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95
#794.
전수하다 (4)
‘이게 뭔 도서관도 아니고…….’
이명환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풀어주는 만큼 풀어지고, 조이는 만큼 조여진다. 스스로 어느 정도 브레이크를 걸 수는 있겠지만, 결국 결과는 대동소이했다.
‘인정하는 부분이구요.’
처음 강진호의 시험을 통과한 이들은 다들 명검처럼 날이 서 있었다. 강해지기 위해서 모든 것을 던지겠다는 각오, 심지어 목숨도 아끼지 않겠다는 그 각오가 선 이들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초식 하나를 배우는 것에도 신명을 다했고, 한 번의 운기행공조차 모든 정신을 집중하여 시행했다.
그때에 비한다면?
‘개차반이 되긴 했지.’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우선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것.
처음에는 이게 사람이 소화할 수 있는 훈련인가 의심이 될 정도로 과격하던 훈련도 어느새 평온하게 소화할 정도로 적응해 버렸다.
그러니 딱히 긴장감이 생기지 않는다.
두 번째는 의외로 강진호가 그들을 딱히 몰아붙이지 않았다는 것.
지옥으로 갈 각오를 하라고 한 강진호이지만, 실제로 강진호는 그들을 크게 괴롭히지 않았다. 강진호가 생각보다 여린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시간이 없었지.’
회주님은 바쁘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본인은 본인이 딱히 바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지만, 옆에서 가만히 강진호가 소화하는 일을 보고 있자면 이현수가 무색할 정도였다.
물론 강진호는 자신의 일을 남에게 미룰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고, 복잡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일만 맡으니 이현수처럼 극단적으로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겠지만…… 여하튼 바쁜 건 마찬가지다.
그들이 강진호의 시험을 통과한 이후로 총회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졌는가. 그걸 생각해 보면 강진호를 탓할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허파에 바람이 들어갔지.’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이명환도 얼마 전까지는 허공에 둥둥 떠다니지 않았던가.
강진호의 시험을 통과하고 그의 친위대가 되었다는 것은 결과다. 원래 그들의 목적은 강해지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게, 그 누구도 그들에게 대적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지고 또 강해진다.
이명환의 목적도 그것 하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목적이 뒤흔들렸다.
강진호의 위상이 끝도 없이 올라가면서 그저 강진호의 친위대라는 칭호만으로도 그들을 무시하는 이들이 사라졌다. 아니, 오히려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질시와 부러움이 섞인 시선이 슬쩍슬쩍 느껴질 때마다 느낀 우월감.
아직 제대로 강해진 것도 아니건만, 강해진 후에 손에 넣을 수 있던 것들을 모두 가져 버렸다. 그러니 풀어질 수밖에.
이건 전적으로 그들의 잘못이다.
길을 잘못 들었다.
하지만 아직 늦지는 않았다. 길을 잘못 들었다면, 다시 올바른 길을 찾아가면 된다. 숲을 가로지르든, 아니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 갈림길을 찾든, 수정할 수 있다.
수정할 수 있는데…….
‘수정이 좀 과한 거 아닌가, 이거?’
지금 강당에는 마염들이 모두 집결해 있다. 그런데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누구의 눈치를 보냐고?
아니다.
지금 이곳에는 마염들밖에 없다. 조금 뒤에 강진호가 오기로 했지만, 아직까지는 그들을 지켜보는 이도, 감시하는 눈도 없다. 그럼에도 강당은 쥐 죽은 것 같은 정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됐냐고?
이명환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고, 허리가 구부정한 이들을 보고 있으려니 괜스레 서글퍼진다.
‘인권은 어디에 있는가.’
인권이 그 무엇보다 중요해진 세상이지만, 안타깝게도 무인계에는 그 인권이라는 개념이 아직 들어서지 않았다. 군기를 잡겠답시고 사람을 패대는 행위는 진짜 군대에서도 이제는 짐승 같은 짓으로 평가받지만, 무인계에서는 당연히 행해질 수 있는 훈육이라 받아진다.
