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85
#784.
잡아가다 (4)
인간은 언제 자신감을 얻는가.
보통은 두 가지 중 하나다.
인정을 받았을 때와 업적을 이뤘을 때.
인간은 객관적이지 못한 동물이다. 특히나 인간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아무리 객관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을 바라볼 때는 보정이 가해진다.
거울 앞에 선 남자는 ‘이만하면 나도 괜찮지’를 외치기 마련 아닌가.
실제로 다른 이들이 보는 그의 얼굴이 오징어와 진배없다고 해도 자신이 오징어와 동격으로 생겼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스스로는 보는 눈에는 언제나 필터가 끼워져 있으니까.
그렇기에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아닌, 타인의 평가가 중요하다.
주변인들이 어떤 이를 지속적으로 대단하다고 인정한다면?
그리고 그 인정하는 이의 수가 많다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어떤 이들은 그 자신감을 표출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어색한 웃음 속에 흘러나오는 자신감을 감추려 하겠지만, 대응의 방식과는 차이 없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감으로 넘쳐 나게 될 것이다.
또는 그 누구도 감히 부정할 수 없는 업적을 쌓아 올리는 방법도 있다.
업적에는 감정이 끼어들 여지가 없으니까.
아무리 싫어하는 이가 쌓은 업적이라 해도 사람을 폄하할 수는 있을지언정, 업적을 폄하할 방법은 없다. 대단한 것은 대단한 거니까.
누구에게도 자랑스레 내세울 수 있는 업적을 쌓아 올린 이들은 굳이 타인의 인정이 없더라도 스스로에게 자신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명환은 최근 이 두 가지를 모두 이룬 상태였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회주에게까지 인정을 받았다. 총회에서 가장 깐깐하다고 할 수 있는 이현수조차 그를 신뢰하며 중책을 맡겼다.
총회를 모조리 뒤진다 해도 이 짧은 기간 동안 그만큼 급격하게 인정을 받은 이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업적도 어마어마한 걸로 쌓아 올렸다. 총회에서 세울 수 있는 공이야 수도 없다. 영업장을 늘려 매출을 올리는 것도 공일 테고, 수련을 죽도록 해서 강해지는 것 역시 공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공도 회주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냈다는 공에 비견될 수는 없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굉장하다고 할 수 있는 업적이다. 그런데 구해낸 대상이 무려 그 강진호가 아닌가. 이건 정말 대업적이었다.
인정을 받고, 업적을 쌓았다. 그러니 자신감이 하늘 끝까지 승천하는 것도 당연했다.
물론 이 자신감은 정당한 것이었다.
총회의 누구도 이명환을 나무랄 수 없을 것이다. 이명환은 그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여 당당히 강진호의 제자로 들어갔다. 그런 후, 짧은 시간 내에 어마어마한 무위를 쌓아 올렸다.
그 흉포한 마염들의 수장을 맡고 있는데다, 충분한 업적까지 있다. 그러니 이명환이 거드름을 떤다고 해도 불만을 가질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아니, 그래야 했는데…….
“나는 아니야.”
‘저는 찍소리도 하지 않았는데요?’
이명환은 자신의 얼굴 앞에 바짝 들이밀고 있는 바토르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동시에 떠올렸다.
이 머리가 지금 가까워서 이렇게 커 보이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거대하기 짝이 없어서 이리 커 보이는 것인가.
물론 후자겠지.
그게 아니면 그의 멱살을 틀어쥔 이 주먹까지 이리 크지는 않을 테니까.
“이명환.”
“예!”
“이명환.”
“예!”
바토르의 얼굴이 뒤틀린다.
코와 입 사이가 살짝 조여지고, 눈이 아래로 내려가고, 광대가 승천한다. 보통은 ‘찡그린다’고 말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이명환은 이 표정을 그리 말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이명환은 같은 표정도 주체에 따라서 설명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바로 앞에서 사자가 얼굴을 찡그리면 그 표정을 찡그린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못 그러겠지.
남들에게는 별것 아닌 표정이 바토르의 얼굴에서 이루어지자, 그건 그 어떤 것보다 두려운 위협이 되었다. 이명환은 자신도 모르게 오금을 조였다. 그러지 않으면 뭔가 흘러나올 것 같다.
