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83
#782.
잡아가다 (2)
중앙에 마련되어 있는 소파의 좌우로 홍왕계에 억류되었던 마염들이 도열해 있었다. 강진호는 비어 있는 소파의 상석으로 향했다.
강진호가 자리에 앉자 이명환이 바로 담배를 꺼냈다. 강진호가 공손히 내민 담배를 받아 입에 물자, 이명환이 불을 붙였다.
“후우.”
가볍게 담배를 빨아들인 강진호가 천천히 연기를 내뿜었다.
“고생 많았다.”
“고생이랄 게 별로 없었습니다.”
이명환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었다.
이 말을 고생한 사람이 하면 정말 멋이 있을 것 같은데, 이명환은 정말로 고생한 것이 없었다.
“그래?”
“예. 그 홍왕인가 뭔가 하는 양반이 열이 받아서 날뛰던 것까지는 생각이 납니다. 그러고 그 양반이 덮쳐 온다 싶어서 그냥 뭐 정신을 잃었죠.”
“반항도 못해보고?”
“반항은 무슨 반항입니까. 곱게 죽어야죠.”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이명환도 마주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의식을 잃었다가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호텔방이더라구요.”
“몸은 멀쩡하고?”
“네. 너무 멀쩡해서 이쪽이 되레 좀 불안할 정도였습니다. 여튼 그 뒤로는 쭉 억류되어 있었습니다. 밥도 뭐 나름 잘 나오고, 따신 물도 잘 나오고, 불만이 있을 수 없는 환경이라…….”
이명환이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물론 이 시커먼 놈들이랑 같이 방을 쓴다는 게 지옥 같기는 했지만요.”
“이해한다.”
강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보여주기 위한 웃음이 아니다. 자꾸만 절로 웃음이 나왔다.
어쩔 수 없이 놓아야만 한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살아 돌아와 그의 앞에 앉아 있다는 것이 강진호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나도 욕심이 많군.’
이들마저 놓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가볍게 웃어버린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여하튼 고생 많았다.”
“아닙니다. 저희가 한 게 없잖습니까.”
“한 게 없다고?”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모두와 한 번씩 똑똑히 눈을 맞췄다.
“덕분에 살았다.”
“…….”
“모양 빠지는 일이긴 하지만, 덕분에 살았다. 고맙다.”
강진호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이명환은 그 광경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결코 숙여질 거라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강진호의 고개다. 그 머리가 다른 이들도 아니라 그들을 향해 숙여지고 있는 것이다.
이명환은 자신의 무릎을 움켜잡았다.
포상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다. 그도 사람이니까. 나름 공을 세웠으니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건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지 마십시오.”
이명환이 당황하여 소리치듯 말했다.
“정말 모양 빠지니까요.”
“그런가?”
강진호가 고개를 들고는 빙그레 웃었다.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걸 위해서 익힌 무학이구요. 설사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고 해도,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을 겁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상 감사를 표하는 건 이들에 대한 모독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저희가 살아 돌아와서 속이 타는 양반도 있는 모양이더군요.”
“설마 그렇게까지.”
“좀 떨떠름해하던데…….”
강진호와 이명환이 마주 보고 웃었다.
이현수의 속이야 좀 타겠지.
“일단은 쉬도록 해.”
“예, 회주님.”
이명환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막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강진호가 이명환을 불렀다.
“아, 그리고…….”
“예!”
이명환이 몸을 빙글 돌려 허리를 세우자 강진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빨리 쉬어둬.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빡센 겁니까?”
“쉽지는 않을 거야.”
“정말 사람 막 부려 먹으시네요.”
“앞으로 그게 내 특기가 될 거야.”
이명환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강진호는 가만히 그들이 나간 문을 바라보다가 눈가를 주물렀다.
마음에 큰 짐 하나를 덜어낸 기분이었다.
한참 동안 문을 바라보던 강진호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장민 데리고 들어와.”
“마존이시여! 속하, 부름에 응하였나이다!”
“…….”
강진호의 볼이 살짝 떨렸다.
고개를 들어 이현수를 바라보자, 그도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안 고쳐집니다.”
“큰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끔찍한 일이기는 하군.”
저 말투를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강진호가 머리를 긁었다.
“여하튼 그래. 일단 앉지.”
“예.”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강진호가 이현수를 보며 말했다.
“전력 강화가 필요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장기적으로 보긴 힘들어.”
“저들이 무작정 기다려 주지는 않을 테니까요.”
이현수는 강진호의 생각을 정확하게 읽고 있었다.
“얌전할 것 같나?”
“그런 걸 바라는 건 무립니다. 앞으로는 몰라도 뒤로는 온갖 수작을 다 부릴 겁니다. 이미 대비도 하고 있습니다.”
“흠…….”
강진호가 생각을 정리하고는 말했다.
“얼마나 참을 것 같지?”
“상황에 따라 다를 겁니다. 저들이 지금 우리와 날을 세우지 않는 이유는 전적으로 다른 삼왕계의 움직임에 기반하고 있으니까요.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예상은?”
“길면 2년의 기간을 모두 채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반년 정도를 보고 있습니다.”
“반년이라…….”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하던 시간과 거의 동일하다.
“반년 내에 가장 확실하게 무학을 높일 수 있는 이들은 교의 아이들이다.”
“예.”
이현수도 그 말에 동의했다.
이미 마염들이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강해졌는지 이현수는 그 두 눈으로 목격했다. 이 어마어마한 장점을 활용하지 않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다만 한 가지…….
“그런데 회주님.”
“음?”
