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66
#765.
살아남다 (5)
적당히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이야기할 곳을 찾던 일행은 병원 앞 벤치로 향했지만, 바토르와 위긴스가 워낙 시선을 끄는데다가 장민마저 한 개성 하다 보니, 사람들의 시선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결국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무인들이 사람들의 시선에 쫓겨 황급히 병원 안으로 대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후우우우…….”
병원 옥상으로 올라온 강진호는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이 병원은 옥상이 개방되지 않는 건물이지만, 병원장에게 요청해 특별히 옥상을 열 수 있었다.
강진호의 권력이 작용했다기보다는 병원장의 입장에서도 바토르가 병원 앞마당을 누비는 사태만은 막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게 참…….’
평화로운 일상이라면 일상이지만, 평범한 일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자신의 삶이 처음 목표로 삼은 평범한 삶에서는 한참이나 멀어졌다는 것을 실감하는 강진호였다.
그 원인의 대부분은 눈앞에 있는 이놈들이지만.
바토르와 위긴스, 장민과 이현수.
개성으로는 어디에도 지지 않을 네 사람이 지금 강진호의 앞에 서 있었다.
이현수가 평범해 보일 정도면 말 다한 거지.
좋든 싫든 이 사람들은 앞으로 총회의 중심이 될 것이다. 그 말을 다시 하자면, 좋든 싫든 강진호는 앞으로 이들과 함께 총회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옛날이 좋았지.’
뭔가 서글퍼진다.
하지만 지금은 불만을 털어놓을 때가 아니었다.
“장민.”
“예, 마존이시여!”
“아이들은?”
장민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임시 숙소에 묵고 있습니다.”
강진호의 고개가 이현수에게로 돌아갔다. 기다렸다는 듯이 이현수가 보고를 시작했다.
“일단은 총회 주변에 마련한 임시 숙소와 컨테이너, 그리고 모텔 등지에 분산 수용했습니다.”
“웬만한 인원이 아닐 텐데? 사람들의 눈에 띄는 건?”
“관련 부처에 이야기를 해뒀습니다. 산림 관리를 위해서 일용직들이 몰려왔다고 설명할 겁니다. 실제로 행색도 그쪽에 가까우니까요.”
물에 빠진 생쥐 꼴이겠지.
아니면 물에 빠졌다 이제 겨우 털을 말린 생쥐 꼴이든가.
“그게 가능한가?”
“어느 부분을 말씀하시는 건지?”
“관련 부처와 협의한다는 것.”
“네, 물론 어렵습니다.”
“역시나…….”
“더 윗선과 협의하는 게 쉽죠. 그쪽으로 명령이 내려갈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
강진호는 어쩌면 자신이 총회가 가지고 있는 권력을 과소평가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헛기침을 했다.
“얌전히 있어줘야 할 텐데.”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장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마존께서 만들어주신 기회이고, 마존께서 살려주신 목숨입니다. 감히 경거망동하는 놈이 있다면 제가 직접 목을 쳐 본보기를 보이겠습니다. 저 역시 마존의 위엄에 도전하는 놈들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천 갈래, 만 갈래로…….”
“거기까지.”
“예!”
강진호가 얼굴을 주물렀다.
‘21세기다, 21세기.’
그는 분명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장민은 과거에서 튀어나온 사람 같았다. 아니, 스마트폰을 찰떡같이 다루고, 현대 문물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강진호에게 권하는 사람이 왜 이런 부분은 고쳐지지 않는단 말인가.
‘차차 나아지겠지.’
예상이 아니라 바람이었다.
“계속 그렇게 지낼 수는 없을 텐데?”
“예. 거주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산 아래쪽에 보유하고 있는 땅에 숙소 공사가 들어갔습니다.”
“가족이 있는 이들은?”
