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14
#813.
응원하다 (3)
부우우우우웅!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최 씨는 힘차게 액셀을 밟았다.
“주말에 쉬는데 이게 뭔…….”
투덜대는 입과는 다르게 그의 표정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프리랜서다. 거창하게 말하면 프리랜서고, 속된말로 하자면 일당바리였다.
일당을 받고 일하는 사람에게 주말이 있겠는가?
일이 있는 날은 일하는 날이고, 일이 없는 날은 쉬는 날이다.
특히나 최 씨 같은 버스 운전기사에게 주말은 본격적으로 일해야 하는 날이었다. 아무래도 관광버스는 평일보다 주말에 수요가 많은 편이니까.
일요일이면 산이며 들이며 바다로 놀러 가는 동호회와 동창회들로 예약이 들어차 있어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일이 없었다.
공을 치는 날에 할 게 뭐 있겠는가. 집에 드러누워 쉬어야지.
‘큰일 날 뻔했네.’
할 일도 없고, 날씨도 선선하고…… 집에서 대낮부터 소주 한 병을 까볼까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술을 마셨다면 지금처럼 갑작스레 잡힌 일을 놓쳤을 것 아닌가. 음주운전을 할 수는 없으니까.
그나마 가야 하는 곳이 집에서 멀지 않아 다행이었다. 시간을 맞추겠다고 과속할 필요가 없으니까. 일당 얼마 번다고, 과속 딱지 하나 떼면 적자다.
‘그런데 여기서 왜 버스를 급하게 찾지?’
그가 지금 가고 있는 곳은 보육원이었다.
보육원에서 버스를 대절하는 것은 이상한 게 아니다. 예전과는 다르게 보육원에서도 원생들의 사회 경험을 중요시 여기기 시작했고, 국가의 지원을 받아 이곳저곳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자주 나가게 됐으니까.
최 씨야 그런 경험이 없지만, 다른 기사들이 보육원에 가서 몇 번 애들을 태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근데 왜 일요일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두 가지.
일반적으로 체험 프로그램은 토요일이나 금요일에 잡는 게 일반적이다. 일요일에는 교사들도 쉬어야 하니까. 게다가 일요일에 계획이 있다 해도 이리 갑작스레 버스를 대절하는 것은 이상하다. 보통은 며칠 전에 미리 예약을 해두지 않겠는가.
‘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최 씨야 운전해 주고 돈만 받으면 그만이다. 공칠 뻔한 날에 이렇게라도 일거리가 생기니 다행이지 뭐.
부우우웅.
조금은 경쾌하게 버스를 몰고 가다 보니 저 멀리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
‘저건가?’
최 씨가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곳은 분명 저곳인데, 아무래도 뭔가 좀 이상하다.
‘깨끗한데?’
눈에 보이는 건물은 무척이나 깨끗했다. 누가 봐도 신축 건물이 아닌가. 한눈에 보아도 올리는 데 돈 좀 들었겠다 싶은 건물이다.
보육원의 건물이 신축이고 비싸 보인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보육원이라고 꼭 돈이 없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동안 최 씨가 봐온 보육원들의 건물은 언제나 낡았기 때문이다.
‘재단에 돈이 좀 있나?’
그럴 리가 없지.
돈 있는 사람이 뭐 하러 복지 재단을 하겠는가. 아니, 돈 있는 사람이 복지 재단을 하는 건 맞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그 돈을 아이들에게 쓰려고 하지 않는다.
끼이이익.
보육원을 얼마 앞두고 최 씨가 차를 멈춰 세웠다. 그러고는 앞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찰칵.
담배를 꺼내 입에 문 최 씨가 불을 붙였다.
요즘 세상은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 보육원 안이면 당연히 금연일 테니, 미리미리 담배를 피워놔야 한다.
맛있게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인 최 씨가 조금 덤덤한 시선으로 보육원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도둑놈들.’
