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16
#815.
응원하다 (5)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가시는 중에 목마르실까 봐 이거…….”
최 씨가 어벙벙한 눈으로 아이가 내미는 음료수를 받아 들었다.
“어어…… 감사합니다.”
존댓말을 하는 게 맞나?
저쪽에서 너무 깍듯하게 대하니 이쪽도 쉽게 나갈 수가 없다.
‘아이들이 참 바르네.’
인사를 하는 모습 하나, 웃는 모습 하나가 평소의 태도에서 우러났다는 인상을 준다.
‘우리 애에 비하면 진짜 천사 같지.’
애비가 집에 들어와도 슬쩍 고개 한 번 숙이고는 하루 종일 컴퓨터에 붙어서 게임을 하는 자식 놈을 생각하니 속에서 천불이 난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도 이리 바르게 자라는데, 그놈은 뭐가 부족한 게 있다고 그리 삐뚤어진단 말인가.
‘다 내 잘못이지.’
최 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탓하려면 자신을 탓하는 게 맞았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도 저리 교육을 잘 받았는데, 그는 명색이 부모이면서도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아직 안 늦었어.’
이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스스로를 반성하게 된다. 지금부터라도 집에 있는 아들과 대화를 늘리고 이 상황을 바로잡아야겠다.
“다 탔어?”
“응, 형.”
“이쪽은 다 탔어.”
강진호가 버스 안으로 올라와서 인원을 점검했다.
‘동네 양아치 같은데, 진짜.’
사실 동네 양아치치고는 좀 잘생기긴 했다. 저 낡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데도 인물이 저리 산다는 건, 제대로 차려입으면 눈이 돌아간다는 뜻이다.
저 깍듯한 아이들이 이 청년에게는 풀어진 모습을 보인다. 이 청년이 그만큼이나 아이들에게 신뢰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그럴수록 이 청년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최 씨가 슬쩍 고개를 돌려 버스에 오르지 않고 있는 검은 정장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엄청 높은 사람 같던데.’
아까 들은 통화 내용대로라면 업체와의 계약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다.
‘어딜까?’
사실 버스 중개업이라는 곳은 이곳저곳에 동시에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일정 기간 계약을 맺고 셔틀을 제공한다든가 하는 방식이 아니라면, 그때그때 필요할 때마다 배차를 하고 물량을 공급한다.
한 곳에 물량이 떨어지면 다른 곳에라도 밀어 넣어야 노는 차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 그 대화만으로 어느 쪽에 소속된 사람인지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말투와 어감을 감안한다면, 보통 회사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왜 이런…….’
최 씨가 고개를 돌려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부스럭.
“아, 형! 좀 사 먹어!”
강진호가 앞에 앉은 아이의 과자를 뺏어 먹고 있었다. 아이가 이리저리 과자 봉지를 돌렸지만, 집요하게 따라가 결국에는 몇 개의 과자를 뺏어 입안으로 털어 넣는다.
“이 형, 요즘 이상한 버릇이 생겼어. 돈도 많으면서.”
“뺐어 먹는 게 맛있어.”
“아으, 진짜!”
아무리 봐도 한심한데…….
물론 세상에는 런닝과 반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지만, 타는 차는 외제차인 인간들이 존재한다. 부모를 잘 만난 금수저라면 딱히 본인의 능력이 없어도 다른 사람들의 공경을 받을 수 있다.
‘근데 저게 무슨 금수저야?’
옷이 저리 낡았는데. 좀 있으면 구멍 뚫릴 기세건만.
내추럴 본 금수저들은 아낄 줄을 모른다. 설사 돈을 아끼는 버릇이 들어 있는 금수저라고 해도 얼마 하지도 않는 운동복을 저리 아껴 입지는 않을 것이다.
설사 본인은 아껴 쓰고 싶다고 해도, 부모가 저런 모습을 방치하지 않는다.
‘그럼 뭐지?’
수많은 의문이 연쇄적으로 떠오를 때, 강진호가 최 씨에게 슬그머니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출발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 예.”
“잘 부탁드립니다.”
허리를 숙이는 강진호를 보며 최 씨도 앉은 자리에서 숙일 수 있는 최대한 허리를 마주 숙였다.
