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15
#814.
응원하다 (4)
기사가 흠칫했다.
사내의 목소리는 고저가 없었다. 딱히 위협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듣고 있으면 어쩐지 사람을 움츠려 들게 만드는 목소리다.
“그…….”
기사가 뭔가 말을 하려는 순간, 강진호가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잠시만요.”
“…….”
“잠시만.”
강진호가 별말 없이 물러나서 주머니에서 전화를 빼 들었다. 그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터덜터덜.
벙쪄 있는 기사를 내버려 두고 강진호가 왔던 곳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가면서 새 담배를 꺼내 문 강진호가 불을 붙이고는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바짝 귀를 기울여 봤지만, 오가는 통화 내용이 잘 들리지 않는다.
전화가 와서 받은 거라면 아무 상관 없겠지만, 지금 분명 본인이 전화를 걸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분명 이 일과 관련이 있는 일일 텐데…….
강진호가 전화를 끊더니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가셔도 돼요.”
“……뭐?”
“가시면 된다구요.”
“가다니?”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한국말을 잘 못하시나? 그냥 가시면 된다구요. 다른 차 불렀어요.”
“…….”
기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최 씨는 그 광경을 보며 슬쩍 강진호의 앞쪽으로 발을 옮겼다. 저 미친놈은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미친놈이 정신병이 있나.’
손님 상대로 언쟁을 벌이다 못해 싸움까지 건다면 보통 사고가 아니다. 일손이 부족하고 차가 부족하니 퇴출될 일까지는 없겠지만…….
‘피해는 이쪽이 받는다고, 이 새끼야.’
가만히 잘 먹고사는 다른 기사들까지 욕을 먹는다. 특히나 이곳은 보육원이 아닌가. 버스 기사가 보육원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고 주먹까지 휘두른다?
기사 나가 딱 좋다.
하이에나처럼 기삿감을 찾아 헤매는 기자들이 이런 건수를 놓치겠는가. 어설프게 대응을 잘못했다가는 한동안 버스 기사 욕하기가 국민 레크레이션이 될 것이다.
“아니, 일단은 진정을 하고…….”
최씨가 앞을 막아서는 그 순간이었다.
부우우우우웅!
귀를 찢는 듯한 엔진 소리와 함께 정문으로 세단 한 대가 과격하게 밀고 들어왔다.
‘저건 또 뭐야?’
오늘 참 별일을 다 겪는다 싶다. 안으로 들어온 세단이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 선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그 안에서 정장을 차려입은 사내가 다급하게 내렸다.
주위를 빠르게 훑은 사내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진호에게 다가갔다.
“저 사람입니까?”
“네.”
“죄송합니다. 제가 급하게 사람을 구하느라……. 제대로 된 사람을 구했어야 하는 건데.”
“괜찮아요. 그런데 이제 슬슬 출발해야 하는데, 새 버스는?”
“다른 버스가 지금 오고 있습니다. 제가 잘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사내가 고개를 돌리더니 원생들에게도 허리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제가 일처리를 제대로 못해서.”
“괜찮아요.”
“그게 실장 아저씨 잘못도 아닌데 왜 사과를 하세요.”
“괜찮아요. 그러지 마세요.”
사내가 한숨을 쉬고는 부드럽게 웃었다.
“예. 여하튼 죄송합니다. 그리고…….”
사내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헐…….’
최 씨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뭐지, 저 사람?’
이중인격자인가?
아이들을 상대할 때는 더없이 사람이 좋아 보였는데, 몸을 돌리는 순간 섬뜩하기 짝이 없는 얼굴이 되었다. 집 안에 출현한 벌레를 보는 듯한 눈으로 기사를 한 번 훑어본 사내가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됐어?”
전화기에서 말소리가 흘러나온다. 살짝 귀를 기울이면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 바로 가고 있답니다. 실장님, 제가…….]“내가 뭐 어려운 것 시켰나?”
