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76
#775.
발전하다 (5)
“아니, 그게 마음대로 됩니까?”
박상철 소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공사 기간이 내 마음대로 당겨지는 거면, 세상에 못할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 건 자금이라도 늘려주고 나서 해야 하는 말 아닙니까! 똑같은 인력에, 똑같은 장비를 쓰는데 공사 기간이 단축되면 내가 미쳤다고 여기서 이 일 하고 있겠습니까? 팀 짜서 두바이서 건물 올리고 있지.”
이래서 책상물림들은 안 된다는 거다.
‘비서실은 얼어 죽을.’
현장을 누비다 보면 이런 일들은 수도 없이 겪는다. 어찌나 자주 겪는지 대한민국의 건설 현장을 누비는 소장들은 윗대가리가 무슨 말을 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매뉴얼을 하나씩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건설이 뭔지, 현장이 뭔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것이 대한민국 건설 현장의 실상이었다.
지금도 보라.
뭐? 공기를 단축하라고?
미친놈.
이런 말을 하는 놈들은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모르는 놈들이다. 학교 다니면서 지점토로 집 한 번 만들어본 것과 철근콘크리트로 건물을 올리는 것이 구조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니 이딴 말을 지껄인다.
공기 단축이 보통 일인가.
윗대가리들은 현장의 노동자들이 느긋하게 마음먹고 공사를 진행해서 공사 기간이 오래 걸린다고 생각한다. 그런 놈들은 타워크레인에 달아 번지점프를 시켜줘야 정신을 차린다.
‘여기가 헬조선이다, 이 인간아.’
헬조선에 느릿느릿이 어디에 있는가. 모든 공사는 시작할 때부터 최단 시간에 끝내는 것을 상정하고 계획에 들어간다. 결국 인부를 놀려야 하는 일. 공사 기간이 하루라도 길어지면 임금이 그만큼 추가로 지출이 되고, 임금이 추가 지출되면 공사 대금에서 남겨야 할 이익이 줄어든다.
내 돈이 줄어드는데 느릿느릿 천천히 일을 할 사람이 누가 있는가.
건설법과 현장의 사정, 그리고 공사를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시간을 모두 감안하여 최단 기간으로 깎고 또 깎아 나온 일정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일정을 줄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쇼. 그럴 거면 공사 대금 올리든가. 그래야 사람이라도 더 고용할 것 아니냐고! 똑같은 사람이 일하는데, 무슨 수로 공사 기간을 당겨. 밤에라도 일할까?”
[예.]간단하게 돌아온 답변에 박상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거기, 비서실이라고 했습니까?”
[예.]“내가 누군지 아쇼? 내가 지금 재경에 있다고 해서 내가 당신 아랫사람 같아? 나 여기 때려치우고 나가도 일할 곳 많은 사람이야. 회장실도 아니고, 비서실에서 이래라저래라 소리하는 걸 내가 참고 있을 것 같아?”
[딱히 참을 필요 없습니다.]“뭐?”
박상철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욕을 필사적으로 내리눌렀다.
‘썩을.’
이놈에게 욕을 한바탕 해버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엿 같아서 때려치워도 갈 만한 회사가 널려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직이라는 것은 언제나 심한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일이다. 언제나 고려할 수는 있지만, 될 수 있으면 겪고 싶지 않은 일이라는 뜻이다.
이 어린놈에게 한바탕 욕을 쏴주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 뒷감당의 부담이 박상철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더구나 공사가 진행되는 현장을 떠난다는 것은 꽤나 큰 리스크다. 그의 커리어에도 큰 오점이 남을 것이다. 그를 따라 일하고 있는 놈들의 거취 문제도 걸린다.
[그리고 그렇게 화를 내실 필요도 없습니다. 제가 지금 딱히 무리한 걸 요구하는 게 아니니까요.]“무리한 게 아니라니? 야간에 일을 하라는 게 무리한 게 아니라고? 당신, 건설법이 뭔지는 알아?”
