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1
#80.
입대하다 (5)
탕!
표적이 올라오기가 무섭게 강진호의 K―2가 불을 뿜었다.
표적지가 올라오던 모양 그대로 자연스럽게 뒤로 눕는다.
‘번거롭게.’
서서쏴로 쏴도 다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 거리에 따라서 다르게 총을 쏘는 훈련을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실제 전투에서 적이 멀리 있다고 엎드려쏴를 하고, 가까이 있다고 일어나서 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차라리 거리와 상관없이 자세별로 가깝고 먼 표적을 모두 맞추는 훈련을 하는 것이 좀 더 훈련이 될 것 같다.
이곳의 훈련은 훈련병들의 전투력을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훈련을 위한 훈련을 한다는 느낌이었다.
좀 더 번거롭게, 좀 더 시간을 끌 수 있게 말이다.
그리고…….
‘훈련은 그렇게 시키고 왜 실제 사격은 엎드려쏴로 하는 거지?’
오전 내내 전진무의탁 훈련을 하고 실제로는 호 안에 들어가 총을 고정시키고 사격을 하다니, 이게 대체 뭐하는 짓거리란 말인가.
납득할 수 없는 일이 한둘이 아니지만, 강진호는 굳이 불만을 표하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당부가 떠오르기도 했고, 그가 굳이 이것을 바꾸어 얻을 수 있는 이점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머릿속에 차오르는 불만과는 다르게 강진호의 몸은 표적이 바뀔 때마다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탕!
탕!
깔끔한 만발.
“100번 훈련병, 만발!”
“만발!”
스무 번을 쏴서 스무 번 모두 명중시킨 강진호는 만발이라는 성적을 받아 들고 사로에서 빠져나왔다.
“만발이야?”
“예?”
훈련생의 성적을 적는 교관이 강진호를 한 번 올려다보더니, 씨익 웃었다.
“사격 잘하는데?”
“감사합니다.”
사격장을 빠져나와 총기를 검사하고 자리에 앉은 강진호는 빤히 총을 내려다보았다.
‘이것 때문일까?’
중원의 수많은 무인들이 현대에는 겨우 명맥이나 유지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는데, 총을 직접 쏴보니 왜 무인들이 사라졌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반적인 무인은 총을 막을 수가 없다.
물론 상승의 무인은 총 정도야 쉽게 막을 수 있겠지만, 상승의 무인은 과거 그가 중원에 있을 때도 겨우 한 줌에 불과했다.
더구나 총의 가장 큰 장점은 빠르다는 것이다.
검으로 사람을 벨 수 있을 만큼 숙련하는 데도 기본적으로 일 년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
백일도, 천일창, 만일검.
칼을 숙련하는 데는 백 일의 시간이 필요하고, 창을 숙련하는 데는 천 일의 시간이 필요하며, 검을 숙련하는 데는 만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강호의 격언.
강진호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지만, 최소한 각각의 무기에 백 일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납득하고 있었다.
하지만 총은?
강진호가 총기에 대한 훈련을 받은 것은 불과 반나절이었다.
그 이전부터 총을 지급 받고 구조를 어느 정도 꿰기는 했지만, 그것은 전투가 아닌 정비에 관련된 일일 뿐, 실제로 총에 대한 것을 배운 시간은 반나절이 전부였다.
그리고 반나절 만에 강진호는 총이라는 무기를 숙련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총을 쏘자마자 강진호처럼 만발을 하지는 못했지만, 대부분 절반 이상을 표적에 맞추고 있었다.
‘절반이나 말이지.’
200미터는 화살이 겨우 닿는 거리다. 화살이라는 것이 불특정 다수에게 날리는 공격이며, 숙련을 위해서는 다른 무기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이 총이라는 물건은 평범한 사람을 반나절 만에 살인 병기로 바꾸어 버리는, 마치 마법과도 같은 병기였다.
어설프게나마 총을 쏠 줄 아는 이를 맨손으로 상대하려면, 무인이라 해도 십 년 이상의 고련이 필요할 것이다.
