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94
#793.
전수하다 (3)
정리는 빠르게 끝났다.
강진호는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첫 번째 강진호의 움직임은 바토르에게 마공을 전수하는 일이었다.
“철혈군마공(鐵血君魔功)?”
“그래.”
바토르는 자신의 앞에 놓인 비급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주인.”
“말해.”
“이건 주인이 새로 창안한 무학인가?”
“아니.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마공 중 하나다.”
“주인.”
바토르가 훅, 숨을 내뿜었다.
“딱히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마공을 익히고 싶다고 했지, 어떤 마공을 익히겠다고 한 건 아니니까.”
바토르가 살짝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었다.
“다만, 주인. 상황이 조금 달라진 만큼 나도 무리한 부탁을 좀 하고 싶은데.”
“무리한 부탁?”
“그 마라혈염기라는 걸 나도 익히게 해다오.”
순간, 강진호가 눈에 이채를 띠었다.
“마라혈염기?”
“주인이 무슨 말을 할지는 알고 있다. 주인의 무학에 대한 이해도를 생각한다면 이 철혈군마공이라는 건 내게 최적화된 무학이겠지. 늦게 마공에 입문하는 내게 가장 적합한 마공일 테고.”
“어…….”
“하지만!”
바토르는 강진호의 말도 듣지 않고 바로 말을 이었다.
“적당한 건 필요 없다, 주인! 나는 강해지고 싶다. 적당히 강해지는 게 아니라 그 누구보다 강해지고 싶다. 위험이 있다면 뛰어넘을 것이고, 한계가 있다면 부술 것이다. 그러니 내게 마라혈염기를 가르쳐 다오.”
바토르의 얼굴에는 굳은 의지가 가득했다.
확실히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최고가 되겠다는 바토르의 의욕만은 높이 살 만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왜 마라혈염기를 익히고 싶어 하는 거지?”
“주인이 새로 만든 마공이니까.”
“음…….”
바토르는 확고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주인이 만든 마공이라고 해서 과거의 마공보다 무조건 낫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주인을 알고, 주인을 믿는다. 주인이 새로이 창안해 낸 마공이라면, 과거의 마공이 가지지 못한 무언가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도전할 수 있게 해다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토르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사실 강진호가 생각하기에 바토르에게는 그 어떤 마공보다 철혈군마공이 어울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철혈군마공은 마교가 보유한 상급의 마공 중 유일하게 외공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마공이기 때문이다.
바토르는 내공보다는 육체를 강화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니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마공이라 할 수 있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이걸 익히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잠재성은?”
“잠재성이라…….”
강진호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그저 내 생각일 뿐이지만…….”
“가감 없이 말을 해주면 좋겠다.”
강진호가 가만히 바토르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잠재성이라면 마라혈염기를 익히는 게 좋겠지. 외공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너는 네가 익혀온 무학에 자부심이 있을 것이고, 그 방법으로도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어렵다고 본다.”
바토르는 두말없이 강진호의 말을 인정했다.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보지 않았는가, 강진호와 홍왕 간의 싸움을.
그 무시무시한 전투에서 바토르는 그저 구경꾼일 수밖에 없었다.
노력한다?
아니.
그건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고양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사자가 될 수는 없으니까. 근본적인 뭔가가 바뀌어야 한다.
“그럼 더더욱 마라혈염기를 익혀야 하는 것 아닌가! 외공만으로는 안 되니까.”
“이론상으로는 그렇지.”
“실제로는 다르다는 건가?”
“너는 외공을 50년 이상 익혀왔다.”
“…….”
“손동작 하나, 숨 쉬는 것 하나까지 모든 것이 외공에 최적화되어 있다. 지금부터 다시 뜯어고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주인.”
바토르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강진호를 노려봤다.
“정확하게 말해다오. 불가능한 건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한 건가?”
“거의.”
“그래도 가능성은 있지 않은가.”
바토르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의 무학마저 무너질 수 있다.”
이건 겁을 주는 게 아니었다.
무공이란 결국은 조화다. 여러 가지 무공을 익혀도 문제가 없는 것은 무공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거나 간섭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공은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지금 바토르가 가지고 있는 무학마저 사라질 수 있었다. 그 뒤로 다시 지금의 무위를 되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황폐화된 단전을 다시 복구하는 데만 수십 년은 걸릴 테니까.
“상관없다.”
“바토르…….”
“주인!”
바토르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입술이 갈라지며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바토르는 자신의 입술이 찢어졌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주인, 나는 들러리가 되고 싶지 않다.”
“바토르.”
“나는 주인에게 대단한 충성심이 있어서 따른 게 아니다. 위긴스처럼 계산이 있어서 따른 것도 아니다. 그저 나는 주인에게 패배했고, 주인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
“언젠가는 주인에게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 빌어먹을 마공이 내 머리를 지워갈 때마다 말이다.”
바토르의 목소리가 격정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제약이 없다고 해도 나는 주인을 벗어나지 않는다. 충성심? 그런 건 모른다. 내가 주인을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주인이야말로 나를 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주인, 나는 강해지고 싶다. 다시는 그런 무력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 강해질 수 있다면, 그리될 수만 있다면…… 나는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
격정적인 바토르와는 다르게 강진호의 눈은 더없이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다 나락으로 떨어진다면? 지금의 무학마저 잃어야 한다면?”
“상관없다.”
“쉽게 말할 게 아니다.”