[아닙니다.]“그럼 내가 지금 주말에 차 수배해 달라고 했다고 나한테 엿 먹이는 건가?
[절대 아닙니다, 실장님.]“그럼 너는 그 많은 시간 동안 제대로 된 기사 하나 섭외 못할 정도로 능력이 없다고 받아들여도 되나?”
[……죄송합니다.]“직장인이 죄송하다는 말로 뭔가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벌써 벌어진 일이 죄송하다고 사과하면 해결되나? 넌 원래 일을 그렇게 하나?”
[아닙니다, 실장님.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됐고, 너 어디야?”
[사무실입니다. 혹시 몰라 나와 대기하고 있습니다.]“퇴근하지 말고 기다려. 일 끝내고 내가 들어갈 테니까.”
[……예.]“지금 연락한 데 다 우리 계약처지?”
[예.]“이 기사 관련된 곳 잘라.”
[예?]“재계약하지 말고 앞으로 모든 업무에서 배재해. 버스뿐만이 아니라 관련 차량 들어가는 건 다 취소시켜. 알았어?”
[실장님, 여기 규모가 좀 있는 데라…….]“그래서?”
사내가 싸늘하게 대답하자 전화기 너머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다 정리하겠습니다.]“영업부에는 내 이름으로 업무 협조 보내. 안 된다는 사람 있으면 내 쪽으로 다 연결시키고.”
“빨리 보내.”
[지금 바로 다시 연락해 보겠습니다.]“끊어.”
전화를 끊은 사내가 다시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김강철 기사님이라고 하셨죠?”
“……예.”
뭔가 상황이 심상찮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은 기사가 어벙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뭔가 착오가 있던 모양입니다. 오늘분 이용료는 지급하라고 해뒀으니까, 그만 퇴근하시면 됩니다.”
“예?”
조규민은 여전히 환히 웃고 있었다.
“퇴근하시면 된다구요. 일당은 들어갈 겁니다. 이곳까지 먼 길 오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 아니, 그게…….”
그 순간, 기사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엇!”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한 기사가 서둘러 전화를 받으며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뒤쪽으로 물러났다.
“예. 예, 사장님. 예. 예?”
목소리가 점차 힘을 잃어간다.
뭐라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휴대폰 너머에서 고성이 울리는 것은 확실했다. 순간순간 인류의 가장 충실한 애완동물과, 친숙하게 자주 듣는 숫자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예, 예.”
보이지도 않는 상대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던 사내가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아…… 저, 제가…….”
“말씀 들으신 모양이네요.”
사내가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말했다.
“그만 가보시면 됩니다.”
“아, 아뇨. 제가 뭔가 실수를 한 것 같은데, 사과를 드리…….”
“기사님.”
“…….”
“가시면 됩니다.”
웃는 낯으로 말하고 있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엄정함은 기사가 어찌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할 말을 잃은 기사가 힘없이 버스에 올랐다. 그러고는 조용히 버스를 몰아 정문 밖으로 사라졌다.
사내, 그러니까 조규민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는 흐뭇하게 웃으면서 몸을 돌렸다.
뭔가 박수라든가, 아니면 칭찬이라든가.
소소한 그런 기쁨이 있지 않을까?
“와, 무섭다.”
“통화하는 것 봤어? 사람 잡던데?”
“저게 직장 내 부조린가 그건가?”
“…….”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영 좋지 못했다. 아이들이 묘한 시선으로 조규민을 보며 수군대고 있었다.
“그렇게 안 봤는데…….”
“아까 가시는데, 불쌍하더라.”
“나 울 뻔.”
“…….”
조규민은 연속적으로 들여오는 수군거림에 주춤 물러났다.
‘이게 아닌데…….’
그의 활약에 환호가 떨어져야 하는데, 비난이 난무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규민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완벽하게 처리하지 않았나?’
