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93
#792.
전수하다 (2)
‘잘도 드시네.’
이현수는 빤히 강진호가 밥을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뭔가 괴이하다.
그리 급하게 먹는 것 같지도 않고, 마구 퍼먹는 것도 아닌데, 식판에 든 밥이 빠른 속도로 사라진다. 마치 마법처럼 말이다.
‘밥 먹는 것까지 특이하게 먹어야 하나.’
이 양반이 하는 것 중에 정상적인 것이 뭐가 있겠냐마는,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하는 꼴을 보아하면 이 양반은 잠을 잘 때도 허공에 떠서 잘 것 같고, 화장실에 가도 남들과는 뭔가 다를 것 같다.
턱!
식판 세 개가 깨끗하게 비워졌다.
“하나 더 드립니까?”
“흠…….”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무인에게 과식은 좋지 않지.”
충분히 드셨거든요?
식판에 밥을 탑처럼 쌓아 먹어놓고 이제 와 뭐요? 과식?
헛웃음이 난다.
‘하기야 뭐…….’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강진호는 최소 5일은 굶었으니까.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5일을 보냈다. 아무리 무인이라고 한들 허기가 질 만하다.
“어디서 밥 먹는 훈련이라도 하셨습니까?”
“음?”
“엄청 조용하게 빨리 드시는 것 같아서요.”
“훈련이라…….”
강진호는 피식 웃으며 컵에 물을 채워 마셨다.
훈련은 훈련이다. 스스로 한 게 아니라, 어머니 덕분에 한 훈련이기는 하지만.
강진호가 웃음으로 질문을 넘기자 이현수는 정말 궁금한 것을 물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물음은 조금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벌컥!
문짝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격하게 열렸다. 아니, 실제로 떨어져 나갔다. 이현수는 그 광경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주인!”
바토르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식당에 쩌렁쩌렁 퍼진다. 벽에 걸려 있던 조리 기구들이 부르르 떨리고, 멀쩡한 식탁이 들썩였다. 이현수는 물론 강진호마저 귀를 틀어막았다.
“주인, 괜찮은가!”
바토르는 마치 해적에게 나포되었다가 풀려난 이를 보는 듯 다급하게 강진호에게 달려왔다. 바닥이 쿵쿵거리는 것이, 꼭 갈라질 것만…… 어? 씨, 저거 진짜 금 가고 있는데? 금?
흥분한 바토르를 받아내기에 총회의 건물은 너무 낡았다. 아니, 이 세상의 건물들은 너무 약하다.
강진호조차 살짝 식은땀이 나는지 이마를 훔치고 있었다.
“괘, 괜찮다, 바토르.”
“주인! 이런 일은 나와 상의를 해야 할 것 아닌가! 왜 말도 없이 제멋대로 무학을 만든답시고 칩거를 하는 건가!”
아, 허락을 받았어야 하는 거구나.
이상하다. 호칭은 주인인데, 내용은 하인을 다루는 것 같다.
“몸은 괜찮은가?”
하지만 강진호는 웃고 말았다.
목소리에는 불만이 가득하지만, 눈에서 잔정이 느껴진다. 이 덩치만 큰 몽골인과 언제 이런 정을 나눴는지 의아할 정도다.
“그 정도로 상할 몸이면 벌써 죽었겠지.”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는 이는 반드시 화를 당한다, 주인.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
덕담인 듯 위장한 악담이 마구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는 데는 순서가 없지만, 적어도 내가 너보다 먼저 죽지는 않을 거다.”
“그것도 모르는 거다, 주인.”
바토르가 한 소리를 더 하려는 순간, 누군가가 바토르를 도와주었다.
“확실히 그건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혹시 압니까, 제가 로드보다 더 오래 살지 말입니다.”
“이건 확실히 악담이로군.”
위긴스가 빙그레 웃으며 식탁에 앉았다.
“생각보다 좋아 보이십니다?”
“흠?”
“거의 반쯤 죽어가는 모습으로 나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창안이란 그런 거니까요. 그게 아니면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더군.”
