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82
#781.
잡아가다 (1)
“별일이네?”
백현정은 조금은 의아한 눈으로 아들의 방을 바라보았다.
중국에서 돌아온 이후로 아들은 조금은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굳이 백현정이 잔소리를 늘려가며 아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늘린 이유도 이 부분이 꽤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오늘, 아들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샤워를 하는 내내 콧노래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면서도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쟤가 저런 적이 잘 없는데.’
여하튼 아들내미가 기분이 좋은 듯 보이니 덩달아 백현정의 기분도 좋아졌다.
방의 문이 열리고 옷을 차려입은 강진호가 밖으로 나왔다.
“오늘도 아침부터 어디 가는 거니?”
“예.”
“밥은 먹고 갈 거지?”
“먹고 가려구요.”
“그래. 국만 끓으면 되니까 잠깐 앉아라.”
“예.”
강진호가 식탁에 앉자 강은영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흐아아암.”
기지개를 쫙 켠 강은영이 식탁에 앉아 있는 강진호를 보고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오빠, 또 나가?”
“그래.”
“오늘은 또 나갔다가 언제 들어오려고?”
“그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으응?”
강진호가 담담하게 반격을 하자, 강은영이 흠칫했다. 그러고는 지원군을 부르기 위해 백현정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백현정은 강은영의 시선을 외면하고 부엌으로 향했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그보다…… 너, 여기 와서 앉아봐.”
“……어?”
“앉아봐.”
뭔가 잘못됐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을 파악한 강은영이 도주각을 잡으려 했지만, 집 안에서 그녀가 달아날 곳은 없었다.
“여기.”
강진호가 식탁 건너편 의자를 가리키자, 강은영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얼굴로 의자에 가 앉았다.
양다리를 의자 위에 올리고 무릎을 감싼 강은영이 순진한 소처럼 눈물이 그렁그렁한 맺힌 눈을 했지만, 강진호의 강철 같은 마음은 깔끔하게 강은영의 수작질을 필터링해 냈다.
“앨범 준비 중이라고?”
“넵.”
“그래서 요즘 스케줄이 별로 없다고?”
“넵. 행사 시즌이 끝나서 재충전도 할 겸 쉬고 있습니다.”
“재충전?”
강진호의 고개가 살짝 옆으로 꺾였다.
“사람이 살다 보면 재충전을 해야 할 시기도 있지. 인정한다.”
“무, 물론입죠.”
“하지만 너는 아닌 것 같은데?”
“…….”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재충전이라는 건 소진된 걸 다시 채우는 과정을 말하지. 그리고 더 나아가기 위해서 부족한 부분을 배우는 것도 재충전의 일환이겠지. 집에 누워서 과자나 흡입하는 걸 언제부터 재충전이라고 표현했지?”
“마냥 놀지는 않았는데요…….”
“정말?”
“……네. 그냥 다 놓고 놀았습니다.”
강은영이 양손, 양발을 다 들고 자수하자 강진호가 정상을 참작해 주었다.
“쉬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네 직업의 특성상 20대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하겠지. 그렇지?”
“예.”
“처음 네가 이쪽 길로 처음 들어설 때의 마음가짐을 다시 생각해 봐라. 그때의 네가 지금의 너를 보면 뭐라고 할까?”
강은영이 살짝 생각하는 듯하다가 대답했다.
“돼지 같은 게 좀 떴다고 눈에 뵈는 게 없네.”
“…….”
“…….”
과격하구나.
우리 은영이는 그때만 해도 착하고 순수하다고만 믿었는데…….
아직까지 미묘하게 남아 있던 여동생에 대한 환상이 모두 부서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크흠!”
강진호가 입가를 훔치고는 말을 이었다.
“여하튼 놀 만큼 논 것 같으니, 이제 연습 시작해. 노래가 나와야 연습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
“네에, 네에. 그러겠습니다.”
강은영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공격을 하러 나왔다가 뭔가 시도해 보기도 전에 연타를 얻어맞은 강은영의 심정은 참담했다.
