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92
#791.
전수하다 (1)
무학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건 강진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위긴스가 생각했듯이 강진호는 커다란 벽을 마주하고 있었다.
바로 ‘만족’이라는 벽에 말이다.
조금은 무색해지는 말이지만, 무학을 창안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강진호쯤 되는 무인이라면 더더욱.
과거의 생에서 강진호는 살아남기 위해서 무학을 익히고 또 익혔다.
아무리 마교가 힘이 전부인 곳이라지만, 태생부터 마교인이었던 자와 외부에서 투신한 자의 취급이 같을 수는 없었다. 강진호는 외부인이라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마공을 깊게 익히고 이해했다.
지금은 당연하거니와, 당대에도 강진호보다 마공을 깊이 이해하는 이는 없었다. 아마 강진호의 이전 시대를 되돌아본다고 해도 그리 다르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런 강진호에게 새로운 마공의 창조는 딱히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 어렵지 않은 일을 어려운 일로 바꾸는 요소가 바로 만족이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모든 것은 과거의 연장 선상에 있다. 이전까지 없던 획기적인 개념은 이전의 개념을 뒤집는 데서 나온다. 압도적으로 앞서가는 혁신은 과거의 개념에서 부족함을 찾는 데서 나온다.
모든 것은 과거와 이어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강진호에게 되돌아볼 과거는 충분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마공 중 가장 중요한 마공들이 빠짐없이 들어차 있었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한 발을 더 내디딘다는 것은 더없이 어려운 일이었다.
만족의 요소.
그건 진보다.
이전과 같아서는 의미가 없다.
새로운 마공?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저 다를 뿐인 마공을 창안하기 위해서 고심하는 게 아니다. 진보한 마공을 창안하는 것이 중점이다.
강진호는 이미 베이스를 정했다.
마라혈염기.
처음에는 그저 마라혈염기를 바탕으로 조금 안정성을 높여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을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미진함을 느꼈다.
조금씩 깊이 들어간다.
아주 조금씩.
그런 후에 정신을 차려보니 강진호는 마라혈염기를 완전히 해체하고 있었다. 이미 만들어진 정밀기계를 부품 단위로 분해하듯이, 강진호는 마라혈염기라는 마공을 완전히 풀어헤쳤다.
지금 있는 마라혈염기를 조금 개량하는 정도로는 안 된다. 처음부터 다시 쌓아 올려야 한다. 수많은 재료를 자신의 머릿속에 늘어놓은 강진호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자신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시간은 흐른다.
하루.
또 하루.
그리고 또 하루.
과거였다면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로지 파괴력을 높이는 방법만을 고심할 게 빤했다. 그게 적천마존의 방식이었으니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감수하는 것이 많을수록 파괴력은 올라간다. 그러다 뒤처지는 자는?
그걸로 끝이다.
따라오지 못하는 이들을 굳이 끌고 가지 않는다. 그의 뒤에 설 수 있는 자들은 그의 시험을 통과하는 이들 뿐이니까.
과거의 적천마존, 아니, 강진호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결국 세상은 소수가 이끌어간다.
강진호의 생각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세상을 바꾸는 이들은, 세상을 이끌고 나가는 이들은 배려할 필요가 없는 소수이다. 그들에게는 어쩌면 리스크가 큰 대신 얻을 것이 많은 무학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모든 이들이 이끄는 자가 될 필요는 없다.
이끌어가는 자들이 모든 것을 바꾼다. 하지만 끌려오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동력이 없다면, 이끌어가는 자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결국 세상은 함께 걷는 것이니까.
세 번째 삶.
적천마존이 아닌 강진호로서의 삶.
그 길지 않은 삶에서 강진호가 배운 것은 그것이었다.
등을 밀어주는 자들의 존재.
그들에게서 얼마나 많은 위안을 얻었던가.
세 번째의 삶 역시 과거처럼 살았다면, 지금의 강진호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탐욕스레 세상 모두를 집어삼킬 적천마존이 되었거나, 주위에 아무도 없는 외톨이로 살아갔겠지.
그것으로 충분한가?
그럴 리 없다.
강진호의 삶은 강진호 혼자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이 없는, 친구가 없는, 그리고 총회의 동료들이 없는 강진호의 삶은 이제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들이 있기에 강진호는 완성된다.
이건 부담이 아니다.
짊어지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 이들이 어느 순간 강진호의 등을 밀어주고 있다. 쓰려져도 등을 받쳐 주기 위해 그의 뒤를 채우고 있다.
지킬 것이 있기에 나아갈 수 없다.
적천마존은 그에게 그리 말했다.
‘틀렸어.’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지켜야 할 사람들이 아니다. 함께 가는 사람들이다. 그의 등을 받쳐 주는 사람들이다.
적천마존일 때 그는 굴러 떨어지면 끝인 가혹한 외길을 걸었다. 단 한 번의 실수로도 목이 떨어지는 백척간두. 그 위에서 그는 모두를 굽어보았다.
그래서 무엇이 남았는가.
그래, 후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은 것도 없었다. 삶이 끝나는 시점에 생에서 얻어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 기분을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지금의 선택 덕분에 강진호는 과거의 적천마존에 미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지금 이 순간 죽는다고 해도 적어도 두 번째의 삶보다는 더 많은 것을 얻었으니까.
그러니…….
망설일 게 없다.
심상의 공간에 커다란 기둥이 내려온다.
무채색.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무채색의 기둥이다. 강진호는 가만히 그 기둥을 바라보았다. 기둥이 희게 물든다. 그러고는 다시 검게, 그리고 또 붉게, 순간순간 변하고 있다.
