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
#7.
마존, 돌아오다 (6)
달려들 생각은 누구나 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보통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게 당연했다.
“생각보다 길게 베이진 않았네. 근육도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고.”
의사는 봉합을 마친 뒤, 붕대를 감았다.
“그러고 보니 병원 안에서 환자가 다친 건데…… 이게 책임 소재가 어떻게 되려나? 너 소송할 거냐?”
“소송?”
“그…… 병원 책임도 없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책임이라…….”
이상한 말이었다.
강진호가 나서서 강진호가 달려들다가 다친 것인데, 책임이 병원에도 있다?
“아니면 됐다. 부탁 좀 하자. 안 그래도 병원이 요즘 분위기가 안 좋은데 소송까지 걸리면 우린 죽어나거든.”
“예.”
강진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한 일은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던 시대를 살아온 강진호에게 현대의 법체계는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것도 이상했다.
아무리 중원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이 세계에서 태어나 수십 년을 살았다. 그런데 이 세계에 괴리감을 느낀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차차 나아지겠지.’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뿐일 거다.
그가 이곳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자, 다 됐다. 외과에 말해뒀으니까. 내일부터는 회진할 때 외과 선생님이 봐주실 거다.”
“고맙습니다.”
응급실 밖으로 나오자 이종인 형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치료 다 했어?”
“예.”
이종인 형사가 한숨을 살짝 내쉬더니 강진호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작성해 줄 게 몇 가지 있어. 그런데 손이 그래서 지금 뭘 적기는 힘들겠네. 내가 내일이나 모레 다시 올 테니까, 그때 서류 좀 적어줘.”
“예.”
“그리고…….”
이 형사는 잠깐 머뭇대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여하튼 고맙다.”
“…….”
“덕분에 범인도 잡았고, 인질도 무사했어. 우리는 그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절차라든가 책임 소재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경우가 많거든. 답답해 죽을 뻔했는데, 덕분에 살았다. 고맙다.”
이종인은 진심으로 고맙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강진호가 만류하자 고개를 든 이종인이 다시 엄한 표정이 되어 훈계를 늘어놓았다.
“그래도 다음에는 그러지 마라. 그러다가 다치면 다 네 손해야. 착한 사람이 이득 보고 살아야 좋은 세상이겠지만…… 현실은 안 그렇거든.”
잔소리라면 잔소리지만, 진심이 실려 있어서인지 듣기 싫지는 않았다.
“예.”
“그럼 몸조리 잘하고. 아, 나는 이종인이라고 한다.”
“강진호입니다.”
“그럼.”
이종인 형사는 강진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주고는 병원 밖으로 나갔다.
강진호는 이종인 형사가 자동문 밖으로 나가자 몸을 돌려 로비로 나갔다.
로비에는 의사와 간호사, 스탭들, 그리고 몇몇 형사들이 사건의 수습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저기 환자분!”
그때, 누군가 강진호에게 달려왔다.
“예?”
“아까 그 범인이랑 싸우신 분 맞죠?”
“예.”
그에게 다가온 이는 조금 전 아이를 안고 갔던 간호사였다.
“지은이가 환자분을 찾아요. 애가 심장이 안 좋아서 안정이 필요한데, 워낙 큰일을 겪어서 그런지 안정이 안 되고 있어요. 부모님이 오고 계시기는 한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서……. 죄송하지만 아이를 좀 만나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죠.”
거절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이 병원이라는 곳은 TV를 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는 곳이었으니까.
팔도 치료했겠다, 다시 병실로 돌아가 시간이나 죽일까 했는데 소일거리가 생겼으니 나쁠 게 없었다.
간호사는 고맙다고 고개를 숙이더니 강진호를 이끌고 위층으로 향했다. 강진호는 별말 없이 간호사를 따라갔다.
소아과라고 적힌 층으로 올라가자 강진호의 얼굴이 살짝 떨렸다.
“으아아아아아앙!”
“거기, 그러지 말라고!”
“나 집에 간다니까!”
사방에서 귀를 찢는 날카로운 음성들이 들려왔다.
‘거의 음공 수준이군.’
강진호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현대에는 과거에 비해 적응하기 어려운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중원의 아이들이라고 울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의 아이들의 울음은 데시벨의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같은 울음이라도 뭔가 더 크고 더 날카롭다.
“좀 시끄럽죠? 애들이라서 그래요. 이쪽으로 오세요.”
가장 안쪽으로 가서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침대에 누워 있는 아이가 보였다. 아이의 환자복 안으로 뭔가가 주렁주렁 달려 있고, 침대 옆에는 기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외계인 오빠!”
“음!”
얼굴빛이 좋지 못한 아이가 강진호를 보고는 반색했다.
하지만 그 반색조차도 어쩐지 힘이 없는 느낌이었다.
“아파?”
강진호의 말에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제 괜찮아요.”
말은 괜찮다고 하지만 얼굴빛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지은아, 자, 여기!”
“응! 간호사 언니, 고마워요!”
간호사가 주머니에서 붉은 물체를 꺼내 아이에게 내밀었다.
아이는 그것을 받아 강진호에게 쑥 내밀었다.
“자!”
“…….”
강진호는 눈앞에 보이는 붉은 원통형 물체를 보았다.
콜라.
강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이 꼬마는 내가 콜라를 얼마나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웬 콜라야?”
“오빠가 좋아하니까, 보답으로 주는 거예요.”
그 마음씀씀이가 예쁘다.
“고맙다.”
“천만에 말씀.”
