람 중 강진호는 수술실에 들어가 있고, 바토르는 부상을 이기지 못해 정신을 잃었다. 유일하게 위긴스만이 팔이 떨어지는 부상을 당하고도 의식을 부여잡고 있었다.
얼마나 끔찍한 전쟁이었는지를 지금의 광경이 극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길었군.”
위긴스도 선창에 등을 기대며 욱신거리는 어깨를 움켜잡았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알고 있으면 됐군. 지금부터 우리가 무사히 한국에 도착할 수 있는가는 네게 달렸다. 바토르 님도 제 상태가 아니고, 나 역시 몸이 말이 아니야. 따라잡힌다면 모두 죽는다. 알고 있겠지?”
“예!”
이현수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위긴스가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믿음직한 얼굴이 됐군.”
“저는 갑판을 정리하겠습니다.”
“나는 선장실에 있겠다. 부탁한다.”
“예!”
이현수가 단호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위긴스도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홍왕의 일격은 그의 팔을 앗아가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의 내부는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다. 지금 누군가가 그를 노린다면 위긴스는 곱게 죽여 달라고 목을 내밀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괴물이었어.’
직접 마주한 홍왕은 과연 괴물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그 꼴을 당하고도 일격에 위긴스를 부수어놓지 않았는가.
평범한 무인이었다면 그만한 부상에 목숨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만한 부상을 입고도 이런 위력이라니…….
‘하지만 괴물인 건 이쪽도 마찬가지지.’
그 괴물을 그 꼴로 만든 괴물이 이쪽에도 있다. 위긴스는 그 사실을 떠올리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지는 못했다. 강진호는 홀로 그곳에 남았으니까. 하지만 마지막 순간, 홍왕은 자신의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강진호를 죽이려 했다. 홍왕이 강진호를 그만한 위협이라 여겼다는 건 꽤나 많은 것을 의미했다.
“싸게 먹혔지.”
위긴스가 어깨를 꾹 눌렀다.
이현수는 귀신처럼 뛰어다녔다.
배에 모두가 올라탔다고 해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현수는 이 배를 한국으로 끌고 가야 한다. 사람이 우글거리는 정체불명의 배가 한국으로 접근하는데 손을 놓고 있을 만큼 해경은 무능하지 않다.
이현수는 굼뜬 돼지처럼 움직이는 마인들을 윽박지르고 걷어차며 컨테이너 안으로 밀어 넣었다.
‘빌어먹을.’
적재되어 있는 컨테이너를 차곡차곡 쌓는 일이야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렇게 쌓아 올린 컨테이너에는 사람이 탈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컨테이너의 입구를 확보하며 쌓아 올릴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누가 봐도 수상한 배가 탄생했다.
이 배를 끌고 영해로 들어가는데 사람까지 우글거린다?
최악이다.
적당히 돈을 먹여놓기는 했지만, 그것만 믿고 있을 수는 없다. 세상에는 쓸데없이 정의감에 넘쳐 나고 자신의 임무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의외로 많으니까.
그 만에 하나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 이현수는 필사적이었다.
총회를 이끄는 세 개의 머리가 모두 정상이 아니다. 이럴 때 문제가 생긴다면 끔찍한 꼴을 당할 수도 있었다.
“기어 올라가라고, 이 새끼들아!”
“허…….”
마인들은 자신에게 큰 소리를 치는 한국의 무인을 보며 허탈한 얼굴을 했다.
상대가 강하기라도 하면 덜 억울할 텐데, 마음만 먹으면 3초 만에 죽여 버릴 수 있는 놈이 인상을 쓰며 욕지거리를 쏟아내는데 누가 화를 내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들의 불만은 금세 가라앉았다.
“당장 기어 올라가라! 당장!”
장민을 위시로 한 장로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마인들을 단속했다. 더럽고 아니꼬워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마존의 지시로 배를 몰고 온 놈이 만만할 리도 없다.
“후우.”
겨우겨우 마인들을 모조리 컨테이너 안에 적재한 이현수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빌어먹을.’
해가 떴다.
환하게 밝아진 세상을 보며 이현수는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들은 해가 뜨기 전에 한국의 해안에 도달했어야 한다. 그러고는 은밀하게 헤엄을 쳐 한국으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리 해가 떠버리면 대규모의 인원을 부두로 밀어 넣을 수가 없다.
‘일단은 대기해야겠어.’
접안도 무리고, 드롭도 무리라면…… 일단은 대기하는 수밖에 없다. 이 상태로 하루 정도 시간을 보내고, 해가 지면 다시 은밀하게 움직여야 한다.
마음은 조급하기 짝이 없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지 않는가. 급한 마음에 일을 저지르다가는 반드시 문제가 생길 것이다.
다행히 배의 처리를 위해 화물선으로 등록해 두었고, 부두 접안 일정까지 잡아두었으니 해상에서 하루 정도 대기한다고 별다른 의심은 받지 않을 것이다.
그때, 누군가가 그에게 뛰어왔다.
“상태는?”
“안정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그 말을 듣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다.
‘안정된다라…….’
왼손으로 담배를 입에서 빼낸 이현수가 오른손으로 강하게 얼굴을 문질렀다.
한참 동안 그렇게 얼굴을 덮고 있던 이현수가 입을 열었다.
“알았다. 상황 계속 전달해.”
“예.”
혼자 남은 이현수는 반쯤 타버린 담배를 바다로 던지고는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찰칵, 찰칵.
바닷바람이 담배에 불을 붙이는 걸 방해했지만, 이현수는 기어코 불을 붙여 연기를 깊이 빨아들였다.
강진호의 신병이 확보되자 꾹꾹 눌러두었던 생각이 떠오른다.
애써 하지 않으려 했던 생각, 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생각.
“멍청한 놈들.”
강요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구도 명령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놈들은 저들이 자원해서 죽으러 갔다.
수도 없이 부하들을 지옥으로 밀어 넣고 이득을 취해온 이현수이지만, 지금만큼 그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 죽음은 없었다.
버린 것에 비해 얻어낸 것이 너무도 크고, 저들 스스로 자원한 일이건만 왜 이렇게 가슴이 무겁단 말인가.
“후우.”
담배를 깊숙이 빨아들인 이현수가 조금은 멍한 시선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담배 때문인지 입맛이 자꾸만 쓰다.
시체도 건지지 못하겠지.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죽어갔을까?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는 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의는 내가 누릴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자신이 누리지 못할 미래를 위해 죽음을 택할 수 있다니, 이현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멍청하다. 어리석다.
하지만…….
이현수가 담배를 꺼냈다. 입에 문 담배를 튕겨낸 이현수가 다시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여 장초를 바다에 던졌다.
다시 한 개비.
다시 한 개비.
중국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수만큼 담배를 바다로 던진 이현수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에게 그들을 애도할 자격은 없겠지만, 담배 한 개비 정도는 줄 수 있을 것이다.
“병신 새끼들.”
이현수가 몸을 돌려 선장실을 향해 걸어갔다.
대충 상황을 정리했으니 보고를 해야 한다.
미련 없이 돌아서는 이현수의 뒷모습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조금은 무거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