“그렇겠죠. 로드의 성격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말입니다. 그래서…….”
위긴스가 가장 묻고 싶어 한 말을 꺼냈다.
“결과는 나왔습니까?”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되는군요. 로드가 만들어낸 것이 뭔지 말입니다. 무공? 아니면 무리?”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
하지만 그걸 말할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마조오오오오온이시여어어어어어어!”
“…….”
문밖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외침에 강진호가 눈을 감아버렸다.
‘이게 뭐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누가 보면 전쟁터에서 돌아온 줄 알겠다.
이내 떨어져 나가 버린 문을 지나 장민이 눈물을 뿌리며 안으로 뛰쳐 들어왔다. 강진호를 발견한 장민이 바닥에 부복하며 눈물을 뿜었다.
“마존이시여! 마존이시여! 크흐흑, 속하는 비통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마존께서 우리 아이의 몸을 조사하시고는 신공의 창안에 들어가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저 가진 것을 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읍하고 또 감읍할 일이건만, 어찌 그 옥체를 손상시키면서까지 이러한 은혜를 또 내려주시나이까!”
“아니, 좀 일어나고…….”
“마존이시여! 마존이시여! 이 드높은 은혜를 어찌 갚겠나이까! 마교의 모든 마졸들이 일백 번을 죽어 그 은혜를 갚는다고 해도 다 갚을 수 없는 깊고, 넓고, 드높고…… 어, 또 뭐가 있더라…….”
강진호가 얼굴을 감쌌다.
그런 강진호를 이현수가 위로했다.
“곧 괜찮아지실 겁니다.”
“180년 동안 안 변한 사람이 무슨 수로 바뀌겠어.”
현실을 생각할수록 갑갑하기만 한 강진호였다.
“일단 알겠으니까, 좀 앉아.”
“제가 어찌…….”
“제발.”
“그럼 명을 따르겠습니다, 마존이시여.”
장민까지 자리에 착석하고 나자 강진호가 앉은 이들을 쭉 둘러보았다.
이상하게 갑갑함이 밀려온다.
그런 강진호의 마음을 알았는지, 위긴스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로드, 이제 슬슬 무엇을 얻었는지 말씀을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음…….”
이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위긴스의 옆에 앉았다. 통역을 할 생각인가 보다. 강진호도 그 의도를 알아채고는 중국어로 말을 시작했다.
“정확하게 뭘 얻었냐고 말하기는 좀 그렇군. 조금 전의 말로 설명하자면, 무학을 창안했다기보다는 무리를 얻어왔다고 해야 하니까?”
“무리라…….”
위긴스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소식이었다.
아랫 사람들에게 전수할 무학을 창안했다면, 그건 총회의 전력강화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강진호를 강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하지만 지금의 단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무리를 얻었다면, 강진호 역시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고작 그 짧은 시간 만에?’
위긴스는 조금 허탈함까지 느꼈다.
그가 보는 강진호는 대단한 사람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조금 얼이 빠져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무학에 관한 한은 강진호는 끝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무리를 단 5일 만에 창안한다?
원탁의 누군가가 이 말을 들었다면 비웃음 외에 어떤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그걸 해낸 사람이 있다.
“적용은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일단 마라혈염기를 재조립해 봤다.”
“마, 마라혈염기!”
장민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그, 그 무학을 아이들에게 전수할 생각이십니까, 마존이시여?”
“안 될 이유라도?”
“그…….”
장민의 손이 덜덜 떨렸다.
다른 이들은 장민이 왜 이리 놀라는지 모를 것이다. 마인이 아니라면, 아니, 마인 중에서도 장민처럼 마교의 역사에 정통한 이가 아니라면 들어보지도 못한 무학일 테니까.
“그, 그 귀한 것을…… 아이들에게 그냥 푸시겠다는?”
“귀해?”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귀하다는 말이 나오지?
“그건 마존께서 자신을 따르는 진짜 수하들에게만 전수하신 독문 무공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귀한 무학을 어찌 아이들에게…….”