“상관없다고 했다.”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무공을 잃은 무인이 얼마나 큰 절망에 시달리는지 강진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 팔다리를 잃은 것 이상의 극심한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멀쩡한 삶을 이어간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런데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건가?
“가능성은 미약하다. 그리고 폐인이 될 확률은 무척이나 높다.”
“재미있는 도전이 되겠군.”
“농담이 아니다, 바토르.”
“주인은 내가 지금 농담하는 것으로 보이나?”
강진호와 바토르의 시선이 허공에서 서로 얽혀들었다.
“……그렇게까지 하려는 이유가 뭔가?”
“이유?”
“그래. 나와는 다르다. 네게는 지킬 것도 없고, 목숨을 걸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려는 거지?”
그 순간, 바토르의 몸이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실핏줄이 터져 나가며 눈이 새빨갛게 물든다.
강진호는 이 현상이 바토르가 자신을 제압한 마공과 싸우는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토르의 거대한 육체가 격렬하게 떨리자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건물이 흔들렸다.
“건……방 떨……지 마!”
힘겹게.
더없이 힘겹게 바토르가 입을 열었다.
“나는…… 나는 패배자가 아니다. 나……는 강해진다……. 주인보다 더! 그 누구보다 더!”
전신을 조여오는 고통에 저항하면서도 자신의 뜻을 꺾지 않는다.
이 확고한 의지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강진호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았으니 그만해라.”
바토르가 천천히 진정했다. 강진호는 바토르가 완전히 진정하기를 기다리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책임질 수 없다.”
“주인, 적당히 해라. 나는 어린애가 아니다. 모든 선택은 나의 의지이고, 모든 책임 역시 나의 것이다.”
“……그렇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강진호가 품 안에 손을 넣어 다른 비급을 꺼냈다.
마라혈염기.
새로 만들다시피 한 마라혈염기의 비급이 거기에 있었다. 바토르는 두말없이 강진호가 내민 마라혈염기의 비급을 덥썩 움켜잡았다.
“혼자 시작하지 마라.”
“음?”
“먼저 읽어보고 이해하는 건 좋다. 하지만 혼자 시작하지 마라. 시작은 내가 도와준다.”
“그럴 필요까지야.”
“너를 과신하지 마라. 네가 아무리 강해도 마공에 있어서 너는 초보자다. 스스로의 무위를 과신하고 조심하지 않는 순간, 너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거다.”
“명심하지.”
바토르의 눈에 굳은 결의가 어렸다.
그 광경을 보며 강진호는 기이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열정이라는 건가?’
아니면 열의?
그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강해지겠다는 열망은 강진호에게도 있었다. 아니, 지금의 강진호에게도 강해지겠다는 열망은 있다. 하지만 강진호의 열의는 필요에 의한 것이다. 바토르의 열망과는 달랐다.
바토르의 열의는 그저 강해지겠다는 순수한 목적에서 나온다. 그 열의가 지금 강진호를 흔들고 있었다.
“그전에 하나 선택해야겠군.”
“음?”
강진호의 손이 바토르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바토르가 움찔했지만, 그 이상은 저항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의 목숨은 강진호에게 저당 잡혀 있지 않은가.
우웅.
벌 떼가 우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강진호의 우수에 마기가 모여들었다. 손끝에 모여든 마기가 바토르의 머리를 파고든다. 바토르는 갑자기 닥쳐오는 고통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우우우우웅!
마기가 바토르의 머리를 한 번 뒤흔들고 나서는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안개가 끼어 있는 것처럼 모호하던 머릿속이 청명하게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너는 이제 자유다.”
“자유?”
“너를 제약하고 있던 것들을 제거했다. 이제 너는 더 이상 내 명령을 듣지 않아도 된다.”
“…….”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처음의 계획과는 조금 다르지만, 너는 내가 생각한 이상을 해주었다. 그러니 네 죗값은 이제 치른 걸로 하지. 그러니 선택해라. 총회에 계속 남을 건지, 아니면 초원으로 돌아갈 것인지. 홍왕에게 간다면 그것도 좋겠지.”
“금제를 풀었다는 건가?”
“그래, 완전히.”
바토르의 눈이 떨렸다.
언젠가는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진호가 그를 놓아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강진호의 입장에 있었어도 자신 같은 전력을 손에서 놓으려 하지는 않을 테니까.
“어째서지?”
“죗값은 치렀으니까.”
“주인.”
바토르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한 번씩 느끼는 거지만, 주인은 정말 멍청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모르겠다.”
“금제를 풀어주자마자 욕부터 하는군.”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지만.
“당황스러울 테니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결정이 되면 원하는 대로…….”
“됐고.”
바토르가 그 거대한 손을 내저었다.
“이걸 다 이해하면 주인을 찾아가면 된다는 거지?”
“……일단은 그렇다.”
“내일까지 분석할 테니, 시간 비워둬라.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응?”
바토르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이미 말했다. 나를 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건 주인뿐이다. 주인은 절대 내게서 벗어날 수 없다. 내가 주인을 이기기 전까지는 죽어서도 안 되고, 약해져서도 안 된다.”
“…….”
“안 그래도 철저하게 감시하고 싶었는데, 금제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잘됐군. 이젠 마음대로 할 수 있겠어.”
약간 방향이 이상한데?
괜히 풀었나?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간사하게 웃는 바토르를 보고 있자니, 새삼 이상한 불안감이 치미는 강진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