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91
#790.
창안하다 (5)
“……삼 일째?”
“예.”
위긴스의 시선이 굳게 닫힌 문으로 향했다. 그라면 언제든 뚫고 들어갈 수 있는 얇은 철문. 하지만 지금 그 철문은 감히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음울한 분위기로 덮여 있었다.
“삼 일이라… 어째서?”
“아무래도 새로이 뭔가를 만드시는 것 같습니다.”
“새로 만든다고?”
위긴스가 하나 남은 손으로 턱을 문질렀다.
“확실히……. 이미 로드께서는 종사나 다름없으니 새로운 무공을 창안하시는 것 역시 불가능하지는 않겠지.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어려운 일입니까?”
“어렵냐라… 그거 참 설명하기 힘들군.”
위긴스가 한참을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리 생각을 해보지. 자네가 음악에 무척 조예가 높다고 하지.”
“예.”
“세계적인 명사로 이름 높은 수준이라고 해보세. 그럼 그런 이들은 음악을 만드는 게 쉬울까?”
“어…….”
이현수는 그제야 자신의 질문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깨달았다.
“무공을 창안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어떤 무공을 창안하느냐가 문제군요.”
“바로 그거지.”
음악에 대한 공부가 깊고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아이들이 들을 동요를 하나 만드는 건 쉽다. 그 동요가 아이들에게 정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느냐는 접어두고, 동요의 형식을 띈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들어야 하는 음악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오케스트라 협주곡이라면?
그 한 곡으로 자신의 수준을 증명해내야 한다면?
쉬울 리가 없다.
이건 수준이나 이해도를 뛰어넘는 문제다. 수준이 높으면 높은 대로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아지니까. 결국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을 하느냐의 문젠데.
‘로드는 타협을 모른다는 말이지.’
겉으로는 둥글둥글한 척 하는 양반이지만, 막상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는 물러나는 법이 없다. 그가 물러서는 것은 자신이 잘 모른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분야뿐이다.
하지만 무학은 강진호의 전공이었다.
무학에 있어서만큼은 강진호는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무학이 만들어질 때까지 자신을 깎고 또 깎아대겠지.
‘미묘하군.’
강진호가 새로운 무공의 창안에 들어갔다는 것은 환영할만한 소식이다. 강진호는 반드시 과거보다 한층 더 나아간 무학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칩거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 적당한 무공을 쓰게 하면 그만인 일이니까.
그럼에도 저리 자리를 잡고 시간을 끌고 있다는 것은 반드시 뭔가를 만들어내고야 말겠다는 각오가 있다는 뜻이다.
‘물론 환영해야 할 소식이지만.’
그럼에도 한 점의 불안을 버릴 수가 없다.
무학에 있어서는 완벽주의자인 강진호라면 작은 흠결 하나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창작이 다 그렇듯이 방향을 설정하고 뼈대를 세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자잘한 디테일을 수정하고, 흠결을 잡아내는 일이 오래 걸릴 뿐이다.
얼마나 그 작업을 진득하게 반복할 수 있느냐에서 무공의 완성도가 결정 난다.
‘로드께서도 알고 계시겠지.’
무공의 창안에 시간을 너무 끌어서 막상 익힐 시간이 부족하다면 새로운 무공을 창안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이건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빠르게 해내야 하는 일이지만 결코 조급해서는 안 된다. 조급함은 허점을 낳고, 무학의 허점은 익히는 이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급하지만 급하지 않게 해야 한다. 아마 지금 강진호는 이 딜레마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굳게 닫힌 문을 보며 위긴스가 혀를 내둘렀다.
“대단한 분이시라니까.”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위긴스가 강진호와 동일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지금 이 상황에서 새로운 무학의 창조에 돌입할 수 있었을까?
절대 그럴 수 없다.
위긴스라면 지금 새로운 무학의 창조에 들어갔을 시, 그가 져야 하는 리스크를 감당하지 못하고 슬쩍 뒤로 미루고 말았을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는 그게 옳다.
