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75
#774.
발전하다 (4)
“식량이 부족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식량 자체는 풍족하게 주어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식재료가 한국의 것이라 저희들이 음식을 먹는 게 영 불편합니다.”
“……중국산 재료를 들여 달라는 건가?”
“중국산이라기보다는 중국의 식재료가 필요합니다.”
“알겠다.”
“그리고 일단 천막을 치고는 있지만, 천막만으로는 수용이 불가능합니다. 임시 숙소를 삼을 만한 컨테이너가 추가로 필요합니다. 컨테이너가 아니라도 뭐든 좋습니다. 바람을 피하고 비를 피할 곳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일단은…….”
“천막이나 컨테이너가 들어온다고 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전기선을 끌어와야 합니다. 이곳에 전기선을 끌어오는 일을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지 확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지자체의 허가가 필요한지, 만약 필요하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
강진호가 슬슬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장민은 한 번 물꼬를 텄으니 이제 끝장을 보겠다는 듯 물러나는 강진호에게 따라붙으며 끝도 없이 주절거렸다.
“잘 곳을 마련했지만, 사람이 잠만 자고 살 수는 없습니다. 식수대를 추가로 설치해야 하고, 간이 화장실도 더 필요합니다. 그리고 저번부터 말씀드린 건데, 이게 왜 해결이 안 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마존이시여!”
“으응?”
“저희는 옷 한 벌 걸치고 바다를 건넜습니다. 갈아입을 팬티 한 장도 없습니다. 대의를 위해서 고난은 얼마든지 감수하겠지만, 최소한 인간답게는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생필품이 지원되지 않고 있습니다. 애들한테 냄새가 나서 살 수가 없습니다.”
“……안 씻어서 그런 게 아닐까?”
“바로 그겁니다. 말씀 잘하셨습니다. 씻기라도 하면 좀 나을 텐데, 지금의 샤워장은 너무 부족합니다. 좀 더 많은 수도 시설이 필요합니다. 정 안 되면 일단 살수차라도 동원해서 물을 좀 공급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장민.”
“예, 마존이시여!”
“……목록 작성해서 결제 올려.”
“결제는 이미 한참 전에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아직 처리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마존이시여, 이 모든 것을 결제하고 처리해야 하실 분은 오로지 온당한 우리의 주인이신 마존이 아니십니까. 서류는 쌓이고 있는데 지금 왜 여기에 계시는지 소신은 알 수가 없습니다. 마존…… 마존이시여?”
강진호가 몸을 돌려 바쁘게 다리를 놀렸다.
“마존이시여! 저희를 버리지 마십시오! 마존이시여!”
“이, 이현수 보내줄게!”
“마존이시여!”
강진호가 다급하게 달려 장민의 눈에서 멀어졌다.
“뭐가 불만인데, 이 새끼들아?”
천태훈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짱깨 새끼들이 너무 설치지 않습니까.”
“아니, 짱깨야 원래 설치는 거고, 빨리 움직여야 배달 한 번 더할 것 아냐.”
“헐? 지금 직업 비하하신 겁니까? 이사님, 실망입니다.”
“농담 한 번 한 것 가지고, 인마!”
방진훈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하지만 천태훈은 물러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중국집 배달부와 저 짱깨 새끼들을 동일시하지 말아주십시오. 배달하시는 분들은 한국인이잖습니까.”
“……이 새끼가 언제부터 그렇게 애국심이 있었다고?”
“저 새끼들 때문에 생겼습니다.”
“하?”
방진훈이 얼굴에 짜증을 잔뜩 담아 말했다.
“뭐가 문젠데?”
“저 새끼들…… 너무 설칩니다. 저희 숙소에 있는 화장실을 제 마음대로 쓰고 샤워장에서 빨래를 해 대느라 애들이 씻지도 못합니다. 벌써 몇 번 시비가 붙었습니다.”
“맞았냐?”
“개 패듯이 팼습니다.”
“잘했…… 아니, 이 새끼들아, 사이좋게 지내라고!”