[허가 내놨으니까. 진행하시면 됩니다.]“……허가가 났다고?”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거기가 주거 지역도 아니라 소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변 국도가 민가에 인접해 있어서 화물 차량 야간 운행이 통제되는 것도 아니죠. 안전 문제 하나 남는데, 그거야 소장님이 잘 관리하실 수 있지 않나요?]‘뭐지, 이 새끼?’
그게 될 리가 있나.
이런저런 사정에 맞춰서 법이 집행된다면 대한민국에 억울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특히나 건설법이라는 것은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라 죄 없는 사람이 전과자가 되는 상황이 흔하게 벌어진다.
그런데 허가를 냈다?
‘얼마를 찔러준 거야, 이 새끼?’
정상적으로 나올 수 있는 허가가 아니다. 허가가 날 가능성이 있었다면 이미 공사를 시작할 때 허가를 모두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허가가 떨어졌다. 그 말인즉, 정상적이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뭐, 그런 거야 아무래도 좋지 않은가.
허가가 났으면 그걸로 된 거다. 혹여 나중에 문제가 된다고 해도 박상철이야 시키는 대로 일한 것뿐이고, 벌금을 내든 징역을 살든 그건 윗대가리들의 일이니까.
그가 걸고 넘어져야 할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래도 안 돼. 인력이 없잖아, 인력이. 임금으로 쓸 수 있는 돈이 한정되어 있는데, 무슨 수로 야간 공사를 진행해? 관리자도 써야 하고, 장비 운용비도 나가잖아.”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청구하십시오.]“……어?”
[공사 기간 단축만 목표로 잡으십시오. 조금 과하다 싶은 지출이라도 승인해 드리겠습니다.]“당신 비서실이라며? 당신이 뭔데 공사 대금을 조절해?”
[그 부분은 오늘 내로 윗선을 통해서 다시 명령이 하달될 겁니다. 그러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박상철은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이게 뭐가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이 공사가 뭐 대단한 걸 짓는 거라면 이해를 해볼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 어마어마한 높이로 빌딩을 세운다든가, 인천 앞바다를 메워서 골프장을 만든다든가.
그런데 이건 그런 공사가 아니잖은가.
물론 깊은 산중에 산을 깎아서 공간을 확보하고, 거기에 대규모 주거 시설을 조성한다는 것도 정신 나간 스케일인 건 맞지만, 그 건물들이라는 게 딱히 대단할 게 없는 건물들이다.
제일 싸고 간편한 원룸형 빌라를 우르르 지어버리면 되는 일이다. 딱히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 그저 인력과 시간이 소모될 뿐.
다시 말하자면, 인력을 추가로 투입하면 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니, 그래도 이게 말이 안 되는 게…….”
박상철의 말투가 조금 공손해졌다.
“인력이 없어요, 인력이. 이 산골짜기까지 들어와서 일을 할 사람 구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여기서 야간작업할 사람을 어디서 구합니까?”
[인력은 지금 충원 중입니다.]“예?”
[곧 도착할 겁니다. 일단 1차로만 보냈습니다.]“아니…….”
박상철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 공사 현장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인력은 원하는 대로 추가 지원이 가능합니다. 다만, 뒤로 갈수록 숙련도는 떨어질 겁니다. 대신 체력은 넘쳐 나니, 마음대로 부리셔도 됩니다. 이 조건이면 기간 단축이 가능하시겠죠?]“……장비랑 시간만 마음대로 쓰게 해준다면야.”
[마음대로 쓰십시오.]“그, 그리고 우리 관리자 애들도 그럼 주야 2교대를 돌려야 하는데, 그럼 아무래도 좀 더 챙겨줘야 합니다. 그리고 관리 인력도 추가 지원해 주셔야 하구요.”
[결재 올리세요.]“……진짜 올려도 되는 겁니까?”
[그쪽 담당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곧 하달 사항 내려갈 겁니다. 그러니 비용은 신경 쓰지 마시고, 전투적으로 달려주세요. 대신 부실 공사는 안 됩니다.]“나를 뭘로 보고 그런 이야기를 하십니까. 지금이 쌍팔년대도 아니고.”