그러니 반격을 노릴 수밖에.
“오빠는 아침부터 어디 가는데?”
“네가 신경 안 써도 된다.”
“에이, 내가 동생인데…….”
강진호가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강은영을 보며 말했다.
“걱정 안 해도 된다. 내가 설마 아침부터 나가서 너처럼 놀고먹지는 않을 테니까.”
반격의 시도는 가볍게 격퇴되었다. 쭈구리가 되어 구석으로 처박힌 강은영을 보며 백현정이 웃는 얼굴로 국을 가져왔다.
“그래. 너 좀 심하기는 했어.”
“엄마!”
“말이야 바른말이지, 너무 놀고먹잖아. 엄마가 네가 알아서 하겠지 싶어서 입을 닫고 있었는데, 너 너무 놀았다. 요즘 보니까 배도 자꾸 나오더라?”
“헐…….”
강은영이 양손으로 자신의 배를 가렸다.
“이건 자연의 섭리야, 엄마.”
“엄마는 좋지. 우리 딸내미가 해골바가지처럼 말라붙어 있는 것보다는 훨씬 좋지. 그런데 그게 너한테도 좋을까는 잘 모르겠다.”
“그냥 싫다고 해.”
그때, 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식탁으로 걸어왔다.
“오늘은 아침부터 뭔가 활기찬데?”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 아들. 요즘 얼굴 보기가 힘든 것 같다?”
“할 일이 많아서요.”
“그래?”
강유환이 가만히 강진호의 앞에 앉더니 입을 열었다.
“바쁠 가치가 있는 일이겠지?”
“예.”
“그럼 됐지, 뭐.”
강은영의 볼이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여기서 딴지를 걸기에는 강진호가 무슨 말을 할까 무섭다.
“뭐든 열심히 하면 되는 거다. 물론 나는 네가 카페에 잘 나와주지 않아 매출이 줄어들고 있어서 좀 그렇지만…….”
“그게 왜 얘 탓이에요. 주인이 무능해서 그렇지!”
아버지가 작게 속삭였다.
“이래서 무섭다고, 이래서.”
강진호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뭐든 잘 알아서 하고 있다고 믿는다. 굳이 무슨 일을 하는지 묻지 않을 테니, 열심히 해라.”
“예, 아버지.”
“먹자.”
강진호가 숟가락을 들었다.
오랜만에 편하게 밥을 먹는 느낌이다.
부우우웅!
액셀을 밟으면 밟는 대로 나가는 느낌.
이 감각도 꽤나 오랜만이었다. 처음 붕붕이를 몰았을 때 느낀 그 즐거움을 최근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았는가.
‘사람이란 건 무뎌지는군.’
예전에는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사람이 초심을 유지하는 게 어려운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계속 먹으면 물리고, 즐거운 일도 계속하다 보면 지겨워지는 게 사람이니까. 아무리 확고부동한 목표와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사실을 계속 상기시키며 꾸준히 나아가는 것은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중간중간 다잡는 과정이 필요하다.
강진호는 그 사실을 가슴에 새기며 액셀을 밟았다.
부우우우우웅!
엔진 소리가 높아지는 순간!
“아차…….”
강진호가 조용히 액셀에서 발을 뗐다.
규정 속도를 중시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다. 생각 없이 밟았다가 집으로 날아오는 과속 통지서에 어머니가 불을 뿜지 않았던가.
한 번만 더 생각 없이 과속하고 다니면 저놈의 차를 장난감 가게에 팔아버릴 거라고 엄포를 놓으셨다.
물론 그 모든 것은 자식 놈이 차를 몰고 과속을 하다가 혹시 사고라도 날까 싶은 드높은 어버이의 마음이겠지만…….
‘장난감 가게라니…….’
붕붕이가 들었으면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이탈리아 장인이 공들여 만든 이 차를 장난감 가게에 팔겠다니. 하긴 장난감처럼 생기기는 했지만.