“저 새끼들이랑 어떻게 사이좋게 지냅니까!”
방진훈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망할 놈들. 진짜.’
문제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이번에 유입된 마인들의 수는 총회의 무인들보다 더 많다. 전국에 있는 회원을 모두 합하면야 저들만 못하겠냐마는, 지금 당장 총회에 거주하고 상시 출근하는 인원만 치면 마인들에 가져다 댈 수준이 아니었다.
주인보다 손님의 수가 많으니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손님이면 다행이지. 손님이라면 금방 제집으로 돌아갈 테니 잠시만 참으면 된다. 하지만 저들은 손님이 아니라 앞으로 같이 살아야 할 식구였다. 총회의 입장에서는 당장 도움도 안 되는 군식구가 늘어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러니 문제가 생긴다.
“좀 다독여 가며 잘 지내보면 안 되겠냐?”
“말귀를 알아 처먹어야 다독이든 말든 할 것 아닙니까. 이 새끼들이 뭔 말만 하면 중국어로 씨부리는데, 딱 한마디 알아들었습니다.”
“뭐?”
“왕팔단.”
“그게 뭔데.”
“우리말로 하면 개새끼쯤 됩니다.”
“…….”
방진훈이 얼굴을 주물렀다.
하, 거, 새끼들…… 진짜.
혈기왕성한 두 집단이 만났다. 게다가 한쪽은 한국인이고, 다른 쪽은 중국인이다. 패싸움이 일어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절을 해야 할 판이다.
지금 당장은 마인들도 강진호의 눈치를 보고, 총회의 무인들도 강진호의 눈치를 보느라 커다란 충돌은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그것도 곧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이러다 대형 사고 난다.’
아무래도 중재가 한 번쯤은 필요할 것 같았다.
“야, 천태훈.”
“예.”
“내가 어떻게든 해결한다. 최대한 빠르게 해결해 준다.”
“예.”
“대신 너도 애들 모아서 똑똑히 전해라.”
“예?”
“내가 이거 해결하는 동안 사고 치는 새끼는 벌거벗겨서 강남대로에 던져 버릴 거야. 절대 가만히 안 놔둘 테니까, 절대 사고 치지 말라고 해라. 알았어?”
“그 새끼들이 먼저 시비를 거는데 어떻게 참으라고 합니까?”
“시비를 건다고 싸우면 그게 사람이냐, 새끼야? 짐승이지. 사람은 시비를 걸면 피하는 게 정상이야, 이 대가리에 근육만 찬 새끼들아!”
“……예.”
방진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부터 같이 살아야 할 식구들이니까, 너희가 좀 참는 한이 있어도 최대한 살갑게 지내. 알았어?”
“예.”
“식구다! 알았어? 식구!”
“……알겠습니다.”
불만 어린 천태훈의 얼굴을 뒤로하고 방진훈이 몸을 돌렸다. 강진호를 만나야 한다.
“분리해.”
“……예?”
“분리하고, 양쪽 서로 격리시키라고.”
“……예?”
“내 말이 어렵나?”
방진훈은 멍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강진호…… 아니, 회주님. 저 짱깨…… 아니, 중국인들은 이제부터 총회의 회원이 되어서 같이 지내야 할 사람들 아닙니까?”
“아냐.”
“아닙니까?”
방진훈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아니, 근데 이 양반…… 뭐가 이리 즐거워?’
이렇게 그를 살갑게 맞아주는 강진호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제 손으로 커피까지 타 주지 않는가. 지금도 목소리는 삭막한 반면, 표정에서는 즐거운 기색이 역력하다.
“같이 살 수 있을 리가 없지.”
강진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사고방식이 다르다. 문화가 다르고, 목적이 다르다.
적당히 섞어놓고 융화되기를 바란다?
핵융합이 벌어져 싸그리 다 죽을 거다.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놈들을 총회에 받아들이시려는 것 아닙니까?”
“아닌데?”
“……아냐?”
방진훈의 입에서 익숙한 반말이 튀어나왔다.