기둥을 세우는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다.
그럼 어떤 색의 기둥을 세워야 할까?
‘그럴 필요가 없지.’
모든 것이 강진호니까.
그가 처음 익힌 정공, 그리고 그를 이끌어준 마공, 그리고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강진호의 혈기까지……. 그 모든 것이 강진호를 이뤄온 부분이었다.
나아가기 위해 과거를 버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직시하고 품어야 한다.
무채색의 기둥에 세 가지 색이 휘돌기 시작했다. 섞이지 않으려 서로를 밀어내고, 공격하며, 악다구니를 쓴다.
강진호는 굳이 그 반응을 억제하려 들지 않았다.
섞인다.
강진호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니 섞일 것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형태로.
색이 뒤섞인다. 기둥이 기둥의 모습을 버리고 뻗어 나간다.
모든 것이 강진호가 원한 대로 되지는 않았다.
마치 강진호의 정체성은 결국에는 마인이라는 듯이 뒤섞인 색을 검정이 뒤덮는다. 하지만 그것도 괜찮다. 살아온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의 안이 마공으로 물들어 있다면, 그것 역시 강진호이니까.
기둥들이 거대한 나무의 형태로 세상을 향해 가지를 뻗기 시작했다.
뻗어 나간다.
모든 것을 뒤덮겠다는 기세로 세상을 뒤덮어간다.
모든 것과 닮아 있는, 강진호가 가진 모든 것을 담은, 나무가 세상으로 뻗어 나간다.
― 그런다고 달라질 게 있을 것 같나?
강진호의 미간이 좁아졌다.
‘듣기 싫은 목소리로군.’
조롱하는 듯, 또한 비웃는 듯한 목소리.
아니, 알 수 없다. 이 목소리가 그의 안에 잠자고 있는 적천마존이 보내는 목소리인지, 그게 아니면 그의 의혹이 만들어낸 목소리인지.
확신은 없으니까.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옳은 방향으로 이어져 있는지, 이대로 걸어 나가면 그가 목표한 곳에 도달할 수 있는지…… 확신은 아무것도 없다.
확실한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
실패는 시도가 있어야 존재한다.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도 하지 않는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건 강진호의 방식이 아니었다.
내디딘다.
이 한 걸음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지더라도, 단 한 점의 미혹 없이 그저 내디딘다.
쓰러져도 괜찮다.
손을 잡아줄 사람이 있으니까.
떨어지는 그에게 손을 내밀어줄 사람이 있으니까.
하늘 가득 가지를 뻗어낸 나무가 잎을 피워낸다.
울창하게, 더없이 울창하게.
세상을 가득 뒤덮은 검은 잎사귀들이 벚꽃처럼 휘날리기 시작했다.
검은 눈이 내린다.
환상의 공간.
이 세상이 존재할 수 없는 기이함이 가득한 그 공간에서 강진호는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누구도 내민 손을 잡아줄 사람이 없는 곳이다.
그럼에도 강진호는 손을 내밀었다.
먼저, 누구보다 먼저…….
그저 허공을 움켜잡을 뿐인 손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점이다.
강진호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 내밀어줄 수 있게 됐니?”
환상처럼 들려오는 목소리.
조금 전에 들려온 비웃음 가득한 목소리가 아닌, 조금은 그립고, 그리고 따뜻한…….
강진호는 대답 없이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 보았다면 감탄했을, 너무도 근사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가득했다.
* * *
“죽었나?”
이현수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물론 죽었을 리는 없다.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니까. 아무리 이현수가 반쪽짜리 무인이라고 해도 문 하나 너머에서 느껴지는 생기를 놓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는 답답하기 때문이다.
‘벌써 며칠째야.’
오늘로 닷새다. 강진호가 문을 걸어 잠근 이후로 5일의 시간이 지났다. 걱정 말라던 위긴스조차 슬슬 불편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너무 오래 걸리면 안 되는데…….”
위긴스의 말에 따르면, 창안이라는 건 모 아니면 도인 모양이었다. 어느 순간 뚝딱하고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일이 꼬이면 수도 없는 시간이 흘러갈 수도 있다.
만약 강진호가 무아지경에 들어갔다면, 시간이 흘러간다고 해서 중간에 멈출 수도 없다.
‘아니, 그러니까 왜 하필 이럴 때…….’
물론 이런 때니까 새로운 무학이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강진호가 총회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때였다. 단적으로 이대로 강진호의 칩거가 길어진다면, 저 마교 놈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저놈들이 날뛰기 시작하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니까 이제 좀 나오십시다, 회주님.”
그 순간이었다.
드르륵.
이현수의 고개가 획 돌아갔다.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현수가 문고리를 뚫을 듯이 노려보았다.
드르륵.
천천히 문고리가 돌아간다. 그러더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아…….”
이현수는 멍한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문이 천천히 열리고, 그 문 뒤로 조금은 초췌한 얼굴의 강진호가 보인다.
이상하게 가슴이 울컥하다.
강진호는 이전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너무도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표정만으로도 알 수 있다. 무언가, 그가 알 수 없는 무언가를 강진호가 해낸 것이다.
이현수를 발견한 강진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정말 부드러운 미소. 그리고 강진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뭔가 대단한 말이 나올 것 같다.
부처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친 것처럼.
오랜 칩거 끝에 새로운 무학의 길을 연 강진호라면…… 무언가 감동적이고 위대한 그런…….
강진호의 입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식당에 밥 남았어?”
“…….”
“남았냐고.”
이현수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