강진호가 규정 속도를 준수하며 차를 조심히 몰아 총회로 들어가는 산에 진입했다.
부우우웅.
붕붕이는 바로 총회로 향하지 않고 샛길로 접어들었다. 조금 더 산을 타고 들어가자 다져진 땅과 그 땅을 가로막고 있는 철제 벽들이 보인다. 강진호는 입구에 멈춰 세우고는 차에서 내렸다.
조금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그를 발견한 현장 소장 박상철이 부리나케 이쪽으로 뛰어왔다.
“오셨습니까!”
강진호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또 이상한 소리를 늘어놨군.’
조규민이 무슨 짓을 했는지, 강진호를 대하는 박상철의 태도과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별문제는 없나요?”
“예, 문제없습니다! 지금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력 문제는요? 추가로 더 필요하다거나?”
“아닙니다.”
박상철이 고개를 내저었다.
“사람만 많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되레 너무 많으면 관리가 안 되고, 동선이 겹칩니다. 최적으로 인력을 분배해서 일을 하고 있으니, 믿고 맡겨주십시오!”
믿고 맡겨달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일은 곧잘 하나요?”
“예. 다들 힘이 너무 좋습니다. 힘도 힘이지만, 어디서 좀 배운 사람들도 많아서 기술직도 충분합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사 붐이라면야 한국보다 중국이 더하다. 아무리 뒤처리가 전문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일들이 매번 있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는 노느니 인력시장이라도 도는 경우가 많았다. 그곳에서 단련된 기술이 여기서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완공 예정은요?”
“주야로 돌리고는 있지만, 그래도 반년 정도는 걸립니다.”
“반년?”
“예.”
강진호가 눈가를 긁으며 말했다.
“더 당길 수는 없습니까?”
박상철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도 최대로 당긴 겁니다. 호수가 너무 많습니다. 차라리 일천 세대짜리 고층 아파트를 짓는 일이었으면 이만큼 시간이 걸리지 않았겠지만, 이 지대는 건물을 높이 올릴 수가 없습니다.”
“음…….”
“게다가 여기에 사람만 들어온다고 끝이 아니잖습니까. 이만한 숫자가 살게 되면 그걸로 벌써 마을입니다. 도로 정비하고, 수도 까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닌지라…….”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해는 하는데, 그렇다 해서 이 인력을 계속 여기에 쓸 수는 없어요. 아마 한두 달 내로는 다른 인력을 구해야 할 겁니다.”
“시간을 그만큼 주신다면 인력은 대체 가능합니다.”
“예, 그럼.”
강진호가 자재를 나르고 있는 마인들을 보며 몸을 돌렸다.
‘이런 데다 쓰기는 고급 인력들이지.’
이제는 더 이상 망설일 게 없다. 그의 힘이 부족하다면 부족한 만큼 다른 이들이 성장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마인들은 그가 생각하는 성장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이들이다.
다시 붕붕이에 올라타고 총회로 향하는 강진호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을 거야.’
협정을 맺고 시간을 벌었다고는 하지만, 그깟 협정 따위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다. 얼마나 많은 협정들이 필요에 의해 무시되었는지 강진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믿어야 할 것은 협정서에 쓰여진 기간과 사인이 아니라 힘이다.
그들의 힘이 강하다면 저들이 감히 이곳을 침탈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지금처럼은 안 돼.’
그저 자신이 앞서 나가고 적당한 이들이 따라오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제 강진호는 뒤처지는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필이면 그 배움의 실험체가 되어야 한다는 게 마인들의 불행이었지만 말이다.
여러 가지 생각을 머릿속에 품은 강진호가 총회의 마당에 차를 대고는 건물로 올라갔다. 회주 집무실까지 올라간 강진호가 발걸음을 멈췄다.
‘뭐지?’
뭔가 북적이는 느낌이 든다. 최근 들어 회주실이 북적이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지만, 오늘은 그 수가 더 많은 것 같았다.
거침없이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본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왔나?”
“예! 왔습니다, 회주님.”
이명환들이 그를 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