‘하지만 합리성이 언제나 성공을 담보해 주는 것은 아니지.’
이제는 위긴스도 알고 있다.
언제나 성공이란 모험을 담보로 이뤄진다는 것을.
성공을 이뤄내는 이들은 언제나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정신이 나간 것 같은 극단적인 모험을 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이들을 손가락질 하고 비웃는다.
한때는 위긴스 역시 비웃는 쪽이었다. 확실한 결과가 보장되어 있는 길을 두고 불확실한 미래에 몸을 던지는 건 멍청한 짓이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냥 두려운 것뿐이었지.’
불확실한 미래에 자신을 던진다는 게. 인생의 궤적을 크게 뒤흔든다는 게. 빠르지는 않아도 착실하게 쌓아올릴 수 있는 미래를 두고, 일확천금을 노린다는 게.
그런 것이 그저 두려울 뿐이었다.
가진 것이 없을 때는 도전을 할 수 있다. 쌓아 올린 것이 없을 때는 잃을 것이 없으니까. 하지만 가진 것이 많은 이들일수록 손에 쥐고 있는 것도 놓칠까봐 도전을 주저하게 된다.
강진호는 어떨까?
위긴스의 입장에서 본다면 강진호는 지금 수많은 것을 쌓아올렸다. 본인은 딱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말이다. 이건 입장의 문제였다.
강진호가 앞으로 편안한 여생을 누릴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만약 지금 위긴스가 강진호의 입장이었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홍왕과 손을 잡았을 것이다. 그들의 휘하로 들어가는 대신 한반도의 통치권을 위임받는다.
홍왕계와 연합한 한반도는 그 누구도 노릴 수 없는 철옹성이 된다. 그 철옹성 안에서 왕처럼 살아가면 될 것이다. 강진호가 하기에 따라 말 그대로 한국의 드러나지 않은 왕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런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런 생각은 강진호의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저 많은 것을 손에 쥐고도 강진호는 여전히 도전자다. 그 사실이 위긴스를 들뜨게 만들었다.
‘늙은 몸으로 쫓아가기에는 버겁지만.’
위긴스는 자신도 모르게 빙그레 웃고 말았다.
그가 강진호에게 기대했던 것이 이거다.
정체되어 버린 원탁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것. 리스크를 감안한 과감하고 공격적인 선택. 안타깝게도 위긴스는 더 이상 스스로 그런 것들을 이뤄낼 수 없었다. 그가 스스로 할 수 있었다면 굳이 강진호에게 의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손이 아닌 등으로 사람을 끌고 가는 자. 그게 위긴스가 생각하는 강진호였다.
“식사는 제대로 하고 계시는가?”
“식사를 가지고 문을 두어 번 두드려 봤지만, 열리지 않습니다. 억지로 열고 들어가기도 좀 부담스러워서…….”
이현수는 영 난감한 얼굴이었다. 무학이 깊지 않은 그로서는 이럴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안으로는 아무도 들이지 마. 경비를 배치하는 것도 좋겠지.”
“괜찮겠습니까?”
“왜? 로드께서 며칠 굶는다고 죽기라도 하실 것 같은가?”
“그건 아니지만…….”
이현수가 걱정 어린 눈으로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걱정할 것 없다. 지금은 어떠한 도움도 방해가 될 뿐이야. 저건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렇겠죠. 알겠습니다. 그럼 경비를 세워 보겠습니다.”
“그래.”
살짝 감정적이 된 것 같던 이현수는 냉정한 안색을 되찾았다. 그 모습을 보며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이현수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가 맡고 있는 역할이 그것이다. 다른 이들이 다들 감정적이 되더라도 이현수만은 이성을 움켜쥐고 있어야 한다.