이 어찌 야만스럽지 않은가.
마염들이 바짝 군기가 든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을 보고도 놀라지만, 바토르에게 얻어맞은 이들은 솥뚜껑을 보면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자신을 덮쳐 오던 바토르의 솥뚜껑같이 거대한 손은, 그들의 가슴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에, 그러니까, 바토르가 준 교훈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 깝치면 맞는다.
인류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개념.
근대를 넘어 현대에 와서야 겨우 희미해진 개념.
맞으면 정신을 차린다는 그 몰상식하고 끔직한 개념이 실제로 행해졌을 때 얼마만큼의 효과가 나오는지, 지금 마염들이 보여주고 있었다.
서글프지만 말이다.
‘정신 차려야지.’
과정은 영 좋지 않고, 결과도 꼭 좋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 모든 과정의 끝에 얻은 하나의 수확이 있다.
자만에 빠져 있던 마염들이 자신들이 아직은 약해 빠졌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는 것이다.
눈으로 보는 바토르와 실제로 겪어본 바토르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그저 ‘강하겠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그 손에 싸대기를 맞고 천장에 꽂혀보는 경험은 분명 다르니까.
그들 전부가 바토르에게 달려든다고 해도 이길 자신이 없었다. 이중걸 일파를 정리하면서 얻은 자신감은 바토르의 싸대기 한 방에 말 그대로 하늘 높이 승천해 버렸다.
남은 것은 본인들이 얼마나 쓰레기인지에 대한 자각과 그동안 떨어 댄 건방에 대한 반동.
그리고…….
‘회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이쯤 되니 그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바토르다. 그리고 그 바토르가 지금 붙으면 3초 만에 쓰레기통 안으로 구겨 넣어진다고 평하는 강진호다.
그런 강진호가 보기에 마염들은 어떨까?
사육장 안의 개미들이 뭣도 모르고 제 잘났다고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구경하는 기분 아닐까?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아마 이 고요한 분위기의 태반은 그런 우려가 만들어냈을 것이다.
‘차라리 빨리 오셨으면 좋겠다.’
숨이 막힌다. 질식할 것 같았다. 이 무거운 공기를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다.
그런 이명환의 기분을 전해 듣기라도 했는지,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렸다.
‘깜짝이야.’
너무 조용해서 그런지, 문을 여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려왔다. 열린 문 뒤로 강진호가 당연하다는 듯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이현수도 따라온다.
“뭐가 이리 칙칙해?”
강진호는 별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현수가 공기가 탁하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시누이가 같이 왔네, 시누이가.’
마염들이 가장 존경하는 이는 강진호다. 그리고 마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는…… 이제는 바토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염들이 가장 얄미워하는 이는 누가 뭐래도 이현수였다. 저 양반의 깐죽거림은 장난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 사람이 빡 도는지를 세상에서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 같았다.
강진호가 말없이 걸어 들어와 중앙에 섰다. 그러고는 이현수에게 눈짓을 했다.
“야, 가지고 들어와!”
이현수가 소리치자 문밖에 있던 이들이 커다란 박스를 하나씩 들고 들어왔다.
‘뭐지?’
“앞에 놔, 앞에.”
줄 앞에 박스가 하나씩 놓였다.
“뒤로 돌려.”
앞에 서 있던 이들이 박스 안에서 책을 꺼내 뒤로 넘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모든 이들이 박스에서 나온 책을 손에 들었다.
강진호가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너희가 익혀야 할 무공이다.”
“아…….”
모두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새로운 마공.
그들은 이미 마공을 익혔다. 새로운 마공이라면 분명 과거보다 상급의 마공임이 분명하다. 이현수는 손에 들린 책의 제목을 살폈다.
‘마라혈염기.’
이름만으로도 패도가 느껴진다.
강진호가 모두를 쭉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질문.”