“아, 아차, 죄송합니다. 제가 당황해서.”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전력상 필요해서 데리고 오기는 했지만, 총회에 합류시킬 생각은 없어. 받아들일 수 있는 이들이 아냐. 총회에도 독이 될 거고, 저들 역시 납득하지 못할 거다.”
“그럼 왜 애들 숙소에 섞어 넣으셨습니까?”
“잘 데가 없으니까.”
“…….”
상상도 하지 못한 현실적인 이유에 방진훈이 헛기침을 했다.
“소 닭 보듯 지내라고 해. 지금 생활 반경이 겹쳐셔 생기는 문제점은 최대한 빨리 해결할 테니까. 그때까지만 참아달라고 해주고.”
“그렇다면야 불만도 사그라들겠죠. 그런데 이게 옳은 방향인지…….”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이것 역시 문화의 차이다.
중원이었다면 당연히 받아졌을 일이 한국에서는 어색한 일이 된다. 한 민족, 한 집단이라는 감성적 공유가 있는 한국인들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연합의 형태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같은 곳에서 일하면 친구가 되어야 한다.
“마교는 마교일 뿐이다. 총회의 일부가 될 수는 없지. 최상위의 명령 체계는 동일하겠지만, 총회와 동등한 지위를 가질 거다.”
“그게 가능합니까?”
“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법무부 장관과 외교부 장관은 다 같은 장관이고 대통령의 명을 받지만, 서로 독립되어 있잖아. 외교부 장관과 법무부 장관 중에 누가 더 높은 사람이지?”
“외교부 장관이요.”
“…….”
“맞습니다. 외교부 장관.”
“서열이 있어?”
“당연히 있죠. 장난하십니까!”
“예시가 좀 잘못된 것 같은데…….”
할 말이 궁해진 강진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여하튼 그런 거야. 뜻은 알겠지?”
“알기는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러려면 좀 더 명확한 생활권의 분리가 필요합니다. 이대로 뒤섞여 있다 보면 살인 날 겁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살인 납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중국인과 한국인을 저 수로 섞어놔도 사고가 터질 것이다. 그런데 호전적인 무인을 섞어놓으면? 한둘 죽어나는 걸로는 끝나지 않는다.
“빠르게 해결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네. 뭐,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방진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그런데…….”
“음?”
밖으로 나가던 방진훈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제가 회주님에게 뭔가를 해결해 달라고 이런 식으로 말씀드리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위에 선 분 티가 좀 납니다?”
“……하루 종일 도망만 다녔는데.”
“예?”
“아무것도 아냐.”
“네, 그럼.”
방진훈이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자 강진호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것도 쉽지는 않군.’
이현수에게, 그리고 위긴스에게 수도 없이 충고를 들었다. 예전에 조규민에게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그는 사람을 믿지 못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남에게 맡기는 대신 다른 일을 하는 법을 모른다. 할 수 있는 일이 적은 만큼, 자신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든 스스로 하려 든다.
하지만 그건 가장 위에 선 자의 방식으로는 부적합했다.
그렇기에 이제는 저들에게 맡겨야 할 것을 맡기고, 강진호는 그가 해야 할 일을 찾는 중이었다. 쉽지 않고 불편하지만, 이것 역시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다.
‘나 혼자서는 할 수 없으니까.’
적천마존은 그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벌인 일들이 스스로의 목을 조여올 것이라고. 그는 결코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이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을 인정하는 동시에 부정한다.
강진호는 혼자가 아니니까.
‘나 혼자 감당할 필요는 없어.’
모두가 함께 도와줄 것이다, 모두가.
벌컥!
그 순간, 이현수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남들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인데, 여기서 놀고 계십니까?”
우득!
강진호의 입에 물린 담배가 부러져 나갔다.
“……농담인 거 아시죠?”
“음…….”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웃었다.
“알지.”
“하하, 그럼 그렇…….”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는 것도 다 장난이다.”
“네?”
장난이 아닌 것 같은데요?
강진호의 주먹에 돋아난 핏대를 보며 이현수가 눈을 감았다.
적당히 깝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