십 년 이상의 시간과 반나절.
생각할 것도 없는 문제였다.
당장의 전력이 필요한 이들은 총을 지급했을 것이고, 총 앞에 무인들이 쓸려 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추가 병력이 필요하게 되면 무인들을 키우는 것보다 총을 쥐어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렇게 무인들은 천천히 사라져 갔으리라.
‘이성적으로는 그런데 말이야.’
무인들이 사라지게 된 매커니즘은 나름 가설을 세워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세계에는 무인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모두 사라져 있다는 점이었다.
역사는 기록된다.
하지만 무인들의 역사는 철저하게 배격되어 있었다.
‘다른 세상인 건가?’
무인들이 이 세계에 존재했다면, 그들에 대한 역사가 전해져 내려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 세계의 어떠한 문헌에도 무인들에 대한 것은 언급이 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강진호가 갔던 세상이 이곳과는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그것으로도 의문이 모두 풀리지는 않았다.
‘무인이 존재한단 말이지.’
그렇다면 이 세계에 존재하는 무인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존재하지 않아야 할 것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존재했던 것은 존재하지 않은 듯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두 가지 명제가 상충되고 있었다.
강진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 눌렀다.
고민해 봤자 답이 나오지 않을 문제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야, 너 만발했냐?”
“그래.”
그의 옆에 앉은 동기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진짜?”
“그래.”
‘이놈은 대체 뭐지?’
생활관 옆자리를 쓰는 만큼 평소 생활도 지켜보고 있는 사내가 보기에 강진호라는 인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훈련소는 FM대로 사람을 돌린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을 해보면 그 FM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지 알 수 있다. 지키라고 만든 게 FM이 아니라 그게 정석이니 최소한 따라 하는 척이라도 하라고 만들어놓은 것이라고 느껴질 만큼 말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진짜 모든 생활을 FM대로 했다.
그의 전투화는 언제나 깨끗한 상태로 유지가 되었고, 관물대의 의복들은 손가락이 베일 만큼 각이 잡혀 있었다. 이제는 그런 문화가 없어졌으니 굳이 각을 잡지 않아도 된다는 조교의 만류에도 그게 편하다며 깔끔하게 각을 잡아놓은 옷들을 보면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물품 하나하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쓸데없는 물건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생활 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과가 끝나면 다들 어떻게든 쉬고 싶어 하기 마련이건만, 강진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눈을 감고 있다. 몇 번 다른 동기들이 말을 걸어보았지만, 딱히 반응이라는 것을 보이지 않았다.
그것만이면 다행이련만……
교육 훈련을 강진호와 함께 진행한다는 것은 더없는 불행이었다.
특히나 101번 훈련병이라 강진호의 바로 뒤에서 훈련을 받는 그는 말 그대로 죽을 맛이었다.
그도 평균을 따져 봤을 때 다른 이들보다 못하는 것이 아닌데, 하필이면 강진호의 옆이나 뒤에서 훈련을 받다 보니 천하의 모지리가 되고 만 것이다.
스무 발을 모두 맞춘 이 옆에서 열두 발을 맞춘 이가 얼마나 모자라 보이겠는가.
실제로는 그도 충분히 합격을 한 수치건만, 비교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너, 전에 훈련소 온 적 있냐?”
“무슨 소리지?”
“훈련소에서 훈련 받다가 퇴소해서 다시 입대하는 애들도 있잖아. 너 처음인 건 맞냐?”
“처음이다.”
“진짜?”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너에게 거짓을 말해서 얻을 이득이 있나? 왜 말을 믿지 못하는 거지?”
‘믿을 만한 짓거리를 하고 믿으라고 해야지!’
이건 훈련병이 아니라 당장에라도 해외파병이라도 나가야 할 급의 전투력인데, 왜 남들 튜토리얼하는 곳에 쳐들어와서 다른 이들을 괴롭힌단 말인가!
“밸런스 패치가 시급합니다.”