예전이었다면 질문은 쉽게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강진호는 그만큼이나 이들에게 어려운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꽤나 강진호를 겪어보았다고 할 수 있고, 질문을 해야 할 때는 빨리빨리 물어보는 게 이득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모두였다.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비급만으로 익힐 수 있습니까?”
“무리겠지.”
강진호가 태연하게 답했다.
“일단은 비급을 완전히 외워라. 그 뒤로는 내가 조정해 준다.”
“어떤 마공입니까?”
강진호가 가볍게 웃었다.
“이번에 새로 창안한 마공이다.”
침이 꿀꺽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강진호가 창안한 마공.
그 말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떨리는 시선이 비급으로 향한다.
“저…… 회주님.”
이명환도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말해.”
“이걸 익히면 얼마나 강해질 수 있습니까?”
“흠…….”
강진호가 고민이 된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순간, 괜한 것을 물어봤나 후회한 이명환이지만, 다행히도 대답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얼마나라는 말은 조금 이상하군. 누가 어떻게 익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하긴 모든 무학이 다 그렇겠지만.”
“아…… 예.”
이명환이 기대한 대답은 아니지만, 더 따지고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라는 대답은 너무 빤하지 않습니까?”
이현수가 딴지를 걸어주자 이명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인간이 웬일이지?’
항상 사람 속을 뒤집어놓던 사람인데 지원사격을 해주다니, 해가 서쪽에서 뜰…….
“그리 말씀하셔 버리면, 저 쓰레기들이 제대로 노력을 안 해서 수준이 오르지 않아도 그러려니 해버리지 않겠습니까? 정확하게 이 정도까지는 가야 한다고 말씀을 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가?
‘이 개자식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럼 그렇지.
저놈이 그럴 리가 없지.
어떻게든 애들을 조금이라도 더 굴리겠다는 의도다. 그렇지. 그래야 이현수이지. 빌어먹을.
강진호가 살짝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익히느냐에 따라 극마에 들 수 있는 무학이다. 마공 중에서는 최상위라고 할 수 있지.”
“……최, 최상위.”
그 어마어마한 무공을 자신들에게 준단 말인가.
대체 뭘 믿고?
최상위 무학은 지도층 혹은 권력을 나누는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무인계의 상식이다. 자존심 강하고 제멋대로인 무인들이 통제되는 이유가 그 때문이 아닌가.
이게 얼마나 파격적인 일인지 모르겠다고?
보통 한 문파에 입문한 이가 최상위의 무학을 익힐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2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소림으로 따지자면, 사미승으로 들어간 이가 장경각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3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자신을 증명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최상위 무공이다.
그런데 그걸…….
‘헐, 씨.’
자신이 그 귀한 무공을 대충 들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한 이명환이 다급하게 비급을 품에 안았다. 동시에 여러 곳에서 같은 일이 벌어진다.
나눠 준 비급에서 나눠 준 보물로 위치가 격상된 것이다.
“이, 이런 걸 그냥 주셔도 됩니까?”
“그만큼 난해하다. 쉽지 않은 일이지.”
“아…….”
실망감은 들지 않았다.
최상위 무학이 난해한 건 당연하다. 게임을 해도 고랩과 저랩은 같지만 다른 게임을 하지 않는가. 실망할 이유가 없다.
진짜 실망은…… 아니, 좌절은 그다음에 왔으니까.
“하지만 그리 걱정할 게 없다. 좋은 소식이 있으니까.”
“예?”
“바토르도 같은 무학을 익히기로 했다. 이제 바토르가 너희를 많이 도와줄 것이다.”
“…….”
순식간에 지옥 같은 절망감이 강당을 덮쳤다. 다리가 풀려 쓰러지려는 이들도 있었다.
그 심상찮은 반응에 강진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이현수를 돌아보았다.
“얘들 왜 이래?”
이현수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너무 좋아서 그러는가 봅니다. 좋은 일이지요.”
언젠가 저 새끼의 목을 꼭 따버리겠다고 다짐하는 이명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