“작은 숙소가 아닙니다. 개인실을 부여할 여유까지는 없습니다. 가족이 있는 이들에게는 한 채를 온전히 내주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기숙사의 개념으로 함께 살게 할 겁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이면 혼자 사는 이들의 수를 파악해 좀 작더라도 개인실을 내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부분까지 일일이 요구할 수는 없었다.
머리가 이상을 따라가기 시작하면, 실무를 맡은 자들은 지옥에 빠지게 된다. 적당히 현실과 타협할 줄 알아야 한다.
“진척은?”
“이제 시작입니다. 다만, 딱히 팔아먹기 위한 집이 아니라 이것저것 고려할 필요가 없으니 빠른 시일 내에 완공될 겁니다.”
“음…….”
강진호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현수에게 일임하기로 했다. 사실 그가 이런 분야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도 했다.
다만 한 가지.
“공사는 어디에서 맡지?”
“물론 재경입니다. 규민이가 수고해 줄 겁니다.”
“……누구?”
“규민이요.”
“……누구?”
“조규민이요.”
강진호가 멍한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언제 이현수와 조규민이 서로의 이름을 태연하게 부를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단 말인가.
그런 강진호의 의문을 알아챘는지 이현수가 씨익 웃었다.
“후후, 사나이끼리는 통하는 바가 있기 마련이죠. 의기투합했습니다.”
“…….”
뭐, 그러시든가.
더 이상 신경을 쓰고 싶지 않은 강진호가 손을 휘휘 젓고는 장민을 가리켰다.
“따로 이야기해 주도록.”
“예.”
한국어로 나눈 대화라 장민은 전혀 알아듣지 못한 듯싶었다. 가까운 시일 내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강진호가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한국에 들어오면서 생긴 문제는 없나?”
“눈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사화는 막았으니 괜찮을 겁니다. 뭐, 소문이 나봐야 이제 중국에서 야밤에 단체로 밀입국을 시도한다는 도시 전설 정도는 생기겠죠.”
“너무 안일한 것 아닌가?”
“문제가 생기는 건 기사가 만들어지고, 수사가 시작될 때입니다. 그전의 모든 목격담은 ‘카더라’밖에는 안 됩니다. 한국은 워낙 카더라가 많아서 금세 잊혀질 겁니다.”
“사진이라도 찍혔으면?”
“애꿎은 밀입국자들이 단체로 갈려 나가겠죠.”
“…….”
뭔가 피해를 준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밀입국자를 내보내는 결과가 된다면 나름 애국 아닌가.
뭔가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는 강진호는 이 일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강진호가 살짝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었다.
“중국은?”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나?”
조금은 모호한 질문이지만, 이현수는 강진호가 무엇을 묻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접촉해 올 거라 생각합니다.”
“접촉?”
“예.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이제 몇 남지 않았으니까요.”
이현수가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었다.
“이번 일로 우리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마인들을 한국으로 데리고 올 수 있던 게 아닙니다. 홍왕계에게 우리가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준 거죠.”
정확하게 말하자면 총회가 아니라 강진호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지만, 이현수는 굳이 그 부분을 정확히 짚어 말하려 들지 않았다.
강진호가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서.
“배 속에서 회주님을 놓쳐 버린 이상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뿐입니다. 국제 관계고, 노출이고 모두 배제한 뒤에 일점으로 회주님을 노리고 한국으로 들이닥치는 것.”
“가능성은?”
“불가능합니다.”
이현수는 단호했다.
“왜냐면 그들의 그런 행동을 억제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삼왕계죠. 홍왕이 자리를 비우는 순간, 그들은 바로 남하하여 홍왕계의 영역을 차지할 겁니다. 그럼 홍왕계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됩니다. 기껏해야 회주님을 제거하고 한국을 차지하는 게 전부겠죠.”
“기껏해야라…….”
“홍왕계가 차지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한국은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현실이 그렇습니다.”
“계속해.”
“그게 아니라면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뿐입니다. 우리의 영역을 보장하려 들겠죠. 대신 등 뒤를 찌르지 말라고 할 겁니다. 적대를 멈추고 잠시 동안만 휴전을 제안할 겁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흠…….”