‘부담되네, 이거.’
영 찝찝한 운행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다른 쪽은 문제없대?”
한진성이 강진호의 옆에 앉아 톡을 보냈다. 보내자마자 빠르게 답장이 돌아온다. 여기저기서 보고를 받은 한진성이 강진호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며 대답했다.
“타 차량 전원 탑승 완료되었습니다. 문제없습니다.”
“그래?”
“어, 형. 선생님들도 다 타셨대.”
“그런데 너도 가냐?”
“…….”
한진성이 한 손으로 가슴을 움켜잡았다.
“나, 나도 놀고 싶다, 나도…….”
“놀고 싶은 거야 인지상정이지만, 너는 놀면 안 되는 시기 아닌가?”
“끄윽.”
보육원에 몇 없는 고3 중 하나인 한진성이다. 그리고 고3 중에서도 실업계로 진로를 정한 아이들은 수능에 매달릴 필요가 없고, 한진성처럼 대학을 가겠다고 결심한 아이들만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 주말도 없이 공부해, 형.”
“그래?”
“오, 오늘 한 번만.”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놀 때는 놀아야지.”
“역시 형이 뭔가를 안 다니까.”
“너는 계속 놀아서 문제지만.”
“…….”
한진성이 입을 꾹 다물었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강진호의 입가가 살짝 말려 올라가 있다.
‘이 형, 요즘 입이 트였어.’
처음 보았을 때, 한진성은 강진호가 벙어리인 줄 알았다.
하는 말이라고는 ‘음’ 같은 감탄사밖에 없고, 대부분의 의사 표현은 고개를 젓거나 끄덕이는 걸로 해결했다. 괜히 불편한 상황을 만들기 싫어서 말을 걸지 않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확실하게 기억한다.
그 과묵하던 사람이 날이 갈수록 뭔가 몇 마디씩 던지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아주 그냥 입에 모터를 달았다.
‘그것도 사람 골려 먹는 쪽으로만 발전하고 있다니까.’
그게 대체 누구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아주 제대로 망치고 있었다.
‘망친다긴 좀 그렇지.’
예전의 강진호와 지금의 강진호 중에 누가 더 좋은가는 생각할 거리도 없는 일이다. 지금의 강진호가 백배는 낫다. 물론 과거의 말없던 강진호는 지금보다 멋졌지만, 지금의 강진호는 훨씬 편하고 재밌다.
‘여자애들은 조금 아쉬울 수도 있겠는데?’
예전의 과묵한 강진호에게 환상을 갖고 있던 아이들도 많았으니까. 하기야 저 얼굴로 과묵하기까지 하면 지켜보기에는 딱 좋지.
한진성이 알기로는 보육원 내에서도 강진호를 좋아하는 여자 아이가 좀 있다.
물론 그녀들의 꿈은 이뤄질 수가 없다. 강진호에게는 최연하가 있으니까. 나름 어쩌면 잘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던 여자아이들도 최연하가 보육원에 등장한 그날부터 현실을 깨닫고는 꿈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렸다.
솔직히 이건 체급이 안 맞는다.
연애나 매력이라는 측면에서 최연하와 싸우라는 것은 숟가락을 들고 드래곤에게 돌진하라는 말과 별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뭘 어쩌겠는가.
‘꿈은 마음대로 꿔라.’
꿈이야 누가 말리겠는가. 그리고 여자아이들도 자기가 강진호를 어떻게 해보겠다고 좋아하는 게 아니다. 아이돌 덕질하는 사람들이 아이돌과 연애하겠다고 덕질을 하는 게 아닌 것처럼.
그냥 눈에 보이는 사람이 좋으니 좋아하는 것이다.
한진성의 시선이 슬쩍 뒤로 돌아갔다. 그의 뒷자리에 앉아 있는 조미혜가 보인다.
“뭘 봐?”
“……아니.”
한진성의 고개가 슬그머니 제자리로 돌아왔다. 무서워라.
“형.”
“응?”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요.”
“뭐?”
“이건 형이라면 알 것 같아서 물어보는 건데, 쟤가 요즘 저를 엄청 함부로 대하거든요?”
“누구?”
“미혜요.”