“아주 기세가 올랐구만?”
이명환이 슬쩍 눈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바토르 옆에 선 장다징이 아주 부드러운 얼굴과 목소리로 통역을 해준다.
‘저 새끼가 더 얄미워.’
저 부드러운 목소리의 괴리가 너무 심하다. 지하철 안내 방송에서 ‘무임승차하는 새끼들은 대가리를 쪼개 버리겠다’라는 말이 더없이 부드러운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느낌이다.
“나약해 빠진 놈들이 뭣 좀 했다고 여름 마당의 개들처럼 늘어져서는 말이야. 이딴 정신머리로 주인의 가르침을 받겠다고? 이 건방진 놈들!”
통역을 들으며 이명환이 자신도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
오늘 한 가지 사실이 더 증명됐다.
뭐?
마공을 익힌 이들은 폭력성이 증가한다고?
개소리하고 있네.
이곳에 지금 마인들이 백 넘게 몰려 있지만, 그 누구도 폭력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천연 분노 조절 장애 치료제가 눈앞에 있으니까.
바토르는 무척이나 실력이 좋은 의사였다.
별것도 아닌 일에 자꾸 혈기가 치솟아 오르고, 사소한 일에 살인 충동까지 느낀다며 고충을 호소해 오던 마염들은 지금 말 잘 듣는 유치원생들처럼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정자세를 잡고 있었다.
자대에 막 배치된 신병들도 이렇게 각 잡힌 자세를 유지하진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토르는 정말 훌륭한 실력을 가진 의사라고 할 수 있었다. 딱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면…….
‘선생님이 과잉 진료를 하시네.’
채 분노를 드러내지도 않았는데(그럴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만), 선행 치료를 받고 벽에 처박혀 있는 이들이 있었다. 물론 저들은 앞으로 화를 낼 때 삼백이십 번쯤 다시 고민하고 화를 내는 훌륭한 환자들이 되겠지만…….
뭐랄까, 언제 부러질지 모르니 미리 뼈를 으스러뜨리고 다시 붙여서 뼈를 튼튼하게 만드는 치료를 보는 느낌이랄까?
결과야 확실하겠지! 결과야!
“눈알을 굴려?”
이명환의 눈이 전방으로 고정되었다.
간이 부어도 제대로 부은 모양이다. 지금 그의 멱살을 잡고 있는 이가 누구라고 감히 다른 생각을 한단 말인가. 이명환은 바토르에게 최대한 정신을 집중했다.
“너희는 주인…… 아니, 회주님의 친위대다. 그 말인즉슨, 너희는 회주님의 최측근에서 그분을 보호해야 하는 입장이라는 것이지. 그런데…… 너희가 회주님을 보호해?”
‘그건 저도 무척 황당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용이 미꾸라지의 보호를 받는 쪽이 조금 더 현실성이 있다. 말이 친위대이지, 마염들은 지금 강진호의 심부름꾼 이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뭘 했다고 벌써 기고만장해서 대충대충 수련을 하고 있지?”
자신감?
아, 그래. 그런 게 넘치던 때도 있던 것 같다. 아마 저 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이었던가? 그때는 이명환에게도 쥐꼬리만 한 자신감이 존재했다.
하지만 바토르란 탈곡기는 이명환의 자신감을 낱알처럼 탈탈 털어버리고 있었다.
“너희에게 기쁜 소식이 있다.”
바토르가 씨익 웃었다.
“너희는 회주의 친위대다. 친위대라는 건 최측근에서 회주를 보좌하는 이들을 뜻하지. 그리고 그 말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 총회에 단 한 명 있지. 누구일 것 같으냐?”
바토르 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가 한 명 있습니다.
하지만 살면서 단 한 번도 이토록 제 생각이 틀렸으면 좋겠다고 빌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바로 나다!”
그게 안 틀리네, 그게.
카, 거참.
“기뻐해라, 이 쓰레기들아. 오늘부로 내가 너희를 맡아 진정한 전사로 거듭나게 해주겠다.”
몸을 부르르 떤 이명환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바, 바토르 님.”
“뭐지?”