강진호는 콜라를 받아 들고 뚜껑을 땄다.
치익.
탄산이 빠져나오는 소리와 함께 안에서 콜라 향이 풍겨온다. 강진호는 조금 긴장한 눈으로 콜라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결심한 듯 캔을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큭.”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탄산이 강진호를 괴롭혔다.
“꺄하하하하!”
아이는 그런 강진호를 보고는 또 자지러지게 웃어 댔다.
아이는 웃음이 많다고 하더니, 별것 아닌 일로도 자꾸만 웃어 대는 아이였다.
“지은아, 자꾸 그렇게 웃으면 안 돼. 심장이 놀란다니까!”
간호사의 말에 아이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웃지도 말라 그래.”
“그러다가 심장이 놀라면 지은이 아파요. 선생님 말 안 들을래?”
“알았어요.”
강진호는 아이와 간호사의 대화를 듣고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웃지도 말라니.
아픈 것은 이해하지만, 감정조차 죽여야 한다는 말인가.
아이에게 감정조차 표현하지 말라고 하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아이는 아이답게 커야 한다.
웃고 싶을 때는 웃어야 하고, 울고 싶을 때는 울어야 한다.
그걸 하지 못하는 아이가 얼마나 불행한 것인지 강진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냥 지나가는데 갑자기 튀어나와서 잡는 거야. 얼마나 놀랐는지, 가슴이 욱신거려서 혼났어.”
“그랬구나.”
“외계인 오빠가 갑자기 앞으로 나왔을 때 이상하게 안심이 됐어.”
“다행이네.”
“우…….”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강진호를 바라보던 아이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아, 맞다! 오빠는 한국말이 서투르지?”
“음?”
“외계인이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대답만 하지.”
강진호는 웃는 아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웃긴 걸까?
왜 웃는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웃는 걸 보니 다행이었다.
“지은아, 웃으면 안 된다니까!”
“언니, 그렇게 잔소리가 많으니까 아직 시집도 못 가고 그러고 있지.”
“……아니거든?”
간호사가 뭔가 부들부들대는 것이 눈에 보였지만, 아이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는지 필사적으로 참아내고 있었다.
강진호는 괜히 불똥이 튈까 싶어 시선을 회피하고는 아이만 바라보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자 문이 벌컥 열리더니, 전에 보았던 아이의 어머니가 안으로 들어왔다.
“지은아!”
“엄마!”
“지은아! 지은아! 괜찮니?”
지금까지 꿋꿋하던 아이는 엄마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아이는 아이. 어른도 심장이 떨릴 일을 겪고 멀쩡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강진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그가 할 일은 끝났다. 굳이 이곳에서 어머니와 딸의 대화를 듣고 있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강진호가 미련 없이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아이의 어머니가 강진호를 따라 밖으로 뛰어나왔다.
“잠깐만요.”
“예?”
“이야기 들었어요. 우리 애를 구해주셨다고.”
“별것 아닙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애가 병이 있어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많이 심한가요?”
“예?”
순간,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둥절해하는 아이의 어머니에게 강진호가 재차 물었다.
“병이요.”
“아…… 병이요. 그렇게까지 심하지는 않아요. 아직은 일상생활에 크게 지장이 있는 건 아닌데, 언제 상황이 심해질지 몰라서.”
강진호는 대답 없이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수술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수술도 할 수가 없다네요. 다른 병원도 많이 돌아봤는데, 어디서도 수술해 주겠다는 곳이 없어요.”
“그렇군요.”
“조금 더 커야 수술이라도 할 수 있다는데, 그때까지 아이가 버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네요.”
강진호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가볍게 물어본 것인데 말이 많이 나오는 것을 봐서 그녀도 속에 쌓인 게 많은 모양이었다.
“여하튼 고맙습니다.”
너무 많이 늘어놓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그녀가 대화를 정리했다.
“건강해진다면…….”
“예?”
“아이가 건강해진다면 뭘 하고 싶으세요?”
아이의 엄마는 멍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왜 이런 잔인한 질문을 하는 건가.
“학교를 보내고 싶죠.”
하지만 도움을 받은 입장이라 역정을 낼 수는 없었다.
“친구도 만들어주고 싶구요.”
“알겠습니다.”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그럼 몸조리 잘하세요.”
아이의 엄마가 등 뒤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 느껴졌다.
강진호는 아이에게 빚이 있다. 아니, 이제는 ‘빚이 있었다’라고 말해야 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빚은 이미 갚았으니까. 아이를 구해준 것으로 콜라 한 캔의 값치고는 과도한 보답을 한 것이다.
그러니 이제 아이를 도와줄 필요는 없는 것일까?
아니면……,
강진호는 은원을 정확히 하려 드는 편이다. 그가 받은 것이 있으니 갚았다. 그러니 이제 아이와 그 사이에는 아무런 은원도 없는 것이다.
그럼 갚을 것도 없다.
하지만…….
강진호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콜라캔이 보였다.
‘빚을 하나 더 졌군.’
당연한 말이지만, 은혜를 입었으면 보은을 해야 한다.
강진호는 새로 입은 은혜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가 들어도 억지였지만, 강진호는 그렇게 정해 버렸다.
쓸데없이 은혜를 입는 것도 싫어하는 만큼 의미 없이 다른 이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니 은혜를 입어야 보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콜라 한 캔.
그가 입은 은혜였다.
강진호는 딱 그가 입은 은혜만큼 보답할 것이다.
그의 보답이 그쪽에서도 콜라 한 캔의 가치로 느껴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강진호가 그리 정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