한때는 보육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다 좋은 사람들이라고 믿고 산 적도 있다. 하지만 세상을 좀 알게 된 이후부터는 눈앞에 씌워진 색안경이 벗겨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좋은 일을 한다는 감투를 쓰고 제 잇속만 차리는 인간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얼마 전에도 기부금을 운영하는 재단이 그 돈으로 직원들 성과급 잔치를 열고, 크루즈 여행을 다녔다는 기사마저 나지 않았는가.
좋은 마음으로 보탠 돈이 직원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건 아무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월급을 주는 거야 이해한다. 하지만 그 돈으로 놀러 다니는 꼴을 누가 좋게 보겠는가.
“쯧쯧.”
최 씨가 거칠게 연기를 빨아 당겼다.
‘믿을 놈이 없는 세상이야.’
예전에는 서로 믿고 살았는데, 가면 갈수록 서로를 의심하며 사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렇다면 세상이 각박해진 걸까?
그건 아닐 것이다.
보육원의 비리는 분명 과거에 더 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걸 파내고 기사화하려 들지 않았으니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
언론이 떠들어 대고 서로가 감시하는 눈이 많아지면서 세상은 조금씩 깨끗해지고 있다. 그 와중에 불신이 싹튼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내가 별생각을 다 하네.”
최 씨가 담배를 끄고는 다시 버스에 올랐다.
육중한 버스가 무게감 있게 움직이며 보육원 정문 안으로 들어갔다.
정문 안으로 보이는 넓은 운동장에는 이미 두 대의 버스가 도착해 있었다. 슬쩍 시계를 본 최 씨는 자신이 늦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와 있는 버스와 줄을 맞춰 차를 세운 최 씨가 문을 열고 버스에서 내렸다.
‘누구한테 이야기를 해야 하지?’
최 씨가 운동장에 나와 있는 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어?’
운동장에는 아이들과 몇몇 교사로 보이는 이들이 나와 있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보육원이라고 하지 않았나?’
최씨가 고개를 돌려 현관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성심보육원이라는 다섯 글자가 양각되어 있다.
‘보육원 애들이 뭐 저렇게 잘 입어?’
어쩌면 이것도 고정관념일지 모르지만, 보육원 아이들을 일반적인 집안에서 자라나는 아이들보다는 조금 없이 지낸다고 생각하기 마련 아닌가.
하지만 아이들이 입고 있는 옷은 딱히 꾀죄죄해 보이지도 않고, 낡아 보이지도 않았다. 거리를 지나면 보이는 평범한 아이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아니…… 오히려 좀 더 있어 보인다고 할까?
‘이상하네.’
그 ‘있어 보임’을 가중시켜 주는 것은 아이들의 표정이었다. 정말 한 점 걱정이 없다는 듯이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려니,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병신이었네.’
최 씨는 기분 좋게 웃었다.
부모가 없다고, 시설에서 자란다고 아이들이 어둡지는 않다. 최 씨는 지금 그 사실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저 조금 다르게 자랄 뿐이지, 그 나이대의 아이들과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누구와…….”
“언제까지 기다립니까? 예?”
최 씨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뭐지?’
먼저 와 있던 기사 중 하나가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30분이나 기다렸으면 이제 출발해야지. 차도 다 왔는데, 왜 계속 기다립니까? 어차피 가는 곳도 다 다른데, 미리 출발하면 좀 좋아요?”
최 씨가 눈을 찌푸렸다.
‘저 새끼가?’
운전기사는 서비스직이다.
택배 기사조차 서비스직으로 분류되는 세상이다. 물건을 옮기는 사람도 고객에게 봉사하는 세상인데, 사람을 나르는 일은 당연히 서비스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은 절대로 저런 언행을 해서는 안 된다. 저 양반도 분명히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리 격하게 나오고 딴지를 건다는 것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심사가 틀림없었다.