[믿겠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문제되는 사항이 있으시면 다른 데다 이야기해서 시간 끌지 마시고, 이 번호로 전화하셔서 조규민을 찾으세요. 제가 해결해 드립니다.]“……이게 뭔 일인지 모르겠네. 여튼 알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전화가 끊기자 박상철은 멍한 얼굴로 수화기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여기 뭐 북한 사람들이라도 대거 들어오나?”
공사 시작부터 뭐가 이상하기는 했다.
교통도 불편하고 사람이 살 것 같지도 않은 이런 산골짜기에 이만한 대규모 주거 시설을 만든다?
건설업에 조금만 종사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사기라고 할 것이다. 그 공사를 하는 주체가 재경건설이라 사기 소리가 안 나오는 것뿐이지.
그런데 이런 공사에 막대한 지원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려니 하려고 해도 자꾸만 입에서 ‘이게 뭐야’ 소리가 나온다.
“소장님!”
“응?”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안전모를 쓴 관리자가 뛰어 들어왔다.
“밖에 버스가 엄청 왔는데, 저거 소장님이 부르신 겁니까? 쟤들 뭡니까?”
“버스?”
박상철이 고개를 갸웃했다.
버스라니, 여기에 버스가 왜 온단 말인가.
“어?”
그때, 박상철이 뭔가 생각나는 게 있다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인력은 이미 보냈다고 했나?’
그게 도착한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처리할 수 있는 일인가? 이 산골짜기에서 일을 할 인력을 버스단위로 대절하여 보낸다? 그 사람들을 대체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보면 알겠지.’
박상철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러자 그의 눈에 줄줄이 들어오는 버스들이 보였다.
‘이게 몇 대야?’
그런데 이게 1차라고? 그럼 사람을 얼마나 더 보내겠다는 건가.
‘이 미친놈들이 피라미드라도 짓나?’
줄줄이 들어오는 버스와 끝도 없이 내리는 사람을 보고 있으려니, 피라미드를 사람이 지었다는 걸 믿게 된다.
“쟤들 중국인 같은데요?”
“야간 일 할 애들이면 조선족도 섞여 있겠지. 아니, 다 중국이라고?”
박상철이 헐, 하고 내리는 이들을 보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책임자 되십니까?”
“……예?”
박상철이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다가온 이를 바라보았다.
‘뭐야? 왜 이리 잘생겼어?’
물론 사람이 잘생긴 게 이상한 건 아니다. 그런데 저런 얼굴은 이런 곳과는 어울리지가 않는다. 버스에서 내리는 꾀죄죄한 이들과 대비되어 더욱 어색하게 느껴졌다.
“사람 필요하다고 해서 데려왔습니다.”
“아…… 아, 예. 그런데…….”
박상철이 머뭇대며 말했다. 이 사람은 뭔가 함부로 대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이 일이라는 게 속칭 노가다라 불리기는 하지만, 경험 없는 사람을 무작정 밀어 넣는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현장 경험이 있어야…….”
“그건 괜찮습니다. 다 경력자니까요.”
“예?”
“추려왔습니다. 다들 1년 이상씩은 현장 굴러본 애들이니까 편히 쓰십시오. 아, 그리고…….”
사내가 고개를 뒤로 돌려서 누군가를 불렀다. 몇몇 사람이 그 말을 듣고 부리나케 이쪽으로 달려왔다.
“조선족이 아니고 중국인이라 말이 안 통할 테니, 할 말이 있으면 얘들 통해서 하십시오. 통역할 겁니다.”
“…….”
“문제가 있으면 얘들에게 말씀하시면 제게 연락할 겁니다. 그럼.”
사내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렸다.
버스에서 우르르 내려 이쪽으로 다가오는 이들과 멀어져 가는 사내를 번갈아 보던 박상철이 저도 모르게 신음했다.
“이게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총회의 과격한 발전이 주변을 휩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