“마공의 부작용은 없습니까?”
“있지.”
강진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폭력적이 되고, 충동에 휩쓸린다.”
“저 녀석들 정도로 말입니까?”
“아마 저들보다 마교의 교도들이 배는 더 심할 거다.”
이현수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럼 통제의 문제가…….”
“발생하겠지.”
강진호도 생각한 부분이다. 제로베이스에서 강진호가 엄선한 정순한 마공을 익힌 이들은 부작용을 최소화시킬 수 있지만, 저급하기 짝이 없는 마공에 찌들어 버린 저들은 어떤 결과가 나올지 강진호로서도 확신할 수 없었다.
최대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가겠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마공을 전하지 않은 것만 못해질 것이다.
“빠르게 강해지려면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이현수도 강진호의 말에 동의했다. 극단적으로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모험을 해야 한다. 리스크를 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겠지만, 지금 그들은 그 선택을 취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다소의 리스크를 안고 가는 수밖에 없다.
“수가 많습니다. 방식은 어찌하실…….”
“가르쳐야 할 소수를 내가 먼저 가르치고, 그들이 다시 교관이 되는 방식을 써야겠지.”
“장로들을 모두 동원한다고 해도 한 사람당 가르쳐야 할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장로가 아니다.”
“예?”
“마염들을 쓴다.”
이현수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어쩌면 합리적인 방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들이 그걸 받아들이겠습니까?”
“…….”
“물론 마염들은 마공을 익혔고, 저 어중이떠중이들보다 훨씬 강할 겁니다. 장로들과도 충분히 맞상대가 가능할 것이고,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장로들 따위는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겠지요. 하지만…… 결국 그들은 외부인이고, 한국인입니다. 그들의 말을 순순히 따르겠습니까?”
“따르게 만드는 방법 따위는 수도 없이 많지.”
그 한마디로 이현수는 납득했다.
강진호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하지만 굳이 따라오라고 악을 쓸 필요는 없겠지. 수가 너무 많은 것도 좋지 않아. 따르려는 이들만 챙긴다. 선택하고 집중해야겠지.”
“그 방향이 좋아 보입니다.”
이현수가 뭔가 말을 하려다 머뭇댔다. 강진호는 그런 이현수의 기색을 눈치채고는 가만히 기다렸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이현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나 물어도 되겠습니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현수가 살짝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마염들은 원래 정공을 익히다가 마공을 익혔잖습니까.”
“그런데?”
“그게 모두에게 가능한 겁니까?”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는데? 모두?”
“그러니까…… 그게 무위나 이런 것과 관계가 없냐는 뜻입니다. 그들은 수준이 낮아서 그게 가능했지만, 수준이 높아진다면 어렵다든가.”
“영향은 있지.”
“……역시.”
이현수가 살짝 실망한 듯했지만, 이어진 강진호의 다음 말이 반색하게 했다.
“하지만 익히지 못할 것은 없다. 효과도 충분히 보겠지.”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하다니까.”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원래 마공은 교도들에게 주어지는 무학이다. 그리고 종교는 전파가 일차 목적이지. 정공을 익히던 이가 마교에 투신했는데 마공을 익힐 수 없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마공은 다른 무학을 녹여내는 것을 기본으로 만들어졌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어차피 그런 특이한 마공이나 최상위의 마공들은 전파할 만한 것이 아니니 상관없었다.
“그런데 왜?”
“아…….”
“한 번 익혀보려고?”
이현수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딱히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시도를 해볼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지금 제가 마공을 익힌다고 해서 딱히 전력이 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따로 배우는 것도 있구요.”
“흠, 그럼?”
이현수가 씨익 웃었다.
“제가 아니라 다른 분이 마공을 익혀보고 싶어 하시더군요.”
“다른?”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다른 사람이 마공을 익힌다? 딱히 그럴 만한 사람이…….
“누군데?”
“나다, 주인.”
문이 벌컥 열리며 거대한 덩치가 안으로…….
쿠웅!
들어오다가 천장에 머리를 박았다.
삐그덕거리듯 아래로 숙여진 머리가 오만상을 찌푸린다.
“여긴 왜 이렇게 낮은가.”
네가 큰 거겠지.
강진호는 그 상황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라고?”
“그렇다.”
“마공을 익혀보고 싶다고?”
“그렇다. 안 될 이유가 있는가?”
안 될 이유야 없지.
강진호에게는 없다. 하지만 바토르에게는 있을 텐데…….
“너는 마공을 혐오하지 않았나?”
“내가 혐오한 것은 마공이 아니라 마인이다.”
그게 그거지.
그게 뭐가 다른가.
바토르가 눈썹을 씰룩이며 말했다.
“주인, 나는 인정했다.”
“뭘?”
“이대로라면 나는 평생을 가도 홍왕에게 미치지 못한다.”
“…….”
“나는 초원의 전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누구라도 꺾을 수 있을 만큼 강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인정해야 한다. 나의 나이는 적지 않고, 적들은 강대하다. 지금까지 해오던 식이라면 나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패배자로 남게 되겠지.”
바토르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소리치듯 말했다.
“돌파구가 있다면 주저할 이유가 없다. 마공을 익혀서 강해질 수 있다면, 마공을 익힐 것이다. 다리를 잘라내 강해질 수 있다면, 다리를 자를 것이다. 대답해 다오, 주인! 나는 강해질 수 있는가!”
강진호를 바라보는 바토르의 눈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 눈을 보며 적당한 대답을 할 수는 없다.
강진호는 바토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
“강해질 것이다.”
바토르의 커다란 입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