강진호가 턱을 쓸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바토르였다.
“바토르, 홍왕은 어찌 움직일까?”
“모르겠다, 주인.”
“전혀?”
바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홍왕은 왕이다. 내가 본 그는 항상 왕이었다. 하지만 나는 상처 입은 왕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주인이 요행히 홍왕의 손에서 빠져나왔다면 그 반응을 예측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홍왕이 어찌 움직일지는 알 수 없다.”
“네 말대로 내가 요행히 빠져나왔다면?”
“껄껄 웃으면서 주인을 인정했겠지. 자신의 손에서 빠져나간 것도 대단하다며.”
“음…….”
오만한 홍왕의 성정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홍왕에게는 그 오만함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예측할 수가 없다.
“흐음.”
강진호가 피우던 담배를 비벼 껐다.
“이현수.”
“예, 회주님.”
“중국을 감시하는 걸 게을리하지 마라.”
“예.”
“어떤 식으로 움직이든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바토르는 이현수를 도와주도록.”
“내가 말인가?”
바토르의 의아한 반응에 강진호가 단호히 말했다.
“아무래도 이 중에서 홍왕과 홍왕계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너일 테니까. 도움이 될 거다.”
“알겠다, 주인.”
강진호가 장민을 바라보았다.
“한동안은 지루한 대기가 이어질 거다. 안정이 될 때까지 아이들을 다독여 사고 치지 않게 해.”
“걱정 마십시오, 마존이시여!”
“위긴스.”
“예, 로드.”
“총회도 어수선할 거다. 방진훈이 힘써줄 테고, 이현수도 같이하겠지만, 아무래도 중심을 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미 맡고 있던 임무입니다. 더욱 충실히.”
“음.”
강진호가 기대고 있던 벽에서 등을 뗐다.
“회주님께서는?”
이현수의 물음에 강진호가 가볍게 대답했다.
“집에 갈 거다.”
“예?”
“집에 간다고.”
“…….”
* * *
“다녀왔습니다.”
“야, 이 망할 놈의 인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감정이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지 않은가.
애증이라는 말이 있듯이, 격한 증오와 애정은 한 끗 차이인 법이다. 그러니 이 격한 분노도 애정의 일종이라 받아들일 수 있…….
현관으로 일직선으로 달려온 강은영이 강진호의 옆구리에 날아차기를 먹였다.
옆구리로 느껴지는 묵직한 통증에 ‘내 동생이 이렇게 훌륭히 자랐구나’를 느끼는 강진호도 정상은 아니었다.
“전화기는 폼으로 가지고 다니냐! 야! 중국 간다더니, 전화는 왜 꺼놓고 난리야! 며칠이나 연락이 안 되더니, 뭘 뻔뻔스럽게 기어 들어와!”
애정이다.
이건 애정이다.
비록 가슴을 후려치는 손길에 고릴라조차 때려잡을 힘이 느껴진다 하더라도, 중간중간 다리를 걷어차는 발길에 가수가 아니라 이종격투기 선수에 재능이 있지 않은가 의심이 되더라도 이건 애정이었다.
“진호야!”
어머니도 뛰어나오셨다.
간만에 보는 어머니의 얼굴에 강진호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돌아올 곳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너는 정신이 있는 놈이니, 없는 놈이니?”
비록 그 어머니가 침을 튕겨가며 자신을 비난하더라도 어머니가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 아닌가.
“애가 어떻게 날이 갈수록 철이 없어지니. 아이고, 내 새끼. 얼굴도 좋다, 얼굴도 좋아!”
“…….”
“집에 기어 들어왔으면 밥부터 처먹든지!”
강진호가 훈훈하게 웃었다.
아, 이게 애증이구나. 애증…….
안으로 들어가며 강진호가 집 안 공기를 천천히 들이켰다.
이제야.
이제야 돌아왔다는 실감이 난다.
이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