꽤나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것이라니까.’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그의 뒤를 이을 제자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만족스럽게 그의 지도를 따라오는 이가 없었다. 그런데 이 먼 이국의 땅에서 제자를 얻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이 나이가 되어서 따를 이를 찾았다는 것도 꽤나 재미있는 일이다. 위긴스는 굳게 닫혀 있는 문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기대가 되는군.’
저 안에서 무공을 창안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강진호다.
그의 무학은 홍왕과 비견될 만하다. 그리고 장담하건데 무학에 대한 이해도는 그 홍왕조차 뛰어넘는 수준일 것이다. 이미 홍왕과의 전투에서 강진호의 진면목을 보았으니까.
그런 이가 만들어내는 무학이라…….
“애도 아니고 말이야.”
“예?”
“아니, 아무 것도 아니다.”
위긴스가 손을 내저었다.
제자 앞에서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말할 수는 없다. 주책이라 할 테니까.
“마공을 익히지 못하는 게 아쉽구만.”
“스승님도 가능하신 것 아닙니까?”
“나는 아니야.”
위긴스가 고개를 저었다.
동양의 무학을 베이스로 하는 이들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위긴스는 마공을 익힌다고 해도 시너지가 나지 않는다.
“아쉽지만 욕심은 화를 자초하는 법이지. 더 강해지고 싶은 열망이야 나도 당연히 있다. 나 역시 무인이니까. 하지만 내가 올라야 할 산은 이곳이 아니야.”
위긴스가 담담하게 말하고는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해라.”
“예, 스승님. 그런데 스승님께서는……?”
“방 이사를 만나봐야겠다. 로드께서 자리를 얼마나 비우실지 모르니 대책을 논의해야겠지. 너는 다른 일보다 우선 로드의 안전에 집중해라.”
“예.”
“해야 할 일이 더 생길지도 모르겠군. 아이들의 수업에 나가지 못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그 일은 네가 대신 해라.”
“제가 말입니까?”
이현수가 얼떨떨하게 말하자 위긴스가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되물었다.
“네가 배운 것을 그대로 가르치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 어렵더냐?”
“그대로 말씀이시죠?”
“아니, 좀 순화해서. 방식은 따르지 말고 이론만.”
“좀 억울한데…….”
“시끄럽다, 이 녀석아. 아니면 너도 다른 애들처럼 배우던가.”
“그럴 수는 없지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십시오.”
“믿을 수가 있어야지.”
위긴스가 고개를 내젓고는 몸을 돌려 복도를 걸어갔다.
‘이거 이러다가는 뒤처지겠구만.’
기분 좋은 호승심이 위긴스를 자극하고 있었다. 강진호는 더 강해진다. 사람은 안주하는 순간 약해진다. 하지만 강진호는 이만큼을 이루고도 안주하는 법이 없다. 그러니 더 강해질 것이다.
위긴스가 안주해버린다면 지금 그를 우러러보는 이들이 어느 순간 그를 앞서 나갈 것이다.
‘아직은 그런 꼴을 볼 수야 없지.’
아무래도 다시 연구를 시작해야 할 시점 같았다.
모두가 강해진다.
느린 듯하지만 확실하게 총회는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었다. 위긴스는 인생의 마지막 모험을 해야 할 시점이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쯧. 부려먹으시기는.”
자꾸만 강진호가 등을 떠미는 것 같다.
안주하지 말라고, 더 강해지라고.
채찍질을 당하는 기분이 꽤나 유쾌한 걸 보니, 그도 이제 강진호에게서 빠져나가기는 그른 것 같다.
“늙은이 부려 먹으면 벌 받으십니다, 로드.”
위긴스가 고개를 돌려 굳게 닫혀있는 문을 바라보았다.
저 강진호가 시간을 들여가며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결과물은 얼마나 어마무시한 것일까? 위긴스는 기분 좋은 기대를 품으며 경쾌하게 걸었다.
“이게 사는 재미겠지.”
위긴스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