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88
#787.
창안하다 (2)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나 방진훈에게는 그 의미가 나름 각별한 면이 있었다.
물론 그라고 해서 어린 시절이 존재하지 않을 리는 없다. 아직 홀로 무언가를 할 수 없던 나이에 방진훈은 수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부모에게 의지하기도 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홀로 결정할 나이가 된 이후부터 방진훈은 오로지 홀로 서는 데 최선을 다했다.
지금 돌이켜 보자면 조금은 색이 바란 느낌도 있지만, 방진훈의 노력은 분명 충분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성공한 인생이다.
바닥에서 시작해서 총회의 높은 지위까지 올라갔고, 강진호의 등장 이전에 그 이중걸과 대등한 세력을 만들어내는 데도 성공했다.
강진호가 없었다면 승부의 결과가 어찌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설사 이중걸에게 패했다 하더라도 바닥에서 거기까지 올라간 방진훈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방진훈 스스로는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그가 홀로 해낸 업적은 적지 않다. 하지만 그를 도와줄 사람이라든가, 이끌어줄 사람이 하나 있었다면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진호가 도움을 준다는 것은 방진훈에게는 커다란 기회였다.
자신보다 뛰어난 이의 도움, 혹은 가르침을 받으며 무언가를 진행해 본 경험이 없는 방진훈은 은근한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게다가 강진호의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만류귀종.
피아노만을 평생 쳐온 사람이라고 해도, 피아노에 더없이 정통한 수준에 올랐다면 다른 악기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독주가 아니라 합주를 해야 했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강진호의 말대로라면 그는 정공을 익힌 적이 있다. 하지만 설사 강진호가 처음부터 마공만 익혔다 하더라도 결국 방진훈은 강진호의 도움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강진호는 평생을 정파인들과 싸워왔다.
그 말인즉슨, 평생을 어떻게야 정공을 효율적으로 격파할 수 있는지 연구해 왔다는 말이다. 강진호의 정공에 대한 이해도는 웬만한 종사급을 능가한다.
그러니 당연히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강진호가 도와주기만 한다면 총회, 아니, 한국이 단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최상의 무학을 창안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었는데…….’
방진훈의 볼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의 옆에서는 강진호가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기서 한 발을 왜 더 나갑니까?”
“그래야 대가리를 쪼개 버릴 수 있으니까.”
“그럼 허리가 비는데요?”
“갈비뼈 몇 개 주고 머리를 깨버리면 이득 아닌가?”
“갈비뼈만 나간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칼 들었으면 허리가 잘릴 판인데?”
“그럼 더 빨리 쪼개 버리면 되지 않을까?”
“…….”
방진훈의 까칠하게 자라난 수염들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 새끼, 미쳤어.’
불경스럽기 짝이 없는 생각이다. 하지만 방진훈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방진훈은 평소 단순히 겉으로만 보이는 예의보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예의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강진호에게 회주 자리를 넘겨주고 이사의 직위로 영전한 이후부터 강진호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단순히 지위 때문에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다. 진정 강진호가 총회를 이끌어갈 회주라 인정하고 존경하기에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아니, 같이 죽으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더 빠르게 치면 이쪽은 덜 다친다니까.”
“안 다치는 방법은 없습니까?”
“살도 내주지 않고 어떻게 뼈를 치지? 비효율적인 생각이다.”
“돌았…….”
뭐라 말하려던 방진훈이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굳건한 강진호의 반응을 보고 있으면 알 수 있다. 이건 그냥 허세로 하는 말이 아니다. 이 인간은 정말로 그리 생각하고 있고, 그 생각을 실천하며 살아왔다.
그 사실을 알고 나자 새삼스레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 양반이 어떻게 아직 살아 있지?’
죽어야지.
아니, 인간아. 양심이 있으면 죽어야지.
이딴 생각으로 전장을 헤쳐 왔는데 아직까지 살아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죽었어야지. 안 죽었으면 최소한 팔다리 하나는 없어야지!
방진훈은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강진호의 삶은 이러하다.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로 검을 휘둘러 온다면?
보통은 어떻게 대응하겠는가.
일반적으로 뇌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둘 중 하나를 택한다. 일단 막거나 뒤로 물러나거나.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는 취향과 성향의 차이다.
하지만 강진호가 내놓는 답은 전혀 달랐다.
“한 발 앞으로 밀고 들어가 상대가 노리는 지점을 뒤틀고, 그 틈에 상대의 목을 딴다.”
‘뭔 개소리야, 이게!’
그런 식으로면 세상에 못할 게 뭐가 있는가. 그게 안 되니까 방어를 하는 거다.
이 양반은 마공을 익혀서 마인이 아니다.
처음부터 그랬는지, 아니면 마공을 깊게 익혀서 뇌가 마기에 완전히 절어 버렸는지는 지금에 와서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확실한 것은 이 양반이 이제부터 마공을 다 버리고 정공을 익힌다고 해도 전투 방식이 조금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뭐, 좋다.
그럴 수도 있다. 그게 강진호니까.
문제는 그 강진호의 방식이 지금 창안하고 있는 무공에 자꾸 스며들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회주님.”
“음?”
“……저는 지금 총회의 무학을 만들고 있는데 말입니다.”
“알고 있는데?”
“제 생각입니다만…… 회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방향을 잡아가면 무학이 완성되는 순간, 총회가 마회나 혈회 정도로 이름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만.”