‘지랄 좀 할까?’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 있는지 빤히 보인다.
보육원에서 자체적으로 버스를 대절할 만큼 여유가 있을 리 없으니, 이 돈은 지자체나 다른 후원자가 낸 것이다. 그러니 이들에게는 좋게 보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 중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어차피 자기는 사람이나 날라주고 돈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 직종에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인간이든가. 어느 쪽이든 그냥 좌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저런 병신 한둘 때문에 이미지가 개판된다고.’
승객을 살뜰히 모시는 기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대외적인 이미지라는 건 저런 한둘의 또라이 때문에 박살이 나고는 한다.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최 씨가 막 나서려고 할 때였다.
“좀만 더 기다려 주시면 안 될까요? 안에 아직 준비가 덜 끝난 애들이 있어서요.”
아이 중 하나가 공손히 말을 건넸다.
‘아…….’
공손하긴 하지만, 결코 비굴하거나 겁을 먹은 것 같지는 않았다. 아이의 당당한 대처에 최 씨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글러먹은 인간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야! 그럴 거면 추가 요금을 내든가! 우리는 뭐 시간 날려가며 일하는 사람인 줄 알아? 너희 책임자 어디에 있어?”
“아니, 저런…….”
더 이상은 참지 못한 최 씨가 막 성질을 부리려는 순간, 아이들이 웃기 시작했다.
‘웃어?’
어른이 윽박지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웃는다?
그냥 웃는 것도 아니었다. 저 미묘한 감정은 뭐랄까, 비웃음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저기요.”
아이 중 하나가 손을 뻗어 한쪽을 가리켰다.
‘응?’
아이의 손이 가리킨 곳에 한 사람이 있었다. 보육원 담에 바짝 붙어 쪼그려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한 사람이.
‘뭐지, 쟤는?’
나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제 겨우 스물이나 되었을까?
최 씨는 자신도 모르게 그 청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거지.’
까치집을 한 머리, 누가 봐도 낡아 보이는 하늘색의 삼선 트레이닝복, 그리고 화룡점정을 찍는 검은 슬리퍼.
‘나 동네 백수요’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남자가 이쪽으로 고개를 슬 돌린다.
‘쟤는 진짜 보육원에 사는 애 같네.’
머릿속으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보육원 원생에 대한 이미지를 온몸으로 구현하고 있는 남자였다. 살짝 나이가 많아 보인다는 게 아쉽지만, 저 정도면 100점 만점에 99점은 줄 만하다.
“오빠!”
“……어?”
“오빠 찾는데?”
“어?”
“빨리 와봐!”
“어.”
사내가 영 기력 없는 목소리로 몇 번 대답을 하더니, ‘끙차’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터덜터덜 이쪽으로 걸어왔다.
“왜?”
“책임자 나오래.”
“……어?”
남자의 고개가 슬 돌아갔다.
움찔.
시비를 걸던 기사는 남자와 시선이 마주치자 살짝 몸을 떨었다.
‘왜 저러지?’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눈이 마주친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하기야 좀 겁이 날 만하긴 하지.’
누가 봐도 양아치가 아닌가.
요즘은 거리를 둘러봐도 이런 동네 노는 형은 찾아보기 힘들다. 설사 복장을 완벽하게 맞추더라도 저 표정과 몸짓에서 드러나는 귀찮음과 나른함은 표현할 수가 없다.
저런 놈들은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 인생에 잃을 것이 없는 놈들이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어, 언제 출발합니까?”
“그게 문제?”
남자가 태연하게 대답하자 기사가 자존심이 상했는지 언성을 높였다.
“거, 뭘 할 거면 빨리빨리하든가. 이리 미적대니 이따위로 살지. 넌 됐으니까 어른 나오라고 해, 어른!”
순간, 남자의 눈썹이 꿈틀댔다.
가만히 기사를 바라보던 남자의 입이 열렸다.
“이따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