“무슨 뜻이지?”
“아냐, 아무것도.”
101번 훈련병 지영화는 한숨을 푹 쉬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세상은 불공평해.”
게임도 불공평하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밸런스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데 반해서 ‘군바리 퀘스트’는 불공평해도 너무 불공평했다.
최소한 튜토리얼을 할 때만이라도 고렙을 만나지는 않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 좋다.
밸런스야 안 맞을 수도 있지.
60억 인구 모두를 밸런스 조절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일지는 생각하면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이거다.
그럼 적어도 외형 패치라도 하란 말이다!
기본 능력치도 다른 인간이 얼굴까지 잘생겨 버리면 대체 어쩌자는 말인가.
지영화는 쓰린 속을 달래며 아무 감흥 없는 눈으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강진호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참 불공평하지.”
“응?”
“아니야.”
지영화는 애꿎은 총구를 툭툭, 차다가 교관에게 걸려서 미친 듯이 바닥을 굴러야 했다.
강진호가 느끼기에 훈련소에서 가장 의외인 점은 주말에는 쉬게 해준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주 5일이 일상인 시대라지만, 막 입소한 훈련병들조차 주말을 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한 강진호로서는 뜬금없이 찾아온 주말 휴식에 좌절하고 말았다.
일반적으로 훈련병들은 휴식이 있는 주말을 반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안타깝게도 일반적인 편에 속하지 못했다.
주중에 혹사된 육체를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쁨에 젖는 다른 훈련병들과는 달리 강진호는 딱히 육체의 피로를 느끼지 않았다.
다른 훈련병들과는 육체 자체가 다른 것이다.
그 정도의 훈련으로 피로를 느낄 이유가 없고, 설사 피로함을 느낀다 하더라도 육체가 스스로 회복을 한다.
그러니 강진호에게 주말이란 지루함을 다시 느껴야 하는 시간일 뿐이었다.
강진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고깝게 보이는 사람도 있던 모양이다.
“야.”
강진호는 자신 쪽으로 들려오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눈을 떴다.
“넌…… 씨, 주말인데 뭐하는 거냐?”
강진호는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오는 이를 보며 살짝 눈을 찌푸렸다.
커다란 덩치가 인상적인 남자가 뚫어져라 강진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러닝셔츠 위로 올라와 있는 문신이 위협적인 남자.
얼굴이 낯이 익었다.
아마도 옆자리 사람 같았다. 평소에 주변인들에게 관심이 없는 강진호가 얼굴을 기억할 만큼 많이 마주친 사람이다.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 보이는 남자를 보며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지?”
“그따위로 처앉아 있지 말라고. 남들이 불편해하는 것 안 보이냐?”
강진호는 가만히 남자를 바라보았다.
강진호가 아무런 대답 없이 가만히 노려보자 남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왜, 왜 그래!”
주변의 다른 훈련병들이 우르르 달려와 남자를 막았다.
“아니, 나만 저 새끼 재수 없는 거야? 하는 짓거리를 좀 보라고! 새끼가 눈치가 없어도 적당히 없어야지. 저 새끼 때문에 피해 본 게 한둘이야?”
“잘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
“누군 못해서 그러나? 적당적당히 넘기면 서로 편한 걸 저 새끼 혼자 살겠다고 나대는 걸 보면서도 그래? 지금도 봐. 남들 쉬는데 혼자서 저러고 있으면 옆 사람들이 얼마나 불편하냐고!”
그제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깨달은 강진호가 다리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뭔가 피해를 준 모양이군.”
“저 새끼 말하는 본새 좀 보라고. 야, 너 이리 와. 이리 오라고, 이 새끼야.”
강진호의 눈썹이 꿈틀했다.
될 수 있으면 좋게 말로 하고 싶은 것이 강진호의 심정이지만, 저런 식으로 자꾸 욕을 하면 대화로 풀어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기 마련 아닌가.
“가면 어쩌겠다는 거지?”
강진호가 사내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