그때, 강진호가 터덜터덜 이쪽으로 걸어왔다. 아이 중 하나가 강진호에게 쪼르르 달려가더니, 작은 손으로 소매를 움켜잡고 말했다.
“형, 형.”
“응?”
“저게 갑질이야? 갑질은 하면 안 된다고 들었는데, 그럼 실장 아저씨가 잘못한 거야?”
푸욱.
날카로운 비수가 심장을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조규민은 당황하여 입을 헤, 벌렸다.
‘가, 갑질?’
아닌데, 그런 거 아닌데.
하지만 아이들의 눈은 순수하다. 아이들의 눈에 그리 보였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강진호가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종석아.”
“응?”
“저건 갑질이 아니야.”
“……그럼?”
“조 실장님이 갑질을 하실 분이 아니시잖아. 그렇지?”
“응. 그건 맞아.”
‘강진호 씨!’
조규민은 눈물을 왈칵 쏟을 뻔했다. 순식간에 인민재판의 현장으로 내몰렸건만, 강진호는 그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충성하겠습니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하지 않는가. 이 험악한 상황에서도 그의 진심을 알아주는 저 사람을 위해…….
“저건 갑질이 아니라 인성질이라고 하는 거야. 조 실장님은 갑질을 할 만한 분이 아니야. 갑질을 한 게 아니라 그냥 성격이 나쁜 거야. 인성이 덜됐다고도 하지.”
“아아, 그럼 갑질이 아니구나.”
“그렇지.”
“아!”
아이가 쪼르르 조규민에게 달려갔다. 그러고는 조규민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오해했어요.”
“…….”
조규민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오해?
무슨 오해?
지위를 이용해서 사람을 압박하는 짓을 하는 나쁜 놈이 아니라 원래 성격이 더러운, 글러먹은 인간이라는 걸 이제는 알았다는 건가?
뭔 놈의 오해!
“그럼 그렇지. 조 실장님이 갑질을 하실 리가 없지.”
“그래. 그냥 성격이 나쁜 건데.”
“사실 성격 안 좋은 기미는 예전부터 있었지.”
“여자 친구도 없고.”
거기서 여자 친구가 왜 나와, 이놈들아!
조규민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장난이고 농담인 걸 알고는 있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피를 토할 일이었다.
특히 마지막 들은 말이 아프다. 뼛속 깊이 아프다.
누군 여자 친구가 없고 싶어서 없나. 주말까지 이리 불러내서 사람 굴려 먹는 것들이 그런 말을 하다니! 하늘이 두렵지 않으냐!
조규민이 막 뭔가 말하려는 순간,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실장님.”
“……예?”
“아까 그 기사 하나가 잘못한 건데, 그것 때문에 회사에 피해를 주는 것까진 좀 심한 것 같네요. 적당히 끝내죠.”
“아…….”
“그리고…….”
강진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주말에 불러내서 일 시킨 부하 직원을 그렇게 닦달하는 건 좀 좋지 않아 보입니다. 웬만하면 그 직원은 퇴근시키시죠.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
강진호는 대답도 듣지 않고는 조규민을 지나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자, 이제 가자!”
“예!”
아이들이 우르르 버스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강진호가 그 광경을 보고는 슬쩍 고개를 돌려 조규민을 바라보았다. 강진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맺힌다.
“인성하고는.”
그 말을 남긴 강진호가 터덜터덜 걸어 버스로 향했다. 홀로 남겨진 조규민에게 아이들이 다가와 손을 잡아주었다.
“힘내세요.”
“세상 다 그런 거죠.”
“…….”
위로하고 떠나는 아이들을 지켜보던 조규민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따라 하늘도 우라지게 맑다.
주말에 출근시킨 직원이 뭐?
인성이 어쩌고 저째?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강진호가 태연히 버스에 타고 있었다.
‘콱 엎어져서 코나 깨져라!’
입 밖으로는 못 내는 말을 소심하게 되뇌는 조규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