“바토르 님께는 제자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희까지 가르치신다구요.”
“누가 가르친다고 했나?”
“……예?”
“나는 너희를 가르치지 않는다. 나는 너희를 전사로 만든다고 했다. 너희 머릿속에 차 있는 그 썩은 정신머리를 쫘악 뽑아내 깨끗하게 탈색시켜 주겠다.”
허허.
허허허…….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
이명환은 지금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왜 바토르가 굳이 이곳으로 쳐들어와 자신들을 털어 댄단 말인가. 아무리 바토르가 총회 내에서 대적할 자가 없을 만큼 절대적 권한을 휘두른다고는 하나, 그들은 강진호 직속의 친위대였다.
아무리 바토르라 하더라도 이럴 권리가 없다.
‘분명 이론상으로는 그런데…….’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웠다. 할 말이 있다고 다 하다 보면 강냉이가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아직 이명환은 고기를 제 이로 씹어 삼키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복창해라! 나는 쓰레기다!”
“나, 나는 쓰레기다!”
“더 크게!”
“나는 쓰레기다!”
바토르가 흡족하게 웃었다.
“좋아, 그런 정신으로 임하도록. 너희에게 주인의 무학은 너무도 과분하다. 과분한 무학을 익히게 된 행운아들이 배를 내밀고 다닌다면, 그보다 꼴같잖은 모습이 없지. 나는 노력하는 자들을 우대하고, 건방진 자들에게는 그 대가를 내릴 것이다. 알았나?”
“예!”
뭔가 서러움에 눈물이 나려는 순간…….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문 뒤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회, 회주님!”
“주군!”
“보스!”
“혀어어엉!”
형 누구야.
분위기 파악 못한 새끼 누구야.
마염들이 동네 불량배에게 걸려 얻어맞다가 지나가는 아빠를 본 아이처럼 서러움과 기대감을 잔뜩 담아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강진호라면 반드시 바토르에게 한 소리 해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강진호의 미간이 순식간에 좁혀졌다. 저 사람의 얼굴이 저만큼 변한다는 것은 분명 크게 기분이 상했다는 뜻이다. 이명환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벽에 처박혀 있는 마염들과 부동자세를 풀지 못하는 마염들, 그리고 바토르의 손에 틀어잡혀 있는 이명환까지 확인한 강진호가 굳은 얼굴로 바토르를 바라보았다.
‘살았다.’
이명환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왔다. 얼마 전, 강진호는 그에게 고맙다고 고개까지 숙였다. 그런 이가 이런 꼴을 당하는 모습을 순순히 지켜볼 리가 없다.
“바토르.”
“말하라, 주인.”
“서 있는 사람이 있군.”
“…….”
“제대로 처리하라고 했을 텐데.”
“……내가 물렀던 모양이다. 주인, 한 번만 더 기회를…….”
뭐지?
대화가 뭐 어찌 흘러가는 거지?
이명환은 급격한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폭력…… 아니, 눈을 뒤룩뒤룩 굴렸다.
“조금 뒤에 다시 오지. 제대로 해라.”
“알겠다!”
강진호가 스르륵 뒤로 물러났다. 이명환은 자신도 모르게 문워크로 멀어지는 강진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끼이이익.
하지만 문은 속절없이 닫혔다. 그와 동시에 이명환은 보았다. 문을 닫기 전, 강진호가 그를 보며 빙그레 웃는 것을 말이다.
“…….”
이명환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닫힌 문만을 바라보고 있을 때, 바토르의 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을 잘못한 모양이군. 회주께서는 더 확고한 변화를 원하신다!”
“…….”
“일단 내가 너희에게 지금 너희의 수준을 알려주겠다. 몸으로 받아들이고 느껴라!”
그거, 그냥 패겠다는 뜻 아닙니까?
물어보고 싶었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미 몸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라 풍차처럼 돌려지고 있는 이명환으로서는 바닥에 처박힐 때 혀라도 깨물지 않기 위해 입을 꾹 다무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 저 새끼도 마인이었지.’
목숨 바친 충성의 대가가 너무도 화끈하게 돌아오고 있었다. 길게 흘러나온 이명환의 눈물이 허공으로 서글프게 흩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