“…….”
방진훈의 이글거리는 눈을 본 강진호가 헛기침을 했다.
“그 정도나?”
“그 정도나가 아닙니다!”
방진훈이 불을 뿜었다.
“정공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하시더니, 이게 뭡니까! 이건 정공을 베이스로 한 마공 아닙니까!”
강진호가 불만 어린 얼굴을 했다.
“베이스가 전혀 다른데.”
“칼로 후려치나, 도끼로 내려찍으나!”
“다른데…….”
속이 터진다.
속이 터져.
방진훈은 끓어오르는 노화를 억지로 내리눌렀다. 성질 같아서는 소리를 버럭 질러 버리고…… 아니, 이미 여러 번 지른 것 같지만, 여하튼 진정해야 한다.
“제가 만들고 싶은 건 정공이란 말입니다.”
“정공이란 게 뭔데?”
“예?”
강진호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네가 말하는 정공이라는 것의 기준이 뭔데? 기본적이고 안정적인 내력을 바탕으로 운영하는 모든 종류의 무학은 정공이라는 이름으로 통칭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와, 거기까지 가버리나?”
방진훈이 질린 얼굴로 슬쩍 뒤로 물러났다.
여기서 어설프게 말을 섞었다가는 정공이란 무엇인가를 밤새도록 토론하게 생겼다.
“저, 저는 그런 걸 잘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회주님이 가는 방향이 총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총회가 추구하는 방향이라는 게 뭐지?”
“그야…….”
방진훈이 입을 다물었다.
방향?
그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가.
그의 머릿속에 만들어내려 하는 무학의 방향은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뜬구름을 잡는 것처럼 모호한 그 무언가.
“그걸 정확하게 말씀드리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향은 아닙니다.”
“어째서?”
“이건 총회가 그동안 해오던 방향이 아니니까요.”
강진호가 가만히 방진훈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이건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만…….”
“……예?”
“전통을 지키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들이 있다만, 실제 선조들은 딱히 그런 걸 원하지 않아.”
방진훈의 눈이 의문을 담았다.
“원하지 않는다구요?”
“그럴 수밖에.”
강진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언제나 더 나은 것을 원하니까. 과거를 뒤쫓는 이들은 발전하지 않아. 만들어내는 자들은 언제나 과거에 미련을 버린 이들이지. 새로운 학문, 새로운 유파, 그리고 새로운 생활……. 그건 언제나 과거와 선을 그은 자들의 손에서 나오는 법이야.”
방진훈의 몸이 떨린다.
강진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방 이사가 지금 재료 삼아 보고 있는 무학을 만든 이들은 언제나 이전보다 나은 무언가를 바라던 이들이야. 과거와 다른 혁신적인 무언가를 만들려고 한 사람들이지. 하지만 그걸 받아들인 이들은 과거의 무학을 교전 삼아 그저 따르라고 가르치지. 거기서부터 벌써 어긋난 거야.”
가르치는 이들은 따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의 가르침의 근본이 되는 창안자들은 뛰어넘으라 말한다.
어느 쪽이 옳은 것인가.
“시대는 이미 증명했지. 소림의 무승은 무에타이 선수를 당하지 못해. 무에타이 선수는 주짓수에 잡혀 바닥에서 목이 조이고, 주짓수를 익힌 이들은 종합격투기 선수들의 타격 앞에 무너졌지.”
“그야 내공이 없으니까.”
“내공이 없어서 진 건가, 아니면 내공이 있었기에 약점이 가려진 건가? 어느 쪽이지?”
“…….”
방진훈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물론 다르겠지. 소림은 내공을 다루기 위해 무학을 만들었고, 현대의 스포츠들은 내공 없이 이기기 위해 발전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무학들이 완전한 건 아니지.”
“맞는 말씀이십니다.”
방진훈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오히려 다른 곳에서 제시됐다. 무인계가 과거의 가치를 지키고 있을 때, 세상은 드러난 무학들을 비교하며 나아가야 할 방식을 정립한다.
“하지만 그걸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잖습니까. 무학은 글러브를 끼고 오금 차기를 금지하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그럼 전통인가?”
방진훈이 입술을 오물거렸다.
강진호가 하고 있는 말은 명백하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과거의 것을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명백하게 다른 것이 있어야 한다.
“실전성입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 더 이상 무학은 무학이 아니니까. 과거에는 목적이 되었다면, 이제 무학은 수단일 뿐이야. 더 강해진다는 것으로 충분하잖아?”
납득이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생각해 볼 여지는 분명히 있었다.
“회주님은 항상 저를 혼란스럽게 만드십니다.”
“그런가?”
방진훈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지금 당장은 안 됩니다. 저도 적응이 필요하니까요. 오늘 하루 죽어라 생각하고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말씀드리죠.”
“그걸로 됐어.”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쿨하게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방진훈은 강진호가 개운한 기분으로 나갈 수 있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다고 회주님이 옳다는 건 아니죠. 실전성을 강조하는 것과 입에 거품 물고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건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
“보통 사람들은 그걸 실전성이라고 안 합니다. 그냥 돌았…… 아니, 뭐, 여하튼간에.”
문손잡이를 잡은 강진호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불쌍한 손잡이는 종이로 만든 것처럼 구겨졌다.
그 광경을 본 방진훈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피어났다.
“……생각해 보니 그게 실전성이 맞는 것도 같습니다.”
언제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