강진호가 슬쩍 뒤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주도권을 좀 잡아보고 싶은데, 제가 무시당하지 않고 막 대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음.”
강진호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차창 밖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우수에 잠겨 있다.
“진성아.”
“예, 형!”
“생각을 해봤는데…….”
“예.”
“내가 그걸 대답할 주제가 못 되는 것 같다.”
“…….”
두 남자가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슬픔에 잠긴 두 남자를 싣고 버스는 하염없이 나아갔다.
“여기야?”
“내려, 내려!”
“어디 가지 말고 내려서 거기 있어.”
목적지에 도착한 아이들이 버스에서 하차했다. 강진호는 최 씨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다시 탈 때 전화드리겠습니다. 몇 시간 걸릴 것 같으니, 쉬고 계시면 될 거예요.”
“예. 걱정 마십시오. 멀리 안 가고 버스 대놓고 있겠습니다.”
“예, 그럼.”
강진호까지 차에서 내리자 최 씨가 한숨을 쉬며 버스 문을 닫았다.
‘식겁했네.’
살면서 이리 긴장된 운행은 처음 해보는 것 같았다. 최 씨가 고개를 내저으며 버스를 몰아 주차장으로 향했다.
“다른 데는 다 도착했나?”
“그런 것 같은데.”
한진성이 휴대폰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계획은 모든 아이들이 다 같이 한 곳으로 놀러 가는 것이었지만 보육 교사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폭탄은 쪼개야 터져도 문제가 없어요.”
“이 인원을 다 데리고 번화가로 가자구요? 사막이나 바다도 아니고? 에이, 장난이시죠?”
더는 주장할 수 없었다.
강진호야 심심하면 한 번씩 들러서 기분 내면 그만이지만, 이 사람들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이들이다. 의견이 충돌된다면 그쪽을 따라주는 게 맞다.
그래서 아이들이 3등분 되었다. 작은 아이들, 조금 덜 작은 아이들, 그리고…….
“노답들 줄서라.”
노답…… 아니, 조금 큰 아이들.
한진성이 아이들을 불러모으자 살짝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게 무슨 수학여행도 아니고, 쪽팔리게 줄까지 서야 돼?”
“길 잃어버린다.”
“길 잃는다고 집도 못 찾아갈까 봐? 다 형 같은 바보는 아니야.”
“뒈진다?”
한진성이 주먹을 들어 올리자 아이들이 강진호의 뒤로 숨었다.
“형! 형! 진성이 형이 때리려고 해요.”
“고소해.”
“…….”
“…….”
아이들이 멍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법을 이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마라. 법은 써먹으라고 있는 거다.”
“아, 네.”
“그럴게요.”
아이들이 구석에서 저 형 좀 이상해졌다고 수군댔다. 강진호는 그런 반응을 무시하고는 양 떼를 모는 개처럼 아이들을 몰아갔다.
“들어가자.”
아이들이 우르르 이동하기 시작했다.
“야, 줄 서라니까, 줄!”
“형이나 서!”
한진성이 발악을 하며 아이들을 통제하려고 했지만, 아이들은 한진성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하며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형, 저거 내버려 둬도 돼?”
“괜찮아.”
“그래도 잘못하면 애들 길 잃는데.”
“내가 찾으면 돼.”
“…….”
할 말이 없어진 한진성이 어깨를 늘어뜨리고는 조용히 걸었다.
‘에이, 모르겠다. 나도 놀러 나온 건데, 애들 신경 쓰지 말고 즐겨야지.’
한진성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커다란 간판이 보였다.
씨 파라다이스 아쿠아리움이란 이름이 화려하게 쓰여 있다.
5일 전에 개장한 국내 최대 크기의 아쿠아리움.
오늘의 놀이터다.
“상어 있으려나, 상어?”
“고래도 있나, 고래?”
흥분하여 소리치는 아이들을 보며 한진성이 혀를 찼다.
“아니, 애도 아니고, 뭘 그렇게…….”
“여기 상어도 있어?”
한진성의 고개가 살짝 돌아갔다.
상어란 말에 웬만해서는 변하지 않는 강진호의 얼굴이 살짝 들떠 있었다.
“…….”
뭐…….
동심을 간직하고 있는 건 좋은 거지.
좋은 거겠지. 허허허…….