“어, 음…….”
이게 이렇게 전해지나?
말은 맞는 말이다. 마라혈염기는 마염들이 익힌 무학이고, 그 마염들은 강진호를 목숨 걸고 따르는 이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마라혈염기가 강진호가 이전의 마공을 조합하여 그의 스타일대로 새로 만들어낸 독문 무공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리 귀하지는 않다.
마염들만 마라혈염기를 익힌 이유는 강진호가 그 외의 마인들에게 마라혈염기를 전수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당시에는 좋은 마공들이 널려 있었고, 굳이 검증도 되지 않은 신생 무학을 위험을 감수하고 익힐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어느정도 검증이 되긴 했지만, 워낙 극단적인 강함을 추구하는 무학이라 안정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 마염들 이외에는 딱히 손을 대지 않는 무학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게…….
“그 전설의 마공을…….”
‘아닌데요.’
물론 강진호는 마라혈염기의 위력을 자부하는 편이지만, 전설의 마공이라 불릴 만한 건 아니다. 상황이 심각하게 어색해지고 있었다.
“여, 여하튼.”
너무 감격해 다시금 눈물을 뽑아내려 하는 장민을 보며 강진호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안정성은 보증이 되었습니까? 마공이란 결국 리스크를 지지 않을 수 없는 무학일 텐데요?”
“중점을 두긴 했지만, 장담할 수는 없지. 분명 부작용이 생길 거야.”
결국 강진호는 강진호다.
안정성을 높이고 위력을 줄이는 방법도 있지만, 시작은 그러했으되 끝은 달랐다.
위력은 올라갔고, 안정성은 조금… 아주 조금 나아진 정도다.
극단적인 위력과 공격을 추구하는 강진호의 성향상 안정적이기만 한 무공은 만들어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위력은 확실하지.”
강진호가 씨익 웃어 보이자 이현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현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주인.”
“음?”
“세상을 뒤집을 수 있는가?”
“세상을 뒤집는다?”
“저 중원을 제패할 수 있냐는 말이다. 숨겨진 홍왕계를 상대할 수 있는가? 다른 삼왕들도?”
바토르의 목소리는 더없이 진지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이런 걸 물을 수 없다. 얼마나 허황되고 황당한 말인지 스스로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진호라면.
이 질문을 듣는 이가 강진호라면…… 그가 바라던 대답이 돌아올 것만 같았다.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제패한다는 말은 이상하군.”
“…….”
“그건 본래 내 것이다. 찾으러 가는 것뿐이야.”
바토르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강진호는 허황된 말을 하지 않는다.
“시작하지, 주인. 나는 너무 오래 기다렸다.”
기이한 열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다들 직감했다.
바로 이 순간부터라고.
훗날 세상이 뒤집힌다면, 지금의 질서가 무너지고 총회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면, 그 시작은 바로 지금이 될 것이다.
방황하던 강진호가 선두에 섰다.
이제 그들은 저 등을 쫓기만 하면 된다.
“장민.”
“예!”
“장로들을 모아와라.”
“충!”
강진호의 고개가 바토르에게로 향했다.
“마염들의 상태는?”
“아주 말랑말랑하게 만들어놨지.”
“좋아. 집결시켜.”
“분부대로.”
바토르가 그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이현수.”
“예!”
“방진훈을 데려와.”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강진호의 시선이 위긴스와 마주쳤다.
“내가 너를 도울 구석이 있을까?”
“아닙니다, 로드. 그건 거꾸로 된 겁니다. 제가 무엇으로 로드를 도와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로드를 따를 뿐입니다.”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생각해 둔 건 있다. 잘 맞을지, 어디 한 번 보지.”
위긴스의 몸이 살짝 떨렸다.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말했다.
“이제부터는 정말 정신없어질 거야. 목숨 걸고 따라와.”
혈기 가득한 각자의 대답이 이어졌다. 강진호는 그 광경을 보며 입가를 끌어 올렸다.
‘시작하자.’
모든 